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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관련 백과사전 & Morrish Bible Dictio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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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ce 공지 성경 속 전쟁 연대기 (The War Chronicles in the B...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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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40 2 2019-03-05
Notice 공지 TIDWELL BIBLE 21 연대표
jesus
69278 1 2016-12-14
Notice 공지 Dictionary for NT 신약성경 백과사전 연구 파일
jesus
85226 1 2016-02-21
Notice 공지 Dictionary for OT 구약성경 백과사전 연구 파일
jesus
85503 1 2016-02-21
Notice 공지 성경백과사전 권별.장별[Chapter] 관련내용보기 파일
jesus
83404 1 2015-05-04
9 홍색/붉은/진홍(Crimson)
기타
jesus
415   2018-08-19
▶ 홍색/붉은/진홍 Crimson. Three Hebrew words are so translated. 1. karmil, a colour prepared from an insect which inhabits a species of oak: it is crimson or deep scarlet. 2 Chr. 2:7, 14; 2 Chr. 3:14. (대하02:7, 14; 7 이제 청컨대 당신은 금, 은, 동, 철로 제조하며 자색 홍색 청색실로 직조하며 또 아로새길 줄 아는 공교한 공장 하나를 내게 보내어 내 부친 다윗이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예비한 나의 공교한 공장과 함께 일하게 하고 14 이 사람은 단의 여자 중 한 여인의 아들이요 그 아비는 두로 사람이라 능히 금, 은, 동, 철과 돌과 나무와 자색 청색 홍색실과 가는 베로 일을 잘하며 또 모든 아로새기는 일에 익숙하고 모든 기묘한 식양에 능한 자니 당신의 공교한 공장과 당신의 부친 내 주 다윗의 공교한 공장과 함께 일하게 하소서 (대하03:14 청색 자색 홍색실과 고운 베로 문장을 짓고 그 위에 그룹의 형상을 수놓았더라 2. shani, the word commonly translated 'scarlet.' Jer. 4:30. (렘04:30 멸망을 당한 자여 네가 어떻게 하려느냐 네가 붉은 옷을 입고 금장식으로 단장하고 눈을 그려 꾸밀지라도 너의 화장한 것이 헛된 일이라 연인들이 너를 멸시하여 네 생명을 찾느니라 3. tola, name of a worm, thought to be a dye of a bluish tint. This word occurs in the memorable passage in Isaiah's prophecy, that though Israel's sins should be red like crimson, they should be as wool. Isa. 1:18. The same word is translated scarlet in Lam. 4:5. (사0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애04:5 진수를 먹던 자가 거리에 외로움이여 전에는 붉은 옷을 입고 길리운 자가 이제는 거름더미를 안았도다 --- Morrish Bible Dictionary
8 백단목(Algum Trees, Almug Trees)
기타
jesus
1741   2015-06-12
▶ 백단목 Algum Trees, Almug Trees. By comparing 1 Kings 10:11 with 2 Chr. 9:10, 11, it is clear that the two names refer to the same tree; it came from the same place, Ophir, and was used for the same purposes, namely, pillars or props, terraces or stairs, harps and psalteries. 2 Chr. 2:8 presents a difficulty, for it seems to say that algum trees came from Lebanon, and the same trees could scarcely be indigenous to places so dissimilar as Lebanon and Ophir. In the last passage the several trees sent by Huram may be named together without meaning that they were all cut from Lebanon. It is supposed that the sandal wood is referred to. Josephus describes this wood as peculiar pine, not like those called pine in his days: to the sight it was like the wood of the fig tree, but whiter and more shining. Ant. viii. 7. 1. (왕상10:11 (대하09:10, 11 (대하02:8 백단목 백단향(白壇香) --- Morrish Bible Dictionary -plantsbible
7 욥바(Joppa) Map 파일
지명
jesus
4353 32 2007-01-02
▶ 욥바(Joppa) 뜻:아름답다 예루살렘 서북쪽 약 55km지점 지중해 안에 있는 항구 도시 (1) 솔로몬이 성전 건축에 쓰인 레바논의 백향목은 뗏목으로 이 항구에 운반 되었다(대하02:16, (스03:7). (2) 요나가 이 항구 에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욘01:3). (3) 기독교가 예루살렘에서 사방으로 퍼지자 욥바는 기독교의 중요한 중심지 기 되었다. 베드로가 이곳에서 이방인 전도를 시작하여 도르가를 살렸다 (행09:36-42). (4) 또 피장이 시몬의 집에 있을 때 고넬료의 하인들이 찾아 왔다(행10:5-8) 욥바는, 20세기에 들어와서 새롭게 하이파 항구가 발전하면서 서서히 그 기능을 잃는다. 주민들도 비좁은 욥바 시내에서 벗어나서 그 북쪽으로 신시가지를 이루며 옮겨 간다. 신시가지는 '봄의 언덕' 이라는 뜻을 가진 텔아비브라고 새로이 이름지어진다. 텔아비브는 순수한 유태인들의 도시로써 이스라엘 건국 후 급속히 인구가 증가한 도시이다. (수19:46, (대하02:16, (스03:7, (욘01:3, (행09:36, (행10:5, (행11:5 lt=32.05351&ln=34.75042
6 예루살렘(Jerusalem) 파일
지명
jesus
10607 48 2007-01-02
