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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48 2 2019-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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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792 1 2016-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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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85805 1 2015-05-04
10 양푼/잔/대접/대야/주발/그릇 Bason
기타
jesus
1217   2022-04-30
▶ 양푼/잔/대접/대야/주발/그릇 Bason. There are four Hebrew words used for basons nearly all referring to the temple service. 1. aggan, 'a cup, bowl, or bason.' Ex. 24:6. (출24:06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2. kephor, 'large cup or bowl,' probably for the wine when drunk before the Lord; when blood is spoken of a different word is used. 1 Chr. 28:17; Ezra 1:10; Ezra 8:27. (대상28:17 고기 갈고리와 대접과 종자를 만들 정금과 금잔 곧 각 잔을 만들 금의 중량과 또 은잔 곧 각 잔을 만들 은의 중량을 정하고 (스01:10 금대접이 삼십이요 그보다 차한 은대접이 사백 열이요 기타 기명이 일천이니 (스08:27 또 금잔이 이십개라 중수는 일천 다릭이요 또 아름답고 빛나 금같이 보배로운 놋그릇이 두개라 3. mizraq, 'large bason or bowl,' used for holding the blood that had to be sprinkled, etc. Ex. 27:3; Ex. 38:3; Num. 7:13-85 'bowls'; 1 Kings 7:40, 45, 50; 2 Kings 12:13; 2 Chr. 4:8, 11, 22; Neh. 7:70. (출27:03 재를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만들되 단의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지며 (출38:03 단의 모든 기구 곧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고 (민07:13-85 각 지파의 성막 봉헌 예물 (왕상07:40 히람이 또 물두멍과 부삽과 대접들을 만들었더라 이와 같이 히람이 솔로몬 왕을 위하여 여호와의 전의 모든 일을 마쳤으니 (왕상07:45 솥과 부삽과 대접들이라 히람이 솔로몬 왕을 위하여 여호와의 전에 이 모든 그릇을 빛난 놋으로 만드니라 (왕상07:50 또 정금 대접과 불집게와 주발과 숟가락과 불을 옮기는 그릇이며 또 내소 곧 지성소 문의 금 돌쩌귀와 전 곧 외소 문의 금돌쩌귀더라 (왕하12:13 여호와의 전에 드린 그 은으로 그 전의 은대접이나 불집게나 주발이나 나팔이나 아무 금그릇이나 은그릇을 만들지 아니하고 (대하04:08 또 상 열을 만들어 외소 안에 두었으니 좌편에 다섯이요 우편에 다섯이며 또 금으로 대접 일백을 만들었고 (대하04:11 후람이 또 솥과 부삽과 대접을 만들었더라 이와 같이 후람이 솔로몬 왕을 위하여 하나님의 전에서 하는 일을 마쳤으니 (대하04:22 또 정금으로 만든 불집게와 주발과 숟가락과 불 옮기는 그릇이며 또 전 문 곧 지성소의 문과 외소의 문을 금으로 입혔더라 (느07:70 어떤 족장들은 역사를 위하여 보조하였고 방백은 금 일천 다릭과 대접 오십과 제사장의 의복 오백 삼십 벌을 보물 곳간에 드렸고 4. saph, 'dish, bowl.' Ex. 12:22; 2 Sam. 17:28; Jer. 52:19. In the N.T. νιπτήρ, 'large bason,' which our Lord used when he washed the feet of His disciples. John 13:5. (출12:22 너희는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시어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밖에 나가지 말라 (삼하17:28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녹두와 (렘52:19 시위대 장관이 또 잔들과 화로들과 주발들과 솥들과 촛대들과 숟가락들과 바리들 곧 금물의 금과 은물의 은을 가져갔는데 (요13:05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 Morrish Bible Dictionary
9 씻다/씻김(Washing)
기타
jesus
473   2018-11-05
▶ 씻다/씻김 Washing. A requirement of frequent literal recurrence under the law, but in the N.T. a term bearing commonly a moral force and application. Important truth may be learned from the different significations of the Greek words used for 'washing' in John 13. The word in John 13:10 is λούω, 'to cleanse, wash thoroughly.' One who is cleansed in this sense never needs to be thus washed again; he is, as the Lord said, 'clean every whit,' yet in order to have 'part with' Christ, he needs, because of the defilement of the way, that his feet should be washed (here the word is νίπτω), John 13:5-14, an action which is applied to parts of the body only. The same difference was typified in the cleansing of Aaron and his sons. They were at their consecration once 'washed' by Moses, but were thenceforward required continually, when executing their service, to wash only their hands and feet in the laver. Ex. 40:12, 30-32. (요13: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 (요13: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출40:12, 30-32. 12 너는 또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30 그가 또 물두멍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거기 씻을 물을 담고 31 자기와 아론과 그 아들들이 거기서 수족을 씻되 32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와 단에 가까이 갈 때에 씻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 --- Morrish Bible Dictionary
8 예물/번제(THE BURNT OFFERING)
기타
jesus
808   2017-11-29
▶ 예물/번제 Offerings, The. 2. THE BURNT OFFERING. This is typical of Christ presenting Himself according to the divine will for the accomplishment of the purpose and maintenance of the glory of God where sin was taken account of. In the type the victim and the offerer were essentially distinct, but in Christ the two were necessarily combined. The burnt offering, where not specifically prescribed, was brought for a man's acceptance. The expression "of his own voluntary will " in Lev. 1:3 is better translated, "He shall offer it for his acceptance." The victim might be a male of the herd, or a sheep or a goat of the flock, or be turtle doves or young pigeons, according to the ability of the offerer, or the appreciation he had of the offering. These offerings were different in degree, but the same in kind. The male is the highest type of offering: no female is mentioned in the burnt offering. (레01: 번제 드리는 법과 그 제물 (레01:3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드릴지니라 After the offerer had laid his hands on the victim, he killed it (except in the case of birds, which the priest killed). From Leviticus 1 it would appear that the offerer also flayed it, cut it in pieces, and washed the inward parts and legs in water; but the expressions can be taken in an impersonal sense, 'Let it be flayed,' etc., and these acts may have been done by the priests or the Levites. (The Levites flayed the sacrifices in 2 Chr. 29:34, when the priests were too few.) The priest sprinkled the blood round about upon the altar, and, except the skin which was the priest's, the whole of the animal was burnt as a sweet savour on the altar. It made atonement for the offerer, who found acceptance in its value. It was typical of Christ's perfect offering up of Himself, being tested in His inmost parts by the searching fire of divine judgement. Lev. 1. (This aspect of the cross is seen in such passages as Phil. 2:8; John 10:14-17; John 13:31; John 17:4; Rom. 5:18, etc.) (대하29:34 그런데 제사장이 부족하여 그 모든 번제 짐승의 가죽을 능히 벗기지 못하는 고로 그 형제 레위 사람이 그 일을 마치기까지 돕고 다른 제사장의 성결케 하기까지 기다렸으니 이는 레위 사람의 성결케 함이 제사장들보다 성심이 있었음이라 (빌0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요10:14-17;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요13:31; 저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요17: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롬0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Leviticus 6 gives the law of the burnt offering. "It is the burnt offering because of the burning upon the altar all night unto the morning, and the fire of the altar shall be burning in it . . . . it shall not be put out." This refers to the morning and evening lambs; they formed a perpetual burnt offering. Ex. 29:38-41. It is to be remarked that it was "all night unto the morning" (although it was perpetual), doubtless to point out that Christ is for Israel ever a sweet savour to God, even during the present period of Israel's darkness and forgetfulness. Aaron had to put on his linen garments to remove the ashes from the altar to 'the place of ashes' beside the altar: he then changed his dress and carried the ashes outside the camp. The ashes were the proof that the sacrifice had been completely accepted (Ps. 20:3, margin. In 'the morning' Israel will know that their acceptance and blessing is through the work of their Messiah on the cross. The daily sacrifice was offered by the priest as acting for the whole nation, and presented typically the ground of its blessings and privileges. Hence faith made much of it. Ezra 3:3; Dan. 8:11, 13, 26; Dan. 9:27. (레06: 번제, 소제, 속죄제를 드리는 규례 (출29:38-41 38 네가 단 위에 드릴 것은 이러하니라 매일 일년 된 어린 양 두 마리니 39 한 어린 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 양은 저녁때에 드릴지며 40 한 어린 양에 고운 밀가루 에바 십분 일과 찧은 기름 힌의 사분 일을 더하고 또 전제로 포도주 힌의 사분 일을 더할지며 41 한 어린 양은 저녁때에 드리되 아침과 일반으로 소제와 전제를 그것과 함께 드려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여 여호와께 화제를 삼을지니 (시20:3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으시기를 원하노라(셀라) (스03:3 무리가 열국 백성을 두려워하여 단을 그 터에 세우고 그 위에 조석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 (단08:11, 13, 26; 11 또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를 대적하며 그에게 매일 드리는 제사를 제하여 버렸고 그의 성소를 헐었으며 13 내가 들은즉 거룩한 자가 말하더니 다른 거룩한 자가 그 말하는 자에게 묻되 이상에 나타난바 매일 드리는 제사와 망하게 하는 죄악에 대한 일과 성소와 백성이 내어준바 되며 짓밟힐 일이 어느 때까지 이를꼬 하매 (단09: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 Morrish Bible Dictionary
7 사자 / 사도(Apostle.)
