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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관련 백과사전 & Morrish Bible Dictio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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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rish성경사전 (최신등록), WB.Study, 성경권별 지명연구(지도포함), 인물탐방 각종테마별 - 무게.길이.화폐, 12보석, 유대월력, 동물, (Birds), 식물, 나무, , Miracles(구약, 신약), 613율법Mitzvot, 이방신, 하나님, Tip: 영문장.절위로 커서를 옮기면 해당 KJV 성경 영문구절이 펼처집니다. (Gen. 1:1; Rev.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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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66 2 2019-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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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84145 1 2015-05-04
56 미리암(Miriam)
인물
jesus
5217 109 2006-12-27
▶ 미리암(Miriam) 뜻 : 높이운 자 아므람과 요베겟의 딸로서 아론과 모세의 누이다(민28:59), (출07:7). 어린 모세(Moses)를 구하려고 애를 썼다(출02:4,8). 홍해를 건널때는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출15:20). ▶ 미리암 Miriam. [Mir'iam] 1. Sister of Aaron and Moses: she is emphatically called 'Miriam the prophetess.' She was probably the sister who watched the ark in which her brother Moses was laid. In after years she headed the procession of women, when, with timbrels and dances, they answered the song of Moses, on their deliverance out of Egypt and through the Red Sea. With Aaron she took the lead in murmuring against Moses, on the plea that he had married an Ethiopian woman. Moses was very meek, but the Lord did not allow His servant, who was faithful in all God's house, and to whom He spake mouth to mouth, to be spoken against. God was angry with them and Miriam was smitten with leprosy, white as snow. Aaron humbled himself and confessed their sin, and Moses prayed for the restoration of Miriam. She was made to go outside the camp seven days. This rebellion was typical of Israel in the character of prophet and priest uniting against Christ as King. Miriam died at Kadesh and was buried there. Ex. 15:20, 21; Num. 12:1-15; Num. 20:1; Num. 26:59; Deut. 24:9; Micah 6:4. (출15:20-21;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가로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 (민12:1-15; 미리암이 벌을 받다 (민20:1; 정월에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서 백성이 가데스에 거하더니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 장사하니라 (민26:59; 아므람의 처의 이름은 요게벳이니 레위의 딸이요 애굽에서 레위에게서 난 자라 그가 아므람에게서 아론과 모세와 그 누이 미리암을 낳았고 (신24:9;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미리암에게 행하신 일을 기억할찌니라 (미06:4. 내가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 종노릇 하는 집에서 속량하였고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보내어 네 앞에 행하게 하였었느니라 2. Son or daughter of one in the tribe of Judah. 1 Chr. 4:17. (대상04:17. 에스라의 아들들은 예델과 메렛과 에벨과 얄론이며 메렛은 미리암과 삼매와 에스드모아의 조상 이스바를 낳았으니 --- Morrish B -------------------------------------------------------------------------------- ◇ 이스라엘 최초의 여선지자-- 영적 자만으로 고통 아론과 모세의 누이이며 이스라엘 최초의 여선지자이다. 그녀는 어린 모세를 상자에 넣어 나일강 갈대 사이에 띄웠을 때 멀리서 지켜보며 그 생명이 구출되기를 바랐다. [그 누이(미리암)가 어떻게 되는 것 을 알려고 멀리 섰더니](출 2:4). 여기 나타난 미리암의 자세는 어린 동생의 비운을 생각하며 슬픈 눈으로 멀리서 바라보는 절망적 동작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확신하면서 지켜보는 선지자의 자세라 할 수 있다. [선지자]를 [나브](대언자)라고도 하고 [호째](보는자)라고도 한다. 예리한 영적 통찰력으로 하나님께서 역사의 현장에서 무엇을 하 고 계시는지, 그리고 미래에서 무엇이 오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예언자의 사명이며 또한 백성의 탄원과 하나님의 응답을 듣고 그것을 다시 백성에게 선포하는 것이 그의 책임이다. 미리암은 갈상자속에서 울고 있는 죄없는 생명의 탄원같은 비명을 들으면서 그 비극의 현장에 전능자의 손이 나타날 것을 지켜 보았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멀리서 지켜보는 미리암의 동작은 역사가 바르게 흐르기를 지켜보는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사명과 조금도 다를바 없다. 이러한 예언자적 시각이 있었기에 미리암은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홍해서 몰살당하고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를 육지같이 건지는 것을 보면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출 15:21). 그러나 미리암은 흔히 하나님의 사람들이 신앙과 겸손을 지키지 못 하여 탈선하는 것처럼 그도 잠시 영적 자만에 빠져 하나님의 사역권 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 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였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들으셨 더라](민12:1-2). 이로 인하여 미리암은 문둥병에 걸려 고통을 당하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고침은 받았으나 밖에서 일하는 소외된 여선지자가 되고 말았다. -------------------------------------------------------------------------------- 미리암/모세의 누이… 출애굽때 여성 인도한 선지자 ▶ 출애굽기 15장20∼21절 미리암은 높다는 뜻입니다. 아므람과 요게벳 사이에서 낳은 딸로 아론과 모세의 누이였습니다. 미리암은 아므람과 요게벳을 도와 가사에도 충실했고 부모에게 협조하는데도 충성되었습니다. 지혜가 있고 재치가 많아 동생들을 보살피는데도 여유있는 여자였습니다. 모세를 3개월동안 숨겨 기르다가 갈대상자에 넣어 나일강변에 버릴 때에도 미리암이 그 어려움을 수습하였습니다. 이와같이 미리암은 활동적인 여자였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아론을 부르실 때에는 미리암도 함께 선택을 받았습니다. 이는 미리암의 신앙과 영성으로 선택되었고 하나님께 특수하게 헌신하는 여선지자가 되었습니다(출 15:20∼21). 모세 당시의 여선지자라고 하면 특별히 선택받은 히브리인 여성 지도자이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뒤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고 모든 여성을 이끌어 함께 화답하며 여호와를 찬송한 일은 그의 영적 지도력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교훈과 적용◁ 첫째,미리암과 같이 교회와 가정과 사회적으로 다양한 적응력이 있어야 합니다.다재다능한 것과 모든 현실에 영적인 적응력을 갖는 것과는 다릅니다. 둘째,지혜롭고 똑똑하고 영적인 사람이었는데도 교만의 유혹은 물리치지 못했습니다.결국 아무도 교만의 유혹에서 면제된 사람은 없습니다.교만은 대적해야 합니다.<이병돈목사·은평교회>
55 예수(Jesus)
인물
jesus
11143 77 2006-12-27
▶ 예수(Jesus) 뜻 : 구세주, 예수(Jesus)는 고대 그리스어: Ίησους 이에수스의 라틴어 표기이며, 이에수스는 다시 여호수아(히브리어: Jehoschua) 혹은 예슈아(히브리어: Jeschua)를 코이네 그리스어로 옮긴 사두람이다. Jehoschua의 어원은 접두어 Je- (히브리어: JHVH/YHWH:Jahveh 야훼, 하느님)와 히브리어: Hoshea(구원, 구세라는 뜻을 가진 호산나)를 덧붙여 이루어진 사람이다. [1] 예수 그리스도 [2] 예수 그리스도 족보중 한 사람 (눅03:29) cf. 예수아 --------------------------------------------------- 예수 그리스도의 칭호 ▶ 예수님의 칭호(Jesus) (1) 주 (마03:3, (막01:3, (눅03:4). (2) 길 (요14:6, (히10:20). (3) 신 (고후03:17-18). (4) 홀 (민24:17, (창49:10). (5) 곶 (애02:1). (6) 예수 (마01:21,25). (7) 감독 (벧전02:25). (8) 구주 (눅02:11, (행13:23, (욥19:25, (사63:8). (9) 인자 (마08:20, (요01:51, (히02:6, (단07:31). (10) 임금 (행05:31). (11) 생명 (요14:6, (요11:25, (골03:4). (12) 말씀 (요01:1, (계19:13). (13) 반석 (고전10:4, (민20:11). (14) 참빛 (요01:9, (요08:12). (15) 부활 (요11:22). (16) 진리 (요14:6). (17) 기묘 (사09:6). (18) 모사 (사09:6). (19) 목자 (벧전02:25). (20) 사도 (히03:1). (21) 실로 (창49:10). (22) 산돌 (벧전02:4). (23) 아멘 (계01:7, (계03:14). (24) 남편 (사54:5). (25) 분수 (슥13:1). (26) 가지 (슥03:8, (슥06:12, (사11:1, (렘23:5). (27) 유대왕 (마02:2, (눅23:3). (28) 돋는 해 (눅01:78). (29) 선지자 (눅24:19, (신18:15,18). (30) 독생자 (요01:14,18). (31) 메시야 (요01:41). (32) 양의 문 (요10:7). (33) 집의 터 (고전03:11). (34) 후 아담 (고전15:45). (35) 중보자 (딤전02:5, (딤전12:24). (36) 재판장 (딤후04:8). (37) 하나님 (히10:37). (38) 이긴 자 (히02:15). (39) 오실자 (히10:37). (40) 산 소망 (벧전01:3). (41) 대언자 (요일02:1). (42) 새벽별 (계22:16, (민24:17, (사42:1). (43) 섭정자 (단09:25). (44) 택한 종 (마12:17, (사42:1). (45) 임마누엘 (마01:23, (갈07:14). (46) 그리스도 (마01:23, (갈07:14). (47) 구원의 문 (요10:9). (48) 선한 목자 (요10:11, (히03:20, (시023:1). (49) 본되신 자 (요13:15, (롬15:5, (벧전2:21-23). (50) 포도나무 (요15:1). (51) 생명의 주 (행03:15). (52) 만유의 주 (행10:36) (53) 영광의 주 (고전02:8). (54) 청결한 자 (히01:3). (55) 대제사장 (히03:1, (히04:14, (히05:1, (히06:20, (히07:24). (56) 만유의 주 (계17:14, (계19:19). (57) 만왕의 왕 (계17:14, (계19:16). (58) 영광의 왕 (시024:7-8). (59) 평강의 왕 (사09:6). (60) 시험한 돌 (사28:16). (61) 우리의 의 (렘23:6). (62) 그 왕 다윗 (렘30:9, (호03:5). (63) 겸손한 왕 (슥09:6). (64) 의로운 해 (말04:2). (65) 다윗의 자손 (마09:27, (마21:9, (마22:42,45). (66) 거룩하신 자 (눅04:34, (행03:14, (요일02:20). (67) 이스라엘 왕 (요01:49). (68) 생명의 양식 (요06:35,38:51). (69) 거룩한 아들 (행04:27). (70) 구언하실 자 (롬11:26, (사59:20). (71) 교회의 머리 (엡04:15, 엡05:23). (72) 크신 하나님 (딛02:13). (73) 승천하신 자 (히04:14). (74) 언약의 보증 (히07:22). (75) 믿음의 주인 (히12:2). (76) 보배로운 돌 (벧전02:4-6). (77) 신실한 증거 (계01:5). (78) 처음과 나중 (계01:17, (계02:8, (계21:6, (계22:13). (79) 진실하신 이 (계03:14). (80) 창조의 근원 (계03:14). (81) 다윗의 뿌리 (계05:5, (계22:16). (82) 여호와의 종 (사42:1,19, (사52:13, (사:12:17). (83) 여호와의 팔 (사53:1) (84) 언약의 사자 (말03:11). (85) 하나님의 아들 (마03:17, (막01:11, (눅03:22. (요01:49). (86) 안식일의 주인 (마12:8). (87) 우리 유월절 양 (고전05:7,출12:). (88) 하나님의 형상 (고후04:4, (히01:3). (89) 장인의 버린돌 (벧전02:7, (시118:2). (90) 알파와 오메가 (계01:17, (계02:18, (계21:6, (계22:13). (91) 만물의 지으신 자 (요01:3, (요22:13). (92) 하나님의 어린양 (요01:29, (계05:6). (93) 미리 알게 하는자 (계05:5). (94) 유대 지파의 사자 (계05:5). (95) 영생하신 아버지 (사09:6). (96) 전능하신 하나님 (사09:6). (97) 지극히 높으신 자 (단07:25). (98) 여호와의 짝된자 (슥13:7). (99) 하늘로써 내려온자 (요03:13). (100) 집 모퉁이 요긴한 돌 (엡02:20). (101) 하나님의 영광 (히01:3). (102) 거룩하게 하시는 자 (히13:12). (103) 죽음에서 먼저 사신자 (계01:5). (104)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미05:2). (105) 여호와의 기뻐하는 자 (사42:1, (마03:17). (106)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계03:7). (107) 아름다운 소식 전하는 자 (사05:27). (108) 세세에 찬양 받으실 하나님 (롬09:5). (109) 좌우에 날 선 예리한 검을 잡은 이 (계02:12). (110) 일곱 신과 일곱 별과 일곱 등대를 가지신 이 (계02:1). (111) 일곱 별과 일곱 등대를 주장하는 이(계02:1). (112) 눈이 불같고 발이 빛난 주석 같으신 이 (계02:28). ▶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이란 예수의 칭호는 마태복음 (마04:3, 4:6, (마08:29, (마14:33, (마16:16, (마26:63, (마27:54, 마가복음 (막03:11, (막05:7, (막09:7, (막15:39, 누가복음 (눅01:35, (눅04:41, (눅08:28에서 잘 묘사되고 있다. 마태에 있어서 예수는 그가 출생한 이래로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 그를 그렇게 선포하고 있다(마03:17)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직접적인 고백은 마14:33과 27:54과 같이 예수에 대한 직접적인 칭호로서 신앙 고백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호칭은 메시야와 동일시되어 불려지기도 하였다(마26:63). 마가복음에서는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의 아들로서 선포되는 광경을 볼 수 있으며, 귀신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으며(마3:11, 마5:7) 예수는 자신의 정체를 알리지 말 것을 명령하신다. 누가복음에서는 한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태어날 아기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어 질 것을 말하고 있다(눅1:35). 그리고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을 때에, 마귀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호칭하고 있다(눅4:3). 킹즈베리는 기독론적인 문서인 마태복음 전체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 기독론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들을 발견해 내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에게 있어서 마태의 예수는 날 때부터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는 성서 속에서 여러 증거들을 제시하면서 하나님의 아들 기독론을 주장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마태복음 17:1-8에 나오는 예수의 변모에 관하여서 예수의 수세이야기와 비슷한 요소를 가지고 있는 하늘에서 들여오는 음성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즉 마태복음 17:5에서 하나님이 예수를 자기의 유일 무이한 선택된 아들로서 다시 한 번 선포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증거로서 포도원 비유에서의 농부의 아들을 자기로 알레고리화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소작인들에 의해 결국 성밖에서 죽어야 하는 포도원주인의 아들을 알레고리 적으로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 부분을 증거로 삼고 있는데, 이것은 비교적 역사적-경제적 사실과 많이 부합하는 문서로 간주되는데, 이러한 비유들은 투쟁, 변호, 방어, 공격, 도전 등 주로 논쟁을 위한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성서의 모든 비유를 알레고리 적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포도원 비유가 나오는 마태복음 21:33-46은 그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짐작하고 비유를 들어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그에게 큰 증거로서 삼고 있다. 또한 이 비유는 이사야 5:1-7의 포도밭의 노래를 소재로 하고 있다. 즉 이사야의 이 텍스트로부터 가져왔다는 것이다. 오히려 공관복음서안의 이 포도비유가 수정되며(죽은 포도원 주인 아들의 죽는 장소에 따라 복음서마다 다른 것은 편집…수정하는 과정에서 결국 십자가의 고난에 그리스도가 매달리게 될 장소는 성밖이란 점에서, 그렇게 수정…편집되었다는 것)복음서안으로 흘러 들어온 것 같다.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와는 달리 혼인잔치 비유는 맥락상으로 살펴 볼 때 예수의 십자가상의 고난을 넘어선다. 전자가 십자가 처형을 예견한다면, 후자는 마태복음 28:18 이하에서 제자들이 받는 위대한 사명을 염두에 두고 있다. 따라서 마태는 알레고리를 통해 이 비유를 예수에게서 시작해서 마태 자신의 시대에 이르는 구속사에 대한 묘사를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 비유 중의 왕은 하나님, 그의 아들은 부활하신 예수, 혼인잔치는 메시아 향연, 초대받은 자들은 이스라엘, 종들은 제자들과 교회의 전도사들, 초대에 대한 무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의 거부, 종들을 때리고 죽이는 것은 교회에 대한 이스라엘의 박해, 군인들의 도시파괴는 예루살렘의 멸망, 나쁜 사람, 좋은 사람 차별 없이 초청해 옴은 이방인의 교회영입을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중심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비유되고 있다는 것이다. 왕의 아들인 혼인 잔치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의 메시아 향연인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는 주로 고백적인 배경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의 백부장의 신앙고백은 곧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진술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유대인들의 예수에 대한, 곧 하나님에 대한 신성모독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한편 베드로의 고백이 나오는 16:16과 대제사장의 질문이 나오는 26:63에서 마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와 메시야라는 칭호는 서로 동격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스 콘첼만에 의하면, 메시야 칭호의 유래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역사적 출처는 모호한 것이다. 예수가 이미 자신을 그렇게 붙였는가 또는 교회가 비로서 이 칭호를 그에게 부여했는가하는 점은 그 칭호가 어디서 유래했으며 무엇을 의미하는 가하는 물음에서 중요하지 않다.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이스라엘(출4:22), 그리고 왕으로부터 나타난다. 시편 2:2의 기름 부은자, 7절의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이것은 동양적 궁중 문학 양식이다. 물론 유대교는 하나님이 몸으로 낳았다거나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으로는 생각할 수 없었다. 구약성서의 왕칭호가 예수에게 이전되었으며, 하나님의 아들이란 의미는 메시야의 의미와 동일하다는 가정이 이 시편귀절에 근거하여 자주 제기된다. 그러나 유대교안에서 메시야에 대한 하나님의 아들 칭호들 사용한 것을 찾아볼 수없다는 사실이 그런 가정을 반영해 준다. ▶ 그리스도 그리스도(메시야)란 칭호는 마태복음 1:1, 1:16-18, 마2:4, 마16:16, 11:2, 16:20-21, 마22:42, 마23:10, 마26:63, 26:68, 마27:17, 27:22, 마가복음 8:29, 9:41, 누가복음 2:11, 9:20에 잘 나타나 있다. 마태는 이 ?메시야?라는 칭호를 한 차원에서만 사용하지 않았다. 마1:1에서 이 칭호는 한 사람의 이름으로 사용되었다(예수 메시야).마1:18, 마16:21도 같은 경우로 원문상 논란이 있으나 ?예수 메시야?가 정확한 독법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 메시야?라는 칭호가 단순한 이름으로 취급되었다 할지라도 마태복음서에 있어서 이 칭호는 ?예수가 메시야이시다?는 근본적 진리는 늘 함축하여 사용된다. 마태는 기독론적 칭호로서의 메시야란 칭호를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다. 메시야 그 분은 구약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되었고 이스라엘이 고대하던 그 오시는 이이시며, 다윗의 왕위를 계승하시는 왕으로 오신 예수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완성시키는 분이며, 하나님의 권위로 사람들에게 구원 또는 심판을 행하시는 분이다. 마태는 그의 복음서를 통해 이 메시야라는 칭호를 더 나아가 유대인의 왕,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도 규정지으려 했다. 만약에 메시야란 칭호의 사용이 결국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로 결과되게 되는 것이라면, 예수 메시야의 행동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서의 행동이었다는 것과 메시야라는 칭호가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의 대용어라는 이해가 타당한 것으로 인정하게 된다. 한스 콘첼만에 있어서도 그리스도는 메시야라는 칭호이긴(막 8:29)하지만, 그리스도는 예수그리스도란 결합에서 단순히 이름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바울이 단지 형식적인 관사를 사용하고 있는 경우에도 이 진술은 타당하다. 그런데 그리스도란 의미가 이름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물론 희랍어를 쓰는 세계에서였다. 희랍인들은 메시야 칭호를 이해하지 못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구원자의 본질을 다른 칭호와 설명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기원 상으로 볼 때 메시야는 민족주의적인 유대교적 종말론에 속한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구약성서에서 왕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메시야는 본래 초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적인 구원자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구원자에 대한 표상들이 융합되어졌다. 즉 초월적인 존재로 고양되어 졌다는 것이다. 메시야는 묵시문학적 문헌의 대부분에서 나타나고 있지 않다. 묵시문학에서 메시야 개념이 침투되어 있는 부분은 이차적 발전단계에 속한다. ▶ 인자(人子) 인자(사람의 아들)는 마태복음 마08:20, 마09:6, 마10:23, 마11:19, 마12:32, 12:40, 마13:37, 13:41, 마16:13, 16:27-28, 마17:9, 17:12, 17:22, 마19:28, 마20:18, 20:28, 마24:27, 24:30, 24:33, 24:37, 24:39, 24:44, 마25:31, 마26:2, 26:24, 26:45, 26:64, 마가복음 막02:10, 2:28, 막08:31, 8:38, 막09:9, 9:12, 9:31, 막10:33, 10:45, 막13:26, 막14:21, 14:41, 14:62, 누가복음 눅05:24, 눅06:56, 눅07:34, 눅09:22, 9:26, 9:44, 9:58, 눅11:30, 눅12:8, 12:10, 12:40, 눅17:22, 17:24, 17:26, 17:30, 눅18:8, 18:31-32, 눅19:10, 21:27, 21:36, 눅22:22, 22:48, 22:69, 눅24:7에 잘 묘사되어 있다. 인자라는 칭호는 마태복음서의 기독론적 칭호들 중 매우 중요한 칭호 중의 하나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 이론은 도전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칭호는 다른 복음서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수님 자신이 자신을 지칭하는 칭호로 마태복음서도 사용되었다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사실이 그렇게 분명하다 하여도 인자와 관련된 몇 가지 물음들은 아직도 마태복음서 연구가들 사이에 명쾌한 결혼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마태가 사용한 이 용어의 정확한 용법이 무엇인가? 이 용어는 왜 마태복음 8:20 이전에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이 용어와 하나님의 아들과의 관계는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들에 대한 답을 추구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이 칭호가 성격상 대중적인 경우는 진정한 한 기독론적 칭호로 작용하고 그 외에는 고백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의 보충적 역할을 함을 알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듯이, 인자는 예수의 사역의 세 구별된 국면을 따라 분류할 수 있는데, 첫째는 그의 공적 사역과 관계된 것이고, 둘째는 그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과 관련된 것이다, 세째는 그의 재림과 관계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가만히 보면은 이러한 인자의 기능들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모습과 상당히 일치되어 나타난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가 예수의 재림과 관련하여 거의 사용되지 않은 것처럼, 인자라는 칭호는 소위 예수님의 현지사역과 관련하여서는 그렇게 중요하게 사용되지 않는다는 차이점이 있다. 킹즈베리에 의하면, 이 인자라는 칭호야말로 마가복음에 있어서 예수님에 대한 가장 합당한 칭호이며, 따라서 아무런 수정이 필요 없는 유일한 칭호란 것이다. 그리고 이 칭호의 뛰어난 점은 마가복음에 있어서 이것이 항상 예수님의 입을 통해서만 말씀되어진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볼 때에 이것은 예수의 자기이해(self-understanding)의 표현인 것이다. 예수님께 대한 여러 칭호들 중 인자칭호는 가장 규범적인 것이 되며, 예수께 대한 다른 칭호들을 재해석하여 하나님께 예수님에 정하신 신적 운명이 고난과 죽음이란 것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도 예수를 예수 인자라 칭하지 않았으며, 이것은 인자의 기능이 나사렛 사람의 정체를 밝히는 것과는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킹즈베리에 의하면, 마가는 예수를 매우 분명하게 다윗적 메시야, 왕,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하였다. 그러나 인자는 독자들에게 예수가 누군가를 설명하는데 사용된 흔적이 없다. 그는 인자의 세가지 면을 지상적인 자, 고난받는 자, 묵시적인 자로 이해했다. ▶ 주(主) 주라는 칭호는 마태복음 7:21-22, 마8:2, 8:6, 8:8, 8:25, 마9:28, 마14:28, 14:30, 마15:22, 마16:16, 16:22, 마17:4, 17:15, 17:16, 마18:21, 마19:27, 마20:30, 20:33, 마21:3, 21_19, 마24:42, 마25:11, 25:20, 25:22, 25:24, 25:44, 마26:22, 26:33, 26:35, 마가복음 1:17, 8:29, 막10:28, 막11:3, 막14:31, 누가복음 2:11, 눅5:8, 8:24, 8:45, 눅9:33, 9:49, 9:54, 9:61, 눅10:17, 눅11:1, 눅12:41, 눅13:23, 눅17:37, 눅18:28, 18:41, 눅19:8, 19:25, 눅22:33, 22:38, 22:49에 잘 표현되어 있다. 한스 콘첼만에 의하면, 이 칭호는 원시교단에서 헬레니즘, 그리스도교에로의 이행이 뚜렷이 반영되어 있다. 오늘날까지도 다음 두가지가 격렬히 논의되고 있다. 이 칭호는 어디서 유래했는가? 언제 그리고 어디서 이 칭호가 그리스도교에로 들어왔는가? 이미 원시교단에서인가? 또는 헬레니즘 교회에서인가? 이미 원시교단이 예수를 주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있다. 까닭은 maranatha라는 부름은 순수히 묵시문학적 그리스도론의 표현이다. 교회는 스스로 고대하는 자로 이해한다. 그에 반하여 헬레니즘 세계에서는 오실자를 기대하는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현재 지배하는 주님을 경배하기 위해 모인 교단이란 윤곽이 들어 났다. 그 부름은 이제 예수는 주이시다. 이것은 간구가 아니라 환호와 선포이다. 하나님의 아들과 주는 교차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각기 뚜렷이라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즉 아들은 본질이오 주는 아들에게 부여된 지위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그를 부를 때에는 주라고 하는 것이다. 신앙은 이 칭호에서 올리워진 자에 대한 관계성의 현재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칭호는 성서개념과 친밀히 결합돼 있다. 성령은 주의 역사의 현존이다. 주를 부르는 것 자체가 성령에 의해 역사 되는 행위이다. 킹즈베리에 의하면, 마태복음을 연구하는 몇몇 학자들은 대개 검증되지 않은 근거들 위에서 마태가 사용하는 주요한 기독론적 칭호는 주 혹은 퀴리오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면밀한 검토에 의해 들어 나는 증거에 따른다면, 이 칭호가 그렇게 두드러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게 된다. 마태는 퀴리오스라는 용어를 적어도 세 가지 수준에서 사용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로서의 능력을 지닌 분, 다윗의 아들로서의 능력을 지닌 주, 인자의 능력을 지닌 주인 것이다. 마태복음 27:63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빌라도를 퀴리오스라고 부를 때 이 말은 순전히 전통적인 용법, 영어의 Sir와 동의로서 사용되고 있다. 신학적으로 볼 때 이 말은 많은 곳에서 하나님을 지칭한다. 물론 이 말은 예수의 칭호로서 나타나기도 한다. 퀴리오스란 말이 예수를 믿으면서 그에게 나오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만 나온다는 의미에서 고백적인 칭호이다. 이러한 것의 유일한 예외는 마지막 심판의 장면에서 저주받는 자들도 예수를 주라고 부르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마7:21-23, 마25:37) 마태복음에서 퀴리오스라는 칭호는 기독론의 중심적인 칭호가 아니라 오히려 보조적인 칭호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 칭호는 그 칭호 자체를 넘어서 보다 명확한 다른 칭호를 암시해 준다고 말할 수 있다. ▶ 다윗의 자손 다윗의 자손은 마태복음 9:27, 마12:23, 마15:22, 마20:30-31, 마21:9, 21:15, 마22:42, 마가복음 10:47-48, 누가복음 18:38-39에 잘 나타나 있다. 이 다윗의 자손이란 칭호를 보면은 귀신들려서 예수께 나아 오는 자의 입에서 자주 들을 수 있다. 이것은 어떤 치유와 관련된 것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다윗의 자손에게는 이런 능력이 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예루살렘 입성할 때 호산나하면서, 다윗의 자손이라고 외치는데, 하지만 복음서의 이 구절들을 찾아서 자세히 보면, 그 다음 구절은 다윗의 자손의 영향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구절들이 나오는데 이를테면, 이는 누구냐에 대한 반문으로 사람들은 이는 나사렛사람이 아니냐는 구절은 다윗의 자손의 칭호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기도 하다. 한스 콘첼만에 의하면, 족보는 역사적인 문제와는 상관이 없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남게 되는데 바로, 마가복음 10:48-소경 바디매오의 외침이다. 마가복음 11:1- 의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다윗 왕국의 도래에 관한 환호가 있다. 이것은 현시 전설 적이다. 한편 마가복음 12:35-17에서 메시야가 다윗의 자손일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그러나 요한복음 첫 구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다윗의 자손인 예수그리스도는 태초 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신 분이다. 콘첼만에 의하면, 이 구절들은 교회공동체의 두 단계 그리스도론을 표현해 준다고 한다. ▶ 하나님의 사자(使者) 마21:37, 요06:38, 요07:29, 요08:42, 요09:4, 요10:36, 요17:8, 21 ▶ 예수님은 나에게 어떤 분이 되시는가? 나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요 1:1) 나의 창조주이신 예수님(요 1:3) 성육신하신 예수님(요 1:14, 20:27) 나의 구주이신 예수님(요 1:36, 요3:1-21)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요02:11, 요06장)) 나의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요10:11) 나를 다스리시는 예수님(마02:6) 나의 부활하신 예수님(요11:25, 요20:1-8) 나의 선생이신 예수님(요13:13) 나의 생명이신 예수님(요15:4-5) 나의 친구이신 예수님(요15:14) 나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요17:9) 나의 왕이신 예수님(요17:9, 마02:1-6) 나의 모퉁이 돌이신 예수님(마21:42) 나의 반석이신 예수님(고전10:4) 나의 대언자 이신 예수님(요일02:1) 나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히12:2) (이영제목사, 한국컴퓨터선교회)
54 예루살렘(Jerusalem) 파일
지명
jesus
10651 48 2007-01-02