▶ 예루살렘(Jerusalem) 뜻: 평화의 터전 유대와 베냐민 두지파의 경계선상에 있으며 지중해 헤브론 요단강 사마리아로접경을 삼고 있다. 이 명칭은 (수10:1)에 처음 기재되었으나 오래전부터 있어 옛 이름이 살렘 우루살렘이라라 하나 확증이 없고 확실한 것은 여부스이며 (삿19:10-11)별명으로 오홀리바라 하고(겔23:4) 시온산의 이름을 따라 시온성 다윗왕의 도성인고로 다윗성,고라의 자손은 하나님의 성리라 하고 하나님 의 성전이 있는고로 거룩한 성이다라 하였다(삼하05:7,5:9, (눅02:11, (시046:4, (느11:1, (마04:5). 이로부터 유대인들은 이 예루살렘을 극히 존중히 여기고 경모 하였다(시122:6, (시137:5-6, (왕상08:38, (사62:1, 7, (단06:10, (마05:35). 스가랴선지는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를 구하라고 예언하였고(슥08:22-23).사도들은 한층 더 고상히게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성이라 하였다(갈04:26).너희가 이를곳은 시온산과 하나 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이라 하였고(히12:22)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이 그의 위에 기록하리라 하고(계03: 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니 그 예 비한 것이 신부가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다고 하였다(계21:2). (1) 역사적 종교적 중요성. 예루살렘은 고대 가나안 사람의 수도였으나 B.C 1,000년경 다윗왕이 점령 령하였다. 아모스와 호세아를 제외한 모든 선지자들의 활동무대였으며 구약 성경 대부분이 여기서 기록되었다. B.C.586년 느부갓네살이 점령하였고 포로 에서 돌라온 후 다시 재건하였으며 파사 희랍 로마시대를 통하여 그의 신성을을 점점 더하였다. 예수의 사역, 죽음, 부활, 승천의 무대였다. A.D.70년 타이러스가 예루살렘을 함락시켰고 136년 하도리안 황제때 재건되었었다가 637년 칼리프 오말에게 점령되었고 회회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1099년 십자군이 점령하였고 1517년 알렌비장군의 연합군이 점령하기까지 터키 사람 의 수중에 있었다. 1920년 국제 연맹의 결의로써 영국의 위임통치로 되었다가 제 2차 대전 이후에 독립하였다. (2) 위치와 기후 고대 문헌을 참고해 볼 때 현재의 예루살렘은 고대 예루살렘의 터위에 건설된 것이 확실하다. 기후는 이탈리아의 북부와 비슷하며 겨울에는 영하2도쯤되며 눈도 내리지만 오래 쌓여있지 않는다. 여름철에는 평균 최고 30도 를 넘지 않는다. (3) 성전의 위치. 솔로몬의 성전은 B.C.586년 느부갓네살의 손에 부서지기까지 존속하였고 포로 기간 중에도 그 위 치를 잊어버리지 않았다(렘41:5, (학 2:3, (스03:12). B.C.516년 스룹바벨이 그 자리에서 다시 지었다(스06:15). 요세퍼스에 의하면 헤롯의 성전은 그런 것을 확장 미화한 데 불과하다고 한다. (4) 지세. 가) 기드론 골짜기:이 골짜기는 예루살렘 동쪽 와디 싯티 마리암일 것이다. (요18:1)과 (막14:26) 을 보면 예수가 감람산에 가실 때 이 골짜기를 건느셨다 나) 힌놈 골짜기: 이 골짜기는 예루살렘 서남쪽을 에워싼 넓은 골짜기 로서 와디엘 라바비일 것이다. 다) 혈 로겔: 골짜기와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은 샘과 못이다. (왕상01:)을 보면 아도니아는 엘로겔에서 대관식을 거행 하였으며 솔로몬은 기혼에서 행하였다. 라) 베데스다:38년된 병자가 일어난 곳이다(요05:) 예루살렘 부근에는기혼(처녀의 샘)이 유일한 간혈천이다. 아마 이것이 베데스다 못의 유적일 것이다. 마) 실로암 지금은 아인이라고 부르는데 실상은 샘이 아니라 처녀의 샘 이 아니라 처녀의 샘의 물을 바위를 뚫어서 급수한 것이었다고 한다. (5) 시대적 증거 가) 솔로몬 시대에는 예루살렘 성전,왕궁,바로의 딸의 집이 계속해있으며 주위는 성벽을 쌓았다. 왕궁은 남쪽에 있었으리라 본다. 왜냐하면 다윗궁 보 다는 높고 경전보다는 낮다고 하였다 (왕상06:36, (왕상7:8,12 (사01:26, (왕상08:1, (왕상09:24, (왕상10:5, (왕하11:19, (렘22:1, (렘26:10, (왕상07:8, (왕상09:24, (왕상03:1, (왕상09:15). 나) 히스기야 시대의 예루살렘 히스기야왕은 산헤립의 침입을 예상하여 기혼의 물을 다윗성 서쪽에 끌어들이는 수로의 기록이 있다. (왕하20:20, (대하32:4,30, (대하07:3,(사22:9-11).이것은 바위를 뚫은 굴인데 이 굴 의 안벽에는 옛날 히브 리어의 비문이 조각되어 있다. 이것이 실로암 비문이다. 다) 신약시대의 예루살렘. 신약시대에 있어서는 예수의 예루살렘 방문이 가장 큰 사건이다 예수님이 처음 세번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것은 성전과 관계가 있었다 (눅02:22-39,41-50, (요02:13-22). 네번째는 베데스다 못(요09: ) 다섯번째는 성전(요07:) 여섯번째는 실로암못과 관계가 있었다(요 9:) 일곱번째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소 수난주일 동안 일,월,화요일에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막11:-16:) 목요일에는 다락방에서 만찬을 잡수셨다(막14:15) 이 다락방은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었을 것이다. 이곳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초대교회의 집회 장소가 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욥바의 문곁 에 빌라도의 집이 있었다고 하며 헤롯 궁전과 같이 있었을 것이라 한다. 십자가와 무던의 장소인 골고다에는 현재의 성묘교회가 서 있다고 한다 옹기쟁이의 밭 "아겔다마"는 나그네의 매장지였다(행01:18). ▶ 예루살렘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시132:13) -------------------------------------------------------------------------------- 황금의 도시, 영원한 도시, 평화의 도시인 예루살렘은 3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채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역사의 중심에서 아직도 꿋꿋하게 살아 숨쉬는 이스라엘의 수도이다. 아무런 보잘 것 없은 풍경과 전무한 상태의 부존 자원을 가진 유대 광야의 동편 가장자리에 우뚝 솟아있는 이 도시를 성경은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시125:2) 하였다. 이런 아무 쓸모없는 땅이 하나님께 선택함을 받았고, '일신교의 보루로서', '세계인의 성도' 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불모의 언덕에서 유명한 철학자들과 선지자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설교와 도덕적 계율들, 그리고 한 형제로서의 사랑을 가르치셨고 실수와 우상숭배로 인해서 눈 어두워진 이 땅의 사람들에게 바른 판단의 기준과 신앙적인 확신을 심어준 신앙의 틀을 짠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 (미04:2) 이곳은 전인류의 절반이 종교적인 수도로 믿고 있고,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옛날의 영광이요 미래 희망의 상징이며, 기독교인에게 있어서는 예수님의 마지막 사역이 펼쳐진 곳이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생생하게 지켜본 도시이다. 또한 회교도들은 이곳이 선지자 모하마드가 승천한 곳이라 믿고 있다. 예루살렘은 신앙과 평화의 원천이며, 가장 신성한 도시인 동시에 테러와 전쟁의 피가 끊임없이 흘려진 곳이다. 즉, 칼이 오랜 동안의 역사를 거쳐오면서 이들의 자손들을 괴롭혀 왔던 것이다. 지구상의 어떤 도시보다도 많은 전쟁을 거쳐왔고, 사람들의 피로 바다를 이룬 적이 수없이 많았었다. 무려 50차례 이상을 포위 공격 당했으며, 36차례에 걸친 정복과 10차례의 심한 파괴를 당했다. 예루살렘의 시초는 고대사 속에 묻혀 있어 알 길이 없지만, '평화'라는 뜻의 '살렘'(salem) 이라는 이름으로 가나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창14:18), 또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비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미는 헷사람이라" (겔16:3) 하였다. 사실상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곳이 된 것은 주전 10세기에 다윗 왕이 여부스 족으로부터 예루살렘을 정복해서 그의 수도로 삼고 (삼하05:6 ~ 10), 여호와의 언약궤를 이곳으로 옯겨온 (삼하06:1 ~ 23) 이후라고 말할 수 있다. 