인물
jesus
1306   2016-09-26
▶ 사자 / 사도 Apostle. The Greek word ἀπόστολος signifies 'a messenger,' 'one sent,' and is used in this sense for any messenger in 2 Cor. 8:23; Phil. 2:25; and as 'one sent' in John 13:16. It is also used in a much higher and more emphatic sense, implying a divine commission in the one sent, first of the Lord Himself and then of the twelve disciples whom He chose to be with Him during the time of His ministry here. The Lord in His prayer in John 17:18 said, "As thou hast sent me into the world, even so have I also sent them into the world." He was the Sent One, and in Heb. 3:1 it is written "Wherefore, holy brethren, partakers of the heavenly calling, consider the Apostle and High Priest of our profession, Jesus."* They were to consider this One who had been faithful, and who was superior to Moses, to the Aaronic priests, and to angels, and was in the glory. The ordering of a dispensation depended on the apostolic office as divinely appointed. (고후08:23;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무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빌02: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요13: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요17: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히0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 The word 'Christ' is omitted by the Editors. --- Morrish Bible Dictionary
6 놋 물두멍(Laver.)
기타
jesus
2602   2016-04-16
▶ 놋 물두멍 Laver. This appertained to the tabernacle and the temple. It was placed between the tabernacle and the brazen altar, and the priests were required to wash their hands and their feet when they approached for any service. Ex. 30:18-21. The priests were at first thoroughly washed, but that was a distinct thing from the continual cleansing of their hands and feet. John 13:4-14 is somewhat analogous to this, where the apostles, though declared to be clean (except Judas), needed that their feet should be washed, because of the defilements of the way, in order to have part with Christ when He went to the Father. In the tabernacle it was hands as well as feet that were to be washed, because there it was service, as well as the sphere of their walk. Ex. 40:7, 11, 30. (출30:18-21. 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만들어 씻게 하되 그것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으라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화제를 여호와 앞에 사를 때에도 그리 할찌니라 이와 같이 그들이 그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할찌니 이는 그와 그 자손이 대대로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요13:4-14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다 (출40:7,11,30. 7또 물두멍을 회막과 단 사이에 놓고 그 속에 물을 담고, 11너는 또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30그가 또 물두멍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거기 씻을 물을 담고. The laver for the tabernacle was made of the brazen mirrors given by the women. Ex. 38:8; its shape and size are not specified. The laver for the temple was circular, being ten cubits in diameter, and (in round numbers) thirty in circumference, and five cubits in height. 1 Kings 7:26 states that it "contained 2000 baths," which probably refers to the quantity of water that was usually put into it; for 2 Chr. 4:5 says "it received and held 3000 baths," which may signify its full capacity. The above dimensions do not seem to agree with this capacity; but the definite shape of the laver is not given, it may have bulged out considerably in the middle. (출38:8 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 (왕상07:26 바다의 두께는 한 손 넓이만하고 그 가는 백합화의 식양으로 잔 가와 같이 만들었으니 그 바다에는 이천 밧을 담겠더라 (대하04:5 바다의 두께는 한 손넓이만하고 그 가는 백합화의 식양으로 잔 가와 같이 만들었으니 그 바다에는 삼천 밧을 담겠으며 The laver for the temple is called 'a molten sea,' and 'a brazen sea,' and was supported on twelve oxen. It was used for the same purpose as the laver of the tabernacle; but in the temple there were also ten smaller lavers at which the sacrifices were washed. 1 Kings 7:23-43; 2 Kings 16:17; 2 Chr. 4:6, 14. (왕상07:23-43; 놋을 부어 만든 바다, 놋받침과 물두멍 (왕하16:17; 아하스왕이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어내고 물두멍을 그 자리에서 옮기고 또 놋바다를 놋소 위에서 내려다가 돌판 위에 두며 (대하04:6, 14. 6또 물두멍 열을 만들어 다섯은 우편에 두고 다섯은 좌편에 두어 씻게 하되 번제에 속한 물건을 거기 씻게 하였으며 그 바다는 제사장들의 씻기를 위한 것이더라, 14또 받침과 받침 위의 물두멍과 --- Morrish Bible Dictionary
5 붉은 암송아지(Heifer, Red.)
기타
jesus
1236   2016-04-02
▶ 붉은 암송아지 Heifer, Red. This was a unique offering. The red heifer was killed outside the camp, and its blood was sprinkled by the priest seven times directly before the tabernacle. The whole of the heifer was then burnt, and the priest cast cedar wood, hyssop, and scarlet into the burning of the heifer. The ashes were gathered up and laid in a clean place outside the camp. When the ashes were used, a person that was clean mixed in a vessel some of the ashes with running water, then he dipped hyssop into the water, and sprinkled the person, tent, etc., that was unclean. It was a water of separation — a purification for sin. The ordinance of the red heifer was an exceptional form of sin offering. It had not atonement in view, but the cleansing by water of those who, having their dwelling and place in the camp, where Jehovah's sanctuary was, had become defiled by the way: cf. Num. 5:1-4. Upon the basis of sin being condemned in the cross, it corresponds to 1 John 1:9. The washing of the feet of those that are clean, as taught by the Lord in John 13 has this character of cleansing with water. The Holy Spirit applies, by the word, the truth of the condemnation of sin in the cross of Christ to the heart and conscience, to purify the believer, without applying the blood again. Num. 19:1-22; Heb. 9:13. But John 13 goes further. The Lord applies the truth of His departure out of this world to the Father to the walk of His disciples. (민05:1-4. 부정한 사람의 처리.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모든 문둥병 환자와 유출병이 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케 된 자를 다 진밖으로 내어 보내되 무론남녀하고 다 진 밖으로 내어 보내어 그들로 진을 더럽히게 말라 내가 그 진 가운데 거하느니라 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그들을 진 밖으로 내어 보내었으니 곧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행하였더라 (요일0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13: (민19:1-22; 1-10 붉은 암송아지의 재, 11-22 시체를 만진 자 (히09: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 Morrish Bible Dictionary -animalbible
4 지팡이, 붓(Pen)