▶ 예루살렘(Jerusalem) 뜻: 평화의 터전 유대와 베냐민 두지파의 경계선상에 있으며 지중해 헤브론 요단강 사마리아로접경을 삼고 있다. 이 명칭은 (수10:1)에 처음 기재되었으나 오래전부터 있어 옛 이름이 살렘 우루살렘이라라 하나 확증이 없고 확실한 것은 여부스이며 (삿19:10-11)별명으로 오홀리바라 하고(겔23:4) 시온산의 이름을 따라 시온성 다윗왕의 도성인고로 다윗성,고라의 자손은 하나님의 성리라 하고 하나님 의 성전이 있는고로 거룩한 성이다라 하였다(삼하05:7,5:9, (눅02:11, (시046:4, (느11:1, (마04:5). 이로부터 유대인들은 이 예루살렘을 극히 존중히 여기고 경모 하였다(시122:6, (시137:5-6, (왕상08:38, (사62:1, 7, (단06:10, (마05:35). 스가랴선지는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를 구하라고 예언하였고(슥08:22-23).사도들은 한층 더 고상히게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성이라 하였다(갈04:26).너희가 이를곳은 시온산과 하나 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이라 하였고(히12:22)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이 그의 위에 기록하리라 하고(계03: 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니 그 예 비한 것이 신부가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다고 하였다(계21:2). (1) 역사적 종교적 중요성. 예루살렘은 고대 가나안 사람의 수도였으나 B.C 1,000년경 다윗왕이 점령 령하였다. 아모스와 호세아를 제외한 모든 선지자들의 활동무대였으며 구약 성경 대부분이 여기서 기록되었다. B.C.586년 느부갓네살이 점령하였고 포로 에서 돌라온 후 다시 재건하였으며 파사 희랍 로마시대를 통하여 그의 신성을을 점점 더하였다. 예수의 사역, 죽음, 부활, 승천의 무대였다. A.D.70년 타이러스가 예루살렘을 함락시켰고 136년 하도리안 황제때 재건되었었다가 637년 칼리프 오말에게 점령되었고 회회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1099년 십자군이 점령하였고 1517년 알렌비장군의 연합군이 점령하기까지 터키 사람 의 수중에 있었다. 1920년 국제 연맹의 결의로써 영국의 위임통치로 되었다가 제 2차 대전 이후에 독립하였다. (2) 위치와 기후 고대 문헌을 참고해 볼 때 현재의 예루살렘은 고대 예루살렘의 터위에 건설된 것이 확실하다. 기후는 이탈리아의 북부와 비슷하며 겨울에는 영하2도쯤되며 눈도 내리지만 오래 쌓여있지 않는다. 여름철에는 평균 최고 30도 를 넘지 않는다. (3) 성전의 위치. 솔로몬의 성전은 B.C.586년 느부갓네살의 손에 부서지기까지 존속하였고 포로 기간 중에도 그 위 치를 잊어버리지 않았다(렘41:5, (학 2:3, (스03:12). B.C.516년 스룹바벨이 그 자리에서 다시 지었다(스06:15). 요세퍼스에 의하면 헤롯의 성전은 그런 것을 확장 미화한 데 불과하다고 한다. (4) 지세. 가) 기드론 골짜기:이 골짜기는 예루살렘 동쪽 와디 싯티 마리암일 것이다. (요18:1)과 (막14:26) 을 보면 예수가 감람산에 가실 때 이 골짜기를 건느셨다 나) 힌놈 골짜기: 이 골짜기는 예루살렘 서남쪽을 에워싼 넓은 골짜기 로서 와디엘 라바비일 것이다. 다) 혈 로겔: 골짜기와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은 샘과 못이다. (왕상01:)을 보면 아도니아는 엘로겔에서 대관식을 거행 하였으며 솔로몬은 기혼에서 행하였다. 라) 베데스다:38년된 병자가 일어난 곳이다(요05:) 예루살렘 부근에는기혼(처녀의 샘)이 유일한 간혈천이다. 아마 이것이 베데스다 못의 유적일 것이다. 마) 실로암 지금은 아인이라고 부르는데 실상은 샘이 아니라 처녀의 샘 이 아니라 처녀의 샘의 물을 바위를 뚫어서 급수한 것이었다고 한다. (5) 시대적 증거 가) 솔로몬 시대에는 예루살렘 성전,왕궁,바로의 딸의 집이 계속해있으며 주위는 성벽을 쌓았다. 왕궁은 남쪽에 있었으리라 본다. 왜냐하면 다윗궁 보 다는 높고 경전보다는 낮다고 하였다 (왕상06:36, (왕상7:8,12 (사01:26, (왕상08:1, (왕상09:24, (왕상10:5, (왕하11:19, (렘22:1, (렘26:10, (왕상07:8, (왕상09:24, (왕상03:1, (왕상09:15). 나) 히스기야 시대의 예루살렘 히스기야왕은 산헤립의 침입을 예상하여 기혼의 물을 다윗성 서쪽에 끌어들이는 수로의 기록이 있다. (왕하20:20, (대하32:4,30, (대하07:3,(사22:9-11).이것은 바위를 뚫은 굴인데 이 굴 의 안벽에는 옛날 히브 리어의 비문이 조각되어 있다. 이것이 실로암 비문이다. 다) 신약시대의 예루살렘. 신약시대에 있어서는 예수의 예루살렘 방문이 가장 큰 사건이다 예수님이 처음 세번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것은 성전과 관계가 있었다 (눅02:22-39,41-50, (요02:13-22). 네번째는 베데스다 못(요09: ) 다섯번째는 성전(요07:) 여섯번째는 실로암못과 관계가 있었다(요 9:) 일곱번째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소 수난주일 동안 일,월,화요일에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막11:-16:) 목요일에는 다락방에서 만찬을 잡수셨다(막14:15) 이 다락방은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었을 것이다. 이곳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초대교회의 집회 장소가 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욥바의 문곁 에 빌라도의 집이 있었다고 하며 헤롯 궁전과 같이 있었을 것이라 한다. 십자가와 무던의 장소인 골고다에는 현재의 성묘교회가 서 있다고 한다 옹기쟁이의 밭 "아겔다마"는 나그네의 매장지였다(행01:18). ▶ 예루살렘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시132:13) -------------------------------------------------------------------------------- 황금의 도시, 영원한 도시, 평화의 도시인 예루살렘은 3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채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역사의 중심에서 아직도 꿋꿋하게 살아 숨쉬는 이스라엘의 수도이다. 아무런 보잘 것 없은 풍경과 전무한 상태의 부존 자원을 가진 유대 광야의 동편 가장자리에 우뚝 솟아있는 이 도시를 성경은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시125:2) 하였다. 이런 아무 쓸모없는 땅이 하나님께 선택함을 받았고, '일신교의 보루로서', '세계인의 성도' 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불모의 언덕에서 유명한 철학자들과 선지자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설교와 도덕적 계율들, 그리고 한 형제로서의 사랑을 가르치셨고 실수와 우상숭배로 인해서 눈 어두워진 이 땅의 사람들에게 바른 판단의 기준과 신앙적인 확신을 심어준 신앙의 틀을 짠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 (미04:2) 이곳은 전인류의 절반이 종교적인 수도로 믿고 있고,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옛날의 영광이요 미래 희망의 상징이며, 기독교인에게 있어서는 예수님의 마지막 사역이 펼쳐진 곳이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생생하게 지켜본 도시이다. 또한 회교도들은 이곳이 선지자 모하마드가 승천한 곳이라 믿고 있다. 예루살렘은 신앙과 평화의 원천이며, 가장 신성한 도시인 동시에 테러와 전쟁의 피가 끊임없이 흘려진 곳이다. 즉, 칼이 오랜 동안의 역사를 거쳐오면서 이들의 자손들을 괴롭혀 왔던 것이다. 지구상의 어떤 도시보다도 많은 전쟁을 거쳐왔고, 사람들의 피로 바다를 이룬 적이 수없이 많았었다. 무려 50차례 이상을 포위 공격 당했으며, 36차례에 걸친 정복과 10차례의 심한 파괴를 당했다. 예루살렘의 시초는 고대사 속에 묻혀 있어 알 길이 없지만, '평화'라는 뜻의 '살렘'(salem) 이라는 이름으로 가나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창14:18), 또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비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미는 헷사람이라" (겔16:3) 하였다. 사실상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곳이 된 것은 주전 10세기에 다윗 왕이 여부스 족으로부터 예루살렘을 정복해서 그의 수도로 삼고 (삼하05:6 ~ 10), 여호와의 언약궤를 이곳으로 옯겨온 (삼하06:1 ~ 23) 이후라고 말할 수 있다. 이후 다윗성(City of David)이라고도 불리웠으며, 자신을 포함한 역대 왕들의 무덤이 되기도 하였다. (사진: 다윗의 망대) BC 965 ~ 922 년에는 예루살렘을 확장 시킨 솔로몬 왕이 성전과 그의 궁전을 짓고 예루살렘을 미화하였다. 본격적으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종교, 정치, 문화, 사회등 무든 분야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화려하여 "은을 돌같이 흔하게" (왕상10:27) 하던 예루살렘은 남북 분열 이후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BC 586년 바벨론에 의해서 정복 당하였으며 성전이 파괴되고 사람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시137:1 ~ 4) 하며 애곡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곳에서도 예루살렘을 향하신 하나님의 미래를 결단코 포기하지 않았으며, 그 꿈은 예언자들의 예언대로 70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귀향하여, BC 516 ~ 515 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였다. BC 332년 예루살렘은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서 정복 당했다가, 마카비 전쟁을 통하여 성전을 재탈환하고, 헤스모니아 왕가에 의해서 잠시 동안의 독립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시 로마의 폼페이우스에 의해서 정복되고 말았다. (BC 63년). 로마의 후광을 입어 BC 37년 유대인의 왕으로 임명 된 헤롯 대왕 (Herod the Great)은 위대한 건축가로서 예루살렘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갔으며, 솔로몬 당시의 성전보다도 더 장대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건립하고 성벽을 쌓았다. 이성전은 46년 동안이나 걸려 건축되었고 (요02:20), "헌물과 미석으로 꾸며졌다" (눅21:5). 이 예루살렘이 예수님 당시의 바로 그 예루살렘이다. 그러나 이렇게 화려했던 예루살렘도 예수의 예언 (눅19:41 ~ 44, (눅21:6,20,24)대로 "돌 위에 돌 하나가 남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로마의 티투스 (Titus)는 BC 70 년 예루살렘을 불태워 버리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터전이 되지 못하였으며, 세계에 흩어진 그들에게 있어서 이 도시는 다만 과거의 도시일 뿐이었다. AD 132 ~ 135년 바르 코흐바 (Bar Kokhba) 에 의한 제2차 유대 반란 이후 하드리안 황제에 의해서 예루살렘은 로마의 도시로 재건되면서 엘리아 카피톨리나 (Aelia Capitolina) 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워지게 됨으로써 그 명성있던 이름마저 빼앗기게 되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성스러운 장소에는 로마의 제우스 신전이 세워지고 유대인의 출입이 금해지고 만 것이다. AD 332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예루살렘을 비롯한 예수와 관련된 팔레스틴을 '성지'(Terra Sancta)라 하여 곳곳에 기독교 교회를 세우기 시작하였다. 특히 예루살렘의 골고다에 세워진 성묘교회와 베들레헴에 세워진 예수 탄생교회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친어머니인 헬레나에 의해 건립되었다. 그러나 614년 페르샤의 침공으로 대부분의 교회가 파괴되었으며, 636년 아랍에게 예루살렘이 점령되어 약 500여년간 아랍의 통치하에 있게 됨으로써 예루살렘은 더 이상 기독교의 전통을 이어가지 못하게 되었으며, 새로운 아랍문화로 채색되어 갔다. 1099년 예루살렘이 십자군의 휘하에 들어감에 따라 약 200년 동안 라틴제국의 도시가 되었다가, 1187년 살라딘 왕이 이끄는 모슬렘에 의해서 재점령 됨으로써 기독교와 모슬렘 사이의 이중구조 속에서 예루살렘은 변모해 갔다. 1517년 오토만 터어키 (Ottoman Turkey)의 지배하에 들어감으로써 400년간의 터키 통치가 시작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영국군은 1917년 이후 예루살렘에 총독부를 두어 위임 통치를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제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면서 신생 이스라엘은 시온주의자들의 노력과 국제기구의 승인에 의하여 1948년 5월 14일, 2천년 동안의 유랑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국가로 탄생하게 되었으며, 예루살렘은 다시 이스라엘의 수도가 되어 옛날의 영화를 되찾게 되었다. (사진 :오토만 터키군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알렌비 장군과 영국군) 현재 예루살렘의 신시가지 (New City)는 불과 150여년 전부터 발전되기 시작하였다. 구도시 (Old City)는 1평방 킬로미터에 불과하여 매우 비좁을 뿐만 아니라 매우 오래된 도시이기 때문에 시설이 좋지 못하고 비위생적이었다. 150여년이 지난 지금은 신도시가 구도시의 약 100배가 넘는 신시가지로 발달하였다. 1967년 6일 전쟁 이후 통합된 구도시는 주로 고적지와 박물관 등을 포함하여 새로운 위생시설을 갖춘 일반 주거지로 사용되고 있으며, 신시가지에는 정부청사 등을 비롯한 행정수도로서 그 면모를 현대화해 나가고 있어 옛것과 새 것의 환상적인 조화가 이루어져 있다. 특히 연한 노란 빛을 띄고 있는 석회암에서 반사되는 아름다움은 이 도시를 '황금의 도시' (The Golden City)라 부르게 한다. ▶ Jerusalem's - (사62:1 ▶ (수10:1, (수12:10, (수15:8, (수18:28, (삿01:7, (삼상17:54, (삼하05:5, (삼하08:7, (삼하09:13, (삼하10:14, (삼하11:1, (삼하12:31, (삼하14:23, (삼하15:8, (삼하16:3, (삼하17:20, (삼하19:19, (삼하20:2, (삼하24:8, (왕상02:11, (왕상03:1, (왕상08:1, (왕상09:15, (왕상10:2, (왕상11:7, (왕상12:18, (왕상14:21, (왕상15:2, (왕상22:42, (왕하08:17, (왕하09:28, (왕하12:1, (왕하14:2, (왕하15:2, (왕하16:2, (왕하18:2, (왕하19:10, (왕하21:1, (왕하22:1, (왕하23:1, (왕하24:4, (왕하25:1, (대상03:4, (대상06:10, (대상08:28, (대상09:3, (대상11:4, (대상14:3, (대상15:3, (대상18:7, (대상19:15, (대상20:1, (대상21:4, (대상23:25, (대상28:1, (대상29:27, (대하01:4, (대하02:7, (대하03:1, (대하05:2, (대하06:6, (대하08:6, (대하09:1, (대하10:18, (대하11:1, (대하12:2, (대하13:2, (대하14:15, (대하15:10, (대하17:13, (대하19:1, (대하20:5, (대하21:5, (대하22:1, (대하23:2, (대하24:1, (대하25:1, (대하26:3, (대하27:1, (대하28:1, (대하29:1, (대하30:1, (대하32:19, (대하33:1, (대하34:1, (대하35:1, (대하36:1, (스01:2, (스02:1, (스03:1, (스04:6, (스05:1, (스06:3, (스07:7, (스08:29, (스09:9, (스10:7, (느01:2, (느02:11, (느03:8, (느04:7, (느06:7, (느07:2, (느08:15, (느11:1, (느12:27, (느13:6, (에02:6, (시051:18, (시068:29, (시079:1, (시102:21, (시116:19, (시122:2, (시125:2, (시128:5, (시135:21, (시137:5, (시147:2, (전01:1, (전02:7, (아01:5, (아02:7, (아03:5, (아05:8, (아06:4, (아08:4, (사01:1, (사02:1, (사03:1, (사04:3, (사05:3, (사07:1, (사08:14, (사10:10, (사22:10, (사24:23, (사27:13, (사28:14, (사30:19, (사31:5, (사33:20, (사36:2, (사37:10, (사40:2, (사41:27, (사44:26, (사51:17, (사52:1, (사62:6, (사64:10, (사65:18, (사66:10, (렘01:3, (렘02:2, (렘03:17, (렘04:3, (렘05:1, (렘06:1, (렘07:17, (렘08:1, (렘09:11, (렘11:2, (렘13:9, (렘14:2, (렘15:4, (렘17:19, (렘18:11, (렘19:3, (렘22:19, (렘23:14, (렘24:1, (렘25:2, (렘26:18, (렘27:3, (렘29:1, (렘32:2, (렘33:10, (렘34:1, (렘35:11, (렘36:9, (렘37:5, (렘38:28, (렘39:1, (렘40:1, (렘42:18, (렘44:2, (렘51:35, (렘52:1, (애01:7, (애02:10, (애04:12, (겔04:1, (겔05:5, (겔08:3, (겔09:4, (겔11:15, (겔12:10, (겔13:16, (겔14:21, (겔15:6, (겔16:2, (겔17:12, (겔21:2, (겔22:19, (겔23:4, (겔24:2, (겔26:2, (겔33:21, (겔36:38, (단01:1, (단05:2, (단06:10, (단09:2, (욜02:32, (욜03:1, (암01:2, (암02:5, (옵01:11, (미01:1, (미03:10, (미04:2, (습01:4, (습03:14, (슥01:12, (슥02:2, (슥03:2, (슥07:7, (슥08:3, (슥09:9, (슥12:2, (슥13:1, (슥14:2, (말02:11, (말03:4, (마02:1, (마03:5, (마04:25, (마05:35, (마15:1, (마16:21, (마20:17, (마21:1, (마23:37, (막01:5, (막03:8, (막07:1, (막10:32, (막11:1, (막15:41, (눅02:22, (눅04:9, (눅05:17, (눅06:17, (눅09:31, (눅10:30, (눅13:4, (눅17:11, (눅18:31, (눅19:11, (눅21:20, (눅23:7, (눅24:13, (요01:19, (요02:13, (요04:20, (요05:1, (요07:25, (요10:22, (요11:18, (요12:12, (행01:4, (행02:5, (행04:5, (행05:16, (행06:7, (행08:1, (행09:2, (행10:39, (행11:2, (행12:25, (행13:13, (행15:2, (행16:4, (행19:21, (행20:16, (행21:4, (행22:5, (행23:11, (행24:11, (행25:1, (행26:4, (행28:17, (롬15:19, (고전16:3, (갈01:17, (갈02:1, (갈04:25, (히12:22, (계03:12, (계21:2, lt=31.777&ln=35.234
53 이스라엘(Israel) 파일
지명
jesus
6627 39 2007-01-02
▶ 이스라엘(Israel) 뜻: 하나님이 싸워주심 [1] 구약 : 이스라엘 이라는 이름은 야곱시대부터 유래하여(창32:24-32) 그 어원의 해석은 (호12:3-4)에 적용되어 있다. (1) 유목 시대와 가나안 정주 시기에는 12지파로 구성된 전체를 가리켰다. (2) 한 임금의 지배하에 들어간 신정정치 시대에는 일종의 정치적 지리적 개념으로 쓰였다. (3) 왕국의 실재가 사라진 후에는 종교적 의미가 회복되어 남은 백성을 지칭하였다. (4) B.C 586년의 예루살렘 함락과 바벨론 포로와 그 후의 귀환으로 신앙의 종교적 공동체에 적용하여 사용되었다. 이스라엘 국가 현황 1. 국가명(지역.부족명) : 이스라엘(브엘세바중심한 네겝지역,베두임족-유목원주민). 2. 주요언어(방언) : 아랍어(히브리어)*이스라엘은 히브리어,아랍어,영어가 통용됨. 3. 인구 : 45000명(베두임족만: 이스라엘 인구는 540만+팔레스틴자치지구150만). 4. 면적 : 약1만여 평방킬로미터(이스라엘전체면적은 2.2만 평방킬로미터. 5. 종교분포 및 상황 : 이스라엘은 유대교82%, 무슬림14%, 기독교1.8%, 기타(2.2%). 이스라엘의 역사 1장. 제 2성전시대 헬라시대. 마카비 반란. 하스몬 왕조. 로마의 통치와 헤롯 왕조. 헤롯 대왕. 헤롯의 후예들. 로마의 총독들. 유대의 대 반란과 성전의 파괴. 종파의 형성. 디아스포라 유대인 2장. 성전 파괴 이후 (미쉬나, 탈무드 시대) 성전 파괴이후의 유대인. 바르 코크바 반란. 미쉬나,탈무드의 편찬.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갈등. 유대인에 대한 로마의 법 3장. 팔레스타인의 통치자들 모슬렘. 십자군. 맘룩. 오스만 터키 4장. 팔레스타인 밖의 유대인 4세기에서 9세기까지. 중세. 유대교 사상의 발전과 사상가들. 카발라 신비주의의 발생. 거짓 메시야. 하시딤 운동. 하스칼라 운동 5장. 시온으로 유대인에 대한 관용과 안티 세미티즘. 시온주의. 히브리어의 부활. 독립 2장. 성전 파괴 이후(미쉬나, 탈무드 시대) 성전 파괴 이후의 유대인 유대인의 구심점이던 성전은 파괴되었다.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방황하는 백성들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어야만 했다. 사두개파와 에세네파는 사라지고 오직 바리새파만이 남았다. 랍비 문학은 바리새파가 어떻게 성전 파괴 후에 대처해 나갔는지를 보여준다. 성전 파괴를 슬퍼하는 요슈아 벤 하나니아에게 스승 요하난 벤 자카이가 말한다. "파괴된 성전을 위해 슬퍼하지 말아라. 우리에게는 다른 보상이 있으니,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호06:6)는 말씀이다"(아봇 데 라비 나탄 4.21). 성전 파괴 후 포도주와 고기 먹기를 거부하는 백성에게 요슈아는 그렇다면 숨도 쉬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아야 할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바벨론 탈무드.바바 바트라 60b). 성전 파괴는 유대인에게 끝이 될 수 없었다. 요하난 벤 자카이의 가르침대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토라가 남아 있었다. 요하난 벤 자카이는 예루살렘에서 떨어진 야브네에 새로운 기초를 다져 나갔다. 뒤를 이은 라반 가말리엘하에서 야브네는 성전이 있던 당시의 산헤드린이 행사하던 모든 기능을 회복했다. 율법을 공부하는 학교(Batei Midrash)가 야브네를 비롯하여 모든 유대인 마을에 생겨났다. 주전 1세기 힐렐과 샤마이에서부터 시작하여 주후 3세기 랍비 예후다가 등장하기 이전까지의 율법의 지도자들인 타나(선생)의 지도하에 율법이 계승되어 갔다. 바르 코크바 (Bar Kokhba) 반란 (132-135) 성전이 파괴되고 60여 년이 지났으나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꿈은 사라지지 않았다. '별의 아들'이라는 뜻의 바르 코크바를 중심으로 하여 로마에 대한 반란이 시작되었다. '예루살렘의 해방' '이스라엘의 구속'이라고 히브리어로 쓴 동전이 발행되었다. 바르 코크바는 자신의 이름으로 반란군에게 보내는 서한을 아람어가 아닌 히브리어로 작성하였다. 랍비 아키바는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민 24:17)라는 구절과 연관시켜 그를 이스라엘을 구속할 메시야로 선포하였다. 로마는 마지막 요새 베타르를 진압하는 데 고전했다. 하드리안은 원로원에 보내는 편지에서 의례적인 '나와 군대는 잘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생략했다. 반란의 결과는 참혹했다. 유대인의 마을은 회파되고 많은 이들은 살해되거나 노예로 끌려갔다. 예루살렘은 알리아 카피톨리나(Aelia Capitolina) 라는 새 이름으로 불리었다. 예루살렘에는 유대인 거주가 금지되고 오직 성전 파괴일(아브월 9일)에만 방문이 허락되었다. 하드리안 황제는 지금까지 유다로 부르던 속국의 이름을 시리아 - 팔레스티나로 바꾸었다. 더 이상 유대인이 이 땅에 대한 애착을 갖지 못하도록 한 조치였고, 이후로 이 땅은 이스라엘이나 유대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리게 된다. 미쉬나, 탈무드의 편찬 성문 율법과 함께 구전 율법도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로 받았다는 전승은 구전 율법의 권위를 말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바리새파에 의해 발전되었고 유대교의 기본 원칙이 되었다. 원래 구전 율법은 기록이 금지되었다. 율법은 구두로 율법 학교에서 암송되고 토론되어 다음 세대로 이어져 내려왔다. 이런 구전 율법은 랍비 아키바와 랍비 메일과 같은 타나임의 지도를 거쳐 랍비 유다 나시(Nasi, 지도자 )에 의해 종합되어 3세기 중엽 미쉬나(반복하다. 가르치다 라는 뜻)로 편찬되었다. 구전 율법은 토라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관습과 전통을 규범화시킨다. 예를 들어 토라에는 남편이 아내에게 이혼 증명서를 써 주면 이혼이 성립된다고 하였으나, 구전 율법은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에 이혼이 성립되고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토라에는 언급이 없으나 전통으로 내려오는 결혼 계약서의 작성과 효력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미쉬나는 씨앗(Zeraim), 절기(Moed), 여성(Nashim), 손해(Nezikin), 성물(Kodashim),정결(Teharoth)의 6편으로 되어 있고, 각 편마다 다시 여러 항목으로 세분화 되어 있다. 미쉬나는 다시 아모라(해설자)의 토론과 설명이 덧붙여져 탈무드로 편찬되었다. 탈무드는 미쉬나를 본문으로 하고 그마라(주석)가 추가되었다. 4세기 후반 팔레스타인의 아모라임은 예루살렘 탈무드(또는 팔레스타인 탈무드로 부름)를 편찬하고, 한 세기가 지나서 바벨론에서도 바벨론 탈무드가 편찬되었다. 탈무드는 유대인의 모든 도덕, 민속, 역사, 삶의 방식 등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후에 기독교 통치하에서 탈무드는 금서로 정해져, 1242년 파리, 1553년 이탈리아, 1757년 폴란드에서 불태워졌다. 탈무드의 첫 인쇄판은 1520-1523년 비엔나에서 출판되었다.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갈등 초대 교회는 핍박으로 인해 대부분 팔레스타인 밖으로 흩어진다. 2세기 예루살렘을 제외한 기독교인의 공동체가 있는 곳은 가이사랴뿐이었다. 한 두 세기가 지나면서 팔레스타인 내의 기독교 공동체는 점점 늘어나서 욥바, 세바스테, 아스글론, 가자등에는 외부에서 온 기독교인이 정착한다. 유대인으로 예수를 믿는 이들은 유대인에 의해 미님(Minim, 종류, 분파의 뜻으로 이단을 가리키는 말)으로 불렸다. 오리겐에 의하면 5세대에 걸친 미님은 15만 명이 넘지 않는다고 한다. 이들 중에는 에비온파가 있었는데 마태 복음만을 받아들이고 예수가 다윗의 후손으로 온 메시야임은 인정하지만 신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초기의 유대 크리스챤의 한 분파는 유대인도 받아 주지 않았고, 기독교인도 인정해 주지 않자 결국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다. 가이사랴에는 초대 교회 교부들이 기독교의 교리를 세워 가는 곳이 되었다. 오리겐과 유세비우스는 왜 유대인이 버림을 받았는지 논증했고, 이에 대해서 유대인은 탈무드와 미드라쉬를 사용하여 유대교의 담을 쌓아 나갔다. 양쪽의 관계는 점점 악화되었고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자 교회는 이제 유대인을 대항할 정치적인 힘을 얻게 되었다. 355년 황제가 된 율리안은 헬라의 종교를 신봉했다. 그는 종교의 자유를 선포하고 유대인에게 성전 재건을 약속했다. 이일은 기독교인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나 유대인에게는 새로운 희망이었다. 성전 재건은 예상치 않았던 천재 지변으로 중단되고 기독교인의 승리로 끝난다. 3세기 중엽 랍비 예후다가 나시(지도자)가 되면서 나시는 로마의 승인을 받은 유대인의 지도자가 되었다. 나시는 성전 파괴 이전 산헤드린이 가졌던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기독교인에게 나시의 존재는 부담스러웠다. 결국 429년 데오도시우스 황제는 나시를 폐지하여 유대인의 최고 지도자는 사라지게 된다. 유대인에 관한 로마의 법률 (콘스탄틴부터 테오도시우스까지) 콘스탄틴 황제(324-337)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자 교회는 공적인 단체로 인정을 받고 재산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 유대교와 기독교는 로마의 핍박을 받는 종교였다. 이제 기독교는 로마의 보호를 받고 유대교는 계속적인 박해를 받아야 했다. 유대인이 기독교인으로 개종하는 것을 보호하고 유대인으로의 개종은 금지되었다. 예루살렘에는 유대인의 거주가 금지되었으나, 일년 중 하루 성전 파괴일(아브월 9일)에만 예루살렘 방문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법은 나중에 제정된 법과 비교할 때 그리 치명적인 것은 아니 였다. 콘스탄티우스 2세(337-361)는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결혼을 금지시켰으며, 유대인은 기독교인 노예를 소유할 수 없도록 했다. 이것은 종교적인 목적만을 갖는 듯하나 결과적으로는 노예를 거느리고 있던 유대인 경제에 큰 손실을 입히고 경쟁자인 기독교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테오도시우스 1세는 유대인을 사회에서 소외시키고 억압하는 법을 제정했으며, 테오도시우스 2세는 438년 지금까지의 법을 종합화하였다. 이러한 모든 법에 대한 유대인의 반응은 동일하지 않았으나, 이방인으로부터의 분리 조항은 유대인의 순수성을 지킬 수 있으므로 지도자적인 유대인으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3장. 팔레스타인의 통치자들 모슬렘(640-1099) 7세기 중엽 아라비아 반도의 모슬렘은 그 세력을 페르시아에서 대서양에 이르기까지 모슬렘 제국을 확장시켜 나갔다. 팔레스타인의 새 주인은 팔레스타인을 두 지역으로 나누었다. 팔레스타인의 북부는 티베리야를 수도로 하는 우르둔(Jund Urdunn)으로, 중앙과 남부는 람레를 수도로 하는 필라스틴 (Jund Filastin)으로 구분되었다. 예루살렘은 메카와 메디나를 이어 모슬렘의 세 번째 성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적으로는 중요성을 띠지 못했다. 모슬렘 제국은 우마이야드(Umayyad 661-750), 아바시드(Abbasid 750-974), 파티미드(Fatimid 975-1171) 왕조가 통치를 하였으며 파티미드 왕조의 정치적 문화적 분열은 이슬람 제국의 몰락과 십자군의 진출로 이어졌다. 초기 모슬렘 시대에 팔레스타인 내의 많은 유대인과 기독교인에게는 모슬렘으로의 개종이 강요되었으며, 이러한 모슬렘이 20 세기까지 팔레스타인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모슬렘의 정복 이전 팔레스타인에 남아 있던 유대인의 대부분이 박해가 심해지자 새로운 거처를 찾아 떠나고 소수의 유대인만이 남게 되었다. 십자군 (1099-1291) 모슬렘의 통치하에 있는 성지를 해방시킨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유럽의 십자군이 팔레스타인을 차지하였다. 1099년 예루살렘을 탈환한 십자군은 모슬렘과 유대인을 학살하고 팔레스타인을 기독교의 성지로 회복시켜 나갔다. 일부 유대인은 파티미드계 모슬렘과 함께 십자군에 대항하였으며 전쟁의 결과 대부분의 유대인 거주지는 파괴되었다. 12세기 후반이 되자 유대인 거주지는 아코, 가이사랴, 아쉬켈론의 해안 도시에 조금씩 회복되어 갔다. 항구가 있는 해안 도시는 상업과 무역으로 경제적인 요인을 충족시켜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티베리야와 사페드에도 고립된 유대인 마을이 있었다. 십자군은 정치와 경제적 이득권때문에 성지 탈환이라는 본래의 순수한 목적이 퇴색되어 갔고, 이집트에 거점을 둔 모슬렘인 맘룩이 팔레스타인을 공격하여 십자군의 마지막 요새인 악고를 손에 넣었다. 맘룩 (1291-1517) 맘룩은 악고, 욥바, 그리고 다른 해안 도시를 파괴하였고 결과적으로 팔레스타인은 국제적 무역로의 역할을 상실하면서 경제적으로 쇠퇴해 갔다. 예루살렘의 많은 지역도 황폐한 채로 남겨졌으며 1488년 예루살렘을 방문한 오바디야는 예루살렘의 4천 가구 중 유대인 70여 가구는 매우 빈곤한 상태였다는 기록을 남겼다. 람레, 나불루스(세겜), 가자는 이 시기에 비교적 번성한 도시였다. 팔레스타인은 아랍 문화권에서도 별다른 중요성을 갖지 못하였으나, 교육은 지속되었다. 십자군 시대의 교회는 파괴되고, 모슬렘 사원이 건설되었다. 15세기 악화된 경제 사정과 오스만과의 전쟁으로 팔레스타인의 치안은 불안정했다. 오스만 터키 (1517-1917) 오스만 터키의 술탄 셀림 1세는 시리야, 팔레스타인, 이집트를 정복하여 팔레스타인의 주인이 되었다. 이미 오스만 제국은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여 비잔틴 제국을 약화시키고 헝가리, 흑해 연안과 북아프리카, 아라비아 반도의 페르시아만 북부 지역을 통합하여 거대한 모슬렘 제국을 건설했다. 팔레스타인은 행정적으로 예루살렘, 가자, 나불루스, 사페드의 4 지역으로 구분되었다. 1492년 스페인에서 쫓겨난 유대인은 터키 제국으로 이동해 왔으며 일부는 팔레스타인에 정착한다. 사페드에는 카발라 신비주의를 신봉하는 유대인의 이주하여 사페드는 유대 신비주의의 본거지가 될 것이었다. 새로운 유대인 이민자로 인구가 늘어났다. 16세기 예루살렘을 방문한 랍비는 그곳에 유대인 3백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17세기 샤브타이 쯔비에 의한 메시야 운동이 유럽의 디아스포라 유대인에게 영향을 미쳐 메시야 도래를 기다리는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이주가 급격히 늘어나게 되었다. 17세기말 예루살렘 내의 유대인은 1200명이었는데, 18세기가 되자 메시야 도래를 기다리는 천여 명의 새로운 이주자들이 예루살렘에 정착하였다. 당시 이들의 생활은 빈곤했고 대부분이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보내 주는 기부에 의지하여 생활하고 있었다. 19세기말 팔레스타인의 인구는 증가하여 전체 인구 45만 명중에 유대인은 24,000명이었고 과반수 이상이 예루살렘에 거주하였다. 터키는 모슬렘의 대 제국이라는 자만심으로 유럽 세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으나 나폴레옹의 이집트 점령에 자극을 받아 개혁을 서두르게 된다. 그러나 내부의 반란과 외세의 침입이 계속되고, 프랑스와 영국이 중동의 질서에 끼여들자 터키는 흔들거린다. 1917년 팔레스타인의 지배권은 영국으로 넘어가지만, 유대인 사이에 시온주의가 확산되어 이스라엘 회복의 꿈이 번져 가고 있었다. 4장. 팔레스타인 밖의 유대인 4세기에서 9세기까지 유럽의 유대인 유대인은 기독교와 모슬렘의 통치하에서 살게 되었다. 기독교는 유대인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대가로 저주를 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겼고, 모슬렘은 무하마드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여기지도 않고 코란도 인정하지 않는 유대인을 박해했다. 모슬렘 통치하에서는 기독교 국가에서보다 다소 억압의 정도가 심하지 않았으나 그래도 고난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는 유대인의 열등한 사회적 지위를 법으로 공포했다. 기독교 국가에 정착한 유대인은 모슬렘 세계에 서구의 일용품을 공급해 주었다. 모슬렘 세계에 살던 유대 상인이 이러한 무역을 연결함으로써, 근동과 서유럽을 왕래하는 무역에 종사하게 된다. 이들 유대 상인 중 일부는 궁정과 연결되어 상류층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도 한다. 유대인은 토지를 소유할 수 없었고 유대인 무역상이 지방 무역에 개입하자, 봉건 영주는 그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유대인 무역상을 활용하였다. 화폐가 중요성을 더 할수록 그들의 활동은 도시 경제의 중요한 요인이 된다. 8세기초 아랍이 스페인을 공격하고 유대인에게 관용을 베풀자 스페인의 유대인은 약 3백년간 자유롭게 시, 철학, 과학뿐 아니라 유대교를 발달시킬 수 있는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모슬렘 세계에 살던 유대인은 또한 아랍 문화를 유럽에 전해 주는 매개 역할을 한다. 중세의 유대인 십자군은 유대인을 핍박하고 그들의 거주지를 파괴시켰다. 무역과 농업에 종사하던 이들은 생계 유지를 위한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토지가 없는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대금업(貸金業)이었다. 12,13 세기 기독교인에 대한 유대인의 고리 대금업은 때로 금지 당했다.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삼분의 일이 죽자(1348-1349), 유대인이 흑사병을 퍼뜨렸다는 의심을 받는다. 1492년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은 유대인 추방령을 내린다. 유대인은 개종을 강요당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죽임을 당하거나 추방당했다. 개종한 유대인 중에는 비밀리에 유대 전통을 유지하기도 했다. 추방당한 이들은 그리이스, 북아프리카, 오스만 제국 내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오스만 제국은 비교적 유대인에게 관대했다. 16세기 주변 세계는 유대인을 격리시키는 조치를 취하기 시작한다. 1516년 베니스에서 처음으로 유대인을 게토(Ghetto 鑄造場)라는 구역에 격리시킨다. 16세기에 도시의 유대인 인구가 늘어나자 추가로 구역이 할당되었으며 같은 이름이 주어졌다. 이리하여 게토는 유대인이 강제로 살게 되는 격리 구역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1655년에 비엔나의 게토에 살던 유대인은 모두 5천명에 이르게 되었다. 곧 게토는 독일, 프랑스, 폴란드, 보헤미아의 도시에도 생겨난다. 중세 말 게토는 유럽에서 공식적인 기구가 되어, 유대인은 심리적으로 사회적으로 고립에 직면한다. 그러나 주변 세계와 단절된 게토에서 유대인은 자유롭게 토라에 열중할 수 있었고, 자체적인 교육을 통하여 정체성을 지켜 나갔다. 게토에서의 삶은 한편으로 유대인의 시야를 좁게 만들었다. 유대교 사상의 발전과 사상가들 모슬렘 시대는 가온(Gaon 뛰어난 자. 6세기 -11세기)이라 불리는 지도자들에 의해서 탈무드 연구가 부활되었으며 바벨론의 수라와 품베디타는 탈무드 연구의 중심지가 되었다. 종교적인 문제뿐 아니라 세속적인 모든 문제는 가온이 제시하는 지도에 의존하며, 바벨론의 가온이 그 역할을 상실하자 이집트, 스페인, 독일의 탈무드 학자들이 이 책임을 맡게 된다. 이집트 출신으로 바벨론의 수라에서 가온으로 임명된 사디야 가온(Saadyah ben Joseph 882-942)은 유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처음으로 체계적인 유대 철학을 정립했다. 그는 문법, 사전 편집, 시, 주석, 기도문, 달력 제정의 분야에 커다란 공헌을 남겼다. 성경의 아랍어 번역이며 주석인 '타프실'(Tafsir)은 아랍어를 사용하는 유대인과 기독교 학자에게는 표준 성경이 되었다. 스페인 출신의 이븐 가비롤 (Solomon Ibn Gabirol c.1021-1056)은 네오 플라톤 철학자로 유대인의 지식 영역을 바벨론에서 유럽으로 옮겨 놓았다. 그는 성경의 언어인 히브리어에 자극을 받아 철학적 시를 구상해 냈고 이러한 시의 일부는 유대인의 기도문에 포함되었다. 시적 철학 작품인 '고귀한 왕관'(Keter Malkhut)은 운율이 있고 모든 절이 성경의 구절로 끝나도록 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창조와 지혜를 찬양하는 성가이다. 이성에 근거한 사디야 가온의 철학은 마이모니데스 (Moses ben Maimon 1135-1204,보통 Rambam으로 부름)가 뒤를 이었다. 스페인에서 태어난 그는 모슬렘의 박해를 피해 모로코, 팔레스타인으로 전전하다 이집트에 정착했다. '미시네 토라'(Mishneh Torah, 토라의 반복1166-1176)는 지금까지의 할라카, 율법의 집대성이며, '모레 네부킴'(Moreh Nevukhim, 당황한 자들을 위한 안내)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바탕을 두고 쓰여졌다. 그의 이성에 대한 우위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의 조화는 당시에 많은 비난을 받았다. 사후 그의 책은 기독교와 유대교 모두에게 이단으로 몰려 불살라졌으나,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기독교 학자에게 철학적인 근거와 영향력을 줌으로 해서 그에 반대하는 논쟁은 끝을 맺었다. 그의 율법에 대한 정립은 지금까지 가장 권위 있는 율법 해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그의 사상은 유대교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프랑스 출신으로 성경과 탈무드 주석의 대가인 라쉬(Rabbi Solomon Yitzhaki 1040-1105, 보통 Rashi로 부름)는 유럽의 유대인에게 팔레스타인과 바벨론의 전통을 이어주었다. 스페인의 기독교 통치하에서 유대인은 많은 제약을 받았으나, 모슬렘이 스페인을 정복하면서 유대인을 관대하게 대하자 유대인은 자유롭게 철학과 사상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다. 카발라 (Kabbalah), 신비주의의 발생 카발라는 전통(傳統)이라는 뜻을 지닌 히브리어로 '전통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원래 카발라는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종교적인 가르침을 말하나, 특별히 11세기 이후의 유대교의 신비적인 사상을 지칭한다. 유대교 내에 신비주의 운동이 처음 나타난 것은 주전 2 -1 세기였다. 쿰란의 사해 사본 중에도 신비주의 전통과 관계된 사본들이 발견되었다. 주후 2세기 시몬 벤 요하이 학파는 '창조의 신비'(Maaseh Bereshit)와 '하나님의 수레에 관한 신비'(Maaseh Merkavah)를 다루고 있다. 마아세 베레쉿은 창세기 1장에 나타난 창조의 신비를, 마아세 멜카바는 에스겔 1 장에서 에스겔이 본 환상의 수레에 대한 신비를 주제로 한다. '헤칼롯'(Hekhalot, 하늘의 궁전)문학은 이 신비주의에 관한 작품을 일컫는 말이다. 유대 신비주의는 성경에 근거한다. 