이후 다윗성(City of David)이라고도 불리웠으며, 자신을 포함한 역대 왕들의 무덤이 되기도 하였다. (사진: 다윗의 망대) BC 965 ~ 922 년에는 예루살렘을 확장 시킨 솔로몬 왕이 성전과 그의 궁전을 짓고 예루살렘을 미화하였다. 본격적으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종교, 정치, 문화, 사회등 무든 분야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화려하여 "은을 돌같이 흔하게" (왕상10:27) 하던 예루살렘은 남북 분열 이후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BC 586년 바벨론에 의해서 정복 당하였으며 성전이 파괴되고 사람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시137:1 ~ 4) 하며 애곡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곳에서도 예루살렘을 향하신 하나님의 미래를 결단코 포기하지 않았으며, 그 꿈은 예언자들의 예언대로 70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귀향하여, BC 516 ~ 515 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였다. BC 332년 예루살렘은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서 정복 당했다가, 마카비 전쟁을 통하여 성전을 재탈환하고, 헤스모니아 왕가에 의해서 잠시 동안의 독립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시 로마의 폼페이우스에 의해서 정복되고 말았다. (BC 63년). 로마의 후광을 입어 BC 37년 유대인의 왕으로 임명 된 헤롯 대왕 (Herod the Great)은 위대한 건축가로서 예루살렘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갔으며, 솔로몬 당시의 성전보다도 더 장대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건립하고 성벽을 쌓았다. 이성전은 46년 동안이나 걸려 건축되었고 (요02:20), "헌물과 미석으로 꾸며졌다" (눅21:5). 이 예루살렘이 예수님 당시의 바로 그 예루살렘이다. 그러나 이렇게 화려했던 예루살렘도 예수의 예언 (눅19:41 ~ 44, (눅21:6,20,24)대로 "돌 위에 돌 하나가 남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로마의 티투스 (Titus)는 BC 70 년 예루살렘을 불태워 버리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터전이 되지 못하였으며, 세계에 흩어진 그들에게 있어서 이 도시는 다만 과거의 도시일 뿐이었다. AD 132 ~ 135년 바르 코흐바 (Bar Kokhba) 에 의한 제2차 유대 반란 이후 하드리안 황제에 의해서 예루살렘은 로마의 도시로 재건되면서 엘리아 카피톨리나 (Aelia Capitolina) 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워지게 됨으로써 그 명성있던 이름마저 빼앗기게 되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성스러운 장소에는 로마의 제우스 신전이 세워지고 유대인의 출입이 금해지고 만 것이다. AD 332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예루살렘을 비롯한 예수와 관련된 팔레스틴을 '성지'(Terra Sancta)라 하여 곳곳에 기독교 교회를 세우기 시작하였다. 특히 예루살렘의 골고다에 세워진 성묘교회와 베들레헴에 세워진 예수 탄생교회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친어머니인 헬레나에 의해 건립되었다. 그러나 614년 페르샤의 침공으로 대부분의 교회가 파괴되었으며, 636년 아랍에게 예루살렘이 점령되어 약 500여년간 아랍의 통치하에 있게 됨으로써 예루살렘은 더 이상 기독교의 전통을 이어가지 못하게 되었으며, 새로운 아랍문화로 채색되어 갔다. 1099년 예루살렘이 십자군의 휘하에 들어감에 따라 약 200년 동안 라틴제국의 도시가 되었다가, 1187년 살라딘 왕이 이끄는 모슬렘에 의해서 재점령 됨으로써 기독교와 모슬렘 사이의 이중구조 속에서 예루살렘은 변모해 갔다. 1517년 오토만 터어키 (Ottoman Turkey)의 지배하에 들어감으로써 400년간의 터키 통치가 시작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영국군은 1917년 이후 예루살렘에 총독부를 두어 위임 통치를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제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면서 신생 이스라엘은 시온주의자들의 노력과 국제기구의 승인에 의하여 1948년 5월 14일, 2천년 동안의 유랑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국가로 탄생하게 되었으며, 예루살렘은 다시 이스라엘의 수도가 되어 옛날의 영화를 되찾게 되었다. (사진 :오토만 터키군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알렌비 장군과 영국군) 현재 예루살렘의 신시가지 (New City)는 불과 150여년 전부터 발전되기 시작하였다. 구도시 (Old City)는 1평방 킬로미터에 불과하여 매우 비좁을 뿐만 아니라 매우 오래된 도시이기 때문에 시설이 좋지 못하고 비위생적이었다. 150여년이 지난 지금은 신도시가 구도시의 약 100배가 넘는 신시가지로 발달하였다. 1967년 6일 전쟁 이후 통합된 구도시는 주로 고적지와 박물관 등을 포함하여 새로운 위생시설을 갖춘 일반 주거지로 사용되고 있으며, 신시가지에는 정부청사 등을 비롯한 행정수도로서 그 면모를 현대화해 나가고 있어 옛것과 새 것의 환상적인 조화가 이루어져 있다. 특히 연한 노란 빛을 띄고 있는 석회암에서 반사되는 아름다움은 이 도시를 '황금의 도시' (The Golden City)라 부르게 한다. ▶ Jerusalem's - (사62:1 ▶ (수10:1, (수12:10, (수15:8, (수18:28, (삿01:7, (삼상17:54, (삼하05:5, (삼하08:7, (삼하09:13, (삼하10:14, (삼하11:1, (삼하12:31, (삼하14:23, (삼하15:8, (삼하16:3, (삼하17:20, (삼하19:19, (삼하20:2, (삼하24:8, (왕상02:11, (왕상03:1, (왕상08:1, (왕상09:15, (왕상10:2, (왕상11:7, (왕상12:18, (왕상14:21, (왕상15:2, (왕상22:42, (왕하08:17, (왕하09:28, (왕하12:1, (왕하14:2, (왕하15:2, (왕하16:2, (왕하18:2, (왕하19:10, (왕하21:1, (왕하22:1, (왕하23:1, (왕하24:4, (왕하25:1, (대상03:4, (대상06:10, (대상08:28, (대상09:3, (대상11:4, (대상14:3, (대상15:3, (대상18:7, (대상19:15, (대상20:1, (대상21:4, (대상23:25, (대상28:1, (대상29:27, (대하01:4, (대하02:7, (대하03:1, (대하05:2, (대하06:6, (대하08:6, (대하09:1, (대하10:18, (대하11:1, (대하12:2, (대하13:2, (대하14:15, (대하15:10, (대하17:13, (대하19:1, (대하20:5, (대하21:5, (대하22:1, (대하23:2, (대하24:1, (대하25:1, (대하26:3, (대하27:1, (대하28:1, (대하29:1, (대하30:1, (대하32:19, (대하33:1, (대하34:1, (대하35:1, (대하36:1, (스01:2, (스02:1, (스03:1, (스04:6, (스05:1, (스06:3, (스07:7, (스08:29, (스09:9, (스10:7, (느01:2, (느02:11, (느03:8, (느04:7, (느06:7, (느07:2, (느08:15, (느11:1, (느12:27, (느13:6, (에02:6, (시051:18, (시068:29, (시079:1, (시102:21, (시116:19, (시122:2, (시125:2, (시128:5, (시135:21, (시137:5, (시147:2, (전01:1, (전02:7, (아01:5, (아02:7, (아03:5, (아05:8, (아06:4, (아08:4, (사01:1, (사02:1, (사03:1, (사04:3, (사05:3, (사07:1, (사08:14, (사10:10, (사22:10, (사24:23, (사27:13, (사28:14, (사30:19, (사31:5, (사33:20, (사36:2, (사37:10, (사40:2, (사41:27, (사44:26, (사51:17, (사52:1, (사62:6, (사64:10, (사65:18, (사66:10, (렘01:3, (렘02:2, (렘03:17, (렘04:3, (렘05:1, (렘06:1, (렘07:17, (렘08:1, (렘09:11, (렘11:2, (렘13:9, (렘14:2, (렘15:4, (렘17:19, (렘18:11, (렘19:3, (렘22:19, (렘23:14, (렘24:1, (렘25:2, (렘26:18, (렘27:3, (렘29:1, (렘32:2, (렘33:10, (렘34:1, (렘35:11, (렘36:9, (렘37:5, (렘38:28, (렘39:1, (렘40:1, (렘42:18, (렘44:2, (렘51:35, (렘52:1, (애01:7, (애02:10, (애04:12, (겔04:1, (겔05:5, (겔08:3, (겔09:4, (겔11:15, (겔12:10, (겔13:16, (겔14:21, (겔15:6, (겔16:2, (겔17:12, (겔21:2, (겔22:19, (겔23:4, (겔24:2, (겔26:2, (겔33:21, (겔36:38, (단01:1, (단05:2, (단06:10, (단09:2, (욜02:32, (욜03:1, (암01:2, (암02:5, (옵01:11, (미01:1, (미03:10, (미04:2, (습01:4, (습03:14, (슥01:12, (슥02:2, (슥03:2, (슥07:7, (슥08:3, (슥09:9, (슥12:2, (슥13:1, (슥14:2, (말02:11, (말03:4, (마02:1, (마03:5, (마04:25, (마05:35, (마15:1, (마16:21, (마20:17, (마21:1, (마23:37, (막01:5, (막03:8, (막07:1, (막10:32, (막11:1, (막15:41, (눅02:22, (눅04:9, (눅05:17, (눅06:17, (눅09:31, (눅10:30, (눅13:4, (눅17:11, (눅18:31, (눅19:11, (눅21:20, (눅23:7, (눅24:13, (요01:19, (요02:13, (요04:20, (요05:1, (요07:25, (요10:22, (요11:18, (요12:12, (행01:4, (행02:5, (행04:5, (행05:16, (행06:7, (행08:1, (행09:2, (행10:39, (행11:2, (행12:25, (행13:13, (행15:2, (행16:4, (행19:21, (행20:16, (행21:4, (행22:5, (행23:11, (행24:11, (행25:1, (행26:4, (행28:17, (롬15:19, (고전16:3, (갈01:17, (갈02:1, (갈04:25, (히12:22, (계03:12, (계21:2, lt=31.777&ln=35.234
5 레바논(Lebanon)
지명
jesus
4898 2 2006-12-30
▶ 레바논(Lebanon) 뜻:힌산 팔레스틴 북쪽에 있는 유명한 산으로 단층들로 말미암아 생겨났다. 석회암과 초기 백악기에 형성된 사암으로 구성되어 있어 힌산으로 보인다. 구약에는 71회나 기록 되어 있다. 현재의 독립국가 레바논 공화국은 지중해 동부에 있는 국가이다. 이 나라는 이스라엘과 시리아로 둘러싸인 비옥한 산이 많은 나라이다. 과거 프랑스령이었으나, 17개의 종교 공동체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기반으로 한 헌정체계를 가지고 1941년에 레바논은 독립 공화국이 되었다. 1948년과 1976년 사이의 팔레스타인 피난민의 대량유입으로 그러한 균형이 깨어졌으며, 내란을 불러왔다. 1992년 시리아 군대가 내놓은 평화대책으로 새 정부의 길이 열렸지만, 아직도 시리아의 감독 하에 있다. 레바논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으며, 공식적인 무슬림이 아닌 유일한 아랍국가이다. 하지만, 개인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은 막대한 사회적 종말을 불러온다. (1) 솔로몬왕이 성전과 궁전에 이 산에서 나는 백향목을 많이 썼다(왕상05:6, (대하02:8, (삿09:15, (사35:2, (사60:13) (2) 배의 돛대 제목으로도 썼다(겔27:5). (3) 이스라엘의 상징적 영토라 하나 사실상 여호수아때에 정복하지 못하였다 (수13:5, (신11:24, (삿03:3). * 팔레스틴과 운명을 같이 하여 내려 오다가 2차 대전후 레바논 국으로 독립 국가를 이루었다. 역사 레바논은 성경에 나오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정복자들은 이곳의 풍부한 자연 자원과 안전한연안 정박장, 그리고 높은 산들의 방어 가능성에 매력을 느껴왔다. 이러한 것들 때문에 이 나라의 역사는 침략자, 약탈자, 유명한 사람들의 명사록이 되었다. 레바논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BC 10,000년경의 일로 BC 3,000년 전에 이르러서는 각 마을들이 전형적인 도시로 발전했다. BC 2,500년경에 연안은 지중해에서 가장 위대한 초기 문명 중 하나를 일으킨 페니키아인들이 나중에 들어와 이곳을 식민지화했다. 페니키아인들은 정치적으로 전혀 통일된 적이 없으며 각각의 독립된 도시 국가들에서 나오는 사업과 지적인 노력의 결과를 통해 이곳을 지배했다. 훌륭한 장인들이었던 그들은 월등히 발전된 배와 항해 기술을 통해 바다를 지배했고 최초의 알파벳을 발명하였다 이 발명은 초기 그리스 문화의 문학적 걸작을 낳게 하는 주목할만한 발전이다.BC 9세기에 앗시리아인들이 들어와 페니키아의 배타적인 지중해 무역 지배를 깨뜨렸다. 그들은 신바빌로니아인들에게 굴복하였고 다시 페르시아인들(페니키아인들에게는 해방자로 여겨졌다)들이 이곳을 지배했다. 페니키아인들은 BC 4세기 알렉산더 대제가 중동을 휩쓸면서 마침내 쇠퇴하였고 서서히 그리스화되었다. BC 64년 폼페이대제가 페니키아를 정복하고 로마제국의 시리아 주의 일부로 만들었다. 베이루트는 헤롯왕 치하에서 중요한 중심지로 발벡(Baalbek)에 엄청난 신전들이 건설되었다. 로마제국이 분열되면서 기독교가 힘을 얻고 레바논은 4세기에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에 수도를 둔 동쪽 비잔틴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스정교는 이곳에서 크게 세력을 얻지 못했으며 남쪽에서 이슬람이 알라의 이름으로 들어오면서 쉽게 레바논을 지배했다.최초의 이슬람 왕조인 우마이유드(Umayyuds)는 레바논을 한 세기 동안 쥐고 흔들었지만 특히 레바논 산 근처에 난민촌을 지은 시리아의 마론파를 비롯한 현지의 유태인과 기독교인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하였다. 우마이유드가 750년 압바시드(Abbasids)에 무너지면서 레바논은 페르시아의 압바시드 제국에 밀려 침체하기 시작했다. 이 제국은 11세기 파티미드(Fatimid)왕조에 밀려나기 전까지 지속되었고 파티미드는 십자군 원정이 시작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십자군은 주로 예루살렘을 목표로 했지만 이 도시를 약탈하기 전에 마론파와 손을 잡고 시리아와 레바논 연안으로도 진격했다. 이슬람 아이유비드(Ayyubids)는 시리아, 이집트, 서아라비아, 예멘 일부 등을 공격하였고 나중에 13세기 말부터 300년 간 레바논을 지배한 마멜루크로 알려진 특이한 노예 군인 왕들에 의해 전복되었다. 그들은 대부분의 힘과 자원을 거세게 들이닥치는 몽고군과 싸우데 쏟아 부었다. 마멜루크는 오토만 제국의 등장으로 쇠약해졌으며 레바논의 부족 지도자들 레바논 중앙의 타누크히드 수장, 마론파, 드루제 등은 여러 제국과 복잡한 연합을 형성했다. 