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대 민애왕(閔哀王)

[참고] 중국:당(唐)

서기 838년, 민애왕(閔哀王)이 즉위하였다. 성은 김씨, 이름은 명(明)으로 원성왕의 증손이며 대아찬 충공(忠恭)의 아들이다. 왕은 일찍부터 벼슬을 하여 상대등이 되었다.

시중 이홍과 더불어 희강왕을 협박하여 죽게 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2월에 김양(金陽)이 군사를 모집하여 청해진으로 가서 아찬 우징을 찾았다. 우징은 이 때 청해진(淸海鎭)에서 김명이 왕위를 빼앗았다는 소식을 듣고 청해진 대사 궁복에게 이르기를,

"김명은 임금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고, 이홍도 임금과 아버지를 함부로 죽였으니,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입니다. 원하오니 장군의 병사를 빌어 임금과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합니다."

하였다. 궁복(弓福)이 말하기를,

"옛 사람들의 말에 잘못한 일을 보고 가만히 있는 사람은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 하였소. 내가 비록 재주는 없으나 명령에 따르겠소이다."

하고 드디어 군사 5천 명을 내어 친구인 정년에게 주면서,

"그대가 아니면 이번 난리를 평정할 수 없다."

하였다.

12월이 되자 김양은 청해진에서 평동 장군이 되어 군사를 거느리고 무주(武州) 철치현(鐵冶縣)에 다다랐다. 왕은 대감(大監) 김민주(金敏周)로 하여금 군사를 내어 싸우게 하였으나, 김양의 기병 3천 명에 의해 섬멸되었다.

2년(서기 839년) 윤정월에 김양(金陽)의 군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행군하여 19일에는 달벌(達伐 또는 달구벌, 대구)에 이르렀다. 왕은 김양의 군사가 닥침을 듣고 이찬 대흔, 대아찬 의훈 등에게 명하여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싸우게 하였으나, 군사의 반이 넘게 죽고 싸움에 패하였다.

이 때 왕은 월유택(月遊宅) 서쪽에 있는 큰 나무 아래에 있었는데 곁에 있던 신하들이 모두 달아나므로 어쩔 줄을 모르다가 김양의 병사들에게 살해 당하였다. 신하들이 왕을 장사 지내고 시호를 민애라 하였다. [nssillak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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