기타
jesus
1301   2015-05-05
▶ 지팡이, 붓 Pen. A general term for any implement used either for cutting an inscription on stone or metal, or a reed for writing on papyrus or parchment. Judges 5:14; Job 19:24; Ps. 45:1; Isa. 8:1; Jer. 8:8; Jer. 17:1; 3 John 13. (삿05:14; 지팡이 (욥19:24; an iron pen 철필 (시45:1; 붓 (사08:1; 통용 문자 (렘08:8; 붓 (렘17:1; 필 3 (요13. --- Morrish Bible Dictionary
3 요한(John)
인물
jesus
7516 34 2006-12-27
▶ 요한(John) 뜻 :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 [1] 세례요한. (1) 그리스도의 선구자로서 제사장 사가랴와 엘리사벳 사이에서 난 아들이며 예수와 친척 관계이며 예수보다 6개월 먼저 출생했다(눅01:, 2:). (2) 30세기경 디벨리우스황제(AD.26)때 유대 광야 요단 강변에 나타나 복음을 외쳤다(눅03:1). (3) 그 선교의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다. 그는 회개의 표로서 세례를 베풀었으며 예수님도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바드셧다(마03:15, (막01:9, (눅03:21). (4) 구약 선지자의 최후의 인물이라 여졌으며 예수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마11:11-13). (5) 그는 분봉왕 헤롯 안디바의 불의한 결혼을 비난하여 목 베임을 당하였다(막06:17-29, (마14:3-12,28년경). [2] 사도요한. - 예수의 12제자중의 한 사람으로 야고보와 형제이다. (1) "보아너게" 우뢰의 아들이란 별명을 가졌는데 이것은 그의 과격한 성격 때문인 듯 하다(막03:17, (막09:38, (눅09:54-:5). (2) 예수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던 제자다(요21:20) (3) 그는 베드로, 야고보와 더불어 예수의 측근자였으며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예수와 동반되었다(막05:37, (막09:2, (막14:33). (4) 요한 복음과 요한 서신을 썼으며 말년에는 밧모섬에 유배되어 가서 요한 계시록을 썼다. (계01: ) [3] 베드로의 아버지 (요01:42, (요21:15) [4] 마가요한 (마가복음). [5] 산헤드린 공회의원(행04:6) ▶ 사도 ∼ (J. Apostolus, ? ∼100?) 12사도의 한 사람. 성인. 갈릴레아의 어부, 제베대오의 아들. 장(長)야고보의 동생(마04:21, (마10:2, (막01:19, (막03:17, (눅06:14, (행01:13). 형 야고보와 함께 일찍부터 가업(家業)을 버리고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마04:21,22). 12제자 중에서도 베드로, 형 야고보와 함께 대표적 인 물이며, 예수 생애의 중요한 장면에 등장하고 있다(눅08:51, (마17:1, (막14: 33). 타고 난 과격한 성격 때문에 '벼락의 자 식'이라 불릴 정도였지만(막03:17), 요한 복음이나 편지 등과 관계가 깊다고 보고 '사랑의 사도'로도 일컫는다. 이 " 사랑받는 제자 "는 큰 야고보( James the Great )의 형제이다. 에베소로부터 로마로 강제 송환 명령을 받았으며, 그곳에서 기름이 끓는 솥에 던져지는 형을 받았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피해 달아나는데 성공했다. 그 후 도미티안( Domitian )은 그를 팟모 섬으로 추방하였고, 요한은 그 곳에서 "요한계시록"(계 )을 기록하였다. 도미티안이 후계자인 네르바가 요한을 재송환하였다. 그는 사도들 중에 유일하게 참혹한 죽음을 피한 사람인 셈이다. -------------------------------------------------------------------------------- [1] 세례 요한 요한은 구약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신약 시대를 펼쳐나간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이다. 성경은 요한의 탄생과 그의 이름과 사역이 모 두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있었음을 밝혀주고 있다. 순수한 제사장 가문에서 출생한 요한은 야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여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선구자의 생애를 살았다. 요한은 메시야에 대한 소망을 확신 가운데 지키고 있었다. 그는 안정된 가정에서 안일한 생활을 하기 보다는 황량한 광야에서 거친 생활을 하는 고 독한 길을 택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영적으로 성숙하게 되는 복된 길이었다. 극히 검소한 복장과 간소한 음식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천국 복음을 전하던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는 요단강가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부터 일대 변화를 일으킨다. 수천년 동안 고대하던 "오실 메시야"를 직접 보고 세례를 배푸는 요한의 입에서는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에 대한 증언이 터져 나온다. 겸손히 메시야만을 증거하며 자기를 부인하는 요하의 헌신적인 삶은 스스로의 몸을 태워 빛을 비추며 꺼져가는 촛불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요한조차도 하나의 불완전한 인간일 수 밖에 없었다.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타고난 요한은 헤롯왕의 불의를 질책하여 옥에 갇혀 있던 상황에서 주님을 의심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타고난 요한은 헤롯왕의 불의를 질책하여 옥에 갇혀 있던 상황에서 주님을 의심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 요단강가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현현을 직접 목격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자신이 들은 소문만으로 그의 존재의 의미가 되시는 예수님을 의심하는 인간 요한에게서 육신에 속한 자들의 안타까운 갈등을 읽을 수 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라도 성령께서 함께 하지 않을 때에는 인간의 말 한마디에 휘청거리는 보잘것 없는 추한 죄인의 모습을 보일 뿐인 것이다. 이러한 요한이었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를 가리켜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다" 고 말씀하셨다. 요한은 옥중에서 왕비 헤로디아의 간 계로 그의 생애를 마감하게 된다. 자신의 생일 잔치 석상에서 어린 딸의 춤솜씨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헤롯왕은 그에 대한 보상으로 요한의 목을 주고 만다. 끝까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순수하고 담대한 신앙의 열정을 지킨 요한의 순교는 비록 그가 한때 일시적으로 실수했었을지라도 천국의 열린 문으로 들어갔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두운 세상에 한줄기 빛을 던져준 요한의 생애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속에 작은 별로 남아 있다. 주님의 초림을 기다리며 그길을 예배한 요한의 삶은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 가운데 기다리는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준다. 요한이 그랬듯이 광야와 같은 세상을 향하여 늘 복음을 전파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함을 배울 수 있다. [2] 사도 요한 1. 요한의 이름 레오날도 다빈치(Leonardd da Vinci)는 그림 {최후의 만찬}에서 소녀처럼 미소지으며 부드럽게 흰 손을 겹치고 있는 요한의 얼굴을 그렸다. 십대의 말기에 주 예수를 만났을 때에는 비록 사도들 가운데서 나이가 가장 어리며 나약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으나 요한은 용감하고 영적으로 강건한 사람이었다. 예수님은 요한과 그 형제 야고보를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라 부르셨다(막 3:17). 이 형제들의 활화산 같은 성품은 주님에게 겸손하지 못한 사마리아인에게 불을 내리기를 원했을 때 잘 나타났다. 또 이 형제는 앞으로 올 왕국에서 높은 자리 둘을 주십사고 예수께 간청하는 절제 없는 야망을 갖기도 했다. 주 예수는 이들의 불 같은 열망과 경건하지 못한 욕심을 꾸짖으셨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들을 삼년간 훈련시켜 폭풍 같은 성격을 잠재웠으며 우뢰를 조용하게 변화시겼다. 2. 요한의 초기 생활 형제인 야고보와 함께 요한은 가버나움에서 베드로, 안드레와 고기를 잡았다. 요한의 아버지는 세베대였다(마 10:2). 고기잡이는 근육을 발달시키는 힘든 노동이었다. 거센 파도를 헤치면서 노를 젖기 때문에 손바닥에는 못이 박혔다. 또약볕 아래서 그물을 수선하는 일은 청년들을 구리빛으로 만들었다. 안드레와 함께 요한은 밥티스마 요한에 의해서 예수님께 인도되었다. 예수님과 몇 말씀을 나눈 요한은 그가 구세주임을 확신하였다. 요한은 육십년이 지난 뒤에도 처음으로 예수님과 대화한 감격적인 시간인 시간을 회상하였다. 이 순간부터 예수님은 요한의 생애에 빛이 되셨다. 사랑이란 서로 주고 받는 보완관계이다. 요한은 "예수의 가장 사랑받는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예수님과 처음 만난 후 요한은 고기잡이하러 돌아왔으나 나중에는 예수님과 동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고기잡이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예수께서 요한을 부르셨기 때문이다. 야고보, 베드로, 안드레와 함께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하여 큰 마음을 먹고 아버지와 배와 고기와 직업을 버렸다. 3. 편협한 마음(막09:38-40, 눅09:49-50) 어느 마을로 복음을 전하러 가던 중에 요한은 많은 사람이 웅성거리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동요하는가 보려고 요한은 앞으로 다가갔다. 귀신들린 한 소년이 땅 위를 뒹굴면서 소리를 지르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요한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권세로 귀신을 쫓아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한이 미처 손도 쓰기 전에 낮선 사람이 귀신을 쫓아냈다. 그 소년은 경련을 일으키며 몸을 뒤틀 다가 조용해지더니 고쳐졌다. 요한이 귀신을 쫓으려 했을 때 깜짝 놀란 낯선 사람에게 큰 소리로 "감히 어떻게 당신이 주님의 이름을 쓸 수 있단 말이오? 도대체 당신은 무슨 권능이 있길래 그런일을 하오? 당신은 주님으로부터 아무런 권세도 받지 못한 사람이요. 