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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Jesus) 뜻 : 구세주, 예수(Jesus)는 고대 그리스어: Ίησους 이에수스의 라틴어 표기이며, 이에수스는 다시 여호수아(히브리어: Jehoschua) 혹은 예슈아(히브리어: Jeschua)를 코이네 그리스어로 옮긴 사두람이다. Jehoschua의 어원은 접두어 Je- (히브리어: JHVH/YHWH:Jahveh 야훼, 하느님)와 히브리어: Hoshea(구원, 구세라는 뜻을 가진 호산나)를 덧붙여 이루어진 사람이다. [1] 예수 그리스도 [2] 예수 그리스도 족보중 한 사람 (눅03:29) cf. 예수아 --------------------------------------------------- 예수 그리스도의 칭호 ▶ 예수님의 칭호(Jesus) (1) 주 (마03:3, (막01:3, (눅03:4). (2) 길 (요14:6, (히10:20). (3) 신 (고후03:17-18). (4) 홀 (민24:17, (창49:10). (5) 곶 (애02:1). (6) 예수 (마01:21,25). (7) 감독 (벧전02:25). (8) 구주 (눅02:11, (행13:23, (욥19:25, (사63:8). (9) 인자 (마08:20, (요01:51, (히02:6, (단07:31). (10) 임금 (행05:31). (11) 생명 (요14:6, (요11:25, (골03:4). (12) 말씀 (요01:1, (계19:13). (13) 반석 (고전10:4, (민20:11). (14) 참빛 (요01:9, (요08:12). (15) 부활 (요11:22). (16) 진리 (요14:6). (17) 기묘 (사09:6). (18) 모사 (사09:6). (19) 목자 (벧전02:25). (20) 사도 (히03:1). (21) 실로 (창49:10). (22) 산돌 (벧전02:4). (23) 아멘 (계01:7, (계03:14). (24) 남편 (사54:5). (25) 분수 (슥13:1). (26) 가지 (슥03:8, (슥06:12, (사11:1, (렘23:5). (27) 유대왕 (마02:2, (눅23:3). (28) 돋는 해 (눅01:78). (29) 선지자 (눅24:19, (신18:15,18). (30) 독생자 (요01:14,18). (31) 메시야 (요01:41). (32) 양의 문 (요10:7). (33) 집의 터 (고전03:11). (34) 후 아담 (고전15:45). (35) 중보자 (딤전02:5, (딤전12:24). (36) 재판장 (딤후04:8). (37) 하나님 (히10:37). (38) 이긴 자 (히02:15). (39) 오실자 (히10:37). (40) 산 소망 (벧전01:3). (41) 대언자 (요일02:1). (42) 새벽별 (계22:16, (민24:17, (사42:1). (43) 섭정자 (단09:25). (44) 택한 종 (마12:17, (사42:1). (45) 임마누엘 (마01:23, (갈07:14). (46) 그리스도 (마01:23, (갈07:14). (47) 구원의 문 (요10:9). (48) 선한 목자 (요10:11, (히03:20, (시023:1). (49) 본되신 자 (요13:15, (롬15:5, (벧전2:21-23). (50) 포도나무 (요15:1). (51) 생명의 주 (행03:15). (52) 만유의 주 (행10:36) (53) 영광의 주 (고전02:8). (54) 청결한 자 (히01:3). (55) 대제사장 (히03:1, (히04:14, (히05:1, (히06:20, (히07:24). (56) 만유의 주 (계17:14, (계19:19). (57) 만왕의 왕 (계17:14, (계19:16). (58) 영광의 왕 (시024:7-8). (59) 평강의 왕 (사09:6). (60) 시험한 돌 (사28:16). (61) 우리의 의 (렘23:6). (62) 그 왕 다윗 (렘30:9, (호03:5). (63) 겸손한 왕 (슥09:6). (64) 의로운 해 (말04:2). (65) 다윗의 자손 (마09:27, (마21:9, (마22:42,45). (66) 거룩하신 자 (눅04:34, (행03:14, (요일02:20). (67) 이스라엘 왕 (요01:49). (68) 생명의 양식 (요06:35,38:51). (69) 거룩한 아들 (행04:27). (70) 구언하실 자 (롬11:26, (사59:20). (71) 교회의 머리 (엡04:15, 엡05:23). (72) 크신 하나님 (딛02:13). (73) 승천하신 자 (히04:14). (74) 언약의 보증 (히07:22). (75) 믿음의 주인 (히12:2). (76) 보배로운 돌 (벧전02:4-6). (77) 신실한 증거 (계01:5). (78) 처음과 나중 (계01:17, (계02:8, (계21:6, (계22:13). (79) 진실하신 이 (계03:14). (80) 창조의 근원 (계03:14). (81) 다윗의 뿌리 (계05:5, (계22:16). (82) 여호와의 종 (사42:1,19, (사52:13, (사:12:17). (83) 여호와의 팔 (사53:1) (84) 언약의 사자 (말03:11). (85) 하나님의 아들 (마03:17, (막01:11, (눅03:22. (요01:49). (86) 안식일의 주인 (마12:8). (87) 우리 유월절 양 (고전05:7,출12:). (88) 하나님의 형상 (고후04:4, (히01:3). (89) 장인의 버린돌 (벧전02:7, (시118:2). (90) 알파와 오메가 (계01:17, (계02:18, (계21:6, (계22:13). (91) 만물의 지으신 자 (요01:3, (요22:13). (92) 하나님의 어린양 (요01:29, (계05:6). (93) 미리 알게 하는자 (계05:5). (94) 유대 지파의 사자 (계05:5). (95) 영생하신 아버지 (사09:6). (96) 전능하신 하나님 (사09:6). (97) 지극히 높으신 자 (단07:25). (98) 여호와의 짝된자 (슥13:7). (99) 하늘로써 내려온자 (요03:13). (100) 집 모퉁이 요긴한 돌 (엡02:20). (101) 하나님의 영광 (히01:3). (102) 거룩하게 하시는 자 (히13:12). (103) 죽음에서 먼저 사신자 (계01:5). (104)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미05:2). (105) 여호와의 기뻐하는 자 (사42:1, (마03:17). (106)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계03:7). (107) 아름다운 소식 전하는 자 (사05:27). (108) 세세에 찬양 받으실 하나님 (롬09:5). (109) 좌우에 날 선 예리한 검을 잡은 이 (계02:12). (110) 일곱 신과 일곱 별과 일곱 등대를 가지신 이 (계02:1). (111) 일곱 별과 일곱 등대를 주장하는 이(계02:1). (112) 눈이 불같고 발이 빛난 주석 같으신 이 (계02:28). ▶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이란 예수의 칭호는 마태복음 (마04:3, 4:6, (마08:29, (마14:33, (마16:16, (마26:63, (마27:54, 마가복음 (막03:11, (막05:7, (막09:7, (막15:39, 누가복음 (눅01:35, (눅04:41, (눅08:28에서 잘 묘사되고 있다. 마태에 있어서 예수는 그가 출생한 이래로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 그를 그렇게 선포하고 있다(마03:17)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직접적인 고백은 마14:33과 27:54과 같이 예수에 대한 직접적인 칭호로서 신앙 고백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호칭은 메시야와 동일시되어 불려지기도 하였다(마26:63). 마가복음에서는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의 아들로서 선포되는 광경을 볼 수 있으며, 귀신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으며(마3:11, 마5:7) 예수는 자신의 정체를 알리지 말 것을 명령하신다. 누가복음에서는 한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태어날 아기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어 질 것을 말하고 있다(눅1:35). 그리고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을 때에, 마귀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호칭하고 있다(눅4:3). 킹즈베리는 기독론적인 문서인 마태복음 전체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 기독론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들을 발견해 내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에게 있어서 마태의 예수는 날 때부터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는 성서 속에서 여러 증거들을 제시하면서 하나님의 아들 기독론을 주장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마태복음 17:1-8에 나오는 예수의 변모에 관하여서 예수의 수세이야기와 비슷한 요소를 가지고 있는 하늘에서 들여오는 음성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즉 마태복음 17:5에서 하나님이 예수를 자기의 유일 무이한 선택된 아들로서 다시 한 번 선포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증거로서 포도원 비유에서의 농부의 아들을 자기로 알레고리화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소작인들에 의해 결국 성밖에서 죽어야 하는 포도원주인의 아들을 알레고리 적으로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 부분을 증거로 삼고 있는데, 이것은 비교적 역사적-경제적 사실과 많이 부합하는 문서로 간주되는데, 이러한 비유들은 투쟁, 변호, 방어, 공격, 도전 등 주로 논쟁을 위한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성서의 모든 비유를 알레고리 적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포도원 비유가 나오는 마태복음 21:33-46은 그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짐작하고 비유를 들어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그에게 큰 증거로서 삼고 있다. 