모세, 엘리야, 엘리사가 행한 기적은 초자연적인 것이며, 현상적인 세계와 함께 초자연적인 세계에 관심을 갖는다. 이러한 신비주의는 메시야 사상과 연결되어 있다. 세상은 악과 싸우고 있으며 메시야의 도래를 기다리고 있다. 사변적이며 실천적이기도 한 성격을 띤 신비주의에 관한 주제는 탈무드에도 풍부하게 나타나지만, 탈무드 시대에는 이단과 회의주의자의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하여 널리 알려지는 것을 막고 소수에게만 아는 것이 허락되었다. 12세기 독일에는 카발라에 심취한 '경건한 아쉬케나지'(Haside Ashkenaz)라고 불리는 분파가 생겨났다. 13세기 스페인에서는 카발라 운동이 절정에 달하여 '조하르'(Zohar, 빛남) 라는 신비주의의 고전적인 일련의 작품이 생겨났다. 이 조하르는 6세기 이상 유대인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 영원한 생명과 구원에 대한 신앙은 고난을 견뎌 내게 한 힘이었다. 거짓 메시야 카발라에 영향을 받은 샤브타이 쯔비(Shabbetai Tzevi 1626-1676)가 이끄는 메시야 운동은 17세기 중엽에 절정에 달했다. 중세는 유대인 박해의 시기였다. 탈무드는 불살라지고 유대교의 의식은 핍박을 받았으며, 유대인은 살던 마을로부터 쫓겨나곤 했다. 참혹한 유대인 학살 사건이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났다.(1648-1655) 10만 명 이상의 유대인이 고문을 당하고 죽어 갔으며, 3백 개가 넘는 유대인 마을이 회파되었다. 왜 하나님은 그의 택한 백성에게 이러한 고난을 허락하시는지 질문이 생겨났다.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답은 곧 메시야가 온다는 것이었다. 터어키에서 태어난 샤브타이 쯔비는 탈무드 교육을 받았으며, 카발라에 심취해 갔다. 그가 20세에 이르자 벌써 그를 따르는 소수의 무리가 생겨났다. 그의 헌출한 키와 잘생긴 용모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으며, 아름다운 목소리로 부르는 그의 노래는 그의 추종자들을 매혹시켰다. 카발라주의자들은 1648년이 메시야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때라고 믿었다. 이 해에 바로 대 학살이 일어났다. 메시야 정신에 사로잡힌 샤브타이 쯔비를 반대하는 마을의 랍비들이 그를 쫓아냈다. 그는 콘스탄티노플로 옮겼으나 그곳도 마땅한 곳은 아니었다. 그는 카이로와 예루살렘으로 옮겨 다녔다. 이때 대 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라라는 소녀가 메시야와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다고 하자 그는 곧 사라와 결혼한다. 1644년 샤브타이는 나탄 벤자민 레비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예언자적 환상을 보았다고 주장하며, 1665년 샤브타이를 메시야로 선포한다. 터어키로 돌아온 그는 열광하는 유대인의 환영을 받고, 암스텔담의 영향력 있는 랍비들이 그를 메시야로 고백한다. 함부르그의 많은 유대인은 그들의 재산을 처분하고 메시야가 거룩한 땅(Holy land)으로 갈 것을 준비한다. 샤브타이는 콘스탄티노플의 술탄이 그를 왕중의 왕으로 인정할 것으로 생각하고 그 곳으로 갔으나 술탄은 그를 체포한다. 그의 추종자들은 샤브타이의 구금이 메시야가 겪어야 할 고난의 과정으로 여겼다. 감옥에 갇힌 샤브타이를 방문한 느헤미야 코헨은 그가 메시야가 아닌 것을 깨닫고 술탄에게 아마도 샤브타이가 오토만 제국을 전복하려 할지도 모른다고 알린다. 술탄은 사람을 보내 그가 모슬렘으로 개종하기를 권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샤브타이는 1666년 모슬렘으로 개종한다. 샤브타이는 그의 개종이 하나님으로부터의 명령이었다고 공포하자, 많은 추종자들이 떨어져 나간다. 그러나 일부는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야곱 프랑크가 이끄는 소수의 메시야 운동(Sabbatean)으로 발전한다. 샤브타이 쯔비는 1676년 속죄일에 죽었다. 이 거짓 메시야 운동은 유대인에게 충격과 실망을 안겨다 주었다. 일부는 새로운 신앙을 찾아 동부 유럽에서는 하시딤 운동이, 서부 유럽에서는 하스칼라운동이 생겨나게 되었다. 하시딤 운동 (Hasidism) 이삭 루리아(Isaac Luria 1534-1572)가 이끄는 카발라 운동은 하시딤의 신조를 채택하여 그 가르침을 대중화시켰다. 하시딤(Hasidim 경건한 자들) 운동은 신비주의에 기초한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운동이다.(주전 2세기 마카비 반란에 동참했던 하시딤이나 12세기에서 13세기에 존재하던 하시딤이 아님) 하시딤 운동의 대표는 바알 쉠 토브(Israel Baal Shem Tov c.1700 - 1760)로 사람은 모든 생각과 행위에서 하나님을 경배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하나님은 모든 창조물에 존재하며 하나님과 함께 모든 창조물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 과업이다. 이러한 헌신은 기쁨과 무아경을 만든다. 하시딤 운동은 도브 벨(Dov Ber) ,잘만(Shneour Zalman 1747-1813) 의 제자에 의해서 '하바드'(Habad, 지혜, 이해, 지식의 히브리어 약자임) 운동으로 발전되었다. 하바드 운동은 종교적 체험에서 지적인 노력에 강조점을 두는 것이 원래의 하시딤 운동과 다른 점이다. 하바드 운동은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으나 특히 뉴욕, 캐나다, 이스라엘에서 활발하다. 뉴욕에서 포교하던 하바드의 최고 랍비인 멜루바비치는 그의 추종자들에 의하여 1993년 1월 메시야로 선포되었으나, 1994년 6월 92세를 일기로 뉴욕에서 죽었다. 하스칼라(Haskalah 계몽주의) 유대인의 계몽주의는 중세의 금욕주의와 관념론에서 유대인을 해방시키는 휴머니즘을 이상으로 하여 18세기와 19세기에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계몽주의는 17세기 서구화된 네델란드와 이탈리야 유대인 사회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나, 18세기 독일에서 시작되었다. 역사, 철학, 과학의 습득은 유대인의 지식 영역을 넓혀 갔다. 독일에서는 멜델스존(Moses Mendelssohn 1725-1786)의 노력으로 계몽주의가 싹트게 되었는데, 그는 게토의 벽안에 갇혀 있던 유대인을 세속적인 유럽 세계로 이끌어 내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유대인에 대한 관용이 포고되자 세속적인 교육이 유대인에게 영향을 주었다. 계몽주의 작가는 활발한 문학 활동을 전개하고 월간지 HaMeassef 가 발행되었다.(1783-1829) 계몽주의는 전통적인 유대인의 삶으로 그들을 제한하는 대신 주변의 세계와 융합하며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도록 유도하였다. 계몽주의는 유대 사상과 삶의 방식에 현대화를 촉구하여 이후 자유주의, 시온주의를 낳게 하였다. 5장. 시온으로 유대인에 대한 관용과 안티 세미티즘 16세기의 종교 개혁은 중세 교회가 가지고 있던 가치관을 수정케 했다. 유대인에 대한 종교적인 관용이 대두되어 갔다.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유럽인들도 유대인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나갔다. 프랑스 혁명은 유대인에게 경제적 정치적 권위를 처음으로 부여했다. 네델란드와 함부르크에서는 이미 유대인에 대한 제한적이긴 하지만 자유가 주어졌고, 1791년 프랑스는 유대인에게 시민권을 주어 유럽에서는 처음으로 유대인의 권리를 법으로 인정했다. 약 백여 년 간 유대인은 비교적 많은 자유를 획득하였다. 그러나 안티 세미티즘의 기운은 사라지지 않았다. 19세기 러시아는 반 유대인 법령을 제정하여 유대 공동체의 지위를 약화시켰다. 1881년부터 1917년까지 대대적인 유대인 박해와 학살이 러시아에서 일어났다. 프랑스에서는 반 유대적인 우파의 정치적 영향력이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1894년 프랑스의 대위 드레푸스(Alfred Dreyfus)는 프랑스의 기밀을 독일에 넘겼다는 죄목으로 기소되었다. 드레푸스가 썼다는 편지는 처음부터 위조된 것이었다. 드레푸스는 반역죄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언론은 그가 유대인임을 강조했다. 에밀 졸라도 그의 무죄를 주장했다. 1899년 재판이 다시 열리고 그는 감형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무죄는 몇 년 뒤에야 인정되었다. 안티 세미티즘의 영향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유대교에 복귀케 했다. 메시야를 기다리든지 유대인의 국가를 건설하든지 행동을 해야 할 시기가 오고 있었다. 시온주의 유대 국가는 헤스, 핀스커, 헤르즐에 의해 구상되었고 그 꿈은 시온주의자들에 의해 발전되었다. 독일 사회주의자였던 헤스(Moses Hess 1812-1875)는 '로마와 예루살렘'(Rome and Jerusalem 1862) 이라는 책에서 유대 국가의 정치적인 회복을 표명하였다. 그가 바란 유대 국가는 모세의 법과 사회주의가 조화된 형태였다. 핀스커(Leo Pinsker 1821-1891)는 헤스의 책을 읽고 그의 견해와 동조했으나 훨씬 극단적이었다. 유대 국가를 건설하는데 이방인으로부터의 도움 받기를 기다리지 말라는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시온주의의 본격적인 활동은 헤르즐(Theodor Herzl 1860-1904)에 의해 서서히 막이 오르게 된다. 그는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종교적인 가정 교육을 받고 자라났으나 유대인이라는 정체성과 민족 의식은 없었다. 비엔나 신문사의 기자로 파리의 특파원이 된 헤르즐은 파리에 거주하면서 프랑스의 반 유대주의를 접하면서 유대인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박애, 평등을 부르짖는 혁명의 국가였던 프랑스에는 반 유대주의 물결이 넘쳐흘렀다. 헤스의 책을 알지 못했던 헤르즐은 '유대 국가'(Der Judenstaat 1896)를 저술한다. 유대인 문제는 오직 유대 국가 건설만으로 해결된다는 이 소책자 는 큰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제안으로 전 유럽의 유대인 대표가 참가한 제 1회 시온주의 총회가 1897년 바젤에서 개최되었다. 이 총회에는 모두 2백여 명의 대표가 참석하였는데 헤르즐의 지도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1회 시온주의 총회에서는 '국제법의 지지를 얻어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을 위한 국가 건설을 시온주의의 목표'로 결정하였다. 헤르즐은 정치적인 외교 활동을 통하여 유대 국가 건설이 가능하다고 보고 터키와 영국을 대상으로 한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였으나 이러한 방침에 모두 동조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러시아와 유럽의 유대인이 겪는 고난을 조금이라도 빨리 덜어 주기 위하여 영국이 제안한 '우간다에 유대 국가 건설'안을 받아들여, 제 5회 시온주의 총회에 제출했으나 거센 반발에 부딪힌다. 1904년 그는 총회에서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감동적인 연설을 한다. 그리고 며칠 후 4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897년 1회 시온주의 총회가 끝난 뒤 9월의 그의 일기에는 "나는 여기에 유대 국가를 세웠다. 만일 내가 이 사실을 크게 소리친다면 모든 세상이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5년 적어도 50년 안에 모든 이들이 확인하게 될 것이다" 라고 적혀 있었다. 히브리어의 부활 히브리어의 부활은 계몽주의 시대에 싹트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히브리어는 구어로 사용되지 않았다. 벤 예우다(Eliezer Ben Yehudah 1858-1922)는 현대어로서의 히브리어 부활에 공헌했다. 1883년 예루살렘에서 교사직을 맡은 그는 히브리어로 가르쳤고, 몇 년 뒤 리숀 레 찌온의 학생들은 히브리어로 수업했다. 그는 히브리어 사전과 필요한 새로운 히브리어 단어를 만들어 냈다. 그 외에 스몰렌스키(1842-1885),세파림(1835-1917),프리쉬만(1839-1922)은 히브리어 잡지를 발행하고 시와 문학 작품을 쓰면서 히브리어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었다. 독립 영국의 외무상인 발포어(Arthur James Balfour)는 유대 국가의 설립을 지지한다는 발포어 선언(1917)을 하였으나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1882년부터 시작된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민은 점차 증가하여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4만 명이 이민을 와서 팔레스타인의 유대인은 8만 5천명에 달했다. 유대인 정착민들은 주변 아랍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 보호하기 위하여 하가나라는 자위대를 조직한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뒤 나치 정권을 피해서 오는 이민자들도 늘어났다. 2차 세계 대전 중 6백만 유대인이 나치에 의해 희생을 당하고 전쟁은 끝났다. 영국은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민을 달가워하지 않았으나, 불법 이민자의 숫자는 증가했다. 영국의 식민지하에 있던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일기 시작한 민족주의와 독립을 위한 투쟁은, 식민지의 무역에 의존하던 영국 경제에 큰 타격이었다. 전후 미국은 중동의 이익에 관여하는 새로운 강대국으로 등장한다. 영국이 직면한 경제적 어려움과 독립을 위한 유대인의 계속되는 투쟁은 영국으로 하여금 팔레스타인 문제를 UN에 맡기게 한다. 1947년 5월 유엔의 팔레스타인 특별 위원회는 팔레스타인 내의 두개의 자치 국가안을 제시한다. 1947년 11월 29일 유엔은 이 안을 표결에 붙여 찬성 33, 반대 13으로 이스라엘 독립을 승인한다. 1948년 영국이 철수를 시작하고 최종적인 철수 전 날인 1948년 5월 14일 벤구리온이 이스라엘 독립을 선포했다.
52 히스기야(Hezkiah/Hezekiah)
인물
jesus
9092 38 2006-12-28
▶ 히스기야(Hezkiah) 뜻 : 하나님의 힘 [1] 유대왕(B.C 726-698). (1) 전심으로 여호와를 경외하고 백성을 잘 다스리는고로 열왕중에 이만한 왕이 없었다고 말한다(마01:9, (왕하18:1-8). (2) 그는 문란하던 부왕 아하스의 유업을 이어받은 관계로 정치에 많은 곤란을 느끼고 또한 외세의 압력이 매우 강하여 위험을 느낀 나머지 내정보다 외적을 막는 것이 급선무라 하여 인접한 애굽 블레셋 시돈 에돔 모압 암몬등과 동맹을 맺고 자신이 맹주가되어 강적 앗수르를 대적하려는 눈부신 활약을 전개하고 있었다. (3) 이때에 선자 이사야는 그 계획이 여호와를 거역하는 무모한 짓이라고 수차 견책하였다(사22:28, (사29:1-16, (사30:8-17, (사32:9). (4) 또 이사야와 미가 선지가가 같이 민중의 불의와 죄악을 주저함 없이 책망하였다(사01:1-23 (미03:1-12). (5) 그러나 히스기야는 그 책망을 받아 드리지 않았다. 마침내 앗수르왕은 이스라엘을 공취하고 이어서 모반자들의 연합군을 대파하고 40성을 점령 약탈하여 가는 동시에 20만명을 포로로 잡고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하니 히스기야는 성전과 왕궁의 장식품과 국가의 보고를 털어 그 요구에 응하였다(왕하18:13-16). (6) 그러나 산헤립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두번째 사자를 예루살렘에 보내여 내어 놓으라고 공갈하였다. 히스기야가 하나님한테 간절히 기도하였더니 이사야 선지를 통하여 구원할 것을 허락하시고 그 밤에 사자를 보내사 앗수르 군사18만5천과 그 왕을 전멸시켰다. (왕하19:19, 19:35-37). (7)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어 하나님한테 기도하였더니 3일만에 성전에 올라가겠고 15년을 더 산다 하시고 일영표로서 징조를 보여주니 보고 믿었다(왕하20:1-10) (8) 이 때에 바벨론왕이 사자를 보내어 문병하니 히스기야왕이 자기 보물고와 군기고와 내탕고와 왕궁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이사야 선지에게 책망을 당하였다(왕하20:12,18). (9) 그의 치적중에 특기할 만 한것은 못을 파고 수도를 만들어 예루살렘 성 중으로 물을 끌어들인 것이다(왕하 20:20). [2] 다윗의 자손으로 바베론에 잡혀간 자중에 느아랴의 아들 히스기야가 있다(대상03:23) [3] 바사왕 고레스 원년에 바벨론에서 유대로 돌아온 자 중에 아델자손의 히스기야가 있다(스02:26). ▶ 히스기야 왕 Hezekiah, King of Judah. Son and successor of Ahaz. Hezekiah "did that which was right in the sight of the Lord, according to all that David his father did." He trusted in the Lord God of Israel, so that there was none like him before or after. He reigned from B.C. 727 to 698. Hezekiah began his reign by opening the doors of the house of the Lord, which was cleansed and repaired by the priests and Levites. Then he called the rulers, and sacrifices were offered as sin offerings for the kingdom and the sanctuary, and for Judah; songs were sung, and the king and all present bowed themselves and worshipped. He proposed to all Israel and Judah to come to the house of the Lord at Jerusalem to keep the Passover, and invitations were sent to all the tribes to turn to the Lord and to come and keep it. Though his messengers were in general mocked, there was a remnant that responded to the king's invitation. Such was the joy that after the seven days of unleavened bread they kept other seven days with gladness. What naturally followed this worship was the removal of all signs of idolatry. Because the people had burnt incense to the brazen serpent, he brake it in pieces calling it 'a piece of brass.' He clave to the Lord, and the Lord was with him, and prospered him whithersoever he went. The unfaithfulness of Ahaz had given the Assyrians a footing in Immanuel's land, against which Hezekiah rebelled, but afterwards submitted to pay tribute. Sennacherib required complete submission, and the Assyrians came with a great host against Jerusalem. Their general not only reviled Hezekiah, but spoke against God, comparing Him with the gods of the nations which the Assyrians had conquered. Hezekiah rent his clothes, covered himself with sackcloth, and went into the house of the Lord. God wrought deliverance. There was a rumour of opposition elsewhere, and the general departed. Of the Assyrians 185,000 were slain in one night: Sennacherib returned to Nineveh and was subsequently killed by two of his own sons. We next read of Hezekiah's sickness, when Isaiah was sent to tell him to set his house in order, for he should die. Hezekiah wept sore and prayed for his life, and it was prolonged fifteen years. Though he had witnessed a great deliverance of the Lord, his faith was weak and he asked for a sign. God made the shadow go back ten degrees on the dial of Ahaz. But Hezekiah rendered not to the Lord according to the benefit done to him, for his heart was lifted up, therefore there was wrath upon him and upon Judah and Jerusalem. Yet, on Hezekiah humbling himself with the inhabitants of Jerusalem, the wrath came not in his days. Hezekiah had great riches; and when Berodach-baladan, king of Babylon, sent ambassadors to him with a present, for they heard that he had been sick, and to inquire of the wonder that had been done in the land (doubtless the shadow going back ten degrees), Hezekiah showed them all his riches; and then he had to hear the sorrowful tidings that all he had shown them should be carried into Babylon, and his sons should be made eunuchs in the palace of the king of Babylon. Hezekiah piously resigned himself to the will of Jehovah. We read that God had "left him, to try him, that he might know all that was in his heart." It was pride; but God was gracious, and Hezekiah seemed to have the consciousness that God would give him peace and truth in his days. 2 Kings 18 - 2 Kings 20; 2 Chr. 29 - 2 Chr. 32; Isa. 36 — Isa. 39; Jer. 26:18,19; Hosea 1:1; Micah 1:1. (왕하18: 히스기야의 유다 통치 (왕하19: 예루살렘 구원의 예언 (왕하20: 히스기야의 겸손과 교만, 죽음 (대하29: 히스기야의 개혁 (대하30: 히스기야의 유월절 봉헌 (대하31: 종교 의식의 개혁 (대하32: 앗수르에 대한 승리 (사36: 앗수르 왕 산헤립의 침략 (사37: 히스기야 예루살렘 구원을 예언 (사38: 히스기야의 병과 기도 (사39: 바벨론에서 온 특사 (렘26:18,19; 18 유다 왕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가 유다 모든 백성에게 예언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시온은 밭 같이 경작함을 당하며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며 이 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들 같이 되리라 하였으나 19 유다 왕 히스기야와 모든 유다가 그를 죽였느냐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고한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가 이같이 하면 우리 생명을 스스로 크게 해하는 일이니라 (호01:1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미01:1 유다 열왕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 곧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묵시라 --- Morrish Bible Dictionary ▶ 히스기야 Hezekiah. [Hezeki'ah] 1. Son of Neariah, of the royal house of Judah. 1 Chr. 3:23. (대상03:23 느아랴의 아들은 엘료에내와 히스기야와 아스리감 세 사람이요 2. Ancestor of Ater whose descendants returned from exile. Ezra 2:16; Neh. 7:21. (스02:16 아델 자손 곧 히스기야 자손이 구십 팔명이요 (느07:21 아델 자손 곧 히스기야 자손이 구십 팔명이요 --- Morrish Bible Dictionary
51 다윗(David) - Kor
인물
jesus
8157 34 2006-12-26
▶ 다윗(David) English [아히노암] 에게서 [암논]을 낳음 [아비가일] 에게서 [길르압]을 낳음 [마아가] 에게서 [압살롬], [다말](여)을 낳음 [학깃] 에게서 [아도니야]을 낳음 [아비달] 에게서 [스바댜]을 낳음 [에글라] 에게서 [이드르암]을 낳음 [밧세바](우리야의 아내) 에게서 [삼무아] [소밥] [나단] [솔로몬]을 낳음 (* 주 [나단] 누가복음의 족보를 따름 [솔로몬] 마태복음의 족보를 따름) 첩의 아들들(유다왕국) > [입할] [엘리수아] [엘리벨렛] [노가] [네벡] [야비아] [엘리사마] [브엘야다] -------------------------------------------------------------------------------- 뜻 : 사랑하는 자 아브라함의 14대손 유다지파 이새의 여덟째 아들로서 유대 베들레헴에서출생하였다. 1) 양을 치는 데 힘이 좋아서 사자나 곰이 침입하면 쳐 죽였다(삼상17:34-35). 2) 사사 시대가 사무엘로 끝이 나고 사울을 왕으로 세웠으나 여호와의 뜻을 거역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버리시고 사무엘에게 베들레헴 이새의아들 중에서 왕의 후보자로 택하라 명했고 후에 기름부음을 받았다(삼상15:23). 3) 여호와의 지시에 의하여 뿔에 기름을 담아 가지고 저에게 기름을 부으니 다윗이 성신이 충만 하였다(삼상10:10-13). 4) 물맷돌을 들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전장에 나아가 블레셋 대장 골리앗을 쳐 죽이고 승전하였다(삼상17:). 5) 사울이 다윗을 천부장을 삼고 자기 사위를 삼으니 그 명성이 국내에높아졌다(삼상18:12-27). 6) 사울이 다윗의 지략을 더 높이 평가하여 군대장관을 삼음(삼상18:5). 7) 각 성에서 여인들이 나와 노래 하기를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 이라고 찬양함(삼상18:6-7). 8) 다윗의 명성이 높아감에 따라 사울의 명성이 떨어지자 사울이 다윗을죽이려 하였으나 하나님의 보호와 왕자 요나단과 그 처의 애호로 화를면하였다 (삼상19:4-12, (삼상20:17, (삼상23:15-17). 9)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가 두번이나 있었으나 하나님의 기름부음을받은 자를 사람이 죽일 수 없다 하여 죽이지 않고 굴속에서 옷자락만베었다(삼상24:). 10) 진중에서 사울의 자는 것을 보고 그 머리 곁의 창과 물병만 가지고가서 건너편 산에서 호위장 아브넬을 호위가 허술하다고 나무랬다(삼상26:6-16). 11) 얼마 후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다(삼상31:2-6). 12) 헤브론에서 백성들이 다윗을 왕으로 삼았다(삼하07:1-4). 13) 그 자손 중에서 예수가 나셨다(마01:1). 14) 유감되게 큰 죄가 있었으니 우리아를 죽이고 그 아내를 취한 일이다(삼하11:2-5). 15) 여호와 서 노하여 그 결과로 나은 아들을 죽이시고(삼하12:18) 자녀간에 간음이 있고(삼하13:15) 형제간에 살륙이 있고(삼하13:28)압살롬이 반역하고 후궁을 간통하고(삼하15:1, (삼하16:22) 아도니아의반역이 있었으며(왕상01:5) 그후 인구를 조사한 것으로 인하여 여호와 서 다시 진로하사 온역을 나리시니 전국에서 사망자가 7만명 이었다(삼하24:2-15). 16) 아들 솔로몬에게 왕위를 계승하였다(왕상01:32-35). 17) 성전 건축을 부탁함(대상22:6-16). 18) 70세에 별세 하였다. 재위 40년중 7년 반은 헤브론에서 유대의 왕이되었고 33년간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삼하05:4-5). *경건한 종교가로 하나님을 섬기고 나라를 잘 다스리고 아름다운 시를 많이 지어 시편에 많이 나타나 있다. (시 ) -------------------------------------------------------------------------------- [다윗] ("사랑받는 자")라는 뜻은 일개 목동에서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 되어 모범적인 신정정치를 시행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 이다.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이새의 여덟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난 다윗은 어린시절부터 아버지의 양을 지키며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 양들의 안전을 위해 사나운 짐승들을 물리쳐야만하는 위기의 순간들은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는 깊은 신앙을 갖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을 생각지 않고 양들을 보살피던 다윗 의 담대한 용기는 블레셋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구하는 전쟁 영웅으로부상케 하였다. 다윗은 이 전공으로 군대장으로 임명되었고 준수한 용모에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는 다윗의 명성은 삽시간에 퍼져 전국에서 백성들의 칭송이 울려 퍼지게 되었다. 그러나 하늘로 치솟는 다윗의 인기는 사울왕의 마음에 질투의 불을 당겨놓는 원인이 되었다. 이후로 약 10년간 다윗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사울왕을 피하여 유랑 생활을 하며 갖는 고난을 다 겪게 되었다. 자신의 운명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 채 정처없이 방랑하는 다윗의 처지는 참으로 암담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이 연단기간을 통하여 각별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체험할 수 있었다. 끊임없이 다가오는 죽음의 고비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피난처가 되어 주셨고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과의 뜨거운 우정은 다윗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또한 부하를 아끼는 자비로운 마음과 용기를 아울러 겸비하여 지도자로서의 품격을 갖춘 다윗의 주위에는 날이 갈수록 추종자들의 수가 늘어났다. 오래 세월 다윗의 뒤르 쫓던 사울왕은 결국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비참한 최후를 마치고 하나님의 뜻하심대로 다윗은 유다의 왕이 되었다. 그후 다윗은 7년 6개월만에 이스라엘 통일왕국을 이룩하여 하나님 중심의 신정국가의 체계를 이루어 갔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다윗이 통치하는 이스라엘은 날로 융성해 갔고 수많은 전투를 통해 영토도 확장되었다. 그런데 이처럼 착실하게 하나님을 섬기고 백성을 다스리던 다윗도 완전한 인간일 수는 없었다.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는 부하 장군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보는 순간다윗의 마음을 사로잡는 안목의 정욕은 간음으로 이어졌고 우리아를 죽음으로 몰아 넣는 살인죄를 낳고야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끝끝내 버리지 않으셨다. 나단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신랄하게 죄를 지적하시는 하나님앞에 다윗은 자신의 죄를 눈물 로 회개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진정한 회개를 받아 주셨지만 이일련의 범죄는 다윗의 가정에 비극적인 사건들을 야기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또한 다윗의 마음 속 깊이 숨어 있던 교만은 많은 인명을 잃게 하기도하였다. 세금을 거두어 들이고 군사를 확보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인구조사를 실시한 왕의 범죄로 인하여 7만 명의 백성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처럼 두 차례에 걸쳐 큰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즉시 자복하고 회개하며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일생을 산 다윗은 하나님께 대표적인 의인으로 인정받고 메시아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받았다. 자신의 모든 것이 되시는 하나님께 수많은 시를 지어 노래하고 악을 선으로 갚을 줄 알았던 다윗의 아름다운 영혼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감동으로 남아 있다. ---------------------------------------------------- 다윗(1)/믿음 돈독한 어머니 밑에서 성장 ◎기지넘치고 성격담대 “다재다능” 사무엘상 16장 다윗은 "사랑한다"는 뜻이다. 유대 지파의 이새의 막내아들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의 혈통으로 이스라엘의 두번째 왕이었다. 그의 소년시절은 고향 베들레헴에서 양을 치는 목동으로 성장하였다. 다윗의 어머니를 하나님의 여종으로 호칭한 것을 보면 다윗의 어머니는 하나님을 충성되이 섬긴 경건한 신앙의 사람이었다(시086:16,(시116:16). 이와같이 어려서부터 훌륭한 신앙의 감화가 다윗의 성장과정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형들보다도 신앙이 빼어났고 영적인 사람으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기에 충분한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다윗은 혈색도 좋았으며 눈이 빼어나고 아름다운 남성미를 갖춘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다. 또 힘과 기지가 있어 양을 지킬 때에도 사자와 곰을 쳐 죽일 만큼 담대한 사람이었다. 정서적으로도 다양한 재능이 있어 음악과 수금을 다루는데에 유력한 사람 이었다. 다윗은 또다른 재능이 있어 구변이 좋았으며 무용과 호기가 당당했고 그의 연령에 비해 준수한 사람이었다. 그위에 종교성이 강함으로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었다고 성경이 대변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울왕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자 사무엘 선지자를 보 내어 하나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셨다. 이 일을 공인하기 위해 장로들앞에서 실시했고 이날후로 다윗에게 여호와의 신이 충만하였다(삼상 16:18). ▷교훈과 적용◁ 첫째,경건한 어머니의 영적 감화는 그 아들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였다.자녀에게 본이 되자 둘째,하나님의 선택은 외모에 있지 않고 중심에 있었다.선택받은 뒤에 쓰임받는 자가 되자.<이병돈목사·은평교회> 다윗:2(성경의 인물) ◎사울왕 배신으로 죽을 고비 아홉차례/피난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 배워/골리앗과의 싸움서 영적승리… 큰믿음 결과 사무엘상 17-20장 사울왕이 하나님께 버림받게 되자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하므로 불안감이 그를 사로잡아 병적인 증상을 갖게 되었다. 이때에 그를 안정시키기 위해 수 금을 잘 타는 사람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다윗이 뽑히게 되었다. 사울왕이 괴로울 때마다 다윗을 불러들여 수금타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의 안정을 찾고 정신적인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사울의 왕궁을 드나들며 궁중생활을 익히면서 사울왕을 가까이 섬기게 되었다. 이때에 블레셋의 골리앗 장군이 하나님을 훼방하고 이스라엘을 모욕하자 사울왕에게 나아가 자신이 골리앗의 적수가 되어 그를 치겠노라고 자진해 나서게 되었다. 사울왕은 나이는 연소했지만 그의 담력과 지략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아가 싸우도록 허락하였다. 이때에 사울은 골리앗을 이기는 자에게는 자기 딸을 주고 그 아비의 집은 면세해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골리앗을 죽이고 큰 승리로 이끌었으나 사울왕은 딸을 주겠다는 약속을 다윗에게 지키지 않았다. 이때에 백성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는 노래를 부르게 되자 다윗을 정적으로 알고 두려워하게 되었다. 결국 사울은 신하들과 공모하여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하게 되고 그 후 아홉번이나 죽음의 위기를 겪는 다윗의 피난생활이 시작된다. ▷교훈과 적용◁ 첫째,다윗이 수금타는 자로 사울왕과 맺어진 것은 왕위를 익히는 기회가 되었다.매사에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자. 둘째,큰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케 한다.골리앗과의 싸움은 영적 승리였다. <이병돈목사·은평교회> 다윗(3)/영적질서 존중한 “큰 그릇” ◎쫓기는 시절에도 부모에 대한 효성 지극/감정에 앞서 말씀실천 사울 끝까지 용서 사무엘상 21-26장 다윗은 사울이 자신을 정적으로 생각하여 기회를 타서 살해하려고 하므로 이때부터 사울의 공격을 피하여 피신하는 수난이 시작되었다. 이때에 놉의 아히멜렉 제사장에게 가서 왕명이라고 속여 먹을 것과 골리앗의 칼을 얻은 것이나 블레셋사람 가드왕 아기스에게 나아가 그의 보호를 요청한 것을 보면 신변 위협을 느낄 때 다윗도 허약한 점을 보이고 있다. 자기의 신분이 그들 앞에 노출될 때 몸을 대문에 그적거리고 침을 흘리며 미치광이짓을 하여 자기를 숨기려 하였다. 신앙인이라도 믿음이 내려가면 아주 허약하게 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다윗이 다시 신앙을 회복 할 때 유대로 돌아와 아둘람굴에서 숨어 살았다(삼상 21:10-15). 이렇게 다윗이 큰 시련속에 있었으나 선지자 갓과 제사장 아비아달이 다윗을 따랐으며 많은 사람들이 다윗을 추종하여 다윗에게 큰 힘이 되었다. 다윗이 이렇게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자기때문에 곤경에 처한 부모를 모압왕에게 가서 도움을 구해 그 어려운 시절을 피신하게 한 것을 보면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함을 알 수 있다. 그 외에도 엔게디 황무지에 있는 굴에서 사울의 옷자락만 베고 그를 살려둔 일이나 사울이 진에서 잠들어 있을 때 그 막사에 들어가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와 그의 생명을 해치지 아니한 것은 그가 큰 인물임을 보여준다. ▷교훈과 적용◁ 첫째,원수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다.원수를 용서하고 원수를 위해 기도하자. 둘째,다윗은 영적 질서를 존중하는 사람이었다.하나님이 기름부은 사울을 끝까지 용서했다.감정보다 말씀을 따르자.