지금, 한국사회에 십계명 정신 필요하다
          
“한국 기독교계에 십계명의 정신이 살아 있어야 한다!”

우리 시대에 십계명의 의미는 무엇인가? 지금 한국의 기독교계에 십계명의 정신은 살아 있는가? 십계명은 8개의 ‘하지 말라’와 2개의 ‘하라’로 이뤄져 있다. 이 십계명이 모세시대의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쯤은 누구나 인식한다. 십계명은 지금 우리시대에도 지켜야 할 계명이다. 그런데 중요한 질문 하나. ‘우리는, 우리 사회는 십계명을 지키고 있는가?’

인문학자이자 철학자인 서강대 강영안 교수가 최근 십계명에 관한 책을 펴냈다. 제목은 ‘강영안 교수의 십계명 강의’(IVP)로 ‘십계명이 열어 보인 삶의 길, 자유의 길’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400쪽이 넘는 이 책은 강교수가 15년 전부터 각 교회와 학교, 연구기관에서 강연한 십계명 강의를 정리한 것이다. 그의 말대로 신학을 좋아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철학자일 수 밖에 없는 한 평신도가 급변하는 사회와 문화속에서 살고 있는 크리스천들을 생각하면서 교회에서 한 강의를 묶은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강 교수의 ‘신학적’ 깊이와 넓이가 느껴진다.(그는 고신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었다.) 학자로서 각 주제에 대한 원인과 결과를 자세하게 기술했다.

*왜 지금 십계명인가?

한국교회는 베드로전서 2장9절 이하의 말씀을 따라 참된 교회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베드로는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을 향해 ‘악을 행하는 자’라고 욕을 한다고 해도 실제로 선한 행실을 한다면 결국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라고 말한다. 교회가 교회되게 하는 것, 교회를 산위에 우뚝 선 모습으로 회복시키는 것이 이 시대 크리스천들의 과제다. 문제는 세상보다 더 세상적으로 되어버린 교회가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 땅의 교회는 개체교회를 벗어난 공교회성을 회복해야 한다. 이방인과 나그네로서 이 땅의 교회는 세상의 고난과 기쁨을 함께 짊어진 참다운 윤리적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 시대에 십계명이 필요하다. 십계명이야말로 크리스천 공동체가 이 땅을 사는 동안 걸어가야 할 길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십계명과 그리스도인의 관계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는 율법, 특히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는 길이라고 생각한 자들이 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율법을 모두 이루었다고 하셨다. 바울은 로마서 10장4절에서 ‘예수님이 율법의 마침’이라고 말한다. 율법의 마침이란 구원의 길로서 율법의 효력은 이제 끝났다는 뜻이다. 그래서 바울은 신약교회 성도들에게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고 가르쳤다. 율법은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함께 더 이상 구원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율법은 폐기처분되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로마서 7장12절에 나와 있듯 율법도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며 의롭고 선하다. 율법은 율법대로의 본질과 효용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대신 율법에 대한 우리의 신분과 위치가 바뀌었다.

율법과 그리스도인의 관계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율법이 전혀 다른 형태로 바뀐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의롭고 선하고 거룩한 하나님 뜻의 표현이라는 사실이다.이전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를 통해 율법을 이루려 노력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행위를 통해 율법을 이루려 하기보다 그리스도안에서 율법을 삶의 규범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로마서 8장4절에 영을 따른다는 말이 나온다. 영을 따른다는 것은 성령 안에서 율법을 우리 삶의 규범으로 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5장17절 말씀대로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다. 십계명은 새로운 피조물인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새로워진 관계에서 율법을 본다면 우리는 종으로 율법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인으로 대하게 된다.

신약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과 해방이 먼저 주어지고 그 뒤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과제가 주어졌다. ‘너희가 이것을 지켜라, 그리하면 구원을 받을 것이다’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해 주셨다. 그렇게 때문에 이렇게 살아라’는 것이다.

십계명을 통해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새로운 백성으로서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을 알 수 있다. 흔히들 십계명의 ‘하지 말라’는 계명 때문에 십계명이 우리를 얽매고 속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십계명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유함을 얻은자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 지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결코 속박의 계명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계명의 관계

예수님은 율법을 완전하게 하러 오셨다.(마5:17) 예수님은 옛사람들의 가르침과 자신의 가르침을 대비시키면서 십계명이 가르치는 정신을 심화시키고, 그 뿌리로까지 내려가서 더 철저하게 적용하고 계신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십계명의 근본정신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임을 보여주셨다. 그 분은 사랑이야말로 십계명을 통합하는 원리임을 몸소 보여주셨다.

