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사랑이야기 3부 (11)

혹시나 그녀가 나하고 같이 나가기를 꺼려 하지나 않을까 조금 걱정했던 것은 기 우였다. 아주 당연한 듯 대답하는 그녀를 보면서 기분 좋아 해야 할까? 기분 나 빠 할까? 고민이 되었다.
"그래 갑시다."
아까 그녀의 생일인 것을 모른채 축하해,라는 말을 했을때 지었던 미소는 어디로 간 것일까. 표정의 변화가 별로 없다. 좀 기쁜 표정 지어 주면 어디가 덧나냐.

"언제 갈까요?"
"엄마 주무시니까 지금 가면 좋겠는데."
"그럼 준비하고 나오세요."
"그러죠. 나는 안 입으면 안 입었지. 싸구려는 싫은데."
"알았어요. 근데 그 주름 치마는 싸구려 아닌가?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는데요."
"이건 집에서 입는거잖아요. 그리고 이것도 싸구려는 아니에요."

머리도 감고 면도도 하고 학원 갈때 보다는 좀 나은 모습으로 나를 꾸몄다. 그래 하숙집 그녀도 여자다. 데이트 하는 기분으로 설레며 외출복으로 갈아 입었다. 지금 나가면 학원 가기전에 다시 집으로 들어 올 수 없을 것 같았다. 학원 갈 준비까지 겸해서 했다.
내가 모든 준비를 마치고 방을 나왔을 때 그녀가 젖은 머리를 말리며 욕실에서 나왔다. 아까 그녀의 모습과 변한 것이라고는 물기 묻은 머리칼과 세수한 얼굴뿐이다.
"벌써 나갈 준비 다 한 거에요?"
그녀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 거렸다. 그녀가 피식 웃었다.
"남자들은 외출할 때 편하군요. 좀 기다려요."
그녀가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이십분 가까이 지났건만 나올 생각을 안한다. 치마 하나 사러 가는데 무슨 시간을 저렇게 오래 끄냐.
"나영씨!"
"조금만 기다려요."
방안에선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드라이기 작동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직 머리도 안 말렸나? 바깥 날씨가 좋아서 젖은 머리칼 하고 나가도 될 법 하다. 그냥 나오지.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은 지금까지 기다린 것 만큼 더 기다리라는 소리였다. 에구. 그녀가 보통 외출할 때 저렇게 오래 시간을 끌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자기 생일이라고 그러나. 상당히 짜증나게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녀가 나왔다.

"이제 가요."
"네? 네..."
갑자기 기가 죽었다. 그녀가 진짜 공주가 되어서 나왔다. 내가 이 집에 하숙하기 시작한 후로 사개월 동안 보아 온 모습 중에 가장 예쁜 모습이다. 여자는 진짜 꾸미기 나름인가 보다. 그녀가 이것 보다는 좋은 걸로 사 달라,라고 암시하는 좋은 원피스를 입고 있다. 큰일이다.
"안 가요?"
"예? 그래 갑시다."

정오를 갓 넘긴 초 여름의 날씨의 늦봄 색깔은 화려했다. 옆에 공주가 걷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콘크리트가 대부분인 이동네에서 간혹 비치는 초록빛이 내리는 햇살처럼 곱다. 오늘 햇살은 초록빛이다.
저번 시장 갈때의 기분과는 짐짓 다르다.
"평상시에도 그렇게 꾸미고 있으면 좋겠네요."
"그래요? 예뻐 보여요?"
"예."
"이렇게 꾸미려면 얼마나 귀찮고 불편한 줄은 줄은 모르죠?"
"그래도."
"안돼요. 안 그래도 나 좋아하는 사람들 많아서 걱정인데."
본색을 드러내는 구나. 이번에는 그래도 드러낼 만 하다. 내 모습이 지금 어떨까 괜히 신경이 쓰인다.

"봐 둔 거 있다면서요?"
"네."
"어디 가는데요?"
"다왔어요. 저기 옷 집 보이죠?"
"꽤 괜찮은 메이커네요. 근데 백수가 돈이 어딨다고..."
"나 작년까지 백수 아니었다고 했잖아요. 자꾸 백수 그러지 마요."
"진짜 저기서 사 주려구요?"
"으흠."

그녀가 같이 있으니까 어제 보다는 훨씬 자연스럽게 그 토털 패션점에 들어 갈 수 있었다.

"어서 오세요."
어제 보다 점원이 한 명 더 많다. 어제 나에게는 저렇게 꾸벅 절 하지는 않았는데 그녀와 같이 들어 선 오늘은 좀 무안하게 점원 둘이서 절을 했다.
나는 좀 무안한 듯이 들어 갔지만 그녀는 아주 당당하게 들어섰다. 역쉬.
"뭘 찾으세요?"
오늘은 점원이 제법 질문다운 질문을 했다. 그냥 그녀 옆에서 손바닥을 펼쳐 보인 채 그러니까 내가 고르겠다,라는 식의 답변을 한 다음 어제 본 그 치마가 걸린 곳으로 갔다.
"이쪽이 올해 신상품들이에요."

그녀가 날 쳐다 보며 물었다.
"어떤거에요? 봐 두었다는 것이."
치마들이 걸린 곳을 뒤져서 어제 봐 둔 치마를 찾았다.
"이건데요."
"의외네요. 동엽씨가 고른 것 치곤 상당히 괜찮네요. 색깔이 참 곱다."
그녀가 내가 고른 치마를 만지작 거리며 살펴 본다. 가격표를 보더니 내게로 고개를 돌리며 눈동자를 돌린다.
"왜요?"
"좀 비싸지 않나요?"
"싸구려는 안 입는다면서요."
"고맙긴 한데 무리하지 않나 해서요."
"괜찮아요. 한 번 입어봐요."
"네? 이건 투피스 용 스커트인데. 나 지금 원피스 입고 있잖아요."