또한 이 비유는 이사야 5:1-7의 포도밭의 노래를 소재로 하고 있다. 즉 이사야의 이 텍스트로부터 가져왔다는 것이다. 오히려 공관복음서안의 이 포도비유가 수정되며(죽은 포도원 주인 아들의 죽는 장소에 따라 복음서마다 다른 것은 편집…수정하는 과정에서 결국 십자가의 고난에 그리스도가 매달리게 될 장소는 성밖이란 점에서, 그렇게 수정…편집되었다는 것)복음서안으로 흘러 들어온 것 같다.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와는 달리 혼인잔치 비유는 맥락상으로 살펴 볼 때 예수의 십자가상의 고난을 넘어선다. 전자가 십자가 처형을 예견한다면, 후자는 마태복음 28:18 이하에서 제자들이 받는 위대한 사명을 염두에 두고 있다. 따라서 마태는 알레고리를 통해 이 비유를 예수에게서 시작해서 마태 자신의 시대에 이르는 구속사에 대한 묘사를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 비유 중의 왕은 하나님, 그의 아들은 부활하신 예수, 혼인잔치는 메시아 향연, 초대받은 자들은 이스라엘, 종들은 제자들과 교회의 전도사들, 초대에 대한 무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의 거부, 종들을 때리고 죽이는 것은 교회에 대한 이스라엘의 박해, 군인들의 도시파괴는 예루살렘의 멸망, 나쁜 사람, 좋은 사람 차별 없이 초청해 옴은 이방인의 교회영입을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중심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비유되고 있다는 것이다. 왕의 아들인 혼인 잔치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의 메시아 향연인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는 주로 고백적인 배경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의 백부장의 신앙고백은 곧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진술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유대인들의 예수에 대한, 곧 하나님에 대한 신성모독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한편 베드로의 고백이 나오는 16:16과 대제사장의 질문이 나오는 26:63에서 마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와 메시야라는 칭호는 서로 동격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스 콘첼만에 의하면, 메시야 칭호의 유래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역사적 출처는 모호한 것이다. 예수가 이미 자신을 그렇게 붙였는가 또는 교회가 비로서 이 칭호를 그에게 부여했는가하는 점은 그 칭호가 어디서 유래했으며 무엇을 의미하는 가하는 물음에서 중요하지 않다.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이스라엘(출4:22), 그리고 왕으로부터 나타난다. 시편 2:2의 기름 부은자, 7절의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이것은 동양적 궁중 문학 양식이다. 물론 유대교는 하나님이 몸으로 낳았다거나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으로는 생각할 수 없었다. 구약성서의 왕칭호가 예수에게 이전되었으며, 하나님의 아들이란 의미는 메시야의 의미와 동일하다는 가정이 이 시편귀절에 근거하여 자주 제기된다. 그러나 유대교안에서 메시야에 대한 하나님의 아들 칭호들 사용한 것을 찾아볼 수없다는 사실이 그런 가정을 반영해 준다. ▶ 그리스도 그리스도(메시야)란 칭호는 마태복음 1:1, 1:16-18, 마2:4, 마16:16, 11:2, 16:20-21, 마22:42, 마23:10, 마26:63, 26:68, 마27:17, 27:22, 마가복음 8:29, 9:41, 누가복음 2:11, 9:20에 잘 나타나 있다. 마태는 이 ?메시야?라는 칭호를 한 차원에서만 사용하지 않았다. 마1:1에서 이 칭호는 한 사람의 이름으로 사용되었다(예수 메시야).마1:18, 마16:21도 같은 경우로 원문상 논란이 있으나 ?예수 메시야?가 정확한 독법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 메시야?라는 칭호가 단순한 이름으로 취급되었다 할지라도 마태복음서에 있어서 이 칭호는 ?