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15 21:02:31-1
● 가규(賈逵) 자 : 양도(梁道) 174~228 하동 양릉 출신
▶ 청렴한 인품으로 조조의 인정을 받아 예주자사(豫州刺史)가 되었다. 부하를 다스림에 엄격한 태도로 임하여 추호도 사(私)를 두지 않고 범법자는 가차없이 파면하였다. 남쪽의 오(吳)나라에 대한 방벽을 굳게 하고 관할지의 수리사업에 주력하였다. 가후거(賈侯渠)라는 운하는 그가 건설한 것이다.
▶ 출신지 : 하동군 양릉현, 직위 : 군리 - 민지령 - 건위장군
위의 장수. 자는 양도.
홍농군태수로 있다가 조조에게 인정을 받아 간의관으로 작전에 임했다. 문제때는 예주를 다스려 명자사로 이름을 날렸고, 다시 명제를 섬기면서 오나라 토벌에 공을 세웠으나 중도에 병으로 죽었다.
▶ 가규(賈逵)
위(魏)의 문신. 하동 양릉(河東襄陵) 사람으로 자는 양도(梁道). 조조가 죽자 그의 아들 사이에 자칫 갈등이 생길 뻔했는데, 스스로 둘째 아들 조창(曹彰)을 달래고 세력을 꺾어 무사하게 마물렀다. 사마의를 도와 동오(東吳)를 쳤을 때 조휴(曹休)가 주방(周 )의 거짓 항복을 믿는 것을 간하였다가 노염을 사서 소외(소외)되었었으나, 패군했을 때에 대비하여 미리 준비하고 있었으므로 조휴는 그를 의지해 죽을 고비를 벗어났다. 이후 많은 공을 세우고 병으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