그녀의 옷차림을 보니까 저 치마를 입을려면 옷을 벗어야 하는데 그러면 위가 허전하겠다 싶다.
"이 스컷에 맞는 브라우스랑 자켓을 같이 드려 볼까요?"
우리 옆에 있던 점원이 말했다.
"아니 뭐. 동엽씨 그냥 다른 거 사줘요."
그럴까? 근데 저 치마가 참 곱긴하다. 그녀가 입었음 하는 맘이 막 생긴다. 이왕 사주기로 했는데... 같이 입어 보고 치마만 사주면 되지 뭐.
"줘 보세요. 입어 봐요. 뭐 어때요."
"사이즈가 어떻게 되세요?"
그녀가 피식 한 번 웃고는 점원에게 자기 치수를 말했다. 그리고 점원이 가지고 온 옷가지들을 들고 탈의실로 들어 갔다.

"카드 되죠?"
"그럼요."
그녀가 옷을 갈아 입는 동안 지갑을 훔쳐 봤다. 현금이 충분히 있을 리 없었다.

제법 시간이 흐른 뒤에 그녀가 아까보다 더 큰 나라 공주가 되어서 나왔다.
"정말 잘 어울리네요."
잘 어울리긴 한데. 점원아 그렇게 팔고 싶은 티를 내면 안되지.
"동엽씨 괜찮아 보여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졸라 이쁘요.그러고 싶었지만 뒷 일을 생각해서 고개만 끄덕거렸다.
"치마만 팔죠?"
"네."
그녀가 거울을 보며 옷 맵시를 살피는 동안 점원에게 속삭이 듯 물어 보았다.
"애인인 것 같은데 이왕이면 같이 사 드리세요. 어떻게 저렇게 입혀 놓고 치마만 사줄 수 있어요? 나 같으면 그러지 않겠다."
니가 사주냐? 그렇지만 점원 말이 맞긴 하다. 하지만 또 애인 사이는 아니다. 또 하지만 그녀가 입었던 옷을 딴 사람이 사가게 하기도 그렇다.

"다 얼만데요?"
"속닥 속닥."
씨이. 뭐 그리 비싸요. 바가지 아녀? 그렇게 외치고 싶을 정도로 가격이 많이 부담스러웠다.

그녀가 나를 보고 섰다. 웃는 표정이 입고 있는 옷이 상당히 맘에 들어하는 것 같다.
"맘에 들어요?"
"네."
미소 지으며 그녀의 표정이 참 보기 좋다. 아까 뭐 치마 하나 값이 너무 비싸지 않나,할 때의 표정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 없다. 지금 입고 있는 것 중에 하나라도 뺏으면 상당히 열 받을 것 같다.
"그럼 그걸로 사죠 뭐. 인제 갈아 입어요."

그녀가 옷을 갈아 입는 동안 계산을 했다. 아하. 학원비를 뺀 내 한달 생활비가 기분따라 날아 갔다.

그녀가 다시 나왔다. 입었던 옷을 반듯하게 감싸고 나왔다. 그녀를 보며 씩 웃어 주었다.
"애인이 기분파시네요. 오늘 무슨 날인가 보죠?"
점원이 그녀에게 옷을 받으면서 물었다. 그녀가 입을 열려고 했다.
"애인 사이 아니에요."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칫. 그게 그렇게 중요해요?"
그녀가 계산대로 오면서 내게 살며시 말을 건넸었다.
"나영씨가 말하기 전에 먼저 말한 것 뿐이에요."
"내가 언제 그런말 하려고 했나요? 하여간 고마워요."
점원이 종이 가방에 그녀의 옷을 넣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며 그녀가 의아해 하며 물었다.
"그걸 왜 다 넣어요?"
"이거 남자분이 다 계산했어요."

그녀가 약간 감격스러운 듯 한 표정을 짓더니 삭막한 말을 했다.
"미쳤어요?"
"왜요."
"너무 부담스럽잖아요."
"백수라서요?"
이 말은 괜히 했다 싶다. 점원이 날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 보았다. 그녀도 일단 말하던 걸 멈추고 점원이 주는 옷가방을 받았다. 그리고 이상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내 손을 잡았다. 일단 밖으로 나갔다.

"동엽씨 아무에게나 이렇게 돈을 막 써요?"
그녀가 나오자 마자 한 소리다. 사주고 이런 소릴 들어야 하나 참 의문이 든다. 언제 내가 아무 여자에게나 이런 거 사주는 거 봤냐고 묻고 싶다. 나도 왜 그걸 다 샀는지 많이 헷갈리니까 자꾸 그러지 마요.

"왜 내가 그런 말을 들어야 합니까?"
"치마 하나만 해도 좀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는데."
"자꾸 그러지 마요. 사주고 싶으니까 사주었지."
"근데 내가 이런 거 받을 정도로 동엽씨에게 의미가 되는 존재인가요?"
그건 좀 그렇다. 단지 하숙집 딸과 거기 사는 하숙생 사일 뿐인데 내가 좀 무리를 하긴 했다. 아무래도 내 맘 속에 잘 알지 못하는 무언가 있는 것 같다.
"그거 받아서 싫어요? 뭐가 그리 궁금합니까? 그냥 좋으면 되지요."

12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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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 이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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