나는 주님의 가까운 사람 중에 한 사람이요. 이전에 나는 당신을 본 일이 없오. 결코 주님의 이름을 쓰지 마시오"라고 했다. 예수의 제자가 아닌 사람이 예수님을 대신하여 말할 수도 없으며 예수의 이름으로는 일도 할 수 없다고 강경하게 요한은 몰아쳤다. 요한은 예수님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열아나이다"라고 여쭈었다(막 9:38). 예수께서는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한자니라"(눅 9:50)고 요한에게 말씀하셨다. 요한의 이야기로 미루어 보면 병고치는 이 사람은 스게와의 일곱 아들처럼 전문적으로 귀신을 쫓는 사람임을 예수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다(행 19:13-14). 이 사람은 어디에서인가 예수의 말씀에 감동을 받은 성실한 사람 이었으며, 곤고한 사람들을 위하여 예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흉내내어 보려는 사람 이었다. 아마도 이 사람은 사도들과 동등한 영적 은사를 받은 사람이었느지도 모른다. 요한의 성격이 외곬수적인 것은 가장 높은 자리에 대한 그의 야망이 연장된 결과였다. 그는 사도로서의 자부심을 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다(막 9:39). 요한은 주 예수의 이름을 의탁하여 주 에수의 일을 행하는 데 제자 아닌 사람을 제외시키려는 계획을 성공하지 못하였다. 열 두 사도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을 부인하지 않은 것은 성도들에게 대단히 훌륭한 교훈이 된다. 마치 사도들이 예수를 따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서는 사도들처럼 예수님을 따르며 무리를 만들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물론, 우리는 믿음의 근본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일을 행하는 것에 찬성할 수 없다. 말년에 예수께서는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지지하는 행위에 대하여 강경한 경고를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가 행하는 것과 똑같이 행하면서도 신학적인 문제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 마음을 용서하고 관대할 필요가 있다. 자기가 속한 종파만이 오직 진실한 교회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스러운 일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우리들과 꼭같지 않다고 하여 침례교이든, 감리교이든, 루터란이든, 오순절 계통이든, 성공회이든 배척할 정당한 근거는 없다. 4. 요한의 변화 어느 정원사가 정원의 흙을 보고 "너는 어떻게 그처럼 좋은 향기를 풍기느냐?"고 물었더니 진흙은 "사람들이 나를 장미꽃 옆에 두었기 때문이랍니다"라고 대답했다. 항상 주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성급한 청년 요한은 성인이 되어 온유한 성격으로 변하였다. 요한의 야망은 줄어들었다. 편협한 외곬수적 성격도 사라졌다. 요한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 격렬한 성격의 청년에서 마음 착한 성인이 된 것이다. 신학자들은 요한이 복음서 뿐만 아니라 서신과 계시록도 썼다고 믿는다. 약 일 세기 전에 일부 학들이 "요한서신을 쓴 사람이 과연 사도 요한이냐"하는 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복음서의 요한과 서신의 요한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네번째 복음서인 요한복음은 요한을 야망으로 가득 차 있고 화를 잘 내며 도량이 좁은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비하여 요한서신의 기록자인 요한은 사랑의 정수라고 설명되어 있다. 요한은 주 예수에 의하여 우뢰의 아들에서 사랑의 사도로 변하였다. 요한이 이렇게 변하는 데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의 인격 속에는 타고난 성격이 항상 깃들어 있기 때문에 폭발적인 잠재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함께 해주시는 권능과 근엄한 용모는 여러 갈래로 찢어진 요한의 옳지 못한 정력을 온유한 길로 인도하였다. 유리들의 정력은 결코 옳기만 하지더 않고 나쁘기만 하지도 않은 그 중간 상태이기 때문에 그것이 나쁜 방향으로 쓰일 수도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일 수 있는 가능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요한의 강력한 정신이 거짓 교리나 사악한 행동에 대하여 단호히 규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요한의 성품의 변화는 우리에게 많은 격려를 해 준다. 고집이 세고 이기적이며 불평하기 좋아하는 청년이라 해서 반드시 고집세고 이기적이며 잘 투덜대는 어른으로 성장하지는 않는다. 영적인 성장법칙에 따라서 떫고 시퍼런 과일이 달콤하고 맛좋은 과일로 익을 수 있는 것이다. 5. 요한이 보여준 사랑 우뢰와 같은 요한의 성격이 온유하게 변한 것은 십자가와 초대교회에의 성심과 용감성도 설명해 준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무서움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쳤다가 어느 사도보다도 먼저 예수님에게로 다시 돌아온 사람이 요한이었다. 베드로가 멀리 떨어져서 뒤따르고 있을 때 요한은 용감하게 대제사장의 집 뜰로 들어갔다(요18:15-16). 아마 대제사장은 요한의 아버지인 세베대의 사업과 롼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요한과는 서로 아는 사이였을 것이다. 대제사장을 알고 있던 덕택으로 요한은 베드로도 뜰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따. 그러나 대제사장의 종을 해쳤기 때문에 겁에 질려 베드로가 숯불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을 때 요한은 예수님을 심문하는 재판장에게로 곧장 들어갔다. 베드로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비통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때 요한은 진실 속에서 살고 있었다. 모든 사도 가운데서 오직 요한만이 십자가 옆에 서서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그리스도의 적들이 악의에 찬 독설을 내뿜을 때에도 요한은 도망치지 않고 적들의 한가운데 당당하게 서 있었다.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을 들은 제자도 유일하게 요한뿐이었다. 예수님은 요한을 바라보시면서 자기 어머니에게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고 하시고 요한에게 그 어머니를 가리키며 "보라, 네 어머니라"하셨다>(요19:26-27)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의 집으로 마리아를 모셔온 후 요한은 다시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들으려고 서둘럴 되돌아갔다. 오직 요한만이 "내가 목이 마르다" 또 "다 이루었다"는 최후의 말씀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요한은 예수님께서 고개를 떨구시고 예수님의 영혼이 떠나가시는 것을 지켜 보았다. 군병이 에수님의 옆구리를 찌를 때 피와 물이 나온 것과 요셉과 니고데모가 장사한 사실을 말한 것도 요한 뿐이었다.(요 19:38-42). 요한은 용감하였으며 최후까지 예수님께 헌신하였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 살인마에게 끌려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는 어린 양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전도자가 되었다. 6. 서로 사랑한 에수님과 요한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몇몇 사도들과 더욱 가깝게 지내셨던 것같다. 예수님과의 우정을 갖는 게 기뻐서 그를 따르는 제자들끼리 점점 친밀해진 것은 큰 무리들로부터 더욱 독자적이고 배타적인 집단을 만들게 했을 것이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 오백여 형제이며(고전 15:6), 모인 무리의 수는 일백 이십 명이고(행01:15), 예수께서는 칠십 인을 제자로 세웠다.(눅10:1). 이들 가운데 열 두 사도가 있으며 사도 가운데 핵심이 되는 세 사람이 있으며 이 중에서 사랑받는 요한은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로 자주 불리워졌다(요 13:23/20:2/21:7). 요한은 "여호와의 은총을 받는다"는 이름의 뜻 그대로 일생을 살았다. 분명히 요한은 제자 가운데서 가장 소중한 세 제자의 한 사람일 뿐아니라 에수의 사랑받는 제자로 불리워진 유일한 사람이며 다락방에서는 그리스도의 품에 앉았다(요13:23). 초대교회의 문헌을 보면 요한을 에수의 가슴에 기댄, 사랑을 의미하는 "에피스테티오스"(The Epistethios)라고 자주 부르고 있다. 예수님의 어머니를 모시라는 부탁을 받은 요한은 예수님께서 운명하시기 전에 예수의 마지막 말씀을 들은 사람이 되었다. 1)요한은 사랑의 사도가 되었다. 요한은 "하나님의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요3:16) 유명한 말씀을 우리에게 남겼다. 요한은 책임감으로서의 사랑 뿐만 아니라 사도직의 징표로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가"(요 13:34-35)하는 예수님의 새 계명을 상기시켜 주었다. 요한은 그의 저술에서 오십 번 이상이나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 사랑받는 요한은 예수의 부활을 가장 먼저 믿었으며 밤을 새워 고리를 잡은 후 바닷가에서 예수님을 제일 먼저 알본 제자였다(요 20:8/21:7). 요한은 하나님 계시의 환상을 포함한 영적 진리를 알 수 있는 놀라운 지혜를 받았다. 2)요한의 사랑은 강했다. 사랑에 대햐어 요한이 요약한 말은 사랑의 근간을 이루었다. 진실한 사랑이란 그 사랑의 대상을 해롭겔 할 모든 것을 막을 수 있어야 하며 결코 꺽이지 않는 강한 것이어야 한다.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사나운 개로부터 아장아장 걷는 자기의 아이를 보호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 진실한 사랑이다. 요한은 일반적으로 그릇된 가르침이 어린 아이들에게 크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 요한은 거짓을 행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서슴치 않고 경고했다(요일01:6/ 요이02:4).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릇된 생각을 가진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당부했다.(요2 10). 또 디오레베는 교만하여 사악한 말을 하는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세상에 공개했다(요삼09:10). 