*십계명의 시작 부분이 특히 중요하다.

출애굽기 20장1절과 2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이 부분이 없다면 십계명이 지닌 독특한 의미가 절반은 감소된다. 고 강조한다. 이 시작부분을 잘 이해해야 십계명이 다른 종교에서 가르치는 계명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있다.

십계명은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사이의 언약이다. 언약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계약 당사자로 전면에 나타난다. 이것이 중요하다. 하나님과 언약 상대는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21세기의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네가 나의 백성이 되려면 지켜야 할 사항은 이것이다’라면서 십계명을 주셨다.

그 하나님은 누구신가. 그는 ‘스스로 있는자’다. 이 말은 하나님은 전에도 계시고 지금도 계시며 영원토록 계실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에 ‘항상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점이다. 우리의 원함이나 상상과 상관없이 현존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 분은 나의 원과는 상관없이 계시는 하나님이다.

그러나 교회사적으로 이 하나님을 오해한 경우가 많았다. 하나님의 불변성, 영원성을 이 땅의 가변성과 시간성에 대비해 본 것이다. 하나님은 생성 변화하는 이 세계와는 상관없는 초연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관점이 있다. 그러나 성경에 나와있는 하나님은 세상사와 초연한 분이 아니다. 고통받는 자기 백성의 고통을 보고, 듣고, 같이 아파하고, 내려오고, 건져주는 하나님이다. 역사에 참여하는 하나님이다.

그리스도인이 믿는 하나님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부동(不動)의 원동자(原動者), 곧 자기는 까딱도 하지 않으면서 세계를 움직이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다. 함께 움직이고, 함께 뛰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역사에 참여하는 하나님이다.

‘스스로 있는’ 하나님은 ‘한가한 하나님’이 아니다. 그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다. 산자의 하나님인 것이다. 그 하나님은 바로 21세기 오늘을 사는 ‘나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자신과 언약을 맺는 백성들에게 ‘나는 주 너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다.

*‘하지 말라’와 ‘하라’

십계명에는 ‘하지말라’가 8개, ‘하라’가 2 개 있다. 하라는 것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다. ‘하지 말라’는 말 그대로 하지 말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장 칼뱅이 강조한 것 처럼 ‘하지 말라’고 하는데는 ‘무엇을 하라’는 적극적인 뜻이 숨어 있다. 가령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단지 살인만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살인을 하지 말고 오히려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라’‘죽음보다는 삶을 택하라’‘살아있는 것들을 돌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간음하지 말라’에는 간음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올바르게 가정 생활을 하고 배우자와 올바른 관계를 가지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하지 말라’는 명령에는 ‘하라’는 더 적극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십계명이 가르치는 금령과 명령, 특히 ‘하지 말라’는 많은 계명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 그냥 손 놓고 가만 있으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이것만 하지 말고 그 외에 이것과 관련된 일을 다하라’는 계명이다. 해서는 안 될 최소한의 것만을 하지 말라고 가르쳐주고, 그 외에 그와 관련된 것을 다 하라는 적극적인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다.

*계명의 궁극적 의미

율법이 한편으로는 채찍의 역할, 거울의 역할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를 자유하게 하고, 해방시키고, 우리 길을 비춰주는 선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 신앙생활에 유익하다. 모세는 신명기에서 율법을 지켜 행하는 것은 헛된 일이 아니라 우리에게 생명이 된다고 말했다. 시편에서는 복있는 사람은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했다. 율법을 통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방법을 배울 수 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 계명의 궁극적인 의도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삶의 길을 보여주는 것이다. 교통법규가 하나의 예가 된다. 교통법규가 있기 때문에 빨간 불일 때 건너가는 것이 죄가 되는 것이다. 법규를 통해서 죄가 무엇인지, 어긴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교통법규는 단지 채찍이나 거울의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모든 법규가 지니고 있는 선한 목적은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자는데 있다. 교통법규가 이럴진대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은 오죽하겠는가. (국민일보 이태형 선임기자 200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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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 구절(WESLEY), 단락(MATTHEW), 테마별, 읽기(Wayne), 소요리, 대요리 문답, 신앙고백WCF
Dictionary - Chapter, OT구약, NT신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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