<이병돈목사·은평교회> 다윗:4/「선택」받은 메시아 혈통 “증인”(성경의 인물) ◎한때 남의 아내 범하고 자만 징계받기도/법궤 운반때 「번제」… 하나님께 영광돌려 사무엘하 2장12절-4장12절 다윗은 "아름답다"는 뜻이다. 사울왕이 죽은 뒤에 유다지파 사람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추대하였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헤브론에서 그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의 다른 11지파는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마하나임에서 왕으로 추대하여 2년동안 분쟁이 있었으나 레갑과 바아나가 이스보셋을 살해해 다윗의 통일왕국이 이루어졌다. 그후 여부스 사람이 점령하고 있던 예루살렘을 쟁취하여 통일왕국의 수도로 삼았다. 다윗왕은 헤브론에서 7년,예루살렘에서 33년,모두 40년을 통치하였다. 그의 왕권이 정착되자 기럇여하림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하여 다윗을 위해 예비한 장막의 정한 자리에 안치하였다. 이때에 다윗은 화목제와 번제를 드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큰 잔치를 배설하되 온 백성에게 떡 한개와 고기 한조각,건포도떡 한덩이씩 나누어 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때부터 시온산이 다윗성이 되었고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상의 내용을 보면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충성심을 헤아릴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성군에게도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실수와 자만 한 마음으로 인구조사를 하여 징계를 받기도 하였다.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로 특수한 선택을 받았고 아브라함과 다윗,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로 소개될만큼 메시아 혈통의 증인이 되었다. ▷교훈과 적용◁ 첫째,큰 은혜를 받은 하나님의 종이라도 실수가 있었다.끝까지 근신하고 유혹에 대적하자. 둘째,다윗의 장점은 특수한 종교심과 깊은 영감,충성심에 있었다.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자.<이병돈목사·은평교회> -------------------------------------------------- 다윗은 아브라함의 14대손이며 유다 지파 이새의 여덟째 아들로서 예언의 고장 베를레헴에서 출생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사 11:1). [베들레 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대 족속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의 태초에니라](미 5: 2). 이것은 메시야의 탄생 예고인 동시에 그의 예표인 다윗의 출생 증거이기도 하다. 여하튼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별처럼 왕국의 황금시대를 이룩한 자이며 선민의 위력을 세계에 과시한 위인이다. 그의 인격과 생애, 위업과 과오를 몇가지로 열거한다면 다음과 같다 . ⑴ 다윗은 어릴 때부터 용감한 성품의 소유자로서 목장에서 자기 양을 보호하기 위하여 사나운 짐승이 침입하면 막대기와 돌로 쳐 죽였다(삼상 17:34-35). ⑵ 그는 예능에 탁월했으며 시적 감성 표현이 능숙한 자였다. 사울왕이 악신으로 인하여 우울증에 빠져 있을 때 다윗은 수금으로 그를 위로해 주었는가 하면, 그리고 시편의 글들 은 고통과 고뇌에 처한이들에게 무한한 감동과 감명을 준다. ⑶ 블레셋 장군 골리앗에게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 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하면서 물매로 돌을 던져 넘어지게 한 일(삼상 17:41-49). ⑷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울에게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자를 죽일 수 없다하여 살려 준 일(삼상 24:1-7). ⑸ 반역자 암살롬의 시체를 안고 그를 사랑하여 통곡한 일(삼하 19:1-8). ⑹ 친구 요나단의 우정에 못이겨 그의 아들 므비보셋을 보살펴 준 일(삼하 4:1-12 ). 그 외에도 나라의 번영과 국토 확장을 위한 다윗의 업적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위대한 공훈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욕구충족을 위하여 우리아를 전장에 보내어 죽게하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것은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오점 이었다(삼하11). 이 범죄때문에 다윗의 집에 칼이 끊이지 아니했으며 나라의 분열도 그때부터 시작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 ▶ David David is the most popular hero of the Bible, his story is told in The First and in the Second Books of Samuel. He descended from the tribe of Judah, started his career as a shepherd, and was anointed by the prophet Samuel, 'And the Spirit of the Lord came mightily upon David from that day forward' (1 Samuel 16:13). At the age of 18 David was admitted to king Saul's entourage as a musician. The main concern of the king was the war with the Philistines, among whom fought the giant Goliath. David asked Saul's permission to fight Goliath. David killed Goliath with a stone thrown from his sling and then beheaded him with Goliath's own sword. On seeing this the Philistine army fled. After this victory, Saul made David a military commander and began to give him many serious and dangerous tasks. Saul was jealous and afraid of David's popularity, youth, strength, cleverness and hoped that during some of the battles he would be killed. Meanwhile David found sympathy and support in Saul's own family: the friendship with Saul's son Jonathan lasted till the death of the latter, and Saul's daughter Michal fell in love with David. She became David's wife and helped him to escape her father's attempt to kill him. After several attempts on his life, David fled to Samuel, where Saul did not dare arrest him. People found out about David's situation 'and everyone who was discontented, gathered to him; and he became captain to them' (1 Samuel 22:2). Thus David became an outlaw and a leader of his personal army. There was an episode when David could have killed Saul, when the latter was alone and unarmed, but he refused to take advantage of the situation. See: Count Feodor Tolstoy. David Refuses to Kill Sleeping Saul. The Philistines managed to surround Saul with all his sons on the Mount Gilboa; the sons were killed, to avoid capture Saul fell on his own sword. When David found out about their death he mourned for them. After Saul's death David became the king and unified his kingdom by capturing Jerusalem. He made it his capital, constructed the royal palace there. He is considered to be a great musician of the time and the author of the Book of Psalms. David had many wives, the most important of them were: Michal, daughter of Saul; Abigal, who was able to calm David's anger; Bathsheba, who gave birth to the next King of Jews, Solomon. ========Paintings Nicolas Poussin. The Triumph of David. c. 1630. Oil on canvas. Museo del Prado, Madrid, Spain More...More... Gallery -------------------------------------------------- 다윗… 사랑과 인내로 무장한 ‘신앙의 전사’ 다윗은 이새의 막내 아들로 베들레헴이라는 시골에서 태어났다. 소년의 몸으로 그 가정의 전 재산이 될 만한 큰 양떼를 관리하는 목동이었다. 다윗은 건장한 사람이었고 기운도 세며 침착하고 기지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것은 양을 치다가 사자와 곰을 만났지만 그들을 쳐죽이고 양과 자신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사자같이 잔인하고 민첩한 동물과 싸워 이긴 것을 보면 다윗은 보통사람이 아니었다. 그것도 소년시절에 경험한 사건이니 말이다. 다윗은 소년이었지만 생각이나 마음가짐은 어른스러웠다. 이것은 그 가정과 가족들의 신앙심에서 물려받은 감화였을 것이다. 다윗의 어머니를 하나님의 여종으로 표현한 것을 보아서도 그 어머니의 신앙을 짐작할 수 있다(시 86:16,116:16). 이와 같이 이새의 가정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두번째 왕으로 선택받을 만한 영적인 분위기가 갖추어져 있는 가정이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자기가 갖고 태어난 자질 위에 가정에서 받은 종교적인 감화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가는 데 촉진제가 되었다. 한 평화로운 농촌의 가정이었지만 신앙으로 잘 다듬어지고 영적으로 잘 자리잡힌 가정이 지니고 있는 가능성을 우리에게 확인시켜준 실례이다. 한 가정이 소유하고 있는 경건성은 한 가정이나 가족에 한하지 않는다. 여기서 다윗이라는 큰 인물이 세워졌기 때문이다. 다윗의 복은 그 개인이나 가정으로 끝나지 않고 그 시대와 한 나라의 국운을 좌우할 수 있었다. 한 믿음 좋은 집사가 사회생활 가운데 나름대로 실수하지 않고 살았던 이유 두 가지를 간증하는 것을 들었다. 그 첫째는 자기를 믿음 좋은 집사로 직장에서 모든 사람이 인정했기 때문에 실수할 수 없었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 주신 두 남매가 대학 재학 중이었는데 자기가 만일 죄를 지으면 두 남매도 어디선가 자기와 똑같은 죄를 지을 것 같아 실수하지 않았다고 간증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작은 경계심만 가져도 자기의 사생활을 훨씬 더 훌륭하게 가꿔나갈 수 있다. 다윗의 마음에 어려서부터 자리잡은 영적인 감화는 그를 소중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였다. 다윗이 어린 소년으로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달려가서 골리앗의 칼을 빼앗아 그 머리를 쳐서 가져온 사건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다윗의 승리를 모든 주석가나 목회자들은 한결같이 신앙의 승리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힘이나 전술이나 전투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골리앗은 칼과 창과 단창을 의지해 나왔지만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고 한 다윗의 신앙적 고백이 두 사람의 싸움을 결판지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전체 군대가 패전을 예상하여 낙담했었고 특수한 체격과 뛰어난 전술과 능력을 지닌 골리앗을 아무도 당할 수 없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그와 맞서 싸울 것을 지원했던 다윗의 그 용기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것은 사람의 담력이 아닌 순전한 신앙의 용기였다. 다윗의 이러한 영적인 담력과 전술이 물맷돌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응답으로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불가능도 가능케 하고 없는 가운데 있는 것같이 부르기도 하고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는 믿음의 효력이다. 참으로 다루기 힘들고 너무 큰 시련으로 느껴지는 어려움에 처해 있는가. 기도로 풀어가고 믿음으로 해결하기 바란다. 수학 문제를 풀 때 더해서 안되면 빼고 빼서 안되면 곱하고 곱해서 안되면 나누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모든 수학을 풀 수 있는 공식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도 더 믿고 더 의지하고 더 하나님께 맡김으로써 모든 문제를 신앙으로 해결해나가자.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고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는 군중의 환호에 자극을 받고 다윗을 미워하기 시작한 사울은 결국 다윗을 죽이려고 결심하게 된다. 그 뒤로 다윗은 아홉번이나 죽음의 고비를 거치는 등 큰 시련을 겪게 된다. 다윗은 블레셋 사람 가드왕에게 보호를 요청할 때는 몸을 대문에 그적거리고 침을 흘리며 미치광이 짓을 하기까지 하였다(삼상 21:13). 또 들과 산과 황무지의 굴을 전전하면서 겪은 피난 생활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시절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엔게디의 굴에서 사울의 옷자락만 베고 살려준 일이나 사울의 전에서 그의 막사에 들어갔다가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오고 사울의 목숨을 살려준 일들은 성경을 읽을 때마다 모든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다윗은 이렇게 13년 이상의 시련기를 거쳐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이 어려움을 잘 참은 것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방법이었다. 조급한 마음으로 자신이 왕위를 앞당기지 않은 것은 우리에게 전해주는 신앙의 태도이다. 사람이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원수를 용서하는 것만큼 어렵다. 하나님이 기름 부은 사람에 대해 결코 자기가 해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그를 용서했던 것을 보면 다윗은 참으로 위대한 사랑의 소유자였다.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브라함이 믿음에 대한 대표적인 인물이라면 다윗은 사랑에 대한 대표적인 인물이 될 만큼 높이 평가받을 만한다. 우리들도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게 맡기라”(롬 12:19)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다윗과 같이 지키는 사람이 되자. 또한 절대 서두르지 말고 조급해하지 말자. 하나님이 세우시는 때를 기다려야 하겠다. 다윗이 10년 이상 겪은 이 고난은 외적인 고생보다 자기와의 싸움이 더 힘든 부분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끝까지 성공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자기가 예상할 수 없었던 영적인 소득을 얻게 되었다. 큰 고난을 겪을 때 남을 이해하는 마음이 넓어지고 더 겸손해지며 결코 남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게 된다. 이 고난의 기간에 다윗은 성군이 될 수 있는 영적인 자질을 구비했는지도 모른다. 시련을 잘 거치는 사람이 되자. 사람은 항상 약하고 부족한 자신에 대해서 경계심을 늦추면 안 된다. 자기가 자기를 잘 지켜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윗이 왕위에 올라 나라가 번영하고 국토를 확장하며 그 영광이 더해갈 때 다윗은 실수하게 된다. 이는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전선에서 죽게 하는 이중적인 큰 죄를 범한 것이다. 사람은 이렇게 누구도 안심할 수 없다. 더 무서운 것은 마귀가 틈을 타서 하나님의 백성을 쓰러뜨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항상 대적하고 깨어 있어야 하겠다. 그러나 다윗에게 있어 너무 소중한 또 다른 장점이 있다면 신속히 회개하고 하나님의 권고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태도였다. 나단 선지자가 와서 비유를 통해 권고할 때 다윗은 즉시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내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한다. 철저한 신앙의 사람도 범죄할 수 있다. 기도를 많이 해도 죄의 유혹에서 제외된 것은 아니다. 큰 시련을 겪었어도 온전해진 것이 아니다. 날마다 경건한 생활을 지속하는 것이 죄를 물리치는 승리의 비결이다. 또 다윗과 같이 실수하거든 지체하지 말고 회개해야 한다. 회개를 지연하는 것은 마귀의 지배를 연장하는 것과 같다. 회개하면 하나님은 한번도 죄를 짓지 아니한 사람과 같이 깨끗이 용서하신다. 철저히 회개하고 회개한 후에는 사죄의 확신을 갖자. 과거의 죄에 얽매이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하겠다. <다윗을 통해 얻는 교훈> 다윗은 10년이 넘도록 기다려야 했던 시련의 기간이 있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이렇게 오랜 기간 기다리게 하셨다. 그것도 지속되는 고난으로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연단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자연스럽게 거쳐야 할 과정과 같이 잘 참는 데 성공한 사람이다. 다윗은 이 큰 시련을 통해 성군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것 같다. 인생의 과정을 잘 수용하는 사람이 되자. 사람은 실수하거나 넘어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의 영적 성향이 더 중요하다. 다윗도 칠계를 범하고 살인을 계획할 만큼 큰 죄를 범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 회개하는 사람이었다.시편에는 측은할 만큼 뜨겁고 간절한 다윗의 회개기도가 나타나 있다. 다윗은 바로 자신을 회복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실수할 때마다 자신을 바로 일으키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이병돈 목사(서울 은평성결교회)
50 시온, 시온산(Zion, Sion, Mount Zion) 파일
지명
jesus
3821 28 2006-12-30
▶ 시온, 시온산(Zion, Mount Zion) 뜻:봉오리 나사렛 동쪽 다볼산 남동쪽 약 25km 지점, 또는 아윤 에쉬 샤인(Ayun esh-Shain), 혹은 시린(Sirin)으로 추정한다. 예루살렘 남서쪽 해발 765m 의 언덕을 가리킨다. 시온은 처음에 기드론-두로베온 골짜기 사이에 솟은 절벽으로 된 남쪽 봉우리 였다. 후에는 예루살렘 동쪽 능선 전부를 시온이라 부르다 그 후에는 예루살렘 전부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1) 본래 예루살렘의 기드론과 두로뵈온 두 골짜기 사이에 솟은 절벽으로 된 남쪽 봉우리이다. 그 후에는 동쪽 등성이를 시온이라 불렀고 예루살렘을 찬칭하여 시온 성이라 불렀다(시126:1, (사01:26, (사10:24). (2) 옛날 다윗이 이곳을 쳐서 수도로 삼고 정치적 중심지를 만들었다(삼하05: 6-9, (왕상08:1, (대상11:5, (대하05:2). (3) 그리고 법궤를 이곳으로 옮겨 종교적 중심지를 삼았다(삼하06:12-18). (4) 다윗은 산등성이에 있는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을 사서 제단을 쌓았고, 후일에 솔로몬이 그곳에 성전을 세웠다(삼하24:18, (왕상08:1). (5) 시온은 "거룩한 산" "여호와의 산으로 불렀고" 시적인 표현으로 흔히 사용하였다. (시002:6, (시009:11, (시024:3, (시132:13, (시048:2, (시069:35, (시076:2, (시087:2, (시133:3, (사02:3, (사03:16, (사04:3, (사52:1, (사60:14). (6) "시온의 딸이란 말은 예루살렘 주민의 시적인 표현이다(시009:14, (사01:8, (사37:32, (아03:11, (슥02:10). (7) 신약 성서에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도성의 상징작인 용어로도 사용되었다(히12:22, (계14:1). (8) Zion's 로 표현되어 있음. (사33:6, (사62:1 ▶ 시온산 (Mt. Zion) 예루살렘 남서쪽 해발 765 m 의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시온산은 사방 어디에서 보아도 잘 보이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히브리어 'Zion'의 어원에 관하여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유사 파생어로 '바위'(rock), '산성' (stronghold, Zaion), 혹은 '건조한 곳'(dry place) 등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처음 사용되는 곳은 예루살렘의 가나안 원주민이었던 여브스족이 머물던 "시온산성을 다윗이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성'이라 " (City of David, 삼하 5:7, 왕상 8:1) 일컬어졌다. 지형적인 의미에서 '시온'과 예루살렘, 그리고 성전의 산이 각각 구별되기도 하였다 (미03:12) 그러나 시온은 넓은 의미에서 예루살렘 전체를 지칭하기도 하였으며 (사02:3, (사33:14, (요엘03:5), '시온의 딸' (사01:8, (사30:16, (아01:5), '시온에 거한 나의 백성' (사10:24, (사51:11), '유대백성' (사51:16, (사59:20), '성전산','시온에 거하는 하나님' (요04:17, 시20:3) 등 많은 파생어를 낳고 있다. 그런 점에서 '시온산'은 이스라엘의 신앙의 상징이라 말할 수 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의 이룩된 대전환점은 다윗왕 때로써 왕권의 형성과 성전의 건축으로 인한 종교제도의 확립을 통해서 이룩한 변화를 지적할 수 있다. 이때 계약의 내용으로 허락한 것이 땅과 집이다. 이 계약이 행해진 곳이 곧 예루살렘, 시온성이었다. 다윗의 무덤과 역대 왕들의 무덤이 바로 이곳에 묻혀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왕상02:10, (느03:16, (행02:29) 제1차 성전이 멸망한 이후 바벨론 포로기 때에 'Zion' 은 넓은 의미로 그들이 잃어 버린 조국의 땅 전체를 의미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 그 거룩한 땅 (The Holy Land) 에로의 귀향을 의미하는 가장 강력한 표현은 바로 '시온'이라는 말이 된 것이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시137:1) ======== Zion, Sion, Mount Zion. This was in reality a part of Jerusalem, being one of the mountains on which Jerusalem was built. Zion is often called 'the city of David,' it was where he dwelt. 2 Sam. 5:7; 1 Chr. 11:5; Micah 3:10, 12. Which part of Jerusalem was thus designated is now a disputed point: some few contend for the north-west; but most believe it to have been on the south-west, and to have extended farther south than the present wall of the city. It would in this case have been in proximity to the temple on the south-east, which could have been reached by a bridge over the Tyropoeon valley. 2 Chr. 5:2. In Ps. 48:2, occur the words "the joy of the whole earth is mount Zion, on the sides of the north, the city of the great King." This has been thought to mean that mount Zion was in the north of the city; but may it not signify that on the north side of Zion is the city of the great King, that is, Jerusalem? The psalm is clearly millennial. Zion, having failed as a part of Jerusalem, was to be ploughed as a field. Micah 3:12. The term Zion has constantly in scripture a metaphorical sense. It represents the intervention of sovereign grace in the person of God's elect king, when Israel were utterly helpless, and the ark had been given into the hands of the enemy. The ark was brought by David to the city of David, and this may have led to Zion being regarded as the centre of blessing, and as a source from whence blessing proceeded, as it often is in the Psalms. Ps. 87:2; Ps. 149:2; etc. The favoured people of God are often spoken of as DAUGHTERS OF ZION, Israel are constantly thus addressed in the Prophets, whether to be blamed for their waywardness and punished; or to be cheered with the prospect of future prosperity. And in these prophecies of their coming exaltation, Zion is referred to as the seat of the Messiah's royal power on earth, as in Isa. 52:1-8; Isa. 60:14; Heb. 12:22. In scripture Zion never means the church: it always signifies blessing on earth, and is specially in connection with Israel, when the ultimate blessing of the nations will be through Israel; nevertheless Christians now enter into its spiritual import as being under the reign of grace while here on earth. --- Morrish Bible Dictionary (삼하05:7, (왕상08:1, (왕하19:21, 대상(11:5, 대하(05:2, (시002:6, (시009:11,14, (시014:7, (시020:2, (시048:12, (시050:2, (시051:18, (시053:6, (시065:1, (시069:35, (시074:2, (시076:2, (시78:68, (시084:5,7, (시087:2,5, (시097:8, (시099:2, (시102:13,16,21, (시110:2, (시125:1, (시126:1, (시128:5, (시129:5, (시132:13, (시133:3, (시134:3, (시135:21, (시137:1,3, (시146:10, (시147:12, (시149:2, (아03:11, (사01:8, (사02:3, (사03:16, (사04:3, (사08:18, (사10:24, (사12:6, (사14:32, (사16:1, (사18:7, (사24:23, (사28:16, (사29:8, (사30:19, (사31:9, (사33:5, (사34:8, (사35:10, (사37:22, (사40:9, (사41:27, (사46:13, (사49:14, (사51:3, (사52:2, (사59:20, (사60:14, (사61:3, (사62:11, (사64:10, (사66:8, (렘03:14, (렘04:6, (렘06:2, (렘08:19, (렘09:19, (렘14:19, (렘26:18, (렘30:17, (렘31:6, (렘50:5, (렘51:10, (애01:4, (애02:1, (애04:2, (애05:11, (욜02:1,15,23, (욜03:16,17,21, (옵01:17, (옵01:21, (암01:2, (암06:1, (미01:13, (미03:10, (미04:2, (습03:14, (슥01:14, (슥02:7, (슥08:2, (슥09:9, (마21:5, (요12:15, (롬09:33, (롬11:26, (벧전02:6, (히12:22, (계14:1 lt=31.7774&ln=35.2349
49 가나안(Canaan)
지명
jesus
7469 25 2006-12-29
▶ 가나안(Canaan) cf.chanaan 창세기 10장6절 (창10:6) 가나안은 낮은 땅, 자색이라는 뜻입니다.가나안은 함의 아들로 구스(에티오피아)와 붓(리비아)과 미스라임(애굽)의 형제였습니다.가나안은 가나안족의 조상이기도 합니다.함의 자손들이 중동지역의 원주민이 되었습니다.가나안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정착해 살면서 성장한 부족입니다. 그러나 소돔, 고모라나 노아의 때와 같이 죄가 관영하고 극도로 타락한 지역이 되고 말았습니다.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고 가나안 땅의 주인을 이스라엘로 교체하였습니다.아브라함을 택하실 때에 가나안 땅을 심판하시고 그 후손에게 물려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창15:16, 19∼21). 가나안 종족은 심한 우상숭배와 도덕적인 타락으로 심판된 대표적인 부족입니다(신18:9∼14). ▷교훈과 적용◁ 첫째,가나안 땅을 아브라함 때부터 심판의 대상으로 확정하시고 죄가 관영하자 전쟁으로 심판하셨습니다.그리고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허락하셨습니다.이는 하나님의 편벽이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타락과 범죄가 심판의 대상이 되게 한 것입니다.타락의 속성에 지배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가나안 땅은 우상숭배가 극심한 지역이었습니다.하나님을 외면하면 우상종교의 노예가 될 수 있습니다.그러나 보이는 우상보다 보이지 않는 탐심이 더 위험한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골3:5). 셋째,가나안은 인본주의와 육적인 향락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지역의 이름입니다.이는 인간이 타락하면 어디까지 이를 수 있다는 한계를 보여 줍니다.악은 그림자까지라도 버려야 합니다. ▶ 뜻 : 낮은 땅, 갈대, 자주빛 소라의 땅 이 지명의 이름은 한정된 지역을 특정지어 말할 수 없으며 넓은 의미로는 시리아에서 팔레스틴 해안 전체 지역을 의미하고 좁은 의미로는 요단강 서편땅 전부를 가리키며 상징적으로 성도들이 가게될 천국을 의미하기도 한다. 가나안 정탐군의 보고서 :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탐지하게 하되 그 종족의 각 지파중에서 족장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 (민13;2).모세는 이 말씀에 따라 12명의 정탐군을 가나안에 파견하였다. 이장식 사본은 12세기 초 이집트에 있던 유대인 화가와 서기관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40일간에 걸친 가나안 정탐군의 사명과 정탐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가나안의 성소 : 므겟도에서 고고학자들에 의하여 발견된 가나안 사람들의 종교 제단으로 현재의 지층보다 훨씬 아래에 있다. 가나안인들의 제단 : 하솔에서 발굴된 가나인들의 제단으로 산당으로 여겨 지기도 한다. 가나안 이스라엘 민족이 이땅을 정복하기 전에 이곳에 살던 원주민 기르가스,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헷, 히위, 여부스 등의 원주민 7족속이 노아의 손자 가나안(창10:15)의 후손들에게서 시작한다. 가나안이라는 명칭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약속의 땅을 지칭하기 위하여 가장 대표적으로 사용된 이름이다. 팔레스타인이 유대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사용될 때 이름이라면 가나안은 유대인이 안에서 자신의 땅을 지칭할 때 사용한 이름이다. (창12:5; (창13:12; (출06:4) 팔레스틴 이 지명은 가사에서 욥바까지 동부 해안 지방을 차지한 블레셋 족속의 땅만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다(출15:14; (사14:29).이들은 해안 민족으로서 외지와의 접촉이 잦았는데, 특히 헬라인들이 마치 블레셋이 해안지방 뿐 아니라 그 내지인 약속의당 전체를 블레셋이란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한데서 기인한다. B.C.5세기 유명한 헬라 역사가 헤로도투스가 처음으로 이 팔레스틴을 약속의 당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사용한 이래, 로마인들도 행정구역 명칭이 아닌 일반 지역 땅으로는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리하여 일반 세계사에서는 이 명칭이 자연스럽게 통용되었다. 특히 제 1차 세계대전 이후인 1920년에서 이스라엘과 요르단 국가가 정식출범한 1948년 이전까지는, 비록 위임 통치 지역에 대한 명칭이기는 하였으나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약속의 땅 이 땅은 아브라함(Abraham)을 시작으로 족장들에게 주기로한 약속에서 유래한다. 아브라함이 이 땅을 약속받았을 당시에는 이미 그 당은 다른 족속이 살고 있었고 아브라함은 이주민에 불과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권으로 이 땅을 약속하시고 또 이스라엘에 주셨던 사실에서, 이 명칭은 훗날 성도들이 얻을 천국을 상징하는 이름으로도 사용된다. (히11:9) 가나안 땅의 다른 고대 명칭들 쁄라 : (사62:4) 거룩한 땅 : (슥02:12) 임마누엘의 땅 : (사08:8) 히브리인의 땅 : (창40:15) 유대 땅 : (행10:39) 블레셋 땅 : (출15:14) 젖과 꿀이 흐르는 땅 : (레20:24, (민13:27, (신11:9) 기름진 땅 : (출03:8) 죄로 물든 땅 : (레18:15, (민35:34, (시106:38, (미02:10)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 : (민14:23, (신31:4) 이스라엘에게 준 땅 : (민20:24, (삼상13:19, (대상21:4) 기업의 땅 : (민34:18, 신02:12) 하나님 여호와의 주시는 땅 : (신03:20) 아름다운 땅 : (신04:21, (신09:6) 부족함이 없는 땅 : (신08:9) 좋은 땅 : (왕상14:15) 여호와의 땅 : (호09:3) 평화로운 땅 : (단08:9) 가나안 정복 지난 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 동부에 이르러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 데까지 살펴보았습니다. 모세는 세상을 떠났고 여호수아가 그의 후계자로서 가나안 정복과 그 뒷일들을 주관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한 이야기는 여호수아 책에 기록되어 있 습니다. 여호수아서는 (1) 가나안 정복 (수01장-12장) (2) 이스라엘 각 지파들의 토지 분배 (수 13장-22장) (3) 여호수아의 고별 연설 (수 23장-24장)로 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군대가 행군하여 가는 도중 높은 성으로 둘러싸인 여리고에 당도했습니다. 여호 수아는 두 사람의 정탐꾼을 뽑아 여리고성으로 비밀리에 침투시켰습니다. 이들은 그곳에서 라합 이라는 기생을 만나게 되어 은신처를 얻었습니다. 그들이 라합의 집에서 위기를 당했을 때 라합 은 그들을 숨겨주며 도피할 길도 마련해 주었던 것입니다. 라합은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그후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함락할 때 구원을 받았습니다. 정탐꾼들로부터 유리한 정보를 얻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손에 적을 붙 이셨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홍수로 인하여 물이 불은 요단강을 그들이 건너려고 준비 할 때에 아마 그들은 40년 전에 그들의 조상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홍해를 건너오던 사 실들을 상기했을 것입니다. 이제 역사는 다시 한번 반복되어 하나님께서는 흐르던 강물을 멈추 게 하셨고 그들은 마른땅을 걸어 요단강을 건너 갈 수가 있었습니다(수03:17). 이렇게 그들이 안전하게 강을 건너간 후 이를 기념하는 비석을 세웠습니다. 하나는 강속에, 하나는 강 서쪽 벌판에 세웠습니다. 그들이 여리고성에 이르기 전, 하나님께서는 그 성 주위를 7일 동안 돌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 주위를 7일 동안 돌았을 때, 마침내 그 성벽은 무너졌고 성을 점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고고학자들도 이 사실에 대한 뚜렷한 고증을 발견하고 있습니 다. 성서에 기록된 대로 이 성벽은 언덕을 미끄러 내려 성밖으로 무너졌지 성안으로 넘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 발견된 것입니다. 만일 그 성을 외부에서 들보 같은 것으로 쳐서 무너뜨렸다면 성벽이 안쪽으로 무너졌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후 이스라엘 군인들은 행군을 계속하면서 여리고성에 비하면 아주 보잘것없이 작은 아이라 는 성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여호수아와 그의 백성들은 아간이라고 하는 사람이 범한 죄 때문에 큰 패배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에게 속하지 아니한 물건을 노략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패배를 당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수 7장).