요한의 우뢰 같은 성격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으나 그의 강경한 어조도 사랑과 겸손으로 많이 부드러웠졌다. (이야기)// 어떤 전설은 요한이 에베소에서 공중목욕탕에 갔을 때 영시주의자인 세린도를 만난 장면을 설명하고 있다. 요한은 그를 보자마자 목욕도 하지 않은 채로 목욕탕을 뛰쳐나오면서 "모두 도망치자, 진리의 적이 들어있는 세린도 때문에 목욕탕이 무너질런지도 모르니 우리 모두 도망가자"고 외쳤다고 한다. 어떤 기회에 요한은 세린도를 "마귀의 맏아들"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이 이야기는 근거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우뢰와 같은 그의 성격의 단면을 잘 반영하고 있다. 요한은 온유하면서도 강했다. 박식하면 격한 마음이 가라앉지만 요한의 사랑은 예리한 통찰력과 지식 에의하여 퇴색하지 않았다. 그는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다섯권의 책을 쓸 수 있었다. 요한복음의 서문은 로고스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요한에게는 "그리스도인 플라톤"(ChristianPlato)이라는 칭호가 붙었다. 삼 세기의 교부들은 계시록의 필자에게 "신학자"란 칭호를 붙였다. 7. 말년의 요한 소아시아 태생으로 요한의 제자이면서 폴리갑(Polycarp)과 잘 아는 이레니우스(Irenaeus)는 요한은 주후 98년까지 에베소에서 살았다고 말했다. 전설에 의하면 요한을 독살시키려는 음모에서 하나님께서 목숨을 구해주셨다고 한다. 이 전설은 뱀이 그려진 성찬배가 요한을 상징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또 다른 전설은 핍박받는 동안에 끓는 목욕탕에 던져졌으나 요한은 그 속에서 살아났다고 한다. 에베소에서 멀지 않은 에게 해 복판에 있는 아름다운 섬인 밧모에 요한이 유배된 일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요한은 계시록의 인사말에서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에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계 1:9)라고 썼다. 밧모섬에서 도미시안 황제에 의하여 추방된 요한은 성경의 마지막 책에 대한 멧세지를 받고 환상을 보았다. 순교자와 성도와 하늘의 승리를 본 요한의 마음은 기뻤다. 계시록의 마지막인 22장에서 요한은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라고 썼다(계22:8) 트라얀(Trajan) 황제는 요한이 밧모를 떠나서 에베소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했다. 소아시아에서 그를 따르는 자들의 선교사업은 그의 목숨이 다할 때 성취되었음을 요한이서와 요한삼서에서 알 수 있다. 요한은 자기의 영적인 자식들이 진리 가운데 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했다. 요한은 충분한 보응을 받을 것을 잊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이들에게 충고했다. 요한은 가이오와 데메드리오의 선행과 디오드레베의 교만함에 특히 관심을 가졌다. 요한은 그의 영적인 자식들이 다른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증거하기를 원했다. 요한은 대단히 오래 살았다. 예수를 처음 따를 때 가장 어린 소년이었던 요한은 열 두 사도 가운데서 제일 장수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형제인 야고보는 사도들 가운데 제일 먼저 죽었다. 은혜 속에 살고 성장하는 것에 관하여 요한의 생애는 많은 교훈을 준다. 요한은 불 같은 성급한 성격을 서서히 가라할히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권세에 순종했다. 여든 살이 되어서라도 사랑하며 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우리는 어릴 때부터 그리스도의 권세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된다. 8. 결론 요한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성도들에게 그의 삶을 통해서 어떤 문제와 어떤 교훈을 주고 있는가를 보겠습니다. 그것을 한 마디로 논한다면 "사랑의 훈련"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사랑할 수가 있는가? 세 가지만 강조하겠습니다. 1.사랑받기 위해서는 사랑의 주님과 깊이 교제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처럼 주님의 가슴에 기대어 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리고 그분의 사랑의 고동을, 그 사랑의 심장을 느껴 본적이 있으신지요? 글분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요? 그래서 요한일서 3장 1절에 사도 요한이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라고 말한 것처럼 주님의 가슴에 깊이 기대고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교제하면서 그 주님의 호흡을 느낄 때 주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2.주님을 바라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기억하셔야 합니다. 사랑의 확인과 확신없이 사랑의 지속이 어려운 것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3.사랑은 실천할수록 증가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사랑은 줄수록 늘어납니다. 사랑의 생리는 사랑을 줄수록, 내 사랑의 창고를 계속 부하게 하는 것입니다. 격정적이고 사나웠던 성격의 소유자 요한은 그 격정이 주님께 포로가 되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주님의 성령의 지배를 받기 시작했을 때, 그는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랑의 사도로 변모하게 되었느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구스타프 도오르라는 유명한 화가가 주님의 초상화를 그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려도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서 어떻게 주님의 초상화를 그릴까라고 안탔까워 하고 있을 때에 그를 사랑했던 , 예수를 잘 믿는 믿음의 친구가 그에게 찾아와서 이런 유명한 충고를 했습니다. "사랑하는 친구여, 자네가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나, 그러면 자네는 주님의 형상에 더욱 가까운 주님의 모습을 그릴 수가 있을 것이요" <홍만조목사 글> (교훈과 적용)
2 예수(Jesus)
인물
jesus
11166 77 2006-12-27
▶ 예수(Jesus) 뜻 : 구세주, 예수(Jesus)는 고대 그리스어: Ίησους 이에수스의 라틴어 표기이며, 이에수스는 다시 여호수아(히브리어: Jehoschua) 혹은 예슈아(히브리어: Jeschua)를 코이네 그리스어로 옮긴 사두람이다. Jehoschua의 어원은 접두어 Je- (히브리어: JHVH/YHWH:Jahveh 야훼, 하느님)와 히브리어: Hoshea(구원, 구세라는 뜻을 가진 호산나)를 덧붙여 이루어진 사람이다. [1] 예수 그리스도 [2] 예수 그리스도 족보중 한 사람 (눅03:29) cf. 예수아 --------------------------------------------------- 예수 그리스도의 칭호 ▶ 예수님의 칭호(Jesus) (1) 주 (마03:3, (막01:3, (눅03:4). (2) 길 (요14:6, (히10:20). (3) 신 (고후03:17-18). (4) 홀 (민24:17, (창49:10). (5) 곶 (애02:1). (6) 예수 (마01:21,25). (7) 감독 (벧전02:25). (8) 구주 (눅02:11, (행13:23, (욥19:25, (사63:8). (9) 인자 (마08:20, (요01:51, (히02:6, (단07:31). (10) 임금 (행05:31). (11) 생명 (요14:6, (요11:25, (골03:4). (12) 말씀 (요01:1, (계19:13). (13) 반석 (고전10:4, (민20:11). (14) 참빛 (요01:9, (요08:12). (15) 부활 (요11:22). (16) 진리 (요14:6). (17) 기묘 (사09:6). (18) 모사 (사09:6). (19) 목자 (벧전02:25). (20) 사도 (히03:1). (21) 실로 (창49:10). (22) 산돌 (벧전02:4). (23) 아멘 (계01:7, (계03:14). (24) 남편 (사54:5). (25) 분수 (슥13:1). (26) 가지 (슥03:8, (슥06:12, (사11:1, (렘23:5). (27) 유대왕 (마02:2, (눅23:3). (28) 돋는 해 (눅01:78). (29) 선지자 (눅24:19, (신18:15,18). (30) 독생자 (요01:14,18). (31) 메시야 (요01:41). (32) 양의 문 (요10:7). (33) 집의 터 (고전03:11). (34) 후 아담 (고전15:45). (35) 중보자 (딤전02:5, (딤전12:24). (36) 재판장 (딤후04:8). (37) 하나님 (히10:37). (38) 이긴 자 (히02:15). (39) 오실자 (히10:37). (40) 산 소망 (벧전01:3). (41) 대언자 (요일02:1). (42) 새벽별 (계22:16, (민24:17, (사42:1). (43) 섭정자 (단09:25). (44) 택한 종 (마12:17, (사42:1). (45) 임마누엘 (마01:23, (갈07:14). (46) 그리스도 (마01:23, (갈07:14). (47) 구원의 문 (요10:9). (48) 선한 목자 (요10:11, (히03:20, (시023:1). (49) 본되신 자 (요13:15, (롬15:5, (벧전2:21-23). (50) 포도나무 (요15:1). (51) 생명의 주 (행03:15). (52) 만유의 주 (행10:36) (53) 영광의 주 (고전02:8). (54) 청결한 자 (히01:3). (55) 대제사장 (히03:1, (히04:14, (히05:1, (히06:20, (히07:24). (56) 만유의 주 (계17:14, (계19:19). (57) 만왕의 왕 (계17:14, (계19:16). (58) 영광의 왕 (시024:7-8). (59) 평강의 왕 (사09:6). (60) 시험한 돌 (사28:16). (61) 우리의 의 (렘23:6). (62) 그 왕 다윗 (렘30:9, (호03:5). (63) 겸손한 왕 (슥09:6). (64) 의로운 해 (말04:2). (65) 다윗의 자손 (마09:27, (마21:9, (마22:42,45). (66) 거룩하신 자 (눅04:34, (행03:14, (요일02:20). (67) 이스라엘 왕 (요01:49). (68) 생명의 양식 (요06:35,38:51). (69) 거룩한 아들 (행04:27). (70) 구언하실 자 (롬11:26, (사59:20). (71) 교회의 머리 (엡04:15, 엡05:23). (72) 크신 하나님 (딛02:13). (73) 승천하신 자 (히04:14). (74) 언약의 보증 (히07:22). (75) 믿음의 주인 (히12:2). (76) 보배로운 돌 (벧전02:4-6). (77) 신실한 증거 (계01:5). (78) 처음과 나중 (계01:17, (계02:8, (계21:6, (계22:13). (79) 진실하신 이 (계03:14). (80) 창조의 근원 (계03:14). (81) 다윗의 뿌리 (계05:5, (계22:16). (82) 여호와의 종 (사42:1,19, (사52:13, (사:12:17). (83) 여호와의 팔 (사53:1) (84) 언약의 사자 (말03:11). (85) 하나님의 아들 (마03:17, (막01:11, (눅03:22. (요01:49). (86) 