오토만의 술탄 셀림 I (Selim I)은 1516-17년에 정복하였고 파크 아드 딘II(Fakhr ad-Din II, 1586-1635)과 파크의 조카 아마드 마안(Ahmad Ma'an)에 의해 잠시 방해를 받았다. 아마드 마안은 1667년 수장국을 세워 현재 레바논의 핵심을 형성했다. 아마드 마안이 죽자 권력은 쉬합 가문으로 넘어가 국내의 세력 다툼과 종교적 차이가 수장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는 1840년까지 이 가문이 권력을 쥐었다. 1842년 오토만은 레바논산을 두 행정구역으로 나누어 하나는 드루제, 다른 하나는 마론파로 만들었다. 이들 사이의 다툼은 필연적인 것으로 나누어 지배하겠다는 정책을 펴던 오토만은 이것을 더욱 부추겼다. 1845년까지 드루제와 마론파뿐 아니라 농부와 봉건적인 통치자들 사이에서도 전쟁이 일어났다. 오토만은 유럽의 압박을 받으며 오토만 기독교 총독의 지배하에 하나의 레바논 행정부를 설립하고 봉건제를 종식시켰다. 새로운 체제는 제대로 효과가 있어서 터키 군사 지배에서 심각한 기근을 겪게 되는 1차 대전까지 안정과 경제적인 번영을 가져왔다. 1918년 연합군의 승리에 뒤이어 레바논은 프랑스의 지배하에 들어갔다.2차 대전 중 레바논은 완전히 독립하였고 주요 교역과 은행업을 발전시켰다. 레바논의 결정적인 약점은 권력이 우익 기독교 국민들에게 집중되는 동안 이슬람교인(인구의 반을 차지하는)은 실제 정부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느끼는 데서 시작되었다. 많은 수의 팔레스티나인들이 들어오면서 갈등의 요소는 더욱 커져갔다. 내전이 발발한 것은 1975년으로 압도적인 이슬람 좌익 연합과 기독교 우익 군부 세력이 충돌하였다. 이후 20년 동안 정신 없이 얽힌 내전과 국제 전쟁 그리고 수많은 인질극은 이 나라에서 흔한 일이 되었다. 대충 이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시리아는 이슬람과 기독교인 사이의 불안정한 평화를 성사시키려는 레바논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개입하였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로부터 북부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해 대리 군대를 설치하면서 진입해 들어왔고 UN은 기독교-이슬람교 사이의 내전 발발을 억제하기 위해 평화유지군을 보냈다. 이스라엘은 1982년 PLO를 제거한다고 발표하면서 베이루트를 포위했다. 또 이스라엘은 팔레스티나시민을 학살하는 기독교 민병대를 지원했다. PLO는 부분적으로 미국에 의해 철수되었고 미국, 서유럽 군이 합쳐진 다국적군(MNF)은 팔레스티나와 이슬람교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배치되었다. 이스라엘이 1년 남짓만에 철수하면서 드루제 이슬람 민병대와 기독교군 사이의 전투가 발발하였고 레바논 군과 이슬람 군과의 전투도 일어났다. 다국적군은 많은 인명피해를 입고 1984년 철수했다.시리아는 서서히 레바논의 이슬람 지역을 손에 넣었지만 1988년 레바논의 신 군사정부는 시리아를 몰아내려 했다. 이 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싸움은 시리아와 좋은 관계에 있던 새로운 대통령인 중도 마론파의 엘리아스 히라위(Elias Hrawi)가 정권을 잡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1992년 모든 살아남은 외국 인질들이 풀려났으며 시리아 군대는 철수를 시작했다. 1992년 8월 의회 선거가 20년 만에 치러졌고 이란의 지원을 받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정당인 헤즈볼라당은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했다. 라피크 하리리(Rafiq Hariri)는 새로운 수상이 되었다. 헤즈불라와 이스라엘 군인의 전투는 1993년까지 계속되어 분노의 포도 작전으로 최고점에 이르렀다 - 이스라엘은 레바논 남부의 80여개 마을에 대해 일주일간 공중, 바다, 육지의 폭격을 계속했다. 1996년 4월 이스라엘이 남부 레바논과 베이루트를 공습하면서 다시 말썽이 커졌다. 국제사회의 반응은 이스라엘을 비난하였고 UN은 정전 협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긴 전쟁으로 인해 150,000명의 레바논 인들이 죽거나 황폐화된 나라를 떠났다. 기반 산업의 피해는 수백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오늘날 국내적으로 레바논은 빠르게 회복하고 있어서 건물도 늘어가고 있고 여러 기관들도 다시 문을 열며 경제도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 레바논의 문제는 다른 중동 국가에서는 한물간 강대국 세력들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과거 몇 십년 동안 중동 문제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국가들은 레바논을 싸움터로 이용하면서 억지를 부려왔다 - 그것이 PLO이건 시리아, 이란, 이스라엘, 아니면 실제로는 UN이건 모두 마찬가지이다. 레바논의 주요 정치적 이해관계의 갈등은 현재 어느 정도 진정되어있지만 이스라엘-레바논 국경을 사이에 두고 양쪽의 총격은 종종 계속되고 있다. 레바논의 기독교도 레바논 기독교들 중에는 비잔틴 제국교회의 신학적 이론을 따르며, 안티오키아의 총대주교 감 독 하에 있던 그리스 전통을 따르는 그리스 계열의 식민자들의 자손이 있었다. 그들은 해안도시 에 거주했었다. 그들은 제국교회의 추종자이기 때문에 제국정부의 보호를 받았다. 그러나 시리아 에서 비잔틴 제국이 물러나자 안티오키아에 있는 그들 자신의 총 대주교에 더욱 가까워졌다. 그 들은 콘스탄티노플의 권위와는 분리되었으나 여전히 그리스 정교도로 불렀다. 무슬림들이 7세기에 레바논을 점령했을 때, 그들은 대부분의 주민들이 비잔틴 지배에 반대하 는 것을 발견했다. 주로 셈족 계열의 기독교도인 이들은 그리스 계열인 비잔틴인을 증오하고 같 은 셈족인 침입자 아랍인을 비잔틴인보다 더 가깝게 여겼다. 따라서 그들은 무슬림의 침입을 환 영했다. 그들은 아랍 무슬림들의 점령을 외세로부터 해방으로 여겼다. 685년까지 기독교도들은 "성서의 백성" 또는 딤미로 불리며 적당한 양의 세금을 물었다. 그들 은 인두세를 무는 대신에 군사 의무를 수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독교도들은 얼마 안가서 군사 력과 정치권력이 없기 때문에 무슬림 정권의 점증하는 압박을 곧 느끼게 되었다. 딤미제도는 쇠 퇴되었고, 기독교도들은 더 이상 교회를 세울 수 없었으며, 기존의 교회도 국가에 의해 모스크로 바뀌었다. 기독교도는 더 이상 새로운 개종자를 구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슬람으로부터의 배교는 사형이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기독교도들은 점진적이나 필연적으로 쇠퇴하게 되어 있었다. 칼리파 압둘 말리크(685-705)는 기독교 지역사회를 더욱 약화시켜 나갔다. 칼리파는 기독교도 들의 땅을 무슬림 이주자들에게 주었다. 결과적으로 아라비아 반도로부터 이주한 무슬림들은 남 부 레바논에 거주하게 되었고, 이 지역의 기독교들은 소수파로 전락하게 되었다. 칼리파는 기독교 도들을 이등 시민으로 분류했고, 가끔 공직에서 그들의 활동을 금지했다. 8세기 중엽부터 기독교 도들은 무슬림 지배의 쓰디씀을 느끼기 시작했다. 레바논에서 이와 같은 무슬림 정권의 탄압을 피하는 방법은 산악 지대로 이주하는 것이었다. 아랍 전사들은 해안 평야에서 거주했다. 사막의 자손인 그들은 산악전에 대한 기술이 없었고 눈 을 몹시 싫어했다. 그들은 산에서 경작하거나 산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것을 경멸하였다. 결국 산 악 지대는 기독교도를 위한 지역으로 남게 되었다. 지형학적으로 해안평야와 틀린 산악지역의 생활양식은 산악지대 기독교도들의 문화를 독특하 게 만들었다. 이 산악지대의 외부인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었으나 어느 누구도 산악지대 거주자의 인정 없이 산악지대를 실질적으로 지배할 수는 없었다. 