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녀들이 죄악을 범하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시지 않는다는 무서운 교훈입니다. 아간은 죽음으로 그 죄의 형벌을 받았으며 그 후 아이성은 손쉽게 점령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 사실에 크게 놀란 이웃 지방의 기브온 주민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찾아와 친선을 맺자고 제의 하여 서로 가깝게 되었습니다. 한편 주위에 있던 다른 족속들의 다섯 아모리족 왕들은 크게 분 격하여 기브온과 싸움을 걸어 왔습니다. 이 싸움(수10장)은 다섯 왕이 한편이 되고 이스라엘과 기브온이 다른 한편이 되어 싸웠는데 이 전쟁은 세계 역사상 유명한 큰 전쟁 중의 하나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승리를 거둘 때까지 해와 달을 머물게 하셨던 사실이 있습니다. 적들은 크게 패배를 당하였고, 이에 따라 가나안 정복의 문은 열리게 되었으며, 물결치는 듯 한 이스라엘의 군세 앞에 31명의 왕이 쓰러졌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각 지파별로 차지할 땅을 제비를 뽑아 결정했 습니다. 갓, 루우벤 및 므낫세의 반(半)지파 등은 요단강 동부에 있는 영토를 분배받았습니다. 레위족속은 48개의 성읍을 받았습니다. 6개의 성읍은 누구든지 부지중 살인을 범한 자를 위해 도피성으로 예비 해 두었습니다. 정탐꾼 12명 중의 한 사람이었던 85세된 갈렙은 특별한 유업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백성들은 마음을 합하여 실로에 성막을 세웠습니다. 이 성막 은 그 후 수백년 동안이나 남아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백성들이 약속한 땅에 정주 하게 되었으 므로 여호수아는 그들을 세겜이라는 곳에 모아 놓고 고별연설을 함으로써 이 책의 이야기가 끝 나게 되는데 그는 이 연설을 통해 하나님을 충실하게 섬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는 말로 연설을 끝 맺었습니다. 이와 같이 백성을 권면하고 여호수아는 그의 나이 11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사들 여호수아가 죽은 후 이스라엘은 어떤 조직된 정부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가나안을 정복할 때에는 그토록 단결하여 긴밀히 행동을 같이 취하던 12지파들은 각기 헤어져 자기들의 길만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300년간 (BC 14001∼1100) 일곱 번이나 변절하여 우상을 섬겼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회개시키기 위해 7번이나 이방인들이 그들을 정복케 하셨습니다. 그들이 회개하였을 때 여호와는 일곱 번이나 사사들을 보내 구원케 하셨습니다. 이 사사들(모두 15명) 에게 주어진 권능은 임금의 그것이기보다는 목자의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적들로부터 그의 백성 을 구원하기도 했고, 백성들 사이에 벌어진 분쟁을 조정하고 재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들 중 어 떤 사람은 이스라엘의 몇몇 부분만 다스렸으며 사사들이 전혀 없던 시대도 있었습니다. 이 시대 의 사상은 "사람마다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17:6)"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그토록 여러 번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1) 그들의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의 우상숭배를 본 받았기 때문입니다. (2) 가나안 정복 때의 사람들이 전부 죽었으므로 저들 조상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었는 가를 기억치 못하였습니다. (3)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나 여호수아와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없 었으므로 하나님께 대한 신실한 믿음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백성들은 자신의 소견 에 옳은 대로 행하였고 하나님 보다 자신들을 기쁘게 하는데만 힘을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점점 하나님을 저버리고 하나님으로부터 형벌이 내려 질 때에만 구원을 호소했습니다. 사사들의 이야기 가운데 우리들은 회개의 의미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벌하신 것은 범한 죄를 깨닫게 하려는데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자책을 느끼게 하였 고 그들의 슬픔은 잘못된 길을 돌이키게 했습니다. 슬퍼하는 것만으로는 회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고후 7:10)" 회개는 생활을 바꿈으로써 이룩되는 마음의 변화입니다. 사사기에는 어떤 사사에 관한 일은 조금만 기록되어 있고 어떤 사사의 일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락과 함께 백성들을 통치했던 드보라는 유일한 여자 사사입니다(삿 4-5장). 기드온 은 300명의 사람으로 미디안의 대군을 무찌른 사사입니다(삿 7:7) 위대한 사사 가운데 하나로 입다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집에 돌아 올 때 제일 먼저 환영 나오는 사람 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친다는 어리석은 약속을 함으로서 그에게는 큰 슬픔이 가로놓이게 되었 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딸이 제일 먼저 그를 환영 나왔기 때문이었습니다(삿 11:34). 우리 모두 가 잘 알고 있는 삼손은 기운이 세어서 혼자 불레셋 대군을 대전한 사실이 있습니다(삿14:16). 최후의 위대한 사사는 사무엘 입니다. 그는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그의 어머니 한나가 하나님께 서원하여 얻은 아들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였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통일하는 길을 준비하였습니다. 사사기 전체를 읽어보고 이 시대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사실을 공부하도록 하십시오. 룻 사사시대의 이야기는 룻기의 내용을 살펴보지 않고는 완전히 이해하지를 못할 것입니다. 룻 기를 어떤 사람은 사사시대에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자기 백성 과 땅을 버리고 자기의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따라 새로운 집으로 간 한 젊은 모압 여자의 이야 기입니다. 후에 룻은 보아스와 재혼을 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다윗의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리 스도의 계보 안에 들어 갈 수 있는 여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계보 안에 들게 된 이방인이기도 합니다. 룻기 전부를 읽어보십시오. 읽는데 몇 분 걸리지 않을 것이며, 읽어 볼 가치가 있는 책인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룻 ) (창11:31, (창12:5, (창13:12, (창16:3, (창17:8, (창23:2,19, (창31:18, (창33:18, (창35:6, (창36:5,6, (창37:1, (창42:5,7,13,29,32, (창44:8, (창45:17,25, (창46:6,12,31, (창47:1,4,13,14,15, (창48:3,7, (창49:30, (창50:5,13, (출06:4, (출15:15, (출16:35, (레14:34, (레18:3, (레25:38, (민13:2,17, (민26:19, (민32:30,32, (민33:40,51, (민34:2,29, (민35:10,14, (신32:49, (수05:12, (수14:1, (수21:2, (수22:9,10,11,32, (수24:3, (삿03:1, (삿04:2,23,24, (삿05:19, (삿21:12, (대상16:18, (시105:11, (시106:38, (시135:11, (사19:18, (사23:11, 습02:5, (행07:11, (행13:19 lt=31.6935295&ln=34.8438828
48 염해/사해(Salt Sea/Dead sea) 파일
지명
jesus
4296 17 2007-01-02
갈릴리호수(-200m) -> 사해(-400m)로 물이 흘러 들어옴 ▶ 염해(Salt Sea, Sea of the Arabah) cf. Sea 뜻: 소금바다 이스라엘 내륙의 중남부 지역에 있는 호수 현재 우리가 사해라고 부르고있는 소금의 바다이다 성경에는 염해(창14:3, (민34:3) 아라바의 바다 (Sea of the Arabah) (신03:17, (신04:49, (수03:16, (수12:3, (수14:8, (왕하14:25) 동해 (겔47:8, (욜02:20, (슥14:8) 또는 바다(겔47:8, (암08:12, (미가07:12).라고 불리어진다. 지중해면보다 392미터나 낮아서 세계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물이 흘러 들어가기만 하고 흘러나오지 못 하다. 매일 수위 1센티 가량 증발하다고 한다. 이 호수는 남북으로 길게 생겼는데 남북 약 85키로,동서 약 15키로 면적은 945키로,평균수심 360미터,가장 깊은 곳은 400미터가 된다. 염분 함유량은 25%로서 보통 다른 바다의 5배 가 넘는다 그래서 물고기가 살수없고 계란이 뜨며 사람의 몸도 뜨나 머리가 잠기려는 경향이 있어 수영은 곤란하다. 옛날 소돔과 고모라는 사해 남단 물 속에 잠겼다. 현재 아라비아 말로는 롯의 바다라고 불리어지며 사해라는 이름은 2세기경 헬라인들이 만든 이름이다. (창14:3, (민34:3,12, (신03:17, (수03:16, (수12:3, (수15:2,5, (수18:19 ======== Salt Sea. The lake on the south of Palestine, now commonly called the Dead Sea, because it was for long judged that nothing having life could exist in it; but some inferior organisms (as the polygaster) have been found in it at its northern end. It is called, 'the Salt Sea' in Num. 34:3, 12; Deut. 3:17; Joshua 3:16; 'the Sea of the plain' ('Sea of the Arabah,' R.V.), in Deut. 4:49; 2 Kings 14:25; 'the East Sea' in Ezek. 47:18; Joel 2:20; and simply, 'the Sea' in Ezek. 47:8. The term, 'Salt Sea' is very appropriate; for it contains much more salt than is found in ordinary sea water, which makes it extremely nauseous. It is also very heavy, so that a person cannot sink in it; and after bathing it leaves a crust of salt on the flesh. The river Jordan and some streams run into the Salt Sea, but there is no outlet. The rocks that surround it make the heat there very great, and evaporation must be rapid. Its size is about 48 miles long, and 10 miles across at its widest part. Its surface is at times (for it varies according to the rain) about 1,292 feet below the level of the sea, making it, as far as is known, the lowest lake in existence. Its deepest part is about 1,300 feet below the surface. Altogether it is like no other known lake, and is characteristic of death and dreary desolation. On the restoration of Israel in a future day a river will issue out of the house, the future temple, which river will go down into the desert and run into this sea, and the waters will be healed. En-gedi (Ain Jidy, about half way along the coast of the Dead Sea, on the west) will be one of the stations of the fishermen. Ezek. 47:1-10. A beautiful figure of God's future bringing to life the dead and dry bones of Israel and Judah, and making them the means of life to others. What connection there is, if any, between the present state of the Salt Sea and the destruction of Sodom and Gomorrah, is not known. In Genesis 14 the battle of the four kings against the five was in "the vale of Siddim, which is the Salt Sea." Gen. 14:3. The four kings had come from a distance, but the five kings, of whom the kings of Sodom and Gomorrah were two, were near home; farther than this the connection cannot be traced. This sea is now called Bahr Lut, the 'Sea of Lot.' (창14:3, 이들이 다 싯딤 골짜기 곧 지금 염해에 모였더라 (민34:3,12, 3너희 남방은 에돔 곁에 접근한 신 광야니 너희 남편 경계는 동편으로 염해 끝에서 시작하여, 12그 경계가 또 요단으로 내려가서 염해에 미치나니 너희 땅의 사방 경계가 이러하니 (신03:17, 또는 아라바와 요단과 그 가요 긴네렛에서 아라바 바다 곧 염해와 비스가 산록에 이르기까지의 동편 지경이니라 (수03:16,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쌔 (수12:3, 또 동방 아라바 긴네롯 바다까지며 또 동방 아라바의 바다 곧 염해의 벧여시못으로 통한 길까지와 남편으로 비스가 산록까지며 (수15:2,5, 2그 남편 경계는 염해의 극단 곧 남향한 해만에서부터, 5그 동편 경계는 염해니 요단 끝까지요 그 북편 경계는 요단 끝에 당한 해만에서부터 (수18:19 또 북으로 벧 호글라 곁을 지나서 요단 남단에 당한 염해의 북편 해만이 그 경계의 끝이 되나니 이는 남편 경계며 (왕하14:25.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로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지경을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겔47:18; 동방은 하우란과 다메섹과 및 길르앗과 이스라엘 땅 사이에 있는 요단강이니 북편 지계에서부터 동해까지 척량하라 이는 그 동방이요 (욜02:20; 내가 북편 군대를 너희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여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내리니 그 전군은 동해로, 그 후군은 서해로 들어갈 것이라 상한 냄새가 일어나고 악취가 오르리니 이는 큰 일을 행하였음이니라 하시리라 (슥14:8;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 Morrish Bible Dictionary lt=31.53859&ln=35.48226
47 유브라레강(Euphrates) river 파일
지명
jesus
3178 10 2007-01-02
▶ 유브라레강(Euphrates) 뜻: 흐른다 아시아주 서부에 있는 동방 최대의 강으로 그 발원지는 에덴동산과 알미니야 계곡이다. 길이는 2,850km로 하류에서 합류되는 티그리스강과 더불어메소포타미아의 수운과 농어발달에 원동력이 되어 그 지역 고대 문명의 발상지가 되었다. [1] (1) 에덴에서 발원한 4대강중의 하나 (창02:14). (2)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허락한 동편 경계선(창15:18). (3) 르우벤지파의 동편 경계선(창05:9). (4) 다윗과 솔로몬의 점령지(삼하08:3, (대하09:26). (5) 애굽 느고왕 때 확장지(왕하23:29). (6)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탈취(왕하24:7). (7) 예레미야가 요대를 이 강변에 감추었다(렘13:4-5). (8) 계시록에는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해방하라하였다(계09:14). [2] 성경 곳곳에 유브라레강을 The River 로 표현됨. (민22:5, (신11:24, (수24:3, (시072:8, (시080:11, (사07:20, (사08:7, (사11:15, (미07:12, (슥09:10 [3] Euphrates - (창02:14, (창15:18, (창31:21, (창36:37, (출23:31, (신01:7, (신11:24, (수01:4, (수24:2, (삼상08:3, (삼상10:16, (왕상04:21, (왕상14:15, (왕하23:29, (왕하24:7, (대상01:48, (대상05:9, (대상18:3, (대상19:16, (대하09:26, (대하35:20, (사27:12, (렘02:18, (렘13:4, (렘46:2,-10, (렘51:63, (계09:14, (계16:12 lt=35.0983343&ln=40.426466
46 마므레(Mamre)
지명
jesus
1773 9 2006-12-30
▶ 마므레(Mamre)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헤브론이나 또는 그 근처인 것은 틀림없다. 아브라함(Abraham)이 세 천사를 영접한 곳이기도 하며 소돔과 고모라를 구원하기 위해서 기도한 장소이기도 하다. (1) 아브라함이 마므리 상수리나무 곁에 장막을 치고 살았던 곳(창13:18, (창14:13, (창18:1). (2) 이곳은 헤브론과 같은 곳이라 생각된다(창23:19, (창35:27)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베들레헴을 지나 35킬로미터쯤 가면 전형적인 아랍인 도시 헤브론이 있다. 헤브론은 기원전 1000년경 다윗이 이스라엘 왕권을 쟁취할 때 발판으로 삼았던 도읍이기도 하다. 베냐민 부족 출신인 사올 왕이 갈리아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유다부족 출신인 다윗은 브엘세바 근처 시글락에서 유다 부족 거주지인 헤브론으로 급히 자리를 옮긴다. 거기서 그는 유다 부족의 임금으로 추대된다.(삼하02:1-4) 다윗은 무려 7년반 가까이 헤브론에서 단지 유다 부족의 임금으로 행세하는 동안 온갖 계략과 술책을 써서 결국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된다.(삼하05:1-3) 헤브론을 떠나 북쪽 예루살렘 방향으로 4킬로미터 달리다 보면 아랍인들이 '라맛 열 칼릴(친구의 고지)'이라 부르는 페허가 나온다. 그곳이 마므레 성지이다. 아브라함이 마므레 참나무 아래 천막을 치고 제단을 설치했다고 한다.(창13:18) 또한 여기서 신비스런 길손 세분을 잘 대접한 덕분으로 아브라함과 사라가 1년 안에 이사악을 낳으리라는 약속을 받은곳이다.(창18, 1-15) 길손들이 소둠을 멸하려는 계획을 알려 주자 아브라함이 소둠을 구하려고 흥정을 벌인 곳이기도 한다(창 18:16-33). 헤로데 대왕의 헤브론 족장 묘소에 한 것처럼 마므레에도 돌담을 쳤으나 완성하지는 못했다. 130년 하드리아누스 로마 황제가 팔레스티나를 방문하여 마므레에 시장을 건설케 하였다. 그후 황제는 제2차 유다 독립전쟁(132-135년)을 진압하고 나서 바로 마므레 시장에서 무수한 유다인들을 노예상등에게 헐값으로 팔아 넘겼다. 시장 돌담의 규모는 길이 약 65미터, 너비 약 49미터, 325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장모 에우트로피아가 건설한 자그마한 성당 잔해가 남아있다. 헤브론의 아브라함 사원 제관계 문헌인 창세기 23장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라가 헤브론에서 숨을 거두자 에브론이란 사람에게서 막벨라 동굴을 구입해서 거기에 사라를 묻었다. 또다른 제관계 문헌에 의하면 여기에는 사라뿐 아니라. 아브라함과 사라, 이사악과 리브가, 야곱과 레아, 이렇게 족장 부부가 묻혀있다고 한다. (창25:7-10, (창35:27-29, (창49:29-32, (창50:12-13) 그러므로 헤브론의 막벨라 동굴은 유다인들에게는 예루살렘 다음가는 성지이다. 헤로데 대왕(기원전 37-4년 재위)은 이스라엘 3대 조상 묘소 둘레에다 엄청난 돌담을 치고 묘소 위의 공간에는 널찍한 돌들을 깔았다. 헤로데의 돌담과 돌바닥은 지금도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헤로데의 무수한 건축물 가운데서 가장 잘 보존된 이 웅대한 족장 영묘(아브라함 사원)야말로 보는 이의 감탄을 저절로 자아내게 한다. 헤로데가 친장방형 돌담의 규모는 길이 59미터, 너비 34미터, 높이 18-20미터, 두께 2.65미터, 그리고 담을 쌓을 때 사용한 돌등 중 가장 큰 것은 길이 7.50미터, 높이 1.40미터. 아브라함 사원 돌담에서 횡선 아래 큰 부분은 헤로데가 쌓은 것이고, 횡선 위의 작은 부분은 기원후 13세기에 바이바르스 회교 술탄이 한층 올려 쌓은 것이다. 동.서양쪽 귀퉁이의 회교 종탑(미나렛) 두 개는 후대에 덧붙인 것이다. 회교도들 역시 아브라함을 무척 존경하는 까닭에,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와 메디나 사원, 그리고 예루살렘의 오마르 사원 다음으로 헤브론의 이스라엘 족장 영묘를 일컬어 "하람 엘 칼릴"이라 하는데 "친구의 성지"라는 뜻이다. 아브라함을 하느님의 친구로 보고 붙인 명칭이다. (창23:17,19, (창25:9, (창35:27, (창49:30, (창50:13 lt=31.549098&ln=35.09356
45 가드(Gath) 파일
지명
jesus
2888 7 2006-12-29
▶ 가드(Gath) 뜻: 술짜는 틀 가자의 북쪽 32KM 지점. (1) 블레셋 5개 중요도시 중의 하나 (삼하01:20). 이 다섯 성읍은 모두 팔레스타인 남해안과 그 인근에 위치해 있으며 각기 저들의 왕에 의해 통 치되었다(수13:3, (삼상06:17) 가드는 옛 가나안 도시로서 그 주민들 가운데는 가드족이라고도 부 르는 키가 큰 아나킴(Anakim)족이 팔레스 타인 산지에 널리 살고 있었다(삼하06:10-11, (삼하15:18,-22). (2) 다윗의 손에 죽은 골리앗의 고향(수11:22, (삼상17:4). (3) 엘리 때에 블레셋에게 빼앗긴 언약궤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 모든 사람에 게 독종이 전영되어 에그론으로 옮겼고(삼상05:8-10). (4) 다윗이 정복하여 이스라엘에 속하게 하였고 (대상18:1) (5) 다윗이 압살롬을 난을 피하여 다닐 때 생사를 같이 하겠다는 충성된 신하 잇대의 고향(삼하15:18-22). (6) 솔로몬이 부왕 다윗을 저주한 시므이에게 금족령을 내렸으나 위반하고 이곳에 간 줄을 알고 죽인 곳(왕상02:8,36,41,46). (7) 르호보암이 국방성을 건축할 때 이 성을 개수보강하였다(대하11:5-10). * 그러나 최근의 고고학자들은 텔 에스 사피가 가드였던 것으로 더욱 유력시 되 고 있다. 성서나 아시리아, 비잔틴 자료들을 재 검토하면, 가드가 불레셋의 북부 에 위치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수11:22, (수13:3, (삼상05:8, (삼상06:17, (삼상07:14, (삼상17:4, (삼상21:10, (삼상27:2, (삼하01:20, (삼하15:18, (삼하21:20, (왕상02:39, (왕하12:17, (대상07:21, (대상08:13, (대상18:1, (대상20:6, (대하11:8, (대하26:6, (시056:1, (암06:2, (미01:10 ======== Gath. One of the five royal cities of the Philistines, and to which Goliath belonged. It is not mentioned as having been given to any of the tribes. It was to this city that the ark was carried when taken in war. 1 Sam. 5:8. To Achish king of Gath David resorted when his faith failed him as to God's protection. 1 Sam. 27:2-4: cf. 1 Sam. 21:10, 12. Afterwards when he was king and in power he took Gath and her towns out of the hand of the Philistines. Uzziah also fought against the place and broke down its walls. 1 Chr. 18:1; 2 Chr. 26:6. After Micah 1:10 we hear no more of Gath among the cities of the Philistines: cf. Zeph. 2:4; Zech. 9:5, 6. It may have been ruined. Its site is identified with Tell es Safl, 31 43' N, 34 51' E, where there are extensive ruins and cisterns hewn out of the rock. It commanded the entrance to the valley of Elah. --- Morrish Bible Dictionary lt=31.6935295&ln=34.84388288
44 애굽(Egypt)
지명
jesus
4823 6 2007-01-02
▶ 애굽(Egypt) 뜻:검은 땅 나일강 유역, 특히 하류의 삼각주에 번영한 세계 최고의 문명 발상지 희랍 어로는 아이굽트스에서 왔고 그 아람 어로는 킵트, 히브리 사람들은 미스라 임(창 10:6). 이라고 했는데 동쪽이라는 뜻이다. 동은 홍해, 서는 아라비아 사막, 북은 지중해, 남은 협곡으로 비교적 고립된지역이다. (1) 아브라함이 기근이 들자 곡식이 풍부한 애굽으로 갔었다(창12:10). (2) 또 그의 아내의 시중을 든 하갈은 애굽의 여인 이었다(창16:1). (3) 주전 18세기경 애굽을 정복한 힉소스의 수령 가운데 히브리 사람의 이름이 나와있고 히브리인의 거주가 나와있다(창37-(창50:). (창38: (창39: (창40: (창41: (창42: (창43: (창44: (창45: (창46: (창47: (창48: (창49: (4) (출01:8에 요셉(Joseph)을 알지 못하는 왕이란 바로 아모시스왕이다. (5) 출애굽의 기록이 애굽측 역사에는 나와있지 않으나 이스라엘이 여호와 의 백성이라는 것과 구원한 하나님에 대한 감사는 구약의 최고의 신앙 고백으로 알려져있다. (6) (신26:5-10은 예언지의 발언가운데 반영되어있다(렘02:1-3, (호02:14-16, (암02:10-16). (7)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가 간구할 때 여호와가 모세와 아론을 바로에 게 보내어 이스라엘을 해방하여 줄 ㅐ을 교섭하였으나 듣지 아니함으로 10재앙을 내리시니 그때에야 허락하여 60만 백성을 인솔하고 430년간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어 출애굽하였다 (출07:20-(출13:30, (출12:40). (8) 솔로몬왕은 바로왕의 딸을 아내로 취하였다(왕상03:1). (9) 르호보암왕 때에는 예루살렘을 쳐서 조공을 받아갔다(왕상14:25-26). (10) 예수님이 헤롯의 독수에게 피하여 애굽으로 내려 갔다가 오셨다 (마02:14-15,19-24). * 세계적 명물인 "피라밑"돌무덤이 있는데 높이 746척 면적이 15,800평이다. ▶ Egypt's - On : (사19:6, (사30:7, (겔30:9 ▶ Egypt - On : (창12:10,11,14, (창13:1,10, (창15:18, (창21:21, (창25:18, (창26:2, (창37:25,28,36, (창39:1, (창40:1,5, (창41:8-57, (창42:1,-3, (창43:2,15, (창45:4,-26, (창46:3,-27, (창47:6,-30, (창48:5, (창50:7, -26, (출01:1-18, (출02:23, (출03:7,-20, (출04:18,-21, (출05:4,12, (출06:11,-29, (출07:3,-22, (출08:5,-24, (출09:4,-25, (출10:7-22, (출11:1,-9, (출12:1,-51, (출13:3-18, (출14:5-20, (출16:1-32, (출17:3, (출18:1, (출19:1, (출20:2, (출22:21, (출23:9,15, (출29:46, (출32:1,-23, (출33:1, (출34:18, (레11:45, (레18:3, (레19:34,36, (레22:33,43,(레25:38,42,55, (레26:13,45, (민01:1, (민03:13, (민08:17, (민09:1, (민11:5,20, (민13:22, (민14:2,-22, (민15:41, (민20:5-16, (민21:5, (민22:5,11, (민23:22, (민24:8, (민26:4,59, (민32:11, (민33:1,38, (신01:27,30, (신04:20,34,37,45,46, (신05:6,15, (신06:21,22, (신07:8,15,18, (신08:14, (신09:7,12,26, (신10:19,22, (신11:3,4,10, (신13:5,10, (신15:15, (신16:1,3,6,12, (신17:16, (신20:1, (신23:4, (신24:9,18,22, (신25:17, (신26:5,8, (신28:27, (신28:60, (신28:68, (신29:2, (신29:16, (신29:25, (신34:11, (수02:10, (수05:4, (수09:9, (수13:3, (수24:4, (삿02:1, (삿06:8, (삿06:13, (삿11:13, (삿11:16, (삿19:30, (삼상02:27, (삼상08:8, (삼상10:18, (삼상12:6, (삼상12:8, (삼상15:2, (삼상15:6, (삼상15:7, (삼상27:8, (삼상30:13, (삼하07:6, (삼하07:23, (왕상03:1, (왕상04:21, (왕상04:30, (왕상06:1, (왕상08:9,-65, (왕상09:9,16, (왕상10:28, (왕상10:29, (왕상11:17,-40, (왕상12:2, (왕상12:28, (왕상14:25, (왕하07:6, (왕하17:4,-36, (왕하18:21, (왕하18:24, (왕하19:24, (왕하21:15, (왕하23:29, (왕하23:34, (왕하24:7, (왕하25:26, (대상13:5, (대상17:21, (대하01:16, (대하01:17, (대하05:10, (대하06:5, (대하07:22, (대하09:26, (대하09:28, (대하10:2, (대하12:2, (대하12:3, (대하12:9, (대하20:10, (대하26:8, (대하35:20, (대하36:3, (대하36:4, (느09:9, (느09:17, (느09:18, (시068:31, (시078:12, (시078:43, (시078:51, (시080:8, (시081:5, (시081:10, (시105:23, (시105:38, (시106:7, (시106:21, (시114:1, (시135:8, (시135:9, (시136:10, (사07:18, (사10:26, (사11:11, (사11:16, (사19:1, (사19:12, (사19:13, (사19:14, (사19:15, (사19:18, (사19:19, (사19:20, (사19:22, (사19:23, (사19:24, (사19:25, (사20:3, (사20:4, (사20:5, (사23:5, (사27:13, (사30:2, (사30:3, (사31:1, (사36:6, (사36:9, (사37:25, (사43:3, (사45:14, (사52:4, (렘02:6, (렘07:22, (렘07:25, (렘09:26, (렘11:4, (렘11:7, (렘16:14, (렘23:7, (렘24:8, (렘25:19, (렘26:21, (렘26:22, (렘26:23, (렘31:32, (렘32:20, (렘32:21, (렘34:13, (렘37:5, (렘37:7, (렘41:17, (렘42:14, (렘42:15, (렘42:16, (렘42:17, (렘42:18, (렘42:19, (렘43:2, (렘43:7, (렘43:11, (렘43:12, (렘43:13, (렘44:1, (렘44:8, (렘44:12, (렘44:13, (렘44:14, (렘44:15, (렘44:24, (렘44:26, (렘44:27, (렘44:28, (렘44:30, (렘46:2, (렘46:8, (렘46:11, (렘46:13, (렘46:14, (렘46:17, (렘46:19, (렘46:20, (렘46:24, (렘46:25, (렘46:26, (애05:6, (겔17:15, (겔19:4, (겔20:5, (겔20:6, (겔20:7, (겔20:8, (겔20:9, (겔20:10, (겔20:36, (겔23:3, (겔23:8, (겔23:19, (겔23:27, (겔27:7, (겔29:2, (겔29:3, (겔29:6, (겔29:9, (겔29:10, (겔29:12, (겔29:14, (겔29:19, (겔29:20, (겔30:4, (겔30:6, (겔30:8, (겔30:10, (겔30:11, (겔30:13, (겔30:15, (겔30:16, (겔30:18, (겔30:19, (겔30:21, (겔30:22, (겔30:25, (겔31:2, (겔32:2, (겔32:12, (겔32:15, (겔32:16, (겔32:18, (겔32:20, (단09:15, (단11:8, (단11:42, (단11:43, (호02:15, (호07:11, (호07:16, (호08:13, (호09:3, (호09:6, (호11:1, (호11:5, (호11:11, (호12:1, (호12:9, (호12:13, (호13:4, (욜03:19, (암02:10, (암03:1, (암03:9, (암04:10, (암08:8, (암09:5, (암09:7, (미06:4, (미07:12, (미07:15, (나03:9, (학02:5, (슥10:10, (슥10:11, (슥14:18, (슥14:19, (마02:13, (마02:14, (마02:15, (마02:19, (행02:10, (행07:9,-40, (행13:17, (히03:16, (히08:9, (히11:26, (히11:27, (유01:5, (계11:8 lt=30.108&ln=31.3382
43 베들레헴(Bethlehem)
지명
jesus
3115 6 2006-12-30
▶ 베들레헴(Bethlehem) 뜻: 떡집 / 아랍어로는 푸줏간 베들레헴은 집이란 뜻의 "벧트"와 떡이란 뜻의 "레헴"이 합해져 "떡집"이란 뜻을 갖고 있다. 예루살렘 남서쪽 약 10km지점. 베들레헴은 해발 777m의 산악지대에, 동굴이 벌집처럼 많은 석회암 언덕의 비탈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이 지역에는 아랍인들이 살고 있긴 하지만 1967년 6일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한 곳이다. 아랍인에 대한 통제가 심한 곳 중의 하나이다. 사사 시대에는 미가의 집 제사장의 고향이 베들레헴이며 에브라임 지방의 한 레위인의 첩의 고향도 이곳이다. 또한 이 곳은 룻기의 나오미와 보아스의 고향이기도 하려니와 보아스의 자손이며 이스라엘의 제2대 왕인 다윗왕의 고향이기도 하다. 역대하에서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견고한 성읍을 건축한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곳,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아기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베들레헴은 오늘날, 유다땅의 조그마한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의 기독교인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성지 중의 한 곳이다. [1] 예수의 탄생지. (1) 성경에서는 창세기 35장에 처음 언급되어 있다. "본명은 에브랏으로서 야곱의 식구들이 밧단 아람에서 돌아 올 때 라헬이 벤야민을 낳았고, 라헬이 죽은 뒤에 야곱이 이곳 베들레헴 근처에 라헬을 묻고 비석 하나를 세웠다(창35:19). (2) 사사 시대에는 미가의 집으로 미가서에는 '에브라다(Bethlehem Ephrathah)'라 불렀다(미05:2). (3) 이 이름은 씨족 이름이다(대상02:19, 50). (4) 룻의 시아버지 고향이다(룻01:2-2, 4, 22). (5) 보아스의 고향이다. 라헬이 도망해 다닐때 블레셋 군대가 여기 주둔했다(대상11:17-19). (6) 아사헬이 이곳에 묻혔고 다윗의 용사 엘하난의 출생지이다(삼하23:24). (7) 르호보암이 예루살렘 방어를 위해 이곳을 요새화했다(대하11:6) (8) 그다랴를 죽인자들이 여기 도피했다(렘41:17). (9) 메시야가 날 곳이란 미가의 예언지다(마02:6, (미05:2) (10) 그리스도가 예언대로 나셨다(마02:1-5, (눅02:4, 15). * 6세기 저스틴(A.D 550년경이 예배당을 확장, 역대 군왕들이 정성들여 수리,아름답고 화려한 회당이 섰다. 들어가는 앞문은 4척 밖에 안되는 "겸손의 문"하나뿐이다. 성탄 저녁에는 그 앞뜰이나"목자의 들"에서 성탄 예배를 드린다. 유대인들이 B.C 586년 애굽으로 도망할 때 베들 레헴 근처에서 피난처를 찾았다(렘41:17). [2]나사렛 서북 10km 지점의 베일 람인 (1) 스불론의 베들레헴(수19:15). (2) 사사 입다의 고향 이었던것 같다(사12:8-10). 사사는 거의 다 북쪽에서 났다. [1] 베들레헴의 명칭과 역사적인 개관 베들레헴은 'Enuma-Elish'라는 천지창조 이야기에 나오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식물과 다산의 신인 `Lachma'에서 유래한다. 구약 성경에서 이 지역은 'Ephrata(에브라다)` 라는 이름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이 또한 '다산`을 의미한다. 베들레헴은 히브리어로 성경에서 사용된 이름이다. 오늘날의 주민들은 이 명칭 대신 'Beit Lachem' 이라는 아랍식 이름을 사용한다. `Beth '와 'Beit'는 둘다 `House(집)'을 의미하고, 'Lachem'은 `meat(고기)'를, `Lehem'은 'bread(빵)`을 의미하는데, 따라서 베들레헴이라는 단어의 뜻은 '고기집` 또는 '빵집`이 된다.그러나 'Beit'가 들어가는 대부분의 지명이 어떤 신의 집이라는 종교적인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베들레헴도 원래는 단순한 빵집이라는 뜻이 아니었으리라 생각된다. 베들레헴의 어원에 대해서는 '라흐무(신)의 집`(아카드어에 근거), '전쟁의 집`(가나안어에 근거) 등의 이론이있다. 베들레헴의 역사는 5000여년 전, 이곳이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의 다리 역할을 했던 때로부터 시작된다. 그때는 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대륙 사이를 오갔었다. 12세기 농부들이 수로를 만들기 위해 땅을 파 내려 가다가 동물들의 뼈를 발견했는데, 퓨마. 코끼리, 하마,코뿔소, 기린, 영양등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베들레헴은 이 지역에서 높은 곳 중의 하나로, 해발 750m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Beit Sahour'와 /Beit Jala',그리고 동쪽과 남쪽의 유대광야 사이를 구분하는 비옥한 땅으로 일찍이 사람들이 정착한 곳이다. 고고학적인 발굴로서는 `Beit Sahour' 근처에서 5000년 전의 청동기 시대 유적을, 탄생교회의 동쪽 지방을 포함하는 가까운 다른 곳에서는 3000년 전의 철기 시대 유적을 찾아내었다. 몇몇 학자들은 그들이 B.C 14세기의 이집트 'Amarna letter'에서 베들레헴에 대한 언급을 발견했다고 믿었었다. 베들레헴은 아주 오래된 고대 도시로 성서에서 여러 차례 언급되고 있다. 베들레헴 근처에서 라헬이 죽어 묻혔으며 (창35:19; (창48:7),사사기 (삿19:장에 나오는 한 레위인의 첩이 베들레헴 출신이다. 또한 룻기의 배경이 베들레헴이며, 룻의 자손인 다윗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거기서 사무엘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았다(삼상16:1-13). 한때 이 곳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점령되기도 했는데, 다윗의 용사들 중 세 명이 적진을 뚫고 이 곳의 우물물을 떠서 다윗에게 `고향의 물'을 바쳤다고 기록되어 있다.(삼하23:14-17). 남북 왕국이 분열된 뒤 르호보암에 의해 요새화되기도 했던(대하11:6) 그러나 1000년동안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근교에 있는 작은 마을로 남아 있었다. B.C. 6세기 말에는 바벨론에서 귀환한 123명의 사람들만이 이곳에 살았다. 이 때 미가 선지자는 이 작은 수의 귀환에도 불구하고 큰 예언을 한다.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으로 메시야가 태어날 곳으로 기대되었다(미05:2-5 (마02:6 (요07:42). 