안식일의 주인 (마12:8). (87) 우리 유월절 양 (고전05:7,출12:). (88) 하나님의 형상 (고후04:4, (히01:3). (89) 장인의 버린돌 (벧전02:7, (시118:2). (90) 알파와 오메가 (계01:17, (계02:18, (계21:6, (계22:13). (91) 만물의 지으신 자 (요01:3, (요22:13). (92) 하나님의 어린양 (요01:29, (계05:6). (93) 미리 알게 하는자 (계05:5). (94) 유대 지파의 사자 (계05:5). (95) 영생하신 아버지 (사09:6). (96) 전능하신 하나님 (사09:6). (97) 지극히 높으신 자 (단07:25). (98) 여호와의 짝된자 (슥13:7). (99) 하늘로써 내려온자 (요03:13). (100) 집 모퉁이 요긴한 돌 (엡02:20). (101) 하나님의 영광 (히01:3). (102) 거룩하게 하시는 자 (히13:12). (103) 죽음에서 먼저 사신자 (계01:5). (104)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미05:2). (105) 여호와의 기뻐하는 자 (사42:1, (마03:17). (106)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계03:7). (107) 아름다운 소식 전하는 자 (사05:27). (108) 세세에 찬양 받으실 하나님 (롬09:5). (109) 좌우에 날 선 예리한 검을 잡은 이 (계02:12). (110) 일곱 신과 일곱 별과 일곱 등대를 가지신 이 (계02:1). (111) 일곱 별과 일곱 등대를 주장하는 이(계02:1). (112) 눈이 불같고 발이 빛난 주석 같으신 이 (계02:28). ▶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이란 예수의 칭호는 마태복음 (마04:3, 4:6, (마08:29, (마14:33, (마16:16, (마26:63, (마27:54, 마가복음 (막03:11, (막05:7, (막09:7, (막15:39, 누가복음 (눅01:35, (눅04:41, (눅08:28에서 잘 묘사되고 있다. 마태에 있어서 예수는 그가 출생한 이래로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 그를 그렇게 선포하고 있다(마03:17)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직접적인 고백은 마14:33과 27:54과 같이 예수에 대한 직접적인 칭호로서 신앙 고백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호칭은 메시야와 동일시되어 불려지기도 하였다(마26:63). 마가복음에서는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의 아들로서 선포되는 광경을 볼 수 있으며, 귀신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으며(마3:11, 마5:7) 예수는 자신의 정체를 알리지 말 것을 명령하신다. 누가복음에서는 한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태어날 아기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어 질 것을 말하고 있다(눅1:35). 그리고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을 때에, 마귀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호칭하고 있다(눅4:3). 킹즈베리는 기독론적인 문서인 마태복음 전체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 기독론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들을 발견해 내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에게 있어서 마태의 예수는 날 때부터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는 성서 속에서 여러 증거들을 제시하면서 하나님의 아들 기독론을 주장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마태복음 17:1-8에 나오는 예수의 변모에 관하여서 예수의 수세이야기와 비슷한 요소를 가지고 있는 하늘에서 들여오는 음성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즉 마태복음 17:5에서 하나님이 예수를 자기의 유일 무이한 선택된 아들로서 다시 한 번 선포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증거로서 포도원 비유에서의 농부의 아들을 자기로 알레고리화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소작인들에 의해 결국 성밖에서 죽어야 하는 포도원주인의 아들을 알레고리 적으로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 부분을 증거로 삼고 있는데, 이것은 비교적 역사적-경제적 사실과 많이 부합하는 문서로 간주되는데, 이러한 비유들은 투쟁, 변호, 방어, 공격, 도전 등 주로 논쟁을 위한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성서의 모든 비유를 알레고리 적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포도원 비유가 나오는 마태복음 21:33-46은 그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짐작하고 비유를 들어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그에게 큰 증거로서 삼고 있다. 또한 이 비유는 이사야 5:1-7의 포도밭의 노래를 소재로 하고 있다. 즉 이사야의 이 텍스트로부터 가져왔다는 것이다. 오히려 공관복음서안의 이 포도비유가 수정되며(죽은 포도원 주인 아들의 죽는 장소에 따라 복음서마다 다른 것은 편집…수정하는 과정에서 결국 십자가의 고난에 그리스도가 매달리게 될 장소는 성밖이란 점에서, 그렇게 수정…편집되었다는 것)복음서안으로 흘러 들어온 것 같다.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와는 달리 혼인잔치 비유는 맥락상으로 살펴 볼 때 예수의 십자가상의 고난을 넘어선다. 전자가 십자가 처형을 예견한다면, 후자는 마태복음 28:18 이하에서 제자들이 받는 위대한 사명을 염두에 두고 있다. 따라서 마태는 알레고리를 통해 이 비유를 예수에게서 시작해서 마태 자신의 시대에 이르는 구속사에 대한 묘사를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 비유 중의 왕은 하나님, 그의 아들은 부활하신 예수, 혼인잔치는 메시아 향연, 초대받은 자들은 이스라엘, 종들은 제자들과 교회의 전도사들, 초대에 대한 무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의 거부, 종들을 때리고 죽이는 것은 교회에 대한 이스라엘의 박해, 군인들의 도시파괴는 예루살렘의 멸망, 나쁜 사람, 좋은 사람 차별 없이 초청해 옴은 이방인의 교회영입을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중심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비유되고 있다는 것이다. 왕의 아들인 혼인 잔치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의 메시아 향연인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는 주로 고백적인 배경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의 백부장의 신앙고백은 곧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진술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유대인들의 예수에 대한, 곧 하나님에 대한 신성모독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한편 베드로의 고백이 나오는 16:16과 대제사장의 질문이 나오는 26:63에서 마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와 메시야라는 칭호는 서로 동격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스 콘첼만에 의하면, 메시야 칭호의 유래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역사적 출처는 모호한 것이다. 예수가 이미 자신을 그렇게 붙였는가 또는 교회가 비로서 이 칭호를 그에게 부여했는가하는 점은 그 칭호가 어디서 유래했으며 무엇을 의미하는 가하는 물음에서 중요하지 않다.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이스라엘(출4:22), 그리고 왕으로부터 나타난다. 시편 2:2의 기름 부은자, 7절의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이것은 동양적 궁중 문학 양식이다. 물론 유대교는 하나님이 몸으로 낳았다거나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으로는 생각할 수 없었다. 구약성서의 왕칭호가 예수에게 이전되었으며, 하나님의 아들이란 의미는 메시야의 의미와 동일하다는 가정이 이 시편귀절에 근거하여 자주 제기된다. 그러나 유대교안에서 메시야에 대한 하나님의 아들 칭호들 사용한 것을 찾아볼 수없다는 사실이 그런 가정을 반영해 준다. ▶ 그리스도 그리스도(메시야)란 칭호는 마태복음 1:1, 1:16-18, 마2:4, 마16:16, 11:2, 16:20-21, 마22:42, 마23:10, 마26:63, 26:68, 마27:17, 27:22, 마가복음 8:29, 9:41, 누가복음 2:11, 9:20에 잘 나타나 있다. 마태는 이 ?메시야?라는 칭호를 한 차원에서만 사용하지 않았다. 마1:1에서 이 칭호는 한 사람의 이름으로 사용되었다(예수 메시야).마1:18, 마16:21도 같은 경우로 원문상 논란이 있으나 ?예수 메시야?가 정확한 독법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 메시야?라는 칭호가 단순한 이름으로 취급되었다 할지라도 마태복음서에 있어서 이 칭호는 ?예수가 메시야이시다?는 근본적 진리는 늘 함축하여 사용된다. 마태는 기독론적 칭호로서의 메시야란 칭호를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다. 메시야 그 분은 구약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되었고 이스라엘이 고대하던 그 오시는 이이시며, 다윗의 왕위를 계승하시는 왕으로 오신 예수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완성시키는 분이며, 하나님의 권위로 사람들에게 구원 또는 심판을 행하시는 분이다. 마태는 그의 복음서를 통해 이 메시야라는 칭호를 더 나아가 유대인의 왕,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도 규정지으려 했다. 만약에 메시야란 칭호의 사용이 결국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로 결과되게 되는 것이라면, 예수 메시야의 행동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서의 행동이었다는 것과 메시야라는 칭호가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의 대용어라는 이해가 타당한 것으로 인정하게 된다. 한스 콘첼만에 있어서도 그리스도는 메시야라는 칭호이긴(막 8:29)하지만, 그리스도는 예수그리스도란 결합에서 단순히 이름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바울이 단지 형식적인 관사를 사용하고 있는 경우에도 이 진술은 타당하다. 그런데 그리스도란 의미가 이름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물론 희랍어를 쓰는 세계에서였다. 