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한국의 야담 92
[양반을 감동시킨 천민의 우애]
득량(得良)은 을사년 전에 호조예속(戶曹隸屬)이었다.
그는 처음에 그 형과 각거를 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그 처에게 말했다.
“우리 천인은 호구지책이 없어서 형제가 각각 조역(曹役)을 하여
그 품값으로 생활을 하오.
이 때문에 날이 밝으면 부서에 나가고 날이 저물면 집에 돌아오곤 하여
날마다 이와 같이 하고 있소.
그러니 우리 형제가 반드시 한 집에서 함께 살게 된 연후에야
밤에는 서로 모이고 낮에는 가서 일을 할 것이므로
인정과 생리가 병행되어 어긋나지 않을 수 있을 것이오.
그런데 지금 우리 형제는 각거하고 있으므로 서로 얼굴을 보기도 드무니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겠소?”
그리고는 드디어 그 가산을 정리하여 처자를 거느리고 형의 집에 가서 함께 살았다.
비록 하천배라 하더라도 우애가 이와 같았다.
나〔박양한(朴亮漢), 조선조 숙종 때 학자〕의 외조부가 호조판서로 있을 때
득량이 판서의 배종겸인(陪從겸人)으로 날마다 와서 외조부를 모셨다.
외조부께서는 항상 말씀하셨다.
"나는 형제가 각거하여 동실(同室)의 낙을 보존할 수 없으니 득량에게 부끄러움이 많다."
《매옹한록》
2001/06/15(06: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