이 메시야의 탄생에 대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이야기는 신약에서 가장 사랑받는 부분 중 하나로, 그 배경인 베들레헴은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장소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곳 베들레헴에는 일찍이 크리스챤 공동체가 있었음이 확실시 되고 있다. 첫 번째 교황중 한 사람인 Evaristus(100~109)는 베들레헴 출신으로 기독교도 어머니와 유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표면적으로 베들레헴은 작고 보잘 것 없는 도시로 계속 남아 있었다. 132년부터 135년 까지 있었던 Bar- Kochbar 반란동안 이곳은 로마 군인들에 의혜 황폐화 되었고. 모든 유대인 거주자들은 도시 밖으로 추방 되었다. 4세기에 전통적으로 예수님의 탄생지라고 알려진 장소에 탄생 교회가 세워진 이후로 기독교 순례지 중 가장 잘 알려진 곳이 되자, 이 때부터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곳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비잔틴시대에는 유대인들의 베들레헴 거주가 허락되지 않았다). 현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6일 전쟁 때(1967년) 이스라엘에 의해 점령당했었다. 베들레헴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93년 오슬로 평화 협정후 95년 12월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이 되어 현재는 이스라엘 통치권과는 상관이 없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영양하에 있으며 주민들은(많은 분들이 베들레헴에 유대인이 살고 있으며 이스라엘 정부에 속한 줄로 알고 있다)팔레스타인으로서 대부분이 모슬렘(약80%) 기독교(대부분이 구교 계통 20%)로 구성이 되어 있다. 베들레헴의 경제와 문화 베들레헴의 경제로는 농업이 어느 정도 주를 이루고 있는데 그중 올리브 수확은 많은 비중을 차지 한다. 올리브나무는 베들레헴의 환경에 적합한 나무로서 많은 토양이나 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한 태양 빛을 흡수하고 많은 과실을 맺기 위해 풍부한 가늘고 작은 잎들을 가지고 있다. 올리브 수확은 년 중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이다. 나무에 과실이 맺히기 시작하는 9월에 사람들은 준비물을 만들기 시작하고 과실을 추수할 사람들을 고용한다. 수확은 10월 첫 주간에 이루어 지며 온 가족이 이 일에 동원되고 학생들은 학교로부터 시간을 얻는다. 올리브는 날로 먹거나 소금, 레몬, 식초등에 절여서 먹는다. 그리고 상당수의 올리브는 기름을 추출하는데 쓰인다. 또한 무화과나 그밖의 과일, 땅콩류의 수확은 베들레헴 지역에서 보편화 되어 잇다. 그것은 이것들 역시 거친 기후에 강하고 많은 물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농업 외에 베들레헴과 'Beit Sahour', Beit Jala'는 경제적으로 다양한 공장 공업에 의존하고 있다. 이것은 'textile'과 `Beit Sahour'에 있는 국수 공장등의 식료 생산을 포함한다.베들레헴 지역은 성서 시대에 'Judea'의 언덕 마을로 불려던 곳에 위치해 있다. 이 'limestone'언덕은 단지 엷게 깔린 흙과 'vegetation'으로 덮여 있고, 이 돌은 중요한 자연 자원이 되어 왔다. 서북 뚝방의 최대의 채석장은 베들레헴 지역에 있다. `Beit Jala' 에 있는 slaggib 채석장은 장미석의 생산지로 유명하고 이돌은 탄생 교회 내부 기둥의 원석임이 확실하다. 오늘날 베들레헴 지역 채석장의 반 이상이 이스라엘로 수출된다. 다른 아랍 나라들, 특히 걸프만 지역의 나라들은 베들레헴 지역의 돌들을 그들의 건축물을 위해 채택하고 있다. 베들레헴 지역에서 가장 성공적인 산업 중 하나는 자개 만드는 것이다. 물룬 이것은 이 지역 본래의 산업이 아니다. 처음에는 주요 재료를 홍해에서 들여 왔지만 오늘 날에는 뉴질랜드로부터 들여오고 있다. 추측하기는 이런 예술적 기술이 14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온 프란시스 수도사들에 의해 소개되었다. 그 당시의 보편적인 것으로는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묵주, 십자가, 보석함 등이 있었다. 자개와 올리브 나무 가공산업은 오늘날 베들레헴을 찾는 수많은 순례객들과 관광업에 의해 발달되었다. 이 산업은 또한 수출의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베들레헴의 성탄절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태어난 시기와 날짜에 관해서는 여러 학자들 마다 견해가 다르지만 아무도 예수가 탄생하신 정확한 시기를 알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성서에 그 날짜가 명시되어 있지 않은 탓이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때가 차매" 라고 그 시기를 언급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순례자들에 의해 일년내내 성탄절을 축하하는 것이다. 초대 교회사에서 수많은 날짜들이 예수탄생일로 제시되었고 그것들 대부분은 봄과 가을중에 있었다. 기독교가 콘스탄틴 대제 통치하에 있을 때, 예수의 생애에 대하여 stpqn 사항들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남은 시기에 HELEN은 예수 탄생 교회를 건축하고 있었고, 그 탄신을 기념할 보편적인 날짜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로마시대에 그 날짜는 지금의 12월25일로 결정되었다. 그 이전부터 로마인들은 겨울에 태양이 (낮) 깊어지기 시작하는 이 시기를 일간 축하하였다. 이를 "Sol Invictus" 축제라 한다. 이는 그리스도가 세상의 빛이라고 여겨진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 첫 번 축제는 338년 로마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이 크리스마스의 시작이다. 그러나 동방정교회에서는 1월6일을 보편적인 성탄절로 기념하고 있었고,후에 아르메니아인들은 1월18일을 자신들의 성탄절로 기념하게 되었다. 특별히 이런 문제들은 상호간의 달력의 상이함에서 비롯되었다. 이런 이유로 베들레헴에서는 3차례의 주요 성탄 행사를 거행하게 되었다. (12월25일은 신.구교 교인들을 위해, 1월6일은 ORTHODOX 교회를 위해, 1월18일은 아르메니아인들을 위해) 천주교와 개신교 교회들은 12월24일성탄 이브를 기념하는데 오전11시에 몇몇 고위급 인사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라헬의 묘로 라틴 원로들을 만나러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긴 행렬과 경찰들이 원로들을 호위해서 구유광장(그리스도의 탄생교회)까지 이동된다. 오후 1시에 프란시스코 수도사들과 예복을 갖춘 신학생들이 몇몇 교회의 지도자들과 함께 동행한다. 그 밤 행사는 구유광장에서 캐롤( 전 세계에서 합창팀들이 참여 한다)과 촛불의식으로 이어진다. 그 밤 행사의 절정은 한 밤 중에 St.Catherine교회에서의 미사이다( 전 세계로 생 중계됨). 하지만 그 밤 내내 탄생동굴에서 작은 미사가 진행된다. ▶ 예수님의 탄생지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을 지니며, 아랍어로는 '푸줏간'이라는 의미로도 해석이 된다. 그것은 목축업이 활발했던 것과 양을 잡는 날에 행해지던 잔치 (삼상25: )에 그 기원이 있다. 또한 '에브라다'와 함께 병용하여 사용 (미05:2) 되기도 하였고 '에브랏' (창35:16, 19, (창48:7) 으로 언급되기도 하였다. 이곳은 다윗 왕의 고향 (롯01: , (삼상16: )이기도 하며,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 부은 곳 (삼상16:1)이며, 다윗의 우물 (삼하23:13 ~ 17)이 있던 곳이다. 에브라임 산지에 살고 있던 미가의 개인 제사장 레위 인의 고향 (사17:7 ~ 13), 사무엘은 왕에게 베들레헴을 하나님께 제사를 올리는 성지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르호보암 왕 때는 이곳에 요새가 쌓아졌고 (대하11:6), 한때 블레셋에 의해 점령되었고 (삼하23:14), 예수님의 탄생지로 예언되었고, 그 예언이 성취된 곳 (미05:2, (눅02:1 ~ 5, (마02:1~18, (요07:41~42) 인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남쪽 8 Km 떨어진 곳에 있다. 특히 감람나무가 많은 해발 700여 m 높이의 산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예수님탄생교회 (Church of the Nativity) 주후 135년 로마 황제 하드리안은 제2차 유태인 반란을 진압한 후 기독교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예수님 탄생 동굴 위에 아도니스 신전을 만들어 세워 놓는다. 그 후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틴 대제는 이 아도니스 신전을 철거하고 이곳에 예수님 탄생 교회를 건립한다. (주후 325년)이 교회는 주후 529년 비잔틴 제국에 반란을 일으켰던 사마리아 인들에 의하여 크게 손상을 입게 되지만 곧 이어 유스티니안 황제에 의해서 복원된다.(주후 565년) 현재의 건물은 십자군 시대의 예배당 모양을 보존하여 수리한 것이다. 탄생의 동굴은 성탄교회 내부 지하에 있다. 예배당의 모양은 십자가 모양의 건물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십자군 당시 교회를 보수할 때 입구의 높이를 1.2 m 정도로 낮추고 그 폭도 좁게 만들어 놓았다. 머리를 굽히고서야 교회에 출입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약탈자들이 말이나 마차를 타고 교회에 출입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방어적 성격을 지닌 것이다. 이로 인하여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은 자세를 낮추고 들어가서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주후 1100년 성탄절 날 볼드윈 1세는 십자군 시대의 예루살렘 왕으로서 그 즉위식을 이곳에서 가졌다. 주후 386년 제롬은 예수님 탄생교회 바로 옆에 있는 동굴에서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였다. 이때 번역한 불게이트(Vulgate) 성경이 지금까지 카톨릭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성경이다. 라헬의 무덤 이곳은 '라마'로 언급되기도 하는데 (에레미야 (렘31:장 15절), 무슬림, 기독교인, 특히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기념 장소이다. 야곱의 사랑을 받던 라헬의 무덤 (창35:19, (창48:7)은 헤브론 길에서 베들레헴 길로 꺾어지면서 곧바로 보이는 곳에 잘 보존되어 있어서 이곳을 찾는 유대인들을 늘상 보게 된다. 유대인들의 안식일이나 중요한 절기 때 이곳에서 기도하는 유대인들을 볼 수 있다. 그들도 죽은 성인이나 조상들을 숭배하는 풍습이 있다. 이 외부 건물 구조물은 1860년에 새로이 지어진 것이다. 이 무덤에 와서 기도하면 번성과 안전한 출산의 능력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이곳에서 기도하기도 한다. 간간이 세파르딤 파에 해당되는 유대인 여성들이 이곳에서 울면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 그들이 벧엘에서 발행하여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 길을 격한 곳에서 라헬이 임신하여 심히 신고 하더니 (창35:16) ※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창 35:19 ~ 20) ▶ Bethlehem 1 - (창35:19, (창48:7, (삿12:8, (삿17:7, (삿19:1, (룻01:1, (룻02:4, (룻04:11, (삼상16:4, (삼상17:12, (삼상20:6, (삼하02:32, (삼하23:14, (대상11:16, (대하11:6, (스02:21, (느07:26, (렘41:17, (마02:1,(눅02:4 lt=31.70536&ln=35.21026 ▶ Bethlehem 2 - (수19:15 lt=32.7353&ln=35.1897
42 발락(Palak, Balak, Balac)
인물
jesus
3494 5 2006-12-27
▶ 발락(Palak) 뜻:짓밟는 자 십볼의 아들이며 모압왕이다. 발람을 매수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했던 자 (민22:- (민23: (민24:), (수02:9), (삿11:25, (삿06:5), (계12:14). ▶ 발락 Balak, Balac. [Ba'lak, Ba'lac] King of Moab, son of Zippor, who sought to resist Israel in advancing to the promised land, and hired Balaam to curse them: he was taught by that false prophet to seduce Israel to idolatry by means of fornication with their women. Num. 22, 23, 24; Joshua 24:9; Judges 11:25; Micah 6:5. (민22:01- 발락의 계략과 발람의 초청 (민23:01- 발람의 신탁 (민24:01- 야곱의 별과 발람의 예언 (수24:9 때에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사람을 보내어 브올의 아들 발람을 불러다가 너희를 저주케 하려 하였으나 (삿11:25 이제 네가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보다 나은 것이 있느냐 그가 이스라엘로 더불어 다툰 일이 있었느냐 싸운 일이 있었느냐 (미06:5 내 백성아 너는 모압 왕 발락의 꾀한 것과 브올의 아들 발람이 그에게 대답한 것을 추억하며 싯딤에서부터 길갈까지의 일을 추억하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의 의롭게 행한 것을 알리라 하실 것이니라 --- Morrish Bible Dictionary ▶ 발락/이스라엘 저주 실패하자 뒤에서 우상숭배 조종 민수기 24장 10∼13절 발락은 「개통」 혹은 「백성을 파멸시키는 자」라는 뜻이다.발락은 십볼의 아들이며 모압왕이었다.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출발하여 광야에 이른 기적적인 사건과 아모리 백성에게 행한 사실을 듣고 이스라엘에 대한 공포심을 갖게 되었으며 미디안 장로들과 협의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할 방법을 연구하게 되었다. 그 계획이 선지자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여 승리를 얻고자 하는 모략이었다.첫째는 발람을 바알의 신당으로 인도하여 7제단을 쌓았으나 발람은 오히려 이스라엘을 축복하였다. 두번쩨는 비스가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진지 일부만 보게 하고 다시 7제단을 쌓고 저주를 요청했으나 발람이 또 축복하자 발락은 마음이 상하여 축복도 저주도 하지 말라고 역정을 내기도 하였다.세번째는 다시 브올산 꼭대기에서 7제단을 쌓고 저주하도록 부탁하였으나 계속 축복하자 발락이 화를 내며 발람에게 떠나라고 소리쳤다(민24:10∼13). 그후에도 발락은 마음을 바꾸지 아니하고 이방여인과 이스라엘 백성을 간음하게 하여 범죄케 하였으며 우상숭배를 통해 종교적인 죄를 짓게 하였다.이 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큰 진노를 사게 되어 염병으로 죽은 자가 2만4천명이나 되었다.발락의 악한 계획은 선민에게 하나님의 징계를 사게 하였고 종교적인 큰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그 대신 모압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교훈과 적용◁ 첫째,발락은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려다 패망하였다.남에게 축복을 빌자. 둘째,발락이 군사력보다 종교적으로 국난을 해결하려한 시도는 좋았으나 방법이 크게 잘못되었었다.<이병돈목사·은평교회>
41 미가(Micah)
인물
jesus
4083 5 2006-12-27
▶ 미가(Micah) 뜻:여호와와 같은이가 누구뇨 [1] 사사시대에 에브라임 산지에 살던 사람. 집안에다 은전 200을 들여 우 상을 만들어 놓고 레위인 나그네 한 사람을 제사장으로 삼았다. 후일 단 지파가 북쪽으로 이주할 때 제사장을 억지로 끌고 갔고 우상도 뺏어갔다(삿17:13). (삿18:) 이것이 단 지파의 성소의 유래가 되기도 한다(삿08:29-34). [2] 르우벤 지파의 한 족장(대상05:5). [3] 므비보셋의 아들(삼하09:12), (대상08:34). (대상09: [4] 웃시엘의 아들 고핫의 제사장(대상23:20). (대상24: [5] 압돈의 아비(왕하22:12), (대하34:20). [6] 이사야와 같은 시대의 예언자로 미가서의 저자. 블레셋 지경의 모라셋 출신(미01:1 (렘26:18 * 북극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직전부터 예언하여 그의 활동 기간은 주전 725-700경이다. ======== Micah. [Mi'cah] 1. A man of Mount Ephraim, whose history reveals the sad state of private life in Israel, as well as the mixture of idolatry with the name of Jehovah, early in the times of the Judges, Phinehas being still high priest. He had a house of gods, and made an ephod and teraphim, and consecrated one of his sons to act as priest. A wandering son of Levi finding his way to Micah's house was gladly received by him, treated as one of his sons, and became his priest. Then Micah said, "Now know I that the Lord will do me good, seeing I have a Levite to my priest." The Danites however, seeking a larger inheritance, sent spies to the north, who came near Micah's house, and knowing the voice of the Levite, asked him to inquire of God for them. He ventured to reply, "Go in peace: before the Lord is your way wherein ye go." A larger body of Danites afterwards came and carried away the gods of Micah, and the ephod and the teraphim, together with the Levite, and took them to the north, where they established themselves. Micah hastened after them, but could not recover his gods. There was no king in Israel, and every man did that which was right in his own eyes; and God, though nominally owned, was, alas, in reality ignored. Judges 17, Judges 18. 2. Son of Shimei, a descendant of Reuben. 1 Chr. 5:5. 3. Son of Merib-baal, or Mephibosheth, the grandson of Saul. 1 Chr. 8:34, 35; 1 Chr. 9:40, 41. Called MICHA in 2 Sam. 9:12. 4. Son of Zichri, or Zabdi, or Zaccur, a Levite. 1 Chr. 9:15. Apparently called MICHA in Neh. 11:17, 22; and MICHAIAH in Neh. 12:35. (느11: (느12: 5. Son of Uzziel, a Kohathite. 1 Chr. 23:20. Called MICHAH in 1 Chr. 24:24, 25. 6. Father of Abdon. 2 Chr. 34:20. Called MICHAIAH in 2 Kings 22:12. (왕하22: 7. The Morasthite, the prophet. Jer. 26:18; Micah 1:1. ======== Micha. [Mi'cha] 1. Son of Mephibosheth. 2 Sam. 9:12. Called MICAH, 1 Chr. 8:34, 35; 1 Chr. 9:40, 41. 2. A Levite, father of MATTANIAH. Neh. 11:17, 22. Called MICAH in 1 Chr. 9:15. 3. A Levite who sealed the covenant. Neh. 10:11. (느10: --- Morrish Bible Dictionary ------------------------------ ▶ 미가/하나님 섬기며 우상도 숭배 ◎집에 신상 차려놓고 미신적신앙 신봉/분별력 없이 축복만 좇다가 파멸 자초 사사기 17, 18장 미가는 「여호와와 같은 자가 누구냐」는 뜻이다. 미가는 에브라임 산지에 살았던 평번한 백성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조교심이 강하고 축복에 대한 관심이 특별한 사람이었다. 한번은 어머니의 돈 은 천백개를 훔쳤다가 그 어머니가 훔친 자에 대해 저주를 하자 저주가 두려워 어머니에게 내어놓고 자복한 일도 있었다. 그 때에 그 어머니는 그 돈을 하나님께 드렸고 남은 이백으로 아들을 위해 신산을 부어 만들었다. 이것은 축복을 열망하는 미가의 마음을 도와주려는 노력이었으나 우상을 만드는 죄를 범했다. 이와같이 미가는 하나님도 섬기면서 자기집에 신당을 차려놓고 신상과 제사장의 에봇과 드라빔을 안치했다. 자기 아들을 통해 제사직을 대행할 만큼 분별없이 축복을 사모했다. 이는 정당한 신앙이 아니라 미신적인 신앙이었다. 또한 미가는 베들레헴에서 자기 거할 곳을 얻고자 에브라임 산지에 찾아온 레위 소년을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벌과 식물을 주고 자기아들같이 돌보며 가정 제사장으로 삼기도 하였다. 축복과 은혜를 사모하는 연심은 대단하였으나 미가의 행위는 하나님께 죄를 더하는 큰 실수를 범한 것이다. 그후에 단 지파가 라이스 지역을 정복할 때 미가의 집에서 신상과 우상과 에봇과 드라빔을 탈취했고 레위 소년 제사장까지 납치하여 미가의 미신적인 신앙의 꿈은 다 깨지고 말았다. ▷교훈과 적용◁ 첫째,미가와 같이 열심이나 종교심이 강한 것도 좋지만 잘못된 열심은 죄를 가중시킨다. 둘째,축복을 사모하되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한다.진정한 축복은 하나님께 있다.<이병돈목사·은평교회> ▶ 미가 2 /자기헌신으로 “충실한 사역” ◎시대요구 부응한 정직한 예언가 성경:미가 1∼7장 (미01: (미02: (미03: (미04: (미05: (미06: (미07: 미가는 「여호와의 같은 자가 누구냐」는 뜻이다. 미가는 소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었고 소선지서 미가의 저자이다. 미가는 가드지역의 모레셋 사람으로 농촌출신이었다. 그이 선지 활동은 유다의왕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시대를 거치며 사역한 하나님의 종이었다. 따라서 미가는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와 같은 시대의 선지자였다. 이사야는 귀족출신의 선지자인데 반해 미가는 서민출신의 선지자로 대조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당시 백성들의 죄와 종교적인 타락으로 유다의 멸망과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을 지속적으로 담대하게 선포한 것은 참으로 훌륭한 사역이 아닐 수 없다. 미가는 한 선지자로 시대적인 예언에 대해 목숨버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시대의 죄를 지적하고 백성을 권고하는데 예언자적 사명을 충실히 감당한 하나님의 종이었다. 미가와 같이 선지자로 선택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사역에 대한 지식을 정확히 안다는 것은 더 중요하고, 백성의 죄와 교회와 교회지도자들의 죄에 대해 보고 느끼고 깨달아진 실상을 정직하게 지적한다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미가는 이런 면에서 자신과 하나님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었다. 미가 선지자의 또 다른 증거는 베들레헴에서 메시야가 탄생할 것에 대한 예언이었다(미5:2). 이 예언은 예수님의 메시야이심에 대한 다른 많은 예언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는 예언중의 예언이다. ▷교훈과 적용◁ 첫째,미가와 같이 자기소명과 자기사명과 자기헌신에 충성되어야 한다.자기일을 찾자. 둘째,미가는 죄를 책망하는데는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았다.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직한 예언자가 되자.<이병돈목사·은평교회>
40 아둘람(Adulam, Adullam)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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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1646 4 2006-12-30
▶ 아둘람(Adulam, Adullam) 뜻: 피난처 (1) 옛날 유다의 친구 히라의 고향(창38:1). (2) 가나안 31 성중의 하나로 유다 지파의 소유(수12:15,(수15:35). (3) 이 성 부근에 회석벽의 굴이 많아 다윗이 사울왕을 피하여 이 굴에 숨었을 때 그의 친구와 가족들이 찾아 왔다(삼상22:1-2) (대상11:15). (4) 다윗의 용상 3인이 이곳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베들레헴 우물물을 길어왔고 (삼상23:14-17, 대상11:15-19). (5) 르호보암이 건축한 국방성 중의 하나(대하11;7). (6) 바벨론에서 귀환 후에 다시 유다 족속이 거주하였다(느11:30). (7) (미01:15) ======== Adullam. [Adul'lam] One of the royal cities of Canaan, afterwards part of Judah's lot. Joshua 12:15; Joshua 15:35. It was rebuilt or fortified by Rehoboam, 2 Chr. 11:7 ; and was dwelt in by some who returned from exile. Neh. 11:30; Micah 1:15. Identified with Aid-el-ma, a name similar to Adullam, 31 39' N, 35 E. More interest attaches to the CAVE OF ADULLAM than to the city, because of its having been a stronghold of David. In the locality of the place named above there are limestone cliffs, in which are extensive excavations, one of which may have been David's cave of Adullam. This is in the low country and all David's house went down from the hills of Bethlehem to him. 1 Sam. 22:1. The traditional site is a cave in the Wady Khureitun on the east part of Judah. It is approached by a narrow footpath (now partly blocked up by a fallen rock) which could easily be defended, and the cave is very large. Both this and other caves near where the city of Adullam was located are by different travellers strongly advocated as the true site. The 'Cave of Adullam' has become a proverbial expression for a refuge in distress, because there gathered to David, besides his relatives, "every one that was in distress, and every one that was in debt, and every one that was discontented," or bitter of soul, and he became their captain. 1 Sam. 22:1, 2; 2 Sam. 23:13; 1 Chr. 11:15. David was God's anointed king, and the prophet Gad went to him, and Abiathar the priest; so that with that outcast company were God's prophet, priest, and king, though all the outward forms of worship were elsewhere: typical of the Lord Jesus in His rejection. When on earth the outward forms were not with Him; and now that He is in glory His virtual rejection is still as complete even by some in Christendom. --- Morrish Bible Dictionary Josh 12:15, Josh 15:35, 1 Sam 22:1, 2 Sam 23:13, 1 Chr 11:15, 2 Chr 11:7, Neh 11:30, Mic 1:15 lt=31.65&ln=35.0
39 바벨론(Babylon, Babylonia)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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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5533 4 2006-12-30
▶ 바벨론(Babylon, Babylonia) 뜻:혼란케 하다 국명 겸 도시의 이름으로 로마인들이 부르던 갈대아 인의 영토(렘24:5, (렘25:2, (겔12:13). (1) 함의 손자 니므릇이 건설한 나라로서 시날 평원인듯하다(창10:10, (창11:2). (2) 느부갓네살 왕때에 국력이 강성하여 유대국을 멸하고 국민을 포로로 잡아갔다(왕하25:8-12). (3) 다니엘과 세 청년이 그때에 왕궁에서 시종하였다(단01:7). * 국토는 장360마일, 광90마일의 대평원으로 동은 티그리스강, 서는 아라 비아 사막, 남은 페르샤 바다 북은 앗수르국으로 땅이 비옥하고 기후가 열대성에 속하여 1년2회 수확을 한다. 바벨론성은 주위 54마일, 높이 300 척,폭75척, 성곽은 2중, 성문은 100개인데 모두 구리로 만들었다. 홍수후에 쌓은 바벨탑이 이곳에 있다. 바벨론 성 발굴 신바빌로니아의 수도인 바벨론 성이 현대 이라크 수도인 바그다드 남쪽 60마일 지점에서 발굴되었다. 1899년부터 1917년에 이르기까지 거의 20년간 로버트 콜더베이(Robert Koldewey)교수는 독일 동방학회의 사업으로 바벨론 성을 발굴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사13:20-21, (사14:1; (렘51:37) 지금은 폐허로 남아 있다. "오직 들짐승이 거기 엎드리고 부르짖는 짐승이 그 가옥에 충만하며 타조가 거기 깃들이며 들양이 거기서 뛸 것이며 그 궁성에는 시랑이 부르짖을 것이요 화려한 전에는 들개가 울 것이라"(사 13:21, 22) 발굴 결과 바벨론 성의 규모는 내외 전장(全長)이 15마일 정도이고, 느부갓네살 이후의 전 도성의 둘레는 하궁에서 옛 왕궁까지 유프라테스강 전면을 포함해서 10마일 정도였다. 강 동편의 내성을 두른 2중 성벽은 바깥 것이 22피트, 안의 것은 12피트였다. 바벨론 전 성읍을 바깥으로 두른 성벽 역시 2중 성벽인데 바깥 것은 26피트, 안의 것은 24피트였다. 폐허 중에 제일 높은 부분이 이슈타 게이트로서 48피트 가량이다. 본래 성안에서 제일 높은 건축물은 300피트 가량의 신전 탑 '에테메난키'(Etemenanki)였다. 그 폐허에서는 느부갓네살의 이름과 직위가 찍혀진 평방 12인치 반의 벽돌이 발굴되었다. 가장 높은 건물은 주문(主門)인 이슈타 게이트인데 그 성문의 벽돌에는 바벨론을 상징하는 용의 머리, 사자의 몸, 독수리 뒷 발톱을 가진 복합 짐승이 문각되어 있어 다니엘 7장의 표상을 실감나게 하고 있다. 다니엘의 세 동무가 던져졌던 풀무는 벽돌 굽는 가마였다. 원추형으로 생긴 이 가마속에 진튊 벽돌을 쌓고 원유와 짚 또는 겨를 섞어 연료로 사용했다. 다니엘 3장에서 분노한 왕이 7배나 뜨겁게 하라던 것은 원유가 섞인 연료를 7배만 더 넣으면 된다. 또 우상이 세워졌던 '두라 평지'(단03:1)는 지금의 힐라 언덕 5마일 아래에서 유프라테스 강으로 들어가는 한 지류의 입구에 있는 '나르 두라'(Nahr Dura)이다. 다니엘 6장의 사자굴은 고대 제국의 왕들이 스포츠로 사자 사냥을 위하여 사자를 가둬 두었던 곳이다. 이와 같은 사자굴은 앗시리아 여러 곳에서 발굴되었다. 사자굴을 인봉할 때는 그 입구를 돌로 맞고 그 둘레를 젖은 석회로 바른 뒤 원통 모양으로 문각된 도장을 굴려서 직사각형의 인상(印象)을 남겨 아무도 뜯지 못하게 했다. 다니엘 5장에서 벨사살이 마지막 잔치를 했던 큰 홀은 느부갓네살이 지은 남궁에 있다. 그곳 중앙에는 보좌가 있는 넓은 방이 있는데 길이가 173피트, 넓이 57피트, 높이 66피트이다 (신계훈, 조대연, 고고학과 성서 배경, 134-140 참조). ▶ 바벨론 Babylon. [Bab'ylon] Nimrod's BABEL was doubtless in some way connected with the renowned city of Babylon and of the kingdom of which it was the capital. The Hebrew is Babel, the same for Babel and Babylon. In Gen. 11:2, it speaks of Babel being built in a plain in the land of Shinar, which they reached by travelling from the east; this reads in the margin travelling 'eastward,' a reading preferred by many and by the Revisers. This direction agrees well with the locality of Babylon on the river Euphrates. (창11:2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Historians speak of the great size of the city, though they are not agreed as to its dimensions. It had 25 gates on each side, and from the gates were streets which crossed one another at right angles. The houses were not built close together, so that there was ample room inside the city for gardens and even fields and vineyards. The walls were said to be 75 feet thick and 300 feet in height; and the gates were of brass. The river Euphrates ran through the city; but on the banks of the river strong walls were built with gates of brass; there was also a bridge from side to side near the centre of the city. A lake was formed outside the city into which the waters of the river could be turned when the water rose too high, and deep ditches filled with water surrounded the walls of the city. We also read of 'hanging gardens' which Nebuchadnezzar built for his wife Amyitis, or Amyhia, daughter of a Median king, to give the place a measure of resemblance to the mountains and wooded hills of her native country. These gardens are supposed to have been built in terraces of different heights. In several particulars scripture corroborates the statements of the historians. In Jer. 50:11 of Babylon it is said, 'O ye destroyers of mine heritage, because ye are grown fat as the heifer at grass, and bellow as bulls;' its broad walls are mentioned, Jer. 51:12, 58; its gates of brass and bars of iron, Isa. 45:2; and Nebuchadnezzar boasted of the 'great Babylon' which he had built by the might of his power and for the honour of his majesty. Dan. 4:30. (렘50:11 나의 산업을 노략하는 자여 너희가 즐거워하며 기뻐하며 곡식을 가는 송아지 같이 뛰며 힘센 말 같이 울도다 (렘51:12, 58 12 바벨론 성벽을 향하여 기를 세우고 튼튼히 지키며 파숫군을 세우며 복병을 베풀어 방비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바벨론 거민에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경영하시고 행하심이로다 58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의 넓은 성벽은 온전히 무너지겠고 그 높은 문들은 불에 탈 것이며 백성들의 수고는 헛될 것이요 민족들의 수고는 불탈 것인즉 그들이 쇠패하리라 하시니라 (사45:2 내가 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케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단04:30 나 왕이 말하여 가로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Among the relies recovered from the various mounds of ruins are some bricks with the names of the kings Neriglissar and Labynetus stamped upon them, but the great majority of those found bear the name of Nebuchadnezzar. Babylon was built with bricks, there being no stone at all near, and in later years the mounds were ransacked for bricks for other cities. Of the early governments in Babylon but little is known with certainty. Berosus, as arranged by Rawlinson, gives from B.C. 2458 to 625 various dynasties of Medes, Chaldaeans, Arabs, and Assyrians; and lastly Babylonians from B.C. 625 to 538. Babylon and Assyria are much blended together in history, sometimes being independent one of the other, and at other times being tributary to one another. In B.C. 745 Tiglath-pileser may be said to have founded the later kingdom of Assyria, and among his victories he became master of Babylonia, as the kingdom of Babylon was called. About 721 Merodachbaladan became king of Babylon, and in 712 he sent ambassadors to Hezekiah on hearing of his sickness. This is recorded in 2 Kings 20:12, where he is called Berodach-baladan. In B.C. 702 Sennacherib king of Assyria expelled Merodach, and Babylon was governed by viceroys from Assyria. In B.C. 681 Esar-haddon became king of Assyria but held his court at Babylon, to which place Manasseh king of Judah was carried prisoner about B.C. 677. 