희랍인들은 메시야 칭호를 이해하지 못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구원자의 본질을 다른 칭호와 설명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기원 상으로 볼 때 메시야는 민족주의적인 유대교적 종말론에 속한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구약성서에서 왕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메시야는 본래 초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적인 구원자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구원자에 대한 표상들이 융합되어졌다. 즉 초월적인 존재로 고양되어 졌다는 것이다. 메시야는 묵시문학적 문헌의 대부분에서 나타나고 있지 않다. 묵시문학에서 메시야 개념이 침투되어 있는 부분은 이차적 발전단계에 속한다. ▶ 인자(人子) 인자(사람의 아들)는 마태복음 마08:20, 마09:6, 마10:23, 마11:19, 마12:32, 12:40, 마13:37, 13:41, 마16:13, 16:27-28, 마17:9, 17:12, 17:22, 마19:28, 마20:18, 20:28, 마24:27, 24:30, 24:33, 24:37, 24:39, 24:44, 마25:31, 마26:2, 26:24, 26:45, 26:64, 마가복음 막02:10, 2:28, 막08:31, 8:38, 막09:9, 9:12, 9:31, 막10:33, 10:45, 막13:26, 막14:21, 14:41, 14:62, 누가복음 눅05:24, 눅06:56, 눅07:34, 눅09:22, 9:26, 9:44, 9:58, 눅11:30, 눅12:8, 12:10, 12:40, 눅17:22, 17:24, 17:26, 17:30, 눅18:8, 18:31-32, 눅19:10, 21:27, 21:36, 눅22:22, 22:48, 22:69, 눅24:7에 잘 묘사되어 있다. 인자라는 칭호는 마태복음서의 기독론적 칭호들 중 매우 중요한 칭호 중의 하나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 이론은 도전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칭호는 다른 복음서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수님 자신이 자신을 지칭하는 칭호로 마태복음서도 사용되었다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사실이 그렇게 분명하다 하여도 인자와 관련된 몇 가지 물음들은 아직도 마태복음서 연구가들 사이에 명쾌한 결혼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마태가 사용한 이 용어의 정확한 용법이 무엇인가? 이 용어는 왜 마태복음 8:20 이전에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이 용어와 하나님의 아들과의 관계는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들에 대한 답을 추구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이 칭호가 성격상 대중적인 경우는 진정한 한 기독론적 칭호로 작용하고 그 외에는 고백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의 보충적 역할을 함을 알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듯이, 인자는 예수의 사역의 세 구별된 국면을 따라 분류할 수 있는데, 첫째는 그의 공적 사역과 관계된 것이고, 둘째는 그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과 관련된 것이다, 세째는 그의 재림과 관계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가만히 보면은 이러한 인자의 기능들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모습과 상당히 일치되어 나타난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가 예수의 재림과 관련하여 거의 사용되지 않은 것처럼, 인자라는 칭호는 소위 예수님의 현지사역과 관련하여서는 그렇게 중요하게 사용되지 않는다는 차이점이 있다. 킹즈베리에 의하면, 이 인자라는 칭호야말로 마가복음에 있어서 예수님에 대한 가장 합당한 칭호이며, 따라서 아무런 수정이 필요 없는 유일한 칭호란 것이다. 그리고 이 칭호의 뛰어난 점은 마가복음에 있어서 이것이 항상 예수님의 입을 통해서만 말씀되어진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볼 때에 이것은 예수의 자기이해(self-understanding)의 표현인 것이다. 예수님께 대한 여러 칭호들 중 인자칭호는 가장 규범적인 것이 되며, 예수께 대한 다른 칭호들을 재해석하여 하나님께 예수님에 정하신 신적 운명이 고난과 죽음이란 것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도 예수를 예수 인자라 칭하지 않았으며, 이것은 인자의 기능이 나사렛 사람의 정체를 밝히는 것과는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킹즈베리에 의하면, 마가는 예수를 매우 분명하게 다윗적 메시야, 왕,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하였다. 그러나 인자는 독자들에게 예수가 누군가를 설명하는데 사용된 흔적이 없다. 그는 인자의 세가지 면을 지상적인 자, 고난받는 자, 묵시적인 자로 이해했다. ▶ 주(主) 주라는 칭호는 마태복음 7:21-22, 마8:2, 8:6, 8:8, 8:25, 마9:28, 마14:28, 14:30, 마15:22, 마16:16, 16:22, 마17:4, 17:15, 17:16, 마18:21, 마19:27, 마20:30, 20:33, 마21:3, 21_19, 마24:42, 마25:11, 25:20, 25:22, 25:24, 25:44, 마26:22, 26:33, 26:35, 마가복음 1:17, 8:29, 막10:28, 막11:3, 막14:31, 누가복음 2:11, 눅5:8, 8:24, 8:45, 눅9:33, 9:49, 9:54, 9:61, 눅10:17, 눅11:1, 눅12:41, 눅13:23, 눅17:37, 눅18:28, 18:41, 눅19:8, 19:25, 눅22:33, 22:38, 22:49에 잘 표현되어 있다. 한스 콘첼만에 의하면, 이 칭호는 원시교단에서 헬레니즘, 그리스도교에로의 이행이 뚜렷이 반영되어 있다. 오늘날까지도 다음 두가지가 격렬히 논의되고 있다. 이 칭호는 어디서 유래했는가? 언제 그리고 어디서 이 칭호가 그리스도교에로 들어왔는가? 이미 원시교단에서인가? 또는 헬레니즘 교회에서인가? 이미 원시교단이 예수를 주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있다. 까닭은 maranatha라는 부름은 순수히 묵시문학적 그리스도론의 표현이다. 교회는 스스로 고대하는 자로 이해한다. 그에 반하여 헬레니즘 세계에서는 오실자를 기대하는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현재 지배하는 주님을 경배하기 위해 모인 교단이란 윤곽이 들어 났다. 그 부름은 이제 예수는 주이시다. 이것은 간구가 아니라 환호와 선포이다. 하나님의 아들과 주는 교차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각기 뚜렷이라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즉 아들은 본질이오 주는 아들에게 부여된 지위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그를 부를 때에는 주라고 하는 것이다. 신앙은 이 칭호에서 올리워진 자에 대한 관계성의 현재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칭호는 성서개념과 친밀히 결합돼 있다. 성령은 주의 역사의 현존이다. 주를 부르는 것 자체가 성령에 의해 역사 되는 행위이다. 킹즈베리에 의하면, 마태복음을 연구하는 몇몇 학자들은 대개 검증되지 않은 근거들 위에서 마태가 사용하는 주요한 기독론적 칭호는 주 혹은 퀴리오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면밀한 검토에 의해 들어 나는 증거에 따른다면, 이 칭호가 그렇게 두드러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게 된다. 마태는 퀴리오스라는 용어를 적어도 세 가지 수준에서 사용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로서의 능력을 지닌 분, 다윗의 아들로서의 능력을 지닌 주, 인자의 능력을 지닌 주인 것이다. 마태복음 27:63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빌라도를 퀴리오스라고 부를 때 이 말은 순전히 전통적인 용법, 영어의 Sir와 동의로서 사용되고 있다. 신학적으로 볼 때 이 말은 많은 곳에서 하나님을 지칭한다. 물론 이 말은 예수의 칭호로서 나타나기도 한다. 퀴리오스란 말이 예수를 믿으면서 그에게 나오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만 나온다는 의미에서 고백적인 칭호이다. 이러한 것의 유일한 예외는 마지막 심판의 장면에서 저주받는 자들도 예수를 주라고 부르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마7:21-23, 마25:37) 마태복음에서 퀴리오스라는 칭호는 기독론의 중심적인 칭호가 아니라 오히려 보조적인 칭호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 칭호는 그 칭호 자체를 넘어서 보다 명확한 다른 칭호를 암시해 준다고 말할 수 있다. ▶ 다윗의 자손 다윗의 자손은 마태복음 9:27, 마12:23, 마15:22, 마20:30-31, 마21:9, 21:15, 마22:42, 마가복음 10:47-48, 누가복음 18:38-39에 잘 나타나 있다. 이 다윗의 자손이란 칭호를 보면은 귀신들려서 예수께 나아 오는 자의 입에서 자주 들을 수 있다. 이것은 어떤 치유와 관련된 것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다윗의 자손에게는 이런 능력이 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예루살렘 입성할 때 호산나하면서, 다윗의 자손이라고 외치는데, 하지만 복음서의 이 구절들을 찾아서 자세히 보면, 그 다음 구절은 다윗의 자손의 영향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구절들이 나오는데 이를테면, 이는 누구냐에 대한 반문으로 사람들은 이는 나사렛사람이 아니냐는 구절은 다윗의 자손의 칭호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기도 하다. 한스 콘첼만에 의하면, 족보는 역사적인 문제와는 상관이 없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남게 되는데 바로, 마가복음 10:48-소경 바디매오의 외침이다. 마가복음 11:1- 의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다윗 왕국의 도래에 관한 환호가 있다. 이것은 현시 전설 적이다. 한편 마가복음 12:35-17에서 메시야가 다윗의 자손일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그러나 요한복음 첫 구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다윗의 자손인 예수그리스도는 태초 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신 분이다. 콘첼만에 의하면, 이 구절들은 교회공동체의 두 단계 그리스도론을 표현해 준다고 한다. ▶ 하나님의 사자(使者) 마21:37, 요06:38, 요07:29, 요08:42, 요09:4, 요10:36, 요17:8, 21 ▶ 예수님은 나에게 어떤 분이 되시는가? 나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요 1:1) 나의 창조주이신 예수님(요 1:3) 성육신하신 예수님(요 1:14, 20:27) 나의 구주이신 예수님(요 1:36, 요3:1-21)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요02:11, 요06장)) 나의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요10:11) 나를 다스리시는 예수님(마02:6) 나의 부활하신 예수님(요11:25, 요20:1-8) 나의 선생이신 예수님(요13:13) 나의 생명이신 예수님(요15:4-5) 나의 친구이신 예수님(요15:14) 나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요17:9) 나의 왕이신 예수님(요17:9, 마02:1-6) 나의 모퉁이 돌이신 예수님(마21:42) 나의 반석이신 예수님(고전10:4) 나의 대언자 이신 예수님(요일02:1) 나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히12:2) (이영제목사, 한국컴퓨터선교회)
