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고려 만월대  개성직할시 개성시 송악동 nkmhjgesung

만월대는, 919년 이후 고려 전기간에 걸쳐 왕궁이 자리잡았던 유적이다. 원래 이 궁궐 안에 "망월대"라 불리던 궁전이 있어 어느 때부터인가 궁궐 전체를 만월대라 부르게 된 것이다. 과거엔 외침으로 파괴되고 방치되었으나 현재는 보수돼 잘 보존되고 있다. 송악산을 배경으로 그 남쪽 기슭 한 가운데 자리잡은 고려 왕궁은 궁성과 화성을 합해서 125만㎡, 궁성만은 약 39만㎡의 면적이다.

만월대의 특징은 축대를 높이 쌓고, 그위 경사면에 건물을 계단식으로 배치하여 층층이 나타난 지붕으로 인해 그 규모가 웅장해 보인다는 점이다. 왕궁에는 황성의 정문인 동쪽의 광화문과 궁성의 정문인 남쪽의 승평문, 그 뒤에 연이어 세운 신봉문, 창합문 등 많은 문이 있었다. 정면 7칸(27.4m), 측면 4칸(11.12m)으로 된 신봉문터에는 지금도 3개의 문길을 가진 2층 문루의 장엄했을 옛 모습을 상상케 하는 주춧돌이 남아 있다.

만월대의 중심 축대 위에는 회경전, 장화전, 원덕전과 그밖의 건물들이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맨앞 회경전의 축대 정면에는 높이 7.8m의 커다란 돌계단이 놓여 있다. 만월대의 기본 정전인 회경전터는 동서 약 60m, 남북 약 100m의 네모난 회랑으로 둘러져 있다. 정면 9칸(39.35m), 측면 4칸(16.86m)으로 된 회경전 본전터의 기단 평면은 고구려시대 이래 이어져 온 전통형식이다.

회경전 뒤의 장화전, 원덕전도 각각 회랑에 둘러싸인 웅장한 궁전들이었다. 만월대 중심 축대 동쪽에는 동궁터, 서쪽에는 건덕전터, 침전터 등 수많은 건물터들이 있고, 만월대 뒤 언덕에는 정자터 들이 남아 있다. 황성의 성벽은 후삼국 때 태봉국이 쌓았던 발어참성 성벽을 거의 그대로 이용하였고, 그 안을 따로 막아 궁성 성벽으로 삼았다.

고려시대의 기상관측소인 개성 첨성대는 여기 황성 서쪽 구역에 자리잡고 있다. 만월대터에서는 기와, 벽돌, 치미, 괴면, 기둥밑장식 등 적지 않은 유물들이 나왔다. 이 유물들을 통해 고려가 고구려, 발해의 문화를 계승하고 있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고려의 괴면과 기둥밑장식은 발해의 것을 그대로 이어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역사년표Map BC -AD 1 -600 -1000 -1500 -1800 -1900 -1950 -1980-현재 (1945년이후 10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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