2 Chr. 33:11. About B.C. 625 Nabo-polassar revolted from the king of Assyria and established the later kingdom of Babylon. He with Cyaxares (the Ahasuerus of Dan. 9:1) founder of the Median kingdom, attacked and took Nineveh, and put an end to the Assyrian rule. Nebuchadnezzar, co-regent with Nabo-polassar, took Jerusalem, and carried many captives and the holy vessels to Babylon, about B.C. 606. In B.C. 604 Nabo-polassar died and Nebuchadnezzar reigned alone. In B.C. 603 Jehoiakim revolted and in 599 Nebuchadnezzar again took Jerusalem, and Ezekiel was carried to Babylon: this is called the great captivity. 2 Kings 24:1-16. Mattaniah was left as king in Jerusalem, his name being changed to Zedekiah: he reigned 11 years. 2 Kings 24:17-20. Having rebelled against Babylon, Nebuchadnezzar, after a siege of eighteen months, once more took Jerusalem, destroyed the city and burnt the house of the Lord, bringing the kingdom of Judah to an end: B.C. 588. 2 Kings 25:1-26. For the personal history of the king see NEBUCHADNEZZAR. In B.C. 561 Nebuchadnezzar died. He was the 'head of gold' in Daniel's great image. The glory of the later Babylonian Empire virtually began and ended with him. The succession of kings was somewhat as follows: (왕하20:12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저에게 보낸지라 (대하33:1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장관들로 와서 치게 하시매 저희가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 간지라 (단09:1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왕하24:1-16 바벨론의 침략과 포로됨 (왕하24:17-20 왕하 24:17 바벨론 왕이 또 여호야긴의 아자비 맛다니야로 대신하여 왕을 삼고 그 이름을 고쳐 시드기야라 하였더라 18 시드기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일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립나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19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20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진노하심이 저희를 그 앞에서 쫓아 내실 때까지 이르렀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 (왕하25:1-26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 후 KINGS OF BABYLON. B.C. 625 Nabo-polassar. 606 Nebuchadnezzar, co-regent. 604 Nabo-polassar dies. Nebuchadnezzar reigns alone. 561 Evil-Merodach succeeds. He raises up Jehoiachin in the 37th year of his captivity. 2 Kings 25:27. 559 Neriglissar succeeds. Perhaps the same as one of the princes called Nergal-sharezer in Jer. 39:3, 13. 556 Laborosoarchod succeeds. Reigned 9 months and is slain. 555 Nabonidus or Nabonadius (also called Labynetus), a usurper: Belshazzar his son afterwards reigning with him. 538 Babylon taken, and Belshazzar slain. End of the Empire of Babylon. (왕하25:27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지 삼십 칠년 곧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의 즉위한 원년 십 이월 이십 칠일에 유다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렘39:3, 13 3 바벨론 왕의 모든 방백이 이르러 중문에 앉으니 곧 네르갈사레셀과 삼갈르보와 환관장 살스김과 박사장 네르갈사레셀과 바벨론 왕의 기타 모든 방백들이었더라 13 이에 시위대장 느부사라단과 환관장 느부사스반과 박사장 네르갈사레셀과 바벨론 왕의 모든 장관이 Babylon has a large place in the O.T. with reference to its intercourse with Israel, in nearly every chapter of Jeremiah, from 20 - 52, Babylon is mentioned. Babylon is also of note as being the first of the four great empires prophesied of by Daniel. The kingdom of the Lord, established in the house of David, and maintained in Judah, had for the time come to an end because of iniquity, and the 'times of the Gentiles' had begun.* Of Nebuchadnezzar it was said, "Thou, O king, art a king of kings: for the God of heaven hath given thee a kingdom, power, and strength and glory . . . . Thou art this head of gold." Dan. 2:37, 38. Babylon was God's instrument by which Judah was punished; and then because of the pride and wickedness of the king of Babylon he also was brought under the rod of the Almighty. (단02:37, 38 37 왕이여 왕은 열왕의 왕이시라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 38 인생들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 어느 곳에 있는 것을 무론하고 그것들을 왕의 손에 붙이사 다 다스리게 하셨으니 왕은 곧 그 금머리니이다 * The times of the Gentiles will end when the power returns to Judah, the house of David, in the person of the Lord Jesus. The destruction of Babylon was fully foretold in scripture, though some of these prophecies may refer also to still future events, namely, the overthrow by the Lord (typified by Cyrus) of the last holder of Nebuchadnezzar-like authority, namely, the beast, the last head of the revived Roman empire. Isa. 13:6-22; Isa. 14:4-23; Isa. 21:2-9; Isa. 47:1-11; Jer. 25:12-14 and Jer. 50, 51. Its downfall was unexpected. For 24 years after the death of Nebuchadnezzar Babylon continued the seat of the imperial court. In B.C. 538 the city was taken in a remarkable way. A night was chosen when the inhabitants were about to hold a festival, when the whole city would be given up to drunkenness and debauchery. The water of the river was diverted from its bed so as to render it shallow enough to let the troops pass along. The gates were found open, and the city was taken. (사13:6-22; 바벨론의 고통과 황폐 (사14:4-23; 바벨론 멸망에 대한 예언 (사21:2-9; 바벨론에 대한 예언 (사47:1-11; 바벨론 멸망 선포 (렘25:12-14 1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칠십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되 13 내가 그 땅에 대하여 선고한바 곧 예레미야가 열방에 대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니 14 여러 나라와 큰 왕들이 그들로 자기 역군을 삼으리라 내가 그들의 행위와 그들의 손의 행한 대로 보응하리라 하시니라 (렘50: 바벨론이 받을 심판과 멸망과 이스라엘 구원 (렘51: 우상숭배에 어리석음과 바벨론을 멸하시는 하나님 This also was prophesied of in scripture: it specifies that Cyrus was God's shepherd, and He had holden him to subdue nations: God would loose the loins of kings to open before him the two-leaved gates; and the gates should not be shut: the gates of brass should be broken, and the bars of iron be cut asunder. Isa. 45:1, 2. Again the suddenness and unexpectedness of the attack is also mentioned: "evil shall come upon thee; thou shalt not know from whence it riseth: and mischief shall fall upon thee; thou shalt not be able to put it off: and desolation shall come upon thee suddenly, which thou shalt not know." Isa. 47:11. We also find that it was on the night of the revelry of Belshazzar's feast that the king was slain. Dan. 5:30. (사45:1, 2 1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 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고레스에게 이르기를 2 내가 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케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사47:11 재앙이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그 근본을 알지 못할 것이며 손해가 네게 이르리라 그러나 이를 물리칠 능이 없을 것이며 파멸이 홀연히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헤아리지 못할 것이니라 (단05:30 그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The monuments show that Babylon was taken by Gobryas the general of Cyrus, and that the capture of the city was, as some think, aided by treachery among its inhabitants. Dan. 5:31 says, "Darius the Median took the kingdom." This king has not been found mentioned by name on the monuments, but he is well accredited as king in Daniel. He was probably ASTYAGES, who was a Median king. He had been conquered by Cyrus, who may have found it to his advantage to let him reign at Babylon as long as he lived. Astyages being a Mede and Cyrus a Persian agree with the second great empire being called by the two names. Persia gained the ascendancy, and Babylon was a royal residence during part of the year. There were occasional revolts, in the putting down of which the city was more and more destroyed. In the year B.C. 478 Xerxes returning from his inglorious invasion of Greece passed through the city, robbed the temple of Belus of its wealth and left its lofty towers a heap of ruins. In B.C. 324 Alexander the Great attempted to rebuild that edifice, and employed 10,000 men; but his sudden death, before the ruins had been cleared away, left it still in desolation. (단05:31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때에 다리오는 육십 이세였더라 Scripture is very decisive as to the utter destruction of the city: "Babylon, the glory of kingdoms, the beauty of the Chaldees' excellency, shall be as when God overthrew Sodom and Gomorrah. It shall never be inhabited, neither shall it be dwelt in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neither shall the Arabian pitch tent there; neither shall the shepherds make their fold there: but wild beasts of the desert shall lie there, and their houses shall be full of doleful creatures; and owls shall dwell there, and satyrs shall dance there. And the wild beasts of the islands shall cry in their desolate houses, and dragons in their pleasant palaces." Isa. 13:19-22. (사13:19-22. 19 열국의 영광이요 갈대아 사람의 자랑하는 노리개가 된 바벨론이 하나님께 멸망 당한 소돔과 고모라 같이 되리니 20 그곳에 처할 자가 없겠고 거할 사람이 대대에 없을 것이며 아라비아 사람도 거기 장막을 치지 아니하며 목자들도 그곳에 그 양떼를 쉬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 21 오직 들짐승들이 거기 엎드리고 부르짖는 짐승이 그 가옥에 충만하며 타조가 거기 깃들이며 들 양이 거기서 뛸 것이요 22 그 궁성에는 시랑이 부르짖을 것이요 화려한 전에는 들 개가 울 것이라 그의 때가 가까우며 그의 날이 오래지 아니하리라 Now vast mounds extend for miles. If Hillah (about 32 27' N, 44 25' E) be taken as a centre, the mounds extend northward about 3 miles. About 6 miles S.W. of Hillah stands the celebrated heap known as Birs Nimrood, supposed to be the site of the ancient temple of Belus. There are three large piles on the east of the river: the Mujelibe or Mukallibe, the Kasr or palace, and the Amran. The moral features of Babylon were idolatrous corruption and worldliness, which will be seen in full manifestation in Babylon the Great. It is the place where the people of God get into captivity through dalliance with the world. In the N.T. Babylon is mentioned in 1 Peter 5:13. There is evidence in Josephus that there were many Jews in the district forty years after Christ. On the occasion of the gathering at Jerusalem in Acts 2:9-11 mention is made of the Parthians, Medes and Elamites; and when Peter commences his epistle, supposing he was in the district of Babylon, he naturally puts Pontus first and then passes on to Galatia, Cappadocia, Asia, and Bithynia. There can be no reason therefore to doubt that the ancient district of Babylon is alluded to by Peter, where, through God's grace, there were some of the 'elect.' (벧전05:13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행02:9-11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 Morrish Bible Dictionary ●Babylon - (왕하17:24, (왕하20:12, (왕하24:1, (왕하25:1, (대상09:1, (대하32:31, (대하33:11, (대하36:6, (스02:1, (스05:12, (스06:5, (느07:6, (느13:6, (에02:6, (시087:4, (시137:1, (사13:1, (사14:4, (사21:9, (사39:1, (사43:14, (사47:1, (사48:14, (렘20:4, (렘21:2, (렘22:25, (렘24:1, (렘25:1, (렘27:6, (렘28:2, (렘29:1, (렘32:2, (렘34:1, (렘35:11, (렘36:29, (렘37:1, (렘38:3, (렘39:1, (렘40:1, (렘41:2, (렘41:18, (렘42:11, (렘43:3, (렘43:10, (렘44:30, (렘46:2, (렘49:28, (렘50:1, (렘51:1, (렘52:3, (겔12:13, (겔17:12, (겔19:9, (겔21:19, (겔24:2, (겔26:7, (겔29:18, (겔30:10, (겔32:11, (단01:1, (단02:12, (단03:1, (단04:6, (단05:7, (단07:1, (미04:10, (슥02:7, (슥06:10, (마01:11, (행07:43, (벧전05:13, (계14:8, (계16:19, (계17:5, (계18:2 2 Kgs 17:24, 2 Kgs 17:30, 2 Kgs 20:12, 2 Kgs 20:14, 2 Kgs 20:17, 2 Kgs 20:18, 2 Kgs 24:1, 2 Kgs 24:7, 2 Kgs 24:10, 2 Kgs 24:11, 2 Kgs 24:12, 2 Kgs 24:15, 2 Kgs 24:16, 2 Kgs 24:17, 2 Kgs 24:20, 2 Kgs 25:1, 2 Kgs 25:6, 2 Kgs 25:7, 2 Kgs 25:8, 2 Kgs 25:11, 2 Kgs 25:13, 2 Kgs 25:20, 2 Kgs 25:21, 2 Kgs 25:22, 2 Kgs 25:23, 2 Kgs 25:24, 2 Kgs 25:27, 2 Kgs 25:28, 1 Chr 9:1, 2 Chr 32:31, 2 Chr 33:11, 2 Chr 36:6, 2 Chr 36:7, 2 Chr 36:10, 2 Chr 36:18, 2 Chr 36:20, Ezra 2:1, Ezra 5:12, Ezra 5:13, Ezra 5:14, Ezra 5:17, Ezra 6:5, Neh 7:6, Neh 13:6, Est 2:6, Ps 87:4, Ps 137:1, Ps 137:8, Isa 13:1, Isa 13:19, Isa 14:4, Isa 14:22, Isa 21:9, Isa 39:1, Isa 39:3, Isa 39:6, Isa 39:7, Isa 43:14, Isa 47:1, Isa 48:14, Isa 48:20, Jer 20:4, Jer 20:5, Jer 20:6, Jer 21:2, Jer 21:4, Jer 21:7, Jer 21:10, Jer 22:25, Jer 24:1, Jer 25:1, Jer 25:9, Jer 25:11, Jer 25:12, Jer 25:26, Jer 27:6, Jer 27:8, Jer 27:9, Jer 27:11, Jer 27:12, Jer 27:13, Jer 27:14, Jer 27:16, Jer 27:17, Jer 27:18, Jer 27:20, Jer 27:22, Jer 28:2, Jer 28:3, Jer 28:4, Jer 28:6, Jer 28:11, Jer 28:14, Jer 29:1, Jer 29:3, Jer 29:4, Jer 29:10, Jer 29:15, Jer 29:20, Jer 29:21, Jer 29:22, Jer 29:28, Jer 32:2, Jer 32:3, Jer 32:4, Jer 32:5, Jer 32:28, Jer 32:36, Jer 34:1, Jer 34:2, Jer 34:3, Jer 34:7, Jer 34:21, Jer 35:11, Jer 36:29, Jer 37:1, Jer 37:17, Jer 37:19, Jer 38:3, Jer 38:17, Jer 38:18, Jer 38:22, Jer 38:23, Jer 39:1, Jer 39:3, Jer 39:5, Jer 39:6, Jer 39:7, Jer 39:9, Jer 39:11, Jer 39:13, Jer 40:1, Jer 40:4, Jer 40:5, Jer 40:7, Jer 40:9, Jer 40:11, Jer 41:2, Jer 41:18, Jer 42:11, Jer 43:3, Jer 43:10, Jer 44:30, Jer 46:2, Jer 46:13, Jer 46:26, Jer 49:28, Jer 49:30, Jer 50:1, Jer 50:2, Jer 50:8, Jer 50:9, Jer 50:13, Jer 50:14, Jer 50:16, Jer 50:17, Jer 50:18, Jer 50:23, Jer 50:24, Jer 50:28, Jer 50:29, Jer 50:34, Jer 50:35, Jer 50:39, Jer 50:42, Jer 50:43, Jer 50:45, Jer 50:46, Jer 51:1, Jer 51:2, Jer 51:6, Jer 51:7, Jer 51:8, Jer 51:9, Jer 51:11, Jer 51:12, Jer 51:24, Jer 51:29, Jer 51:30, Jer 51:31, Jer 51:33, Jer 51:34, Jer 51:35, Jer 51:37, Jer 51:41, Jer 51:42, Jer 51:44, Jer 51:47, Jer 51:48, Jer 51:49, Jer 51:53, Jer 51:54, Jer 51:55, Jer 51:56, Jer 51:58, Jer 51:59, Jer 51:60, Jer 51:61, Jer 51:64, Jer 52:3, Jer 52:4, Jer 52:9, Jer 52:10, Jer 52:11, Jer 52:12, Jer 52:15, Jer 52:17, Jer 52:26, Jer 52:27, Jer 52:31, Jer 52:32, Ezek 12:13, Ezek 17:12, Ezek 17:16, Ezek 17:20, Ezek 19:9, Ezek 21:19, Ezek 21:21, Ezek 24:2, Ezek 26:7, Ezek 29:18, Ezek 29:19, Ezek 30:10, Ezek 30:24, Ezek 30:25, Ezek 32:11, Dan 1:1, Dan 2:12, Dan 2:14, Dan 2:18, Dan 2:24, Dan 2:48, Dan 2:49, Dan 3:1, Dan 3:12, Dan 3:30, Dan 4:6, Dan 4:29, Dan 4:30, Dan 5:7, Dan 7:1, Mic 4:10, Zech 2:7, Zech 6:10, Matt 1:11, Matt 1:12, Matt 1:17, Acts 7:43, 1 Pet 5:13, Rev 14:8, Rev 16:19, Rev 17:5, Rev 18:2, Rev 18:10, Rev 18:21 lt=32.536&ln=44.421 ●Babylonia - (스01:11, (스02:1, (스05:12, (스06:1, (스07:6,9,16, (스08:1 Ezra 1:11, Ezra 2:1, Ezra 5:12, Ezra 6:1, Ezra 7:6, Ezra 7:9, Ezra 7:16, Ezra 8:1 lt=32.536&ln=44.421
38 에브랏, 에브라다(Ephrath, Ephrathah)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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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4257 3 2007-01-02
▶ 에브랏(Ephrath, Ephrathah) (1) 베들레헴의 옛이름인데 야곱의 애처 라헬이 베냐민을 낳고 죽은 후 이곳에 장사하였다(창35:19, (창48:7). (2) 보아스가 룻을 취하여 아내를 삼았을 때 이 성의 장로와 백성들이 축복 하였다(룻04:11). (룻04:11 -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시132:6 - 우리가 그것이 에브라다에 있다 함을 들었더니 나무 밭에서 찾았도다 ======== ▶ 에브랏, 에브라다 Ephratah [Eph'ratah], Ephrath. [Eph'rath] Ancient name of Bethlehem-judah. Gen. 35:16, 19; Gen. 48:7; Ruth 4:11; Ps. 132:6; Micah 5:2. (창35:16, 19; 에브랏 (창48:7; (룻04:11; (시132:6; 에브라다 (미05:2. --- Morrish Bible Dictionary lt=31.70536&ln=35.21026
37 앗수르(Assyria, Asshur) 파일
지명
jesus
4976 3 2007-01-02
▶ 앗수르(Assyria, Asshur) 북부 이라크 티그리스 강 기슭 고대 메소보다미아 왕국들 중의 하나로 남방 왕국인 바벨로니아가 바그다드와 페르샤만 사이의 평지를 차지한 반면에 앗수르는 대체로 서쪽으로 평지를 차지한 반면에 앗수르는 대체로 서쪽으로 시리아 사막과 남쪽으로 베벨로니아와 북쪽과 동쪽으로 아르메니아 및 페르샤 산과 접경을 이루었다. 앗수르는 셈의 아들로(대상01:17) 족장 시대 이전에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바벨론 북쪽에 고대 왕국을 세우고 중동 지방에서 정치적인 활약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앗수르의 세력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유능한 왕이었던 다윗 왕 시대에 극도로 쇠약해 있었다. 그 후 앗수르는 수도 니느웨를 중심으로 점차 그 세력이 강해지기 시작하였고 특히 북 왕국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물론 그 세력이 다소 약화되었던 여로보암 2세와 웃시야 왕 때에 이스라엘은 어느 정도의 힘을 발휘하여 자유를 찾아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기도 하였지만 앗수르 제국의 재건을 시도한 디글랏 빌레셋 3세와 뒤를 이은 살만에셀 5세의 공격으로, 결국 이스라엘은 멸망하여 그의 속국이 되었고 그들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왕하17:6). 앗수르의 세력은 주전 8세기에 황금 시대를 이루었으나 그 후 주전 612년에 신 바벨론에 의한 수도 니느웨의 함락과 동시에 멸망되었다 ▶ Paintings Assyria, Assuerus The Assyrian Empire / Assuerus --->▶ Esther ▶ Asshur (민24:22, (민24:24, (시083:8, (겔27:23 Num 24:22, Num 24:24, Ps 83:8, Ezek 27:23 lt=36.359&ln=43.152 ▶ 앗수르 Assyria. [Assy'ria] The great kingdom of Assyria was situated near the river Tigris, having Armenia on the North, Mount Zagros and Media on the east, Babylonia on the south, Syria and the Syrian desert on the west; but its boundaries were doubtless not always the same. Nineveh became its capital. The first allusion to Assyria is found in Gen. 2:14, where we read that one of the rivers of Paradise went "toward the east of Assyria," or "went eastward to Assyria," margin. (창02:14 세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네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The name of Assyria appears to have arisen from its first capital, Asshur (now called Kalah Sherghat) on the Tigris. Apparently a monarchy was established there by some from Babylonia, and there were several kings before SHALMANESER I. (about B.C. 1300), whose family kept the throne for six generations until TIGLATH-PILESER I. (about B.C. 1130), who may be said to be the founder of the first Assyrian Empire. He beautified Nineveh and carried his arms in various directions. After him the kingdom became feeble until RIMMON-NIRARI II., B.C. 911, but his victorious career was excelled by his grandson, the great ASSUR-NATSIR-PAL, B.C. 883, who made conquests over the Phoenicians and the 'Kaldu' (Chaldeans). SHALMANESER II succeeded, B.C. 858. He carried his arms still farther. We have his conquests told by himself on three monuments in the British Museum, one of which is known as the Black Obelisk. If the names are correctly interpreted he mentions as allied against him Benhadad king of Syria and Ahab king of Israel. These were defeated at the battle of Karkar, B.C. 853. Hazael of Damascus was also defeated; and from Yahua, the son of Khumri, that is, Jehu, whom he incorrectly calls son of Omri, king of Israel, he received tribute; but of this scripture says nothing. The next king who invaded Syria was RIMMON-NIRARI III B.C. 810. He extended his victories to what he calls, 'the shore of the sea of the setting sun,' which is doubtless the Mediterranean, and imposed tribute on the Phoenicians, Israelites, Edomites, Philistines, and the king of Damascus. After this king the power of Assyria waned for a time. The next king of note was TIGLATH -PILESER II. or III. B.C. 745, who is considered to have founded the second Assyrian kingdom. He consolidated the various dependencies, turbulent populations were removed, and the empire was divided into provinces, each of which paid a fixed annual tribute. In his inscriptions occur the names of Jehoahaz (Ahaz) of Judah; Pekah, and Hoshea of Israel; Reson (Resin) of Damascus; and Hiram of Tyre. The name of Merodach-baladan is also found. Hamath was taken and then all Palestine was at his feet. He attacked those on the east of the Jordan, and carried away the Reubenites, the Gadites, and the half-tribe of Manasseh. 1 Chr. 5:26. Ahaz sought his alliance against Rezin the king of Damascus. Rezin was slain and the city taken; and there Ahaz met the king of Assyria. 2 Kings 16:1-10; 2 Chr. 28:16-21. He also made himself master of Babylonia; but this afterwards gained its independence under Merodach-baladan. Some Assyrian scholars take Tiglath-pileser (whose name appears to have been Pulu) to be the same person as the Pul mentioned in the Bible; but this does not at all agree with the dates of scripture, and in 1 Chr. 5:26 the names of Pul and Tiglath-pileser are mentioned as of two persons. See PUL. (대상05:26 그러므로 이스라엘 하나님이 앗수르 왕 불의 마음을 일으키시며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의 마음을 일으키시매 곧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를 사로잡아 할라와 하볼과 하라와 고산 하숫가에 옮긴지라 저희가 오늘날까지 거기 있으니라 (왕하16:1-10; 유다왕 아하스 (대하28:16-21. 아하스가 앗수르에 도움을 구하다 In B.C. 727 SHALMANESER IV. succeeded to the throne. Hoshea king of Israel was subject to him; but on being found in treaty with the king of Egypt, Samaria was besieged. 2 Kings 17:3-5. (왕하17:3-5 3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올라와서 호세아를 친 고로 호세아가 신복하여 조공을 드리더니 4 저가 애굽 왕 소에게 사자들을 보내고 해마다 하던 대로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드리지 아니하매 앗수르 왕이 호세아의 배반함을 보고 저를 옥에 금고하여 두고 5 올라와서 그 온 땅에 두루 다니고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삼년을 에워쌌더라 In B.C. 722 SARGON succeeded, and apparently it was he who captured Samaria. An inscription of his at Khorsabad reads, "I besieged the city of Samaria and carried away 27,280 men who dwelt there into captivity, and took fifty chariots from among them, and ordered the rest to be taken. I set my judges over them, and imposed upon them the tribute of the former kings." He also placed colonists in Samaria, but it is supposed by the names of the places mentioned from which these were sent, that this was not done immediately. Sargon captured Carchemish, punished the king of Syria, flayed alive the king of Hamath, and then successfully overcame So or Sabako. Sargon is mentioned in Isa. 20:1 as sending his general to Ashdod, who took it. An inscription also mentions the fall of the city. Sargon defeated Merodach-baladan in Babylonia, but was assassinated in B.C. 705. He was called SHARRU-KENU, that is, 'faithful king.' (사20:1 앗수르 왕 사르곤이 군대장관을 아스돗으로 보내매 그가 와서 아스돗을 쳐서 취하던 해 SENNACHERIB succeeded Sargon his father, B.C. 705. Hezekiah had been tributary; but on his revolting Sennacherib took the fenced cities of Judah, and then Hezekiah sent him the treasures of his own house and the house of the Lord. Still Jerusalem was attacked, and profane speeches made against the God of Israel. Hezekiah humbled himself before God, and the angel of the Lord smote of the Assyrians 185,000. Sennacherib returned to his land and was eventually murdered by two of his sons. 2 Kings 18:13 - 19:37. In Sennacherib's own account he says, "Hezekiah himself I shut up like a bird in a cage in Jerusalem, his royal city . . . . in addition to his former tribute and yearly gifts I added other tribute and the homage due to my majesty, and I laid it upon them." The above date would clash with the date of Hezekiah, but it is probable that Sennacherib was co-regent with his father some nine years before he reigned alone. (왕하18:13 - 19:37. 앗수르의 위협과 산헤립의 죽음 A tablet shows Sennacherib sitting on a throne to receive the spoils of the city of Lachish. It is supposed he lived 20 years after he left Palestine before he was assassinated. He says nothing of the loss of his army, and perhaps never recovered the shock. ESAR-HADDON succeeded, B.C. 681. He is said to have reigned from the Euphrates to the Nile. He also conquered Egypt, and divided it into 20 provinces, governed by Assyrians. According to an inscription he claimed the sovereignty of Babylon, and held his court there. This accounts for him, as king of Assyria, carrying Manasseh captive to Babylon. 