1 가룟유다(Judas Iscariot)
인물
jesus
5205 68 2006-12-26
▶ 가룟유다(Judas Iscariot) 1) 예수를 판 제자(마27:5) 2) 그 이름은 12제자중에 언제나 맨 끝에 적혀 있다(마10:4), (막03:19), (눅06:16) 3) 회계를 맡아 보았다 (요12:6,(요13:29) 4)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는 여인을 책망하였다 (요12:4 5) 귀신을 쫓아 내고 병을 고친 일도 있다 (마10:1), (눅09:1) ---------------------------------------------------------------------------- 가롯유다는 가롯 시몬의 아들이며 (요06:7) 주께서 택한 열두 사도 중에한 사람이다. 가롯 유다는 복음서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 가장 불가사의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의 뜻과 배경, 성품 그리고 예수님을 배반한 동기와 죽은 방법등 모든 것들이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가롯이라는 이름에는 다양한 설명들이 제시되어 왔다. 즉 "그리욧 사람" "암살자" "가짜, 거짓말장이, 위선자" 등의 여러가지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설명되었다. 이 가운데 일반적인 설명은 두 가지이다. 첫째, "그롯사람"이란 견해로12사도 중에 11사도가 갈릴리지방 사람인데 반해 유일하게 가롯유다만이 유다 지방의 사람이라는 것을 근거로 삼고 있다. 둘째는 가장 가능성있는 견해로는 가롯이라는 말이 "가짜, 거짓말장이,위선자"를 뜻하는 "세케르"라는 아 람어의 어근에서 나온 것으로 이 말이 당시 아람어를 사용하던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배반자를 부를 때 사용한 별명이었다는 견해이다. 막3:14,요6:70을 미루어 보면 예수님은 복음을 전도할 사도를 신중히 선택하심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요6:64를 보면 유다를 택한 것은 매우 곤혹스 러움을 느끼게 한다. 이것은 예수가 속죄적 죽음을 하기 위해 하나님의 계획에 의식적으로 복종한 것이라고 하여 이를 설명하려고 하는 바도 있지만 공관복음은다른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예수께서 유다를 제자로 선택하신 것은 그를 유망하게 보고 또 그의 성격을 통찰하고 크게 쓰여질 가능성을 갖고 있음을 발견하여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를 받아들이고 그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또 이 무리안에 배신자가 있으면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여하튼 그의 성격을 생각하여 볼 때 아마 그리스도의 왕국이 건설될때 지상에 있어서 어떤 이들일 얻게 되리라고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가롯 유다는 예수의 제자단의 회계일을 보면서 일행의 전대를 맡았다. 그래서 그는 자기 호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부정을 행했다. 베다니의 마리아 집에서 그녀가 예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표시로서 지극히비싸고 순수한 나도향유를 예수의 발에 부었을 때 제자들 특히 유다는[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서 주지아니하였으냐]라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그의 본심은 그 돈으로 자신의주머니를 채우러는 생각이었다. 이에 예수께서 부드럽게 충고한즉 그는 오히려 분격하여 제사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팔아 넘길 것을 제의했다. 제사장들은 이에 동의하여은 30개를 지불했다. 그것은 당시 노예한 사람의 시세인데 약 9달러 50센트에 달한다고 한다. 이때부터 유다는 예수를 넘겨주려고 기회를 엿보고있었다. 유월절 만찬 석상에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릴 때가 다가오는 것을 알고 유다에게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말씀했다. 마귀가 그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던 것이다.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라고 예수게서 조용히 말씀했을 때 제자들은 모두 근심하면서 저마다 [내니이까?] 라고 반문하였다. 베드로는 예수의 품에 기대어 누워있는 요한에게 머릿짓를 하며[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고 졸랐다. 그러자 예수께서는[나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요13:26)라고 말씀했다. 그것은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라고 한 성경말씀의 성취였다 (요13:18,시41:9) 그리고 예수께서는 한 조각을 찍어서 유다에게 주었다. 유다가 그것을 받자마자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갔다. 뻔뻔스럽게도 유다는 시치미를 뚝 떼고 [랍비여 내니이까]라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네가 말하였도다]라고 말씀하셨다(마26:21-25) 네 하는일을 속히 하라(요13:27). 제자들까지도 예수께서 왜 유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요13:28) 어떤 자는 유다가 돈 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쓸 문건을 사라고 하시는 것으로 혹 무엇을 나누어주라고 하시는 줄로 생각하였다. 이에 유다는 곧 나가서 제사장들에게달려갔다. (요13:28-30) 최후의 만찬이 끝나자 예수께서는 11제자와 같이 겟세마네 동산으로갔다(마26:36). 기도가 끝났을 때 유다의 선도검과 몽둥이를 들고왔다. 야암이 기 때문에 누가 예수인지 알리는 신호로서 유다는 예수에게 입맞추었다. 이리하여 예수께서는 체포되었다.(마28:47-50)유다가 예수를 배신한 동기가 무엇인지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그러나 초대교회가 사도들 중의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토록 악명높고 수치스러운 일화를 인위적으로 지어냈을 리는 없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이름은 더욱더 더럽혀져 제4복음서는 그를 사탄이나, 적그리스도와 동일시하고 있는 정도이다. 그러나 이런 유다에 대한 적개심이 유다가 예수를 배반한 사건 자체의 사실성을 왜곡시켰다고는 보기 어렵다. 앞에서도 약간 언급되었지만 유다는 아마 단순히 욕심이 많고 부정직하여 사사로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예수를 배반했을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흉악한 반역으로 얻게 되는 돈이란 하찮은 소액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예수를 배반한 동기를 전적으로 이런식으로 생각 하기에는 조금 무리인 것으로도 여겨진다. 오히려 유다자신이 예수님에 대하여 많은 기대를 한 것에 대한 실망과 거짓예언자들과 거짓메시야를 공격하는 유대교의 율법 및 제도에 대한집착으로 그러한 행동을 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이튿날 아침 어느 정도 냉정해진 유다는 예수께서 정죄되어 사형을 선고 받았다는 것, 자기가 죄없는 사람의 피를 판 것을 알고 후회하면서 제사장 과 장로들에게 가서 은 30개를 돌려 주면서 [내가 무죄한 피를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라고 말했다. 그의 양심은 제자들의 양심처럼마비되어 있지 않았다. 제사장들은 그에게 말했다. [그것이 우리에게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리라] 그래서 유다는 은을 성소에 던져놓고나가서 목매어 죽었다. 제사장들은 [피값]을 성전 재정에 넣는 것을싫어하여 그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산다. 이 밭은 [피밭]으로 알려지게되었다 (마27:3-5). 사도행전에서는 이 부분을 상당히 다르게언급하고 있다. (행 1:18,19) 즉 사도행전에 따르면 유다 자신이 그 밭을샀으며, 그의 몸이 곤두박질하여 (혹 부풀어 올라?) 배가 터져 창자가다 흘러나왔다고 한다. 유다의 비참한 죽음은 초기 기독교 설교자들과 저자들에 의하여 수없이 인용되곤 하였다. 그리고 또 유다의 죽음이 보다 무섭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소름이 끼치는 종류의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유다의 죽음에 관한 신약의 두 기사는 유다가 배신행위의 결과로 횡사를 당했다는 것과 예루살렘에 있는 작은 땅을 샀으나 배신행위의 결과로 인하여 [피밭]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것은 서로 일치한다. 구약 시편 109편을 보면 유다의 죽음에 대한 것이 예시되어 있다. 이것은 원리 작자와 동시대에 된 일에 대하여 노래한 것이었으나 사실은 가롯 유다에게서 이루어진 예언 이었던 것이다.(시109:8,행01:20)그리고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만이 멸망했다(요17:12). 이 두 장을 살펴보면 그는 하나님에게 강요되어 멸망의자식이 된 것이 하나님의 긍휼을 거부해서였으며 그리고 그것을 구하지도 않아서 멸망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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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연대표 1.창조 2.족장 3.출애굽 4.광야 5.정복 6.사사 7.통일왕국 8.분열왕국 9.포로 10.포로귀환 11.중간 12.예수 13.초대교회 14.세계선교 관련그림.지도 1.창조 2.족장 3.출애굽 4.광야 5.정복 6.사사 7.통일왕국 8.분열왕국 9.포로 10.포로귀환 11.중간 12.예수 13.초대교회 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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