이것이 레바논 산악지대가 소 수자들의 영구 피난처가 될 수 있는 이유였다. 이 울퉁불퉁한 지대를 커다란 희생을 해 가면서 지배하려는 정부는 거의 없었다. 기독교도들의 산악 지대로의 이주는 계승되는 칼리파들의 압박 이 강해질수록 더 빨라졌다. 결국 레바논의 산간지대는 내부 시리아와 레바논 평원지대에서 분리 된 피압박자와 불만을 가진 자들의 요새요 주거지가 되어 갔다. 이런 종파 중에 시리아로부터 온 한 기독교 집단이 있었으니 현대 레바논을 정치적, 경제적으로 주도하는 마론교도들이었다. 마론교도의 기원은 성 마론 또는 마로(아랍어는 Marun)라고 하는 4세기 후반에서 5세기초에 살았던 시리아 은수자와 685-707년에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였던 성 요한 마론 또는 성 요한네스 마로(아랍어로는 Yuhanna Marun)에서 비롯된다. 684년에 유스티아누스 2세가 끌고 온 비잔틴 침 략군을 마론 총 대주교의 지도에 따라 격퇴함으로써 마론 교회는 완전히 독립하게 되었다. 마론 교회는 전통적으로 로마 교황청과 늘 연결되어 있는 정통교회로 강조되어 왔지만 수세기 동안 콘 스탄티노플 총 대주교 세르기우스의 이단교리를 따르는 단성론자(Monothelite)들이었다는 증거가 있다. 세르기우스는 예수 안에 인간의 의지는 없으며 신적 의지만 있다고 주장했다. 마론교도들은 산악지대에서 그들끼리 살아가며 그들의 정체성을 지켜 나갔다. 반면 그리스 정 교도들은 해변도시에서 압도적인 무슬림들에 의해 둘러싸여 살게 되었다. 약 10세기경에 기독교 도의 인구는 이슬람 침입 이전의 인구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서구는 제1차 십자군이 레바논 에 왔을 때 레바논의 기독교도와 연결 고리를 만들게 되었다. 마론교도들은 십자군을 돕고, 그들 의 길을 안내했다. 그들은 십자군을 환영했고, 그들을 자신들의 해방군으로 받아들였다. 레바논 지역의 기독교도들은 처음에는 십자군에 협조적이었으나, 얼마 안가서 십자군의 교만과 탐욕, 그 들간의 투쟁으로 인해 등을 돌려버렸다. 그러나 마론교도들은 십자군에 끝까지 우호적이었으며, 1302년 십자군이 중동에서 그들의 마지막 요새를 잃은 후에도 서구와의 접촉을 유지했다. 이미 1182년 마론교회의 총 대주교는 라틴계 교구인 안티오키아 총 대주교와 연합하려 했다. 이후 이 들의 이런 시도와 계속된 접촉은 1584년 교화 그레고리우스 8세에 의해 로마에 마론대학이 세워 진다. 이 학교는 20세기까지 예수회의 행정 아래 학자와 지도자 훈련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16세기 경 오스만 터어키가 레바논을 지배하게 되자 마론교도들은 프랑스의 보호로 자신들의 종교와 관습을 지킬 수 있었다. 19세기에 오스만 터어키 정부가 레바논의 인근 산악인인 드루즈 교도들을 불러들여 1860년 마론교도들을 대학살하는 정책을 폈다. 결국 프랑스의 개입으로 마론 교도들은 오스만 제국 안에서 외래인 기독교 지도자 아래 공식적 자율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1920년 오스만 제국의 소멸로 레바논의 마론교도들은 프랑스의 보호 아래 자치권을 획득했다. 1943년 레바논의 독립 후에는 국가를 이끌어 가는 주도 세력이 되었다. 초기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로만 카톨릭의 그리스정교회 끌어안기는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그 들의 노력은 부분적으로 성공적이었다. 1717년에 그리스정교도 중에 일부가 그리스카톨릭 또는 멜키트라는 이름으로 로만 카톨릭 교회를 따르게 되었다. 그러나 로만 카톨릭과는 달라 그들의 동방교회적인 의례와 관습을 지키고 있다. 그리스카톨릭은 문화적으로 서구 지향적이며 정치적으 로는 중동으로 향해 있다. 그리스카톨릭의 감정은 서구와 밀접하게 밀착되어 있는 마론교도의 감 정과 그들 자신이 아랍세계의 일부라고 여기며 레바논 무슬림에 의한 위협을 가장 약하게 느끼는 그리스정교도의 감정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스정교도는 심적으로 서구보다는 중동에 마음의 뿌리를 두고 있다. 십자군 침입 시에 그 리스정교도는 심적으로 아랍과 함께 하였으며, 서구인과 연계를 단호히 거부했다. 1187년 살라딘 의 예루살렘 포위를 벗어나기 위해 기독교도가 맹렬하게 저항하고 있을 때 그들은 공개적으로 무 슬림의 승리를 위해 기도했다. 마론교도가 서구와의 관계를 유지할 때 이를 무시하고 대시리아의 한 부분으로 남기를 원했다. 레바논의 그리스정교는 항상 지리적으로 신학적으로 시리아교회로 향하고 있었으며, 그들 자 신을 아랍인으로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의 그리스정교도는 그들 자신을 무슬림과 연계시켰 으며, 아랍세계와 범 아랍주의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스정교도는 레바논에서 가장 도시화된 종 파이며, 가장 교육수준이 높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레바논의 어떤 종파와도 관계가 좋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은 그들을 레바논의 올바른 시민이며, 레바논의 어떤 집단과도 공존할 수 있는 집단이 라고 말하고 있다. 마론교도와 순니무슬림들은 그들과 어떤 문제도 없다고 믿으며, 드루즈파교도 는 그들이 모든 레바논인의 중재자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스정교도는 레바논에서 가장 덜 위협적인 그룹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정치적으로는 가장 복잡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 그들 의 지역사회는 몇몇의 극단적 정치사상가 뿐만 아니라 많은 재정 엘리트들을 포함하고 있다. 20 세기초에 그리스정교도의 식자들은 대시리아와 시리아국가 건설에 대해 주장했다. 그들이 주장하 는 바는 새로운 것은 아니었으며, 그들의 대시리아는 팔레스타인, 시리아, 레바논을 뜻했다. (송경근/조선대 아랍어과) (신01:7, (신03:25, (신11:24, (수01:4, (수09:1, (수13:5,6, (삿09:15, (왕상04:33, (왕상05:6,9,14, (왕상09:19, (왕하14:9, (왕하19:23, (대하02:8,16, (대하08:6, (대하25:18, (스03:7, (시029:5,6, (시072:16, (시092:12, (시104:16, (아03:9, (아04:8,11,15, (아05:15, (아07:4, (사02:13, (사10:34, (사14:8, (사29:17, (사33:9, (사35:2, (사37:24, (사40:16, (사60:13, (렘18:14, (렘22:6,20,23, (겔17:3, (겔27:5, (겔31:3,15,16, (호14:5,6,7, (나01:4, (합02:17, (슥10:10, (슥11:1 lt=33.752479&ln=35.590804
4 두로(Tyres) Map 파일
지명
jesus
3137 1 2006-12-30
