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벼운 날들의 생
함 성호(1963- )

다만 네 몸 안에서
물고기처럼 헤엄치고 싶네
얼음 속에서 헤어지고
환한 꽃 속에서 다시 만나는
당신과 나 사이에
맑은 술, 꽃잎이 지네
누구든지 한 번은
자신의 그림자에 매혹당한 적이 있네
지상에 닿기 위해
나는 얼마만큼 더 무거워져야 하는가?
재 되어 날려가는 이 가벼운 날들의 생
(......)
이 폐허가 주는 바다의 환상
나는 세상의 끝에 서 있었네
어두워라, 어두워라 저 허구한 날의
태양이 잠긴 고원의 호소는
내 머리칼은 눈 녹은 강에 풀어져
푸른 보리밭길
흰 산 사이의 쇠락을 홀로 가네
아직도 나에게는 융기할 수 없는 침잠
아, 나는 다시 불처럼 가벼워지고
노래처럼 흘러간다네

(부분.『聖 타즈마할』. 문학과지성사. 1998)

폐허인 이 생에서 가벼워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혹은 폐허인 이 생에서 무거워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얼음인 물과 태양인 불, 재의 공기와 고원의 흙들은 서로 뒤섞여 있고 시인의 이 이미지들을 우리는 따라잡기 힘들다. 지상에 닿기 위한 무게를 갖고 싶은 욕망과 불처럼 가벼워지고 노래처럼 흘러가고 싶은 욕망이 자책과 더불어 뭉쳐져 있다.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느낄 법 하다. 그러나 시는 보려고 할 뿐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시인은 자신이 정확히 무엇을 드러내고 싶은지 모른다. 그저 자신에게 표상되는 것을 드러낼 따름. 그럼에도 우리가 이 시를 붙들기 위한 중심 단어를 찾는 다면 그것은 ‘이 가벼운 날들’일 것이다. 이 가벼운 날들은 무거워져 지상으로 내려가고 싶은 욕망과 불처럼 가벼워져 하늘로 올라가고 싶은 두 욕망 사이의 투명한 막이다. 삶이란 이 상승과 하강의 갈등 구조. 그러나 이 둘을 동시적으로 포획하기에 시인의 삶은 너무 가볍다. 시인은 지금 나르시스처럼 시 속에 갇혀있는 것이다.

(매일신문. 노태맹 시인. 2015.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