2 Chr. 33:11. He is mentioned also in Ezra 4:2 as having sent the colonists into Judaea. After reigning about 10 years he associated with him his son the noted ASSUR-BANI-PAL. Egypt was again conquered. He gathered a famous library at Kouyunjik, the terra cotta tablets of which have been preserved. Assur-bani-pal died about B.C. 626. The glory of the Assyrian kingdom was permanently departing, and about B.C. 606 Nineveh was taken and destroyed. Nahum 1 - 3. (대하33:1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장관들로 와서 치게 하시매 저희가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 간지라 (스04:2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로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구하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나01: 니느웨에 대한 여호와의 진노 (나02: 니느웨의 멸망1 (나03: 니느웨의 멸망2 There are many monuments and inscriptions on tablets which the learned are deciphering; but the difficulties of distinguishing the proper names on the Assyrian monuments are shown by M. Joachim Menant, who gives as an instance one sign which may be read kal, rip, dan, or lip, being one of the signs called 'polyphones.' The following list of kings is from Rawlinson, Sayce, and other Assyrian scholars. The early dates are uncertain and several of the later dates do not agree with the usual chronology of scripture. ASSYRIAN KINGS. B.C. Shalmaneser I. 1300 Tiglath-Adar I., his son 1280 Bel-kudur-utsur (Belchadrezzar) his son 1260 Assur-narara and Nebo-dan 1240 Adar-pal-esar (Adar-pileser) 1220 Assur-dan I., his son 1200 Mutaggil-Nebo, his son 1180 Assur-ris-ilim, his son 1160 Tiglath-pileser I., his son 1140 Assur-bel-kala, his son 1110 Samas-Rimmon I., his brother 1090 Assur-rab-buri ? Assur-zalmati ? Assur-dan II 930 Rimmon-nirari II., his son 911 Tiglath-Adar II., his son 889 Assur-natsir-pal, his son 883 Shalmaneser II., his son 858 Samas-Rimmon II., his son 823 Rimmon-nirari III., his son 810 Shalmaneser III. 781 Assur-dan III. 771 Assur-nirari 753 Pulu, usurper, Tiglath-pileser II. or III 745 Ulula (Elulaeos) of Tinu, usurper, Shalmaneser IV. 727 Sargon, usurper 722 Sennacherib of Khabigal, his son 705 Esar-haddon, his son 681 Assur-bani-pal (Sardanapalus) his son 668 Assur-etil-ili-yukinni, his son ? 626 Esar-haddon II. (Sarakos) ? Fall of Nineveh? 606 The Assyrians were idolaters: from the inscriptions the names of hundreds of gods can be gathered. The Assyrian language was a branch of the Semitic, and came from the Accadian. It was written in Cuneiform or wedge-shaped characters. Assyria was used by God as His rod to punish His guilty people Israel, and then, as in other instances, the rod itself, for its pride and wickedness, had to bear God's judgement. See Isa. 10:5-19; Isa. 14:25; Ezek. 31:3-17; Nahum 3:18, 19; Zeph. 2:13. Some of the passages that speak of the kings of Assyria are prophetic, and refer to the still future, when as 'kings of the north' they will again have to do with Israel and will be judged of God. The indignation against Israel ceases in the destruction of the Assyrian: see Isa. 10:12; Isa. 14:25; Isa. 30:27-33. One remarkable passage speaks of Assyria with Egypt and Israel as being brought into blessing, Isa. 19:23-25, "Whom the Lord of hosts shall bless, saying, Blessed be Egypt my people, and Assyria the work of my hands, and Israel mine inheritance." We thus see that the Assyrians have a large place in scripture both in the past and in the future, doubtless because they have had, and will yet have, to do with Jehovah's earthly people, "the Israel of God." The Assyrian is the over-flowing scourge of God's anger because of Israel's connection with idolatry. (사10:5-19; 하나님의 도구인 앗수르 (사14:25 내가 앗수르 사람을 나의 땅에서 파하며 나의 산에서 발아래 밟으리니 그 때에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 (겔31:3-17; 한때 백향목 같았던 애굽 (나03:18, 19; 18 앗수르 왕이여 네 목자가 자고 네 귀족은 누워 쉬며 네 백성은 산들에 흩어지나 그들을 모을 사람이 없도다 19 너의 다친 것은 고칠 수 없고 네 상처는 중하도다 네 소식을 듣는 자가 다 너를 인하여 손뼉을 치나니 이는 네 악행을 늘 받지 않은 자가 없음이 아니냐 (습02:13 여호와가 북방을 향하여 손을 펴서 앗수르를 멸하며 니느웨로 황무케 하여 사막 같이 메마르게 하리니 (사10:12 이러므로 주 내가 나의 일을 시온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한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리라 (사14:25; 내가 앗수르 사람을 나의 땅에서 파하며 나의 산에서 발아래 밟으리니 그 때에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 (사30:27-33. 여호와께서 앗수를 치시리라 (사19:23-25, 23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24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수르로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25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어 가라사대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 지어다 하실 것임이니라 --- Morrish Bible Dictionary ▶ Assyria (창02:14, (창10:11, (창25:18, (왕하15:19, (왕하16:7, (왕하17:3, (왕하18:7, (왕하19:4,(왕하20:6, (왕하23:29, (대상05:6, (대하28:16, (대하30:6, (대하32:1,(대하33:11, (스04:2, (스06:22, (느09:32, (사07:17, (사08:4, (사10:5, (사11:11, (사19:23, (사20:1, (사23:13, (사27:13, (사36:1, (사37:4, (사38:6, (렘02:18, (렘50:17, (애05:6, (겔23:7, (겔31:3, (겔32:22, (호05:13, (호07:11, (호08:9, (호09:3, (호10:6, (호11:5, (호12:1, (호14:3, (미05:6, (미07:12, (나03:18, (습02:13, (슥10:10 Gen 2:14, Gen 10:11, Gen 25:18, 2 Kgs 15:19, 2 Kgs 15:20, 2 Kgs 15:29, 2 Kgs 16:7, 2 Kgs 16:8, 2 Kgs 16:9, 2 Kgs 16:10, 2 Kgs 16:18, 2 Kgs 17:3, 2 Kgs 17:4, 2 Kgs 17:5, 2 Kgs 17:6, 2 Kgs 17:23, 2 Kgs 17:24, 2 Kgs 17:26, 2 Kgs 17:27, 2 Kgs 18:7, 2 Kgs 18:9, 2 Kgs 18:11, 2 Kgs 18:13, 2 Kgs 18:14, 2 Kgs 18:16, 2 Kgs 18:17, 2 Kgs 18:19, 2 Kgs 18:23, 2 Kgs 18:28, 2 Kgs 18:30, 2 Kgs 18:31, 2 Kgs 18:33, 2 Kgs 19:4, 2 Kgs 19:6, 2 Kgs 19:8, 2 Kgs 19:10, 2 Kgs 19:11, 2 Kgs 19:17, 2 Kgs 19:20, 2 Kgs 19:32, 2 Kgs 19:36, 2 Kgs 20:6, 2 Kgs 23:29, 1 Chr 5:6, 1 Chr 5:26, 2 Chr 28:16, 2 Chr 28:20, 2 Chr 28:21, 2 Chr 30:6, 2 Chr 32:1, 2 Chr 32:4, 2 Chr 32:7, 2 Chr 32:9, 2 Chr 32:10, 2 Chr 32:11, 2 Chr 32:21, 2 Chr 32:22, 2 Chr 33:11, Ezra 4:2, Ezra 6:22, Neh 9:32, Isa 7:17, Isa 7:18, Isa 7:20, Isa 8:4, Isa 8:7, Isa 10:5, Isa 10:12, Isa 11:11, Isa 11:16, Isa 19:23, Isa 19:24, Isa 19:25, Isa 20:1, Isa 20:4, Isa 20:6, Isa 23:13, Isa 27:13, Isa 36:1, Isa 36:2, Isa 36:4, Isa 36:8, Isa 36:13, Isa 36:15, Isa 36:16, Isa 36:18, Isa 37:4, Isa 37:6, Isa 37:8, Isa 37:10, Isa 37:11, Isa 37:18, Isa 37:21, Isa 37:33, Isa 37:37, Isa 38:6, Jer 2:18, Jer 2:36, Jer 50:17, Jer 50:18, Lam 5:6, Ezek 23:7, Ezek 31:3, Ezek 32:22, Hos 5:13, Hos 7:11, Hos 8:9, Hos 9:3, Hos 10:6, Hos 11:5, Hos 11:11, Hos 12:1, Hos 14:3, Mic 5:6, Mic 7:12, Nahum 3:18, Zeph 2:13, Zech 10:10, Zech 10:11 lt=36.359&ln=43.152
36 스난(Zenan)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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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1003 3 2006-12-30
▶ 스난(Zenan) 유다의 한 성읍(수15:37). 아마 미가 (미01:11)에 기록된 사아난과 같은 곳으로 본다. ======== Zenan. [Ze'nan] See ZAAMAN. --- Morrish Bible Dictionary lt=31.743719&ln=34.694006
35 사마리아(Samaria) Map 파일
지명
jesus
6615 3 2006-12-30
▶ 사마리아(Samaria) 뜻:살핌 예루살렘 북쪽 약 67km 지점으로 사마리아 도와 사마리아 성이 있다. 사마리아 성은 세겜 북방 11km 지점 91km 높이의 언덕 위에 있는데 현재는 세바스티에 라는 곳으로 보잘것 없는 동네가 되었다. BC 30년에 헤롯은 사마리아 대건설 계획에 착수,새로 건설된 도시를 황제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세바스티아로 개칭했다.도시의 출입문은 서편과 동편에 있었다.북편과 남편에도 성문이 하나씩 더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낙후된 아랍인의 마을에 불과하지만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가 여기였다. 그리심산이 있다. 이 산은 종교적으로 중요한 곳이었으며, 산정에는 유적지가 있다. 소수민족인, 전통적인 사마리아인은 4백명 뿐으로 그리심산에 살고 있다.사마리아 유적은 2차례 발굴되었는데 1965년 요르단의 고대 문물성에 의해서,또 한번은 1968년 예루살렘의 영국고고학회에 의해서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때문에 익숙한 도시이름이다. (1) 사마리아 성읍은 이스라엘 북왕국의 수도이다. (2) 디르사에 수도를 정하던 오므리 왕(아합 왕의 아버지)이 세멜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이 산을 사서 그 소유주의 이름을 따서 사마리아 라고 하였다 (왕상16:23-24). (3) 사마리아도는 옛날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쳐서 취하여 12지파에게 분할해 줄 때 에브라임, 단, 므낫세, 반지파에게 준 땅이 곧 예수님 당시의 사마리아다. (4) 여호수아 때에는 솔로몬 왕 때까지 통일 국가를 이루었다. 솔로몬왕이 죽은 후에 남북 2국으로 분립되어 남에는 유다, 베냐민의 두 지파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왕으로 삼은 유다국이 건설되고 북에는 기타 10지파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으로 왕을 삼은 이스라엘 국이 건설되어 250 여년간 내려왔다. (5) 앗수르왕 살만에셀이 이스라엘국을 쳐서 취하였다. 이때에 살만에셀은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로 다른 지방으로 옮기고 앗수르 국민을 사마리아 에 옮겼다 (왕하17:3-6,24). (6) 그 다음에는 마게도냐, 알렉산더 대왕이 점령하여 또 사마리아인을 축출 하고 자기 국민을 사마리아도에 이식하니 자연히 상호혼혈이 되어버렸다. (7) 그 때 부터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를 이방시하고 그 주민을 이족시 하게 되었다. (8)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귀환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할 때 사마리아 인들이 협력하기 원하여도 거절 하였다. 사마리아인들은 이방시 하는 유대인들에게 원한을 품고 바사국의 인사들에게 뇌물을 주어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방해 하였고 일방으로는 그리심 산에 따로 성전을 건축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반대하게 되었다(스04:1-6). (9) 이러한 두가지 원인으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간에는 피차 반목 질시하게 되고 유대인이 그 지역에 가지도 않고 그곳 주민과는 상종도 하지 않으므로 갈릴리도를 갈때는 사마리아도를 통과 하지 않고 멀리 요단강으로 돌아 다녔다. (10) 예수님은 그것을 관계치 않으시고 통과하시다가 수가 성에 있는 야곱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생수의 원리를 가르쳐 주셨다(요04:3- 14). (11) 선한 사마리아인이 비유을 듣고(눅01:30-37). (12) 문둥병자 10명을 고쳐 주셨을 때 다 가버리고 사마리아 사람 하나만 와서 감사함으로 그를 칭찬하셨다(눅17:11-19). (13) 그래서 예수를 사마리아 인이라고 욕한 사람도 있다(요08:48). (14) 스데반이 순교후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을 만나 교인들이 사방에 흩어지는 중에 이 사마리아 도에 들어가서 교회 설립의 기초가 되었다(행08:1). (15)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 850인과 엘리야 선지가 거짓 신과 참 하나님의 대결을 벌렸던 갈멜산이 있다(왕상12:19-40). (16) 요셉이 팔린 도단 산(창37:17)과 축복하는 그리심산과 저주하는 에발산 이 있다(신11:20). (왕상13:32, (왕상16:24,28,29,32, (왕상18:2, (왕상20:1,10,17,34,43, (왕상21:1,18, (왕상22:10,37,38,51, (왕하01:2,3, (왕하02:25, (왕하03:1,6, (왕하05:3, (왕하06:19,20,24,25, (왕하07:1,18, (왕하10:1,12,17,35,36, (왕하13:1,6,9,10,13, (왕하14:14,16,23, (왕하15:8,13,14,17,23,25,27, (왕하17:1,5,6,24,26,28, (왕하18:9,10,34, (왕하21:13, (왕하23:18,19, (대하18:2,9, (대하22:9, (대하25:13,24, (대하28:8,9,15, (스04:10,17, (느04:2, (사07:9, (사08:4, (사09:9, (사10:9,10,11, (사36:19, (렘23:13, (렘31:5, (렘41:5, (겔16:46,51,53,55, (겔23:4,33, (호07:1, (호08:5,6, (호10:5, (호13:16, (암03:9,12, (암04:1, (암06:1, (옵01:19, (미01:1,5,6, (눅17:11, (요04:4,5,7,9, (행01:8, (행8:1,5,9,14, (행09:31, (행15:3 ======== Samaria. [Sama'ria] This city was built by Omri, king of Israel, and came into prominence by becoming the capital of the kingdom of the ten tribes. It was situated on the side of a hill, and was adorned and fortified by the kings of Israel. Ben-hadad, king of Syria, besieged Samaria in the reign of Ahab, but by the intervention of God it was not taken. 1 Kings 20:1-34. In the days of Jehoram it was again besieged by Ben-hadad, and the famine became so great that they were on the point of capitulating when some lepers brought word that the enemy had fled, and abundance of provision was to be found in the camp. 2 Kings 6:24-33; 2 Kings 7:1-20. It was besieged again by Shalmaneser, about B.C. 723, but held out for three years, being eventually taken by Sargon. The people were now carried into captivity. 2 Kings 18:9-12. Among the Assyrian inscriptions there is one in which Sargon says, "The city of Samaria I besieged, I captured; 27,280 of its inhabitants I carried away." It was partly re-peopled by the colonists imported by Esar-haddon. Samaria was again taken by John Hyrcanus, who did his best to destroy it. The city was rebuilt by Herod the Great, and named Sebaste (the Greek form of Augusta) in honour of his patron the emperor Augustus; but on the death of Herod it gradually declined. It is now only a miserable village, called Sebustieh, 32 17 N, 35 12' E, but with some grand columns standing and relics of its former greatness lying about. THE DISTRICT OF SAMARIA is often alluded to in the N.T. It occupied about the same territory as that of Ephraim and Manasseh's portion in the west. It had the district of Galilee on the north, and Judaea on the south. Luke 17:11; John 4:4; Acts 1:8; Acts 8:1-14; Acts 9:31; Acts 15:3. --- Morrish Bible Dictionary lt=32.2802&ln=35.1979
34 바산(Bashan)
지명
jesus
2620 3 2006-12-30
▶ 바산(Bashan) 뜻: 과실이 많은 땅 동은 하우란 산악, 서는 갈릴리 호수, 남은 길르앗, 북은 헬몬산 사이에 펼쳐진 사이에 광대한 지역이다. (1) 땅이 비옥하여 목축에 알맞는 곳이다(시022:12, (암04:1, (신32:14). (2) 백향목이 우거진 지대이며 중심 곡창지대이다(사02:13, (겔27:6, (스11:2). (3) 바산왕 옥이 모세의 백성과 싸워 패하였다(민21:33-35). (4) 땅은 므낫세 반지파에게 분배되었다. 그전에는 르바임으로 불리웠다(신03:13). (5) 북쪽 아르곱 지방에는 높은 성과 철문으로 방비한 60개 도시가 있었다(신03:4). Num 21:33, Num 32:33, Deut 1:4, Deut 3:1, Deut 3:3, Deut 3:4, Deut 3:10, Deut 3:11, Deut 3:13, Deut 3:14, Deut 4:43, Deut 4:47, Deut 29:7, Deut 32:14, Deut 33:22, Josh 9:10, Josh 12:4, Josh 12:5, Josh 13:11, Josh 13:12, Josh 13:30, Josh 13:31, Josh 17:1, Josh 17:5, Josh 20:8, Josh 21:6, Josh 21:27, Josh 22:7, 1 Kgs 4:13, 1 Kgs 4:19, 2 Kgs 10:33, 1 Chr 5:11, 1 Chr 5:12, 1 Chr 5:16, 1 Chr 5:23, 1 Chr 6:62, 1 Chr 6:71, Neh 9:22, Ps 22:12, Ps 68:15, Ps 68:22, Ps 135:11, Ps 136:20, Isa 2:13, Isa 33:9, Jer 22:20, Jer 50:19, Ezek 27:6, Ezek 39:18, Amos 4:1, Mic 7:14, Nahum 1:4, Zech 11:2 (민21:33 돌이켜 바산 길로 올라가매 바산 왕 옥이 그 백성을 다 거느리고 나와서 그들을 맞아 에드레이에서 싸우려 하는지라 (민32:33 모세가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과 요셉의 아들 므낫세 반 지파에게 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국토와 바산 왕 옥의 국토를 주되 곧 그 나라와 그 경내 성읍들과 그 성읍들의 사면 땅을 그들에게 주매 (신01:4 때는 모세가 헤스본에 거하는 아모리 왕 시혼을 쳐 죽이고 에드레이에서 아스다롯에 거하는 바산 왕 옥을 쳐 죽인 후라 (신03:01 우리가 돌이켜 바산으로 올라가매 바산 왕 옥이 그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우리를 대적하여 에드레이에서 싸우는지라 (신03:3-4 3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산 왕 옥과 그 모든 백성을 우리 손에 붙이시매 우리가 그들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느니라 4 그 때에 우리가 그들에게서 빼앗지 아니한 성읍이 하나도 없이 다 빼앗았는데 그 성읍이 육십이니 곧 아르곱 온 지방이요 바산에 있는 옥의 나라이라 (신03:10-14 10 우리의 취한 것은 평원의 모든 성읍과 길르앗 온 땅과 바산의 온 땅 곧 옥의 나라 바산의 성읍 살르가와 에드레이까지니라 11 (르바임 족속의 남은 자는 바산 왕 옥뿐이었으며 그의 침상은 철침상이라 지금 오히려 암몬 족속의 랍바에 있지 아니하냐 그것을 사람의 보통 규빗으로 재면 그 장이 아홉 규빗이요 광이 네 규빗이니라) 12 그 때에 우리가 이 땅을 얻으매 아르논 골짜기 곁에 아로엘에서부터 길르앗 산지 절반과 그 성읍들을 내가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에게 주었고 13 길르앗의 남은 땅과 옥의 나라이었던 아르곱 온 지방 곧 온 바산으로는 내가 므낫세 반 지파에게 주었노라 (바산을 옛적에는 르바임의 땅이라 칭하더니 14 므낫세의 아들 야일이 그술 족속과 마아갓 족속의 경계까지의 아르곱 온 지방을 취하고 자기의 이름으로 이 바산을 하봇야일이라 칭하여 오늘까지 이르느니라) (신32:14 소의 젖 기름과 양의 젖과 어린양의 기름과 바산 소산의 수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우셨도다 (신33:22 단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단은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의 새끼로다 (민21:33, (민32:33, (신01:4, (신03:1, (신04:43, (신29:7, (신32:14, (신33:22, (수09:10, (수12:4, (수13:11, (수17:1, (수20:8, (수21:6, (수22:7, (왕상04:13, (왕하10:33, (대상05:11, (대상06:62, (느09:22, (시022:12, (시068:15, (시135:11, (시136:20, (사02:13, (사33:9, (렘22:20, (렘50:19, (겔27:6, (겔39:18, (암04:1, (미07:14, (나01:4, (슥11:2 lt=32.801&ln=35.937 ▶ 바산 Bashan. [Ba'shan] Now best known for the Golan Heights, it is a large district on the east of the Jordan, having Gilead on the south and extending northward to Mount Hermon; westward to the Jordan valley, and eastward nearly as far as 37 E. It is sometimes called the "land of Bashan," and it was the kingdom of Og the Amorite. It was conquered by Moses, and became, with part of Gilead, the portion of the half-tribe of Manasseh. Its principal cities were Ashtaroth (or Beeshterah) given to the Levites, Golan a 'city of refuge,' Edrei, and Salcah on its border. It was ravaged by Hazael in the time of Jehu, and is not often alluded to in the later history of the kings of Judah and Israel. Josh. 13:30, 31; Josh. 21:27; 2 Kings 10:33; 1 Chr. 5:11. (수13:30-31 30 그 지경은 마하나임에서부터 온 바산 곧 바산 왕 옥의 전국과 바산 경내 야일의 모든 고을 육십 성읍과 31 길르앗 절반과 바산 왕 옥의 나라 성읍 아스다롯과 에드레이라 이는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자손에게 돌린 것이니 곧 마길 자손의 절반이 그 가족대로 받으니라 (수21:27 레위 가족의 게르손 자손들에게는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살인자의 도피성 바산 골란과 그 들을 주었고 또 브에스드라와 그 들을 주었으니 두 성읍이요 (왕하10:33 요단 동편 길르앗 온 땅 곧 갓 사람과 르우벤 사람과 므낫세 사람의 땅 아르논 골짜기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길르앗과 바산까지 하였더라 (대상05:11 갓 자손은 르우벤 사람을 마주 대하여 바산 땅에 거하여 살르가까지 미쳤으니 The district was in later days divided into 1. GAULANITIS on the west, now called Jaulan, a rich district with noble forests. 2. AURANITIS, in the centre, now called Hauran, a magnificent plain. 3. TRACHONITIS, on the north-east, also called ARGOB, q.v.; now called El Lejah, a wild district of basaltic rocks. 4. BATANAEA, on the south-east, now called Ard el Bathanyeh. The four districts have relics of a numerous population, with massive houses built of stone in some parts. THE OAKS OF BASHAN are used symbolically for great strength and loftiness, which God in His judgement brings down. Isa. 2:13; Ezek. 27:6; Zech. 11:2. (사02:13 또 레바논의 높고 높은 모든 백향목과 바산의 모든 상수리나무와 (겔27:06 바산 상수리나무로 네 노를 만들었었음이여 깃딤섬 황양목에 상아로 꾸며 갑판을 만들었도다 (슥11:02 너 잣나무여 곡할지어다 백향목이 넘어졌고 아름다운 나무가 훼멸되었도다 바산의 상수리나무여 곡할지어다 무성한 삼림이 엎드러졌도다 BULLS OF BASHAN are figurative of strong ruthless enemies, Amos 4:1, whom God in the coming judgement on Gog will crush, and will call for the fowls and the beasts to come and feed upon their flesh and their blood, Ezek. 39:18: and lastly, when the blessed Lord was on the cross, His description of His vindictive enemies includes the strong bulls of Bashan which beset Him around, and gaped upon Him with their mouths, as a ravening and a roaring lion. Ps. 22:12, 13. (암04:01 사마리아 산에 거하는 바산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가난한 자를 학대하며 궁핍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겔39:18 너희가 용사의 고기를 먹으며 세상 왕들의 피를 마시기를 바산의 살찐 짐승 곧 수양이나 어린 양이나 염소나 수송아지를 먹듯 할지라 (시022:12-13 12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렀으며 13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고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 Morrish Bible Dictionary .
33 모압(Moab)
지명
jesus
4022 3 2006-12-30
▶ 모압(Moab) 뜻:아버지로 부터 사해 동쪽, 요단 동편에 있는 고원지대 전체를 말한다. 남은 에돔, 동은 아라비아 사막,서는 사해 ,북은 요단 평야로 이루어진 나라였다 차츰 아르논강과 헤스본 강으로 이동 되었다. 사해 수면보다 131미터나 높은 고지대 이다. (1) 롯의 아들 모압의 후손이 산다(창19:37). (2)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널 당시에는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출15:15). (3) 그들은 암몬 족속과 더불어 요단 동쪽 지역에 있는 한 종족을 멸망 시켰다(신02:10, (신19:21). (4) 이스라엘 백성이 도착하기 조금전 아모리 왕 시혼이 그 땅을 아르논 까지 모조리 배앗겼다 (민21:13-15, (민26:30). (5) 그들은 이스라엘과 친절한 사이였으므로 모세는 모압을 치지 않았다 (신02:9). (6) 그러나 모압 왕 발락은 발람을 이스라엘 진중에 보내어 저주하게 했다(민22: 24:, (수24:9). (7) 이 일로 인해서 모압인은 10대 후손에 이르기까지 여호와의 회중에 드는 것이 금지 되었다 (신23:3-6, (느13:1). (8)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 전 마지막 진쳤던 곳이 모압 평지에 있 는 싯딤 이었다(민22:1, (수03:1). (9) 그들은 거기 머물고 있는 동안 모압과 미디안 사람들의 딸들이 이스라엘 을 타락하게 했다 (민25:, (호09:16). (10) 사사 시대에 모압왕 에글론이 침입하여 18년간 다스리다가 왼손잡이 에훗에게 죽임을 당했다(삿03:12-30). (11) 모압여인 룻은 시어머니를 잘 공경한 효부로서 예수의 조상이 되었다 (룻01:22, (룻04:3, 13-17, (마01:1-16). (12) 사울을 피한 다윗은 그 양친을 모압 왕에게 의탁했다(삼상14:47). (13) 다윗이 왕이 되자 모압으로 부터 곡물을 받아 들였다. (14) 엘리사가 죽은 해에 모압인들이 이스라엘 침입을 감행하였다(왕하13:20) (15) 예언자들은 종종 모압 족속을 하나님 나라에 원수의 전형으로서 비난 했다(사15:, (사16:, (사25:10, (렘09:26, (렘25:21, (렘27:3, (렘48:, (겔25:8-11, (암02: 1-2, (습02:8-11). -----> Morrish Bible Dictionary (창36:35, (출15:15, (민21:11, (민22:1, (민23:6, (민24:17, (민25:1, (민26:3, (민31:12, (민33:44, (민35:1, (민36:13, (신01:5, (신02:8, (신29:1, (신32:49, (신34:1, (수13:32, (수24:9, (삿03:12, (삿10:6, (삿11:15, (룻01:1, (룻02:6, (룻04:3, (삼상12:9, (삼상14:47, (삼상22:3, (삼하08:2, (삼하23:20, (왕상11:7, (왕하01:1, (왕하03:4, (왕하23:13, (대상01:46, (대상04:22, (대상08:8, (대상11:22, (대상18:2, (대하20:10, (느13:23, (시060:8, (시083:6, (시108:9, (사11:14, (사15:1, (사16:2, (사25:10, (렘09:26, (렘25:21, (렘27:3, (렘40:11, (렘48:1, (겔25:8, (단11:41, (암02:1, (미06:5, (습02:8 lt=31.49684&ln=35.78284
32 니므롯(Nimrod)
인물
jesus
3966 3 2006-12-26
▶ 니므롯(Nimrod) 뜻:건장하다 함의 장남 구스의 아들로 시날 4성읍과 앗수르 4성읍을 건축했다(창10:9-12). 바벨론의 시조로서 그의 영역은 시날 땅의 바벨, 에렉, 악갓, 갈레까지 이르렀다(창10:8-10), (대상01:10), (미05:6) ▶ 니므롯/고대 바빌론 통치한 영웅… 성령몰라 불행한삶 창세기 10장 8∼12절 니므롯은 「늠름함」이란 뜻이다. 니므롯은 함의 손자요 구스의 아들이다. 니므롯은 당세의 영웅으로 호칭될 만큼 정치가요 장군이요 개척자였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특이한 사냥꾼」이라 불려졌고 그로 인해 속담이 생기기도 하였다. 니므롯은 고대 바벨론 지역의 시날땅을 중심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바벨과 멜렉과 악갓과 갈레와 북쪽으로 앗수르의 니느웨와 르호보딛과 레센지역까지 관할한 한 제국을 형성했다. 그래서 그를 영걸이라 불렀고 그는 지역마다 큰 성읍을 건축하였다. 이 니므롯을 바벨론의 영웅 길가메시 혹은 이즈다발과 동일인물로 보기도 하며 나무르투로 부르기도 했다. 니므롯은 타고난 재능이 많은 사람으로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가 정복한 거대한 땅과 그가 건축한 큰 성읍들이 그의 능력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한마디로 니므롯은 영웅으로 추대받기에 적합한 사람이었으며 자기 시대에 만족할 만큼 큰 번영과 인간의 성공을 경험한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의 존경도 받고 사랑도 받고 세상의 영화도 마음껏 누렸지만 그에게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이는 또한 그에게 한가지 부족한 치명적인 조건이기도 하다. 영적인 헌신이 없었고 하나님을 위한 봉사가 없었던 것이다. 니므롯의 성공은 세속적인 성공이었다. ▷교훈과 적용◁ 첫째,니므롯과 같은 세속적인 번영은 소망이 없다. 둘째,많은 자질과 능력과 은사를 사회와 하나님을 위해 균형있게 활용하지 못한 불행을 보게 된다.<이병돈목사·은평교회> ▶ 니므롯 Nimrod. [Nim'rod] Son or descendant of Cush, the son of Ham. He was 'mighty upon the earth,' and 'a mighty hunter,' using force and craft to bring man as well as beasts under his sway. The words 'before the Lord' probably signify imperial energy and usurped authority in independence of Jehovah. "The beginning of his kingdom was Babel" with other towns in the land of Shinar. And "out of that land went forth Asshur," or 'he went out to Assyria,' and built Nineveh and other cities. So that Nimrod and his descendants were those who founded both Babylon and Nineveh. Babylonia was also called the land of Nimrod, which shows that the descendants of Ham settled in the East as well as in Egypt in the South. Those in the East afterwards gave place in a great measure to the descendants of Shem. Gen. 10:8-11; 1 Chr. 1:10; Micah 5:6. (창10:08-11 8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9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10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11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대상01:10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세상에 처음 영걸한 자며 --- Morrish Bible Dictiona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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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연대표 1.창조 2.족장 3.출애굽 4.광야 5.정복 6.사사 7.통일왕국 8.분열왕국 9.포로 10.포로귀환 11.중간 12.예수 13.초대교회 14.세계선교 관련그림.지도 1.창조 2.족장 3.출애굽 4.광야 5.정복 6.사사 7.통일왕국 8.분열왕국 9.포로 10.포로귀환 11.중간 12.예수 13.초대교회 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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