▶ 두로(Tyres) 뜻:바위 시돈항구에서 약 40km지점 레바논과 이스라엘에서 약 24km북쪽에 위치해 있다. (1) 지중해 동해안에 있는 베니게의 유명한 성(겔27:3). (2) 아셀지파에게 여호수아가 나누어 주었으나 방비가 견고함으로 쳐서 취하지 못함(수19:29, (삿01:31-32). (3) 공업과 학술이 발달된 곳으로 다윗과 솔로몬 궁을 지을때 건축 재료와 기술자를 여기서 구하였다(삼하05:11, (왕상05:7). (4) 아합왕이 그 왕녀 이세벨을 취하고 바알까지 취하여 섬기다가 여호와의 징벌을 받았다(왕상21:23-26). (5) 조개 종류에서 취하는 고귀한 자색 염료를 생산하여 여러나라와 무역이 성행되고(겔27:16-25). (6) 주전 331년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포위하고 석로를 쌓고 처들어가 함락하 고 백성 주민을 여러 나라에 노예로 팔고 시가는 불탔다. 후에 로마 국이 점령하고 재건 하였다. (7) 예수님이 그 성에 가셨을 때 가나안 여인의 독실한 신앙을 보시고 그 딸에게 들린 악령을 쫓아 주셨다(마15:21-28). (8) 바울이 7일간 유하며 전도하는 중에 이곳 주민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권고 하였으나 작별하고 예루살렘으로 향하였 다(행21:2-7). (수19:29, (삼하05:11, (삼하24:7, (왕상05:1, (왕상07:13, (왕상07:14, (왕상09:11, (왕상09:12, (대상14:1, (대하02:3, (대하02:11, (대하02:14, (시045:12, (시083:7, (시087:4, (사23:1, (사23:5, (사23:8, (사23:15, (사23:17, (렘25:22, (렘27:3, (렘47:4, (겔26:2, (겔26:3, (겔26:4, (겔26:7, (겔26:15, (겔27:2, (겔27:3, (겔27:8, (겔27:32, (겔28:2, (겔28:12, (겔29:18, (욜03:4, (암01:9, (암01:10, (슥09:2, (슥09:3, (마11:21, (마11:22, (마15:21, (막03:8, (막07:24, (막07:31, (눅06:17, (눅10:13, (눅10:14, (행12:20, (행21:3, (행21:7 lt=33.275827&ln=35.1925745
3 히람(Hiram)
인물
jesus
4796 14 2006-12-28
▶ 히람(Hiram) 뜻: 고상한 자의 형제 [1] 두로왕. (1) 다윗과 솔로몬과 가장 친절한 교제를 하였다 (삼하05:11-12, (왕상09:14. (왕상01:22). (2) 다윗이 궁전을 지을때와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때에 목재와 석재와 기술자를 제공하였으므로 솔로몬은 사례로 갈릴리땅 20을 떼어주고 또 다시스에 선박을 만드는 일에도 많이 협찬하고 해외 통상도 같이 하였다(왕상09:10, 11, (왕상10:22). [2] 두로왕이 성전 건축하기 위하여 솔로몬에게 보낸 금속과 장식의 직공인데 납달리 지파 과부의 아들이요 그 아내는 두로 사람이다 (왕상09:13,40,45, (대하02:13-후람 Huram). 그는 아 바알의 아들로 34년간 재위하고 53세에 별세 하였는데 그의 치세는 베니게 역사상의 황금시대였다. ▶ 히람 Hiram. [Hi'ram] 1. King of Tyre, who loved David and was a friend of Solomon. By his servants he supplied both timber and stone for the temple and the palaces of Solomon. Their navies also united to bring the produce of other lands. Solomon gave to Hiram twenty cities in the land of Galilee, but Hiram was not pleased with them: he called them, in Aramaic CABUL, 'displeasing or dirty;' and the cities were eventually returned to Solomon. 2 Sam. 5:11; 1 Kings 5:1-18; 1 Kings 9:11-27; 1 Kings 10:11, 22; 1 Chr. 14:1, etc. He is called HURAM in 2 Chr. 2:3-12; 2 Chr. 8:2, 18; 2 Chr. 9:10, 21. (삼하05:11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자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매 저희가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 (왕상05:1-18; 성전 건축을 준비함 (왕상09:11-27; 솔로몬과 하람의 교역과 건축 사업 (왕상10:11, 22; 11 〔오빌에서부터 금을 실어온 히람의 배들이 오빌에서 많은 백단목과 보석을 운반하여 오매 22 왕이 바다에 다시스 배들을 두어 히람의 배와 함께 있게 하고 그다시스 배로 삼년에 일차씩 금과 은과 상아와 잔나비와 공작을 실어 왔음이더라 (대상14:1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자들과 백향목과 석수와 목수를 보내어 그 궁궐을 건축하게 하였더라 HURAM (대하02:3-12;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 (대하08:2, 18; 2 후람이 자기에게 준 성읍들을 다시 건축하여 이스라엘 자손으로 거기 거하게 하니라 18 후람이 그 신복에게 부탁하여 배와 바닷길을 아는 종들을 보내매 저희가 솔로몬의 종과 함께 오빌에 이르러 거기서 금 사백 오십 달란트를 얻고 솔로몬 왕에게로 가져왔더라 (대하09:10, 21. 10 (후람의 신복들과 솔로몬의 신복들도 오빌에서 금을 실어 올 때에 백단목과 보석을 가져온지라 21 왕의 배들이 후람의 종들과 함께 다시스로 다니며 그 배가 삼년에 일차씩 금과 은과 상아와 잔나비와 공작을 실어옴이더라 2. A skilful workman of Tyre, filled with wisdom and understanding, who was sent to make things for the temple. His father was a man of Tyre, and he is called "the son of a woman of the daughters of Dan" in 2 Chr. 2:14; but in 1 Kings 7:14 it reads "a widow's son of the tribe of Naphtali," which may mean that her husband was a man of Naphtali. 1 Kings 7:13, 40, 45. He is called HURAM in 2 Chr. 2:13; 2 Chr. 4:11, 16. (대하02:14 이 사람은 단의 여자 중 한 여인의 아들이요 그 아비는 두로 사람이라 능히 금, 은, 동, 철과 돌과 나무와 자색 청색 홍색실과 가는 베로 일을 잘하며 또 모든 아로새기는 일에 익숙하고 모든 기묘한 식양에 능한 자니 당신의 공교한 공장과 당신의 부친 내 주 다윗의 공교한 공장과 함께 일하게 하소서 (왕상07:14 저는 납달리 지파 과부의 아들이요 그 아비는 두로 사람이니 놋 점장이라 이 히람은 모든 놋 일에 지혜와 총명과 재능이 구비한 자더니 솔로몬 왕에게 와서 그 모든 공작을 하니라 (왕상07:13, 40, 45. 13 솔로몬 왕이 보내어 히람을 두로에서 데려오니 40 히람이 또 물두멍과 부삽과 대접들을 만들었더라 이와 같이 히람이 솔로몬 왕을 위하여 여호와의 전의 모든 일을 마쳤으니 45 솥과 부삽과 대접들이라 히람이 솔로몬 왕을 위하여 여호와의 전에 이 모든 그릇을 빛난 놋으로 만드니라 HURAM (대하02:13; 13 내가 이제 공교하고 총명한 사람을 보내오니 전에 내 부친 후람에게 속하였던 자라 (대하04:11, 16. 11 후람이 또 솥과 부삽과 대접을 만들었더라 이와 같이 후람이 솔로몬 왕을 위하여 하나님의 전에서 하는 일을 마쳤으니 16 솥과 부삽과 고기 갈고리와 여호와의 전의 모든 그릇들이라 후람의 아비가 솔로몬 왕을 위하여 빛난 놋으로 만들 때에 --- Morrish Bible Dictionary ----------------------------------------------------------------- 히람… 다윗과 솔로몬의 2대 걸친 협력자 ● 다윗을 위하여, 솔로몬을 위하여 ( 하나님께서 쓰신 이방의 선한 도구 - 히람 ) 누구의 도움으로/다윗의 궁전을 지을 수 있나/누구의 도움으로/솔로몬의 성전을 지을 수 있나 다윗 궁전을 지어야 하는데/솔로몬 성전을 지어야 하는데/이스라엘 땅에는/좋은 건축 자재가 없고/숙달된 건축 기술자가 부족하네 찬양하여라/하나님의 예비하심을/여호와 이레의 축복을/하나님이 보내신 이는/이방의 두로 왕 히람이라 풍부한 건축 물자와/뛰어난 건축 기술을 가진 그는/다윗의 친구로서 다윗을 위하여,/솔로몬의 협력자로서 솔로몬을 위하여/건축 물자를 기꺼이 공급하고/건축 기술자를 즐겨 지원했으니/히람이 있어/다윗 궁전이 우뚝 세워지고/솔로몬 성전이 견고하게 세워졌네 보라,/하나님은 거룩한 당신의 뜻 이루기 위하여/이방인도 선한 도구로 즐겨 쓰심을!/그리하여 하나님은/장차 신약 교회를 건축하실 때에도/이방인들을 기꺼이 참여시켜/그들의 헌신과 예물과 땀으로/주님의 몸 된 교회를 일구어 세웠도다/오늘 히람을 통해 그 신비로움 깨닫게 되네 ● 히람 ― 다윗의 좋은 친구, 솔로몬의 좋은 협력자 히람과 다윗 ‘후람(대하 2:3)’으로 불리기도 하는 ‘히람(Hiram)’은 통일왕국 이스라엘의 두 왕인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베니게 지역의 두로 왕이었다. 두로(티레)는 베니게 지역 최남단에 있던 가장 유명한 고대 항구 도시였다. 당시 두로는 이스라엘에 비해 해상 무역과 건축술 등의 물질 문명이 발달한 반면 농산물이 부족하였다. 두로 왕 히람과 이스라엘 왕 다윗은 서로 호감을 가지고 친밀하게 교류하였는데 처음 둘 사이의 우정은 상호 필요에 의해서 생겨났다. 두로 왕 히람은 이스라엘의 농산물이 필요했고 이스라엘 왕 다윗은 두로의 건축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람은 다윗에게 목재와 기술자를 보내어 다윗의 궁전 건축을 지원해 주었고 그것에 대한 답례로 다윗은 히람에게 밀과 기름 등을 제공했다. 이렇게 둘 사이에 신실한 무역 교류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상대방에 대한 호감과 우정도 탄탄해져 갔던 것이다. 요컨대 히람과 다윗은 가까운 이웃 나라의 왕으로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했다. 히람과 솔로몬 두로 왕 히람과 이스라엘 왕 다윗과의 좋은 우정 관계는 다윗이 죽고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되었을 때에도 계속 이어졌다. 그래서 솔로몬이 왕으로 즉위할 때 두로 왕 히람은 축하 사절단을 솔로몬에게 파견했다(왕상05:1). 그리고 다윗 왕 때와 마찬가지로 솔로몬의 성전 건축을 위해 자재와 목공과 석공 등을 아낌없이 지원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두로 왕 히람은 솔로몬의 무역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와 배와 선원을 지원해주기도 하였다. 그래서 솔로몬은 히람의 협력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이스라엘 북쪽 갈릴리 땅의 20개 성읍을 선물로 주었다. 이처럼 두로 왕 히람은 다윗에 이어 솔로몬과도 좋은 협력 관계를 유지하였다. ‘히람’이 주는 성경적인 교훈과 적용 히람은 비록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나라의 왕이었지만 다윗의 좋은 친구요 솔로몬의 좋은 협력자로서 이스라엘의 중요한 건축 사업에 큰 도움을 준 인물이었다. 이같은 사실은 이방인들이 무조건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때때로 상호 협력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성전 건축 사업에 이방의 왕과 그의 기술자들이 적극 참여했다는 사실은 후일 신약시대 교회에 이방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활동할 것임을 시사해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라고도 볼 수 있다. 김영진<성서원 회장>
2 후람(Huram)
인물
jesus
1688 7 2006-12-28
▶ 후람(Huram) [1] 열왕기에는 히람이라 하였으나 기사 내용을 보아 한 사람인 것이 증명 되었다. (대하02:3,11, (대하13:, (대하04:11, (대하08:2, (대하09:10,21, (왕상05:). [2] 베냐민의 손자이다(대상08:5). ▶ 후람 Huram. [Hu'ram] 1. Son of Bela, a son of Benjamin. 1 Chr. 8:5. (대상08:5 게라와 스부반과 후람이며 2, 3. King of Tyre, and a workman of Tyre. See HIRAM. --- Morrish Bible Dictionary
1 아마사(Amasa)
인물
jesus
1407   2006-12-27
▶ 아마사(Amasa) 뜻:무거운 짐진 자 [1] 다윗의 누이 아비가일의 아들(삼하17:25). 압살롬이 그를 요압 대신으로 반군의 장관으로 삼았더니 압살롬이 죽은 후에 다윗을 신봉했으나 얼마 안되어 요압에게 피살되었다 (삼하28:12 (삼하19:13; (삼하20:4-12; (왕상02:5, 32; (대하02:17. [2] 에브라임 자손의 두령중 한 사람(대상28:12). ======== Amasa. [Ama'sa] 1. Son of Ithra, or Jether, by David's sister Abigail, whom Absalom in his revolt made captain of his army. David forgave him and promised him the command of the army, but he was treacherously slain by Joab. David left it to his son Solomon to revenge this act. 2 Sam. 17:25; 2 Sam. 19:13; 2 Sam. 20:4-12; 1 Kings 2:5, 32; 1 Chr. 2:17. 2. An Ephraimite who resisted the bringing into Samaria prisoners from Judah. 2 Chr. 28:12-15. --- Morrish Bible Dictio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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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연대표 1.창조 2.족장 3.출애굽 4.광야 5.정복 6.사사 7.통일왕국 8.분열왕국 9.포로 10.포로귀환 11.중간 12.예수 13.초대교회 14.세계선교 관련그림.지도 1.창조 2.족장 3.출애굽 4.광야 5.정복 6.사사 7.통일왕국 8.분열왕국 9.포로 10.포로귀환 11.중간 12.예수 13.초대교회 Ani
1창세기[Genesis] 2출애굽기[Exodus] 3레위기[Leviticus] 4민수기[Numbers] 5신명기[Deuteronomy] 6여호수아[Joshua] 7사사기[Judges] 8룻기[Ruth] 9사무엘상[I Samuel] 10사무엘하[II Samuel] 11열왕기상[I Kings] 12열왕기하[II Kings] 13역대상[I Chronicles] 14역대하[II Chronicles] 15에스라[Ezra] 16느헤미아[Nehemiah] 17에스더[Esther] 18욥기[Job] 19시편[Psalms] 20잠언[Proverbs] 21전도서[Ecclesiastes] 22아가[Song of Solomon] 23이사야[Isaiah] 24예레미야[Jeremiah] 5예레미아애가[Lamentations] 26에스겔[Ezekiel] 27다니엘[Daniel] 28호세아[Hosea] 29요엘[Joel] 30아모스[Amos] 31오바댜[Obadiah] 32요나[Jonah] 33미가[Micah] 34나훔[Nahum] 35하박국[Habakkuk] 36스바냐[Zephaniah] 37학개[Haggai] 38스가랴[Zechariah] 39말라기[Malachi] 40마태복음[Matthew] 41마가복음[Mark] 42누가복음[Luke] 43요한복음[John] 44사도행전[Acts] 45로마서[Romans] 46고린도전서[I Corinthians] 47고린도후서[II Corinthians] 48갈라디아서[Galatians] 49에베소서[Ephesians] 50빌립보서[Philippians] 51골로새서[Colossians] 52데살로니가전서[I Thessalonian] 53데살로니가후서[2 Thessalonian] 54디모데전서[I Timothy] 55디모데후서[II Timothy] 56디도서[Titus] 57빌레몬서[Philemon] 58히브리서[Hebrews] 59야고보서[James] 60베드로전서[I Peter] 61베드로후서[II Peter] 62요한일서[I John] 63요한이서[II John] 64요한삼서[III John] 65유다서[Jude] 66요한계시록[Reve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