예수가 메시야이시다?는 근본적 진리는 늘 함축하여 사용된다. 마태는 기독론적 칭호로서의 메시야란 칭호를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다. 메시야 그 분은 구약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되었고 이스라엘이 고대하던 그 오시는 이이시며, 다윗의 왕위를 계승하시는 왕으로 오신 예수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완성시키는 분이며, 하나님의 권위로 사람들에게 구원 또는 심판을 행하시는 분이다. 마태는 그의 복음서를 통해 이 메시야라는 칭호를 더 나아가 유대인의 왕,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도 규정지으려 했다. 만약에 메시야란 칭호의 사용이 결국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로 결과되게 되는 것이라면, 예수 메시야의 행동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서의 행동이었다는 것과 메시야라는 칭호가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의 대용어라는 이해가 타당한 것으로 인정하게 된다. 한스 콘첼만에 있어서도 그리스도는 메시야라는 칭호이긴(막 8:29)하지만, 그리스도는 예수그리스도란 결합에서 단순히 이름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바울이 단지 형식적인 관사를 사용하고 있는 경우에도 이 진술은 타당하다. 그런데 그리스도란 의미가 이름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물론 희랍어를 쓰는 세계에서였다. 희랍인들은 메시야 칭호를 이해하지 못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구원자의 본질을 다른 칭호와 설명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기원 상으로 볼 때 메시야는 민족주의적인 유대교적 종말론에 속한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구약성서에서 왕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메시야는 본래 초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적인 구원자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구원자에 대한 표상들이 융합되어졌다. 즉 초월적인 존재로 고양되어 졌다는 것이다. 메시야는 묵시문학적 문헌의 대부분에서 나타나고 있지 않다. 묵시문학에서 메시야 개념이 침투되어 있는 부분은 이차적 발전단계에 속한다. ▶ 인자(人子) 인자(사람의 아들)는 마태복음 마08:20, 마09:6, 마10:23, 마11:19, 마12:32, 12:40, 마13:37, 13:41, 마16:13, 16:27-28, 마17:9, 17:12, 17:22, 마19:28, 마20:18, 20:28, 마24:27, 24:30, 24:33, 24:37, 24:39, 24:44, 마25:31, 마26:2, 26:24, 26:45, 26:64, 마가복음 막02:10, 2:28, 막08:31, 8:38, 막09:9, 9:12, 9:31, 막10:33, 10:45, 막13:26, 막14:21, 14:41, 14:62, 누가복음 눅05:24, 눅06:56, 눅07:34, 눅09:22, 9:26, 9:44, 9:58, 눅11:30, 눅12:8, 12:10, 12:40, 눅17:22, 17:24, 17:26, 17:30, 눅18:8, 18:31-32, 눅19:10, 21:27, 21:36, 눅22:22, 22:48, 22:69, 눅24:7에 잘 묘사되어 있다. 인자라는 칭호는 마태복음서의 기독론적 칭호들 중 매우 중요한 칭호 중의 하나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 이론은 도전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칭호는 다른 복음서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수님 자신이 자신을 지칭하는 칭호로 마태복음서도 사용되었다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사실이 그렇게 분명하다 하여도 인자와 관련된 몇 가지 물음들은 아직도 마태복음서 연구가들 사이에 명쾌한 결혼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마태가 사용한 이 용어의 정확한 용법이 무엇인가? 이 용어는 왜 마태복음 8:20 이전에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이 용어와 하나님의 아들과의 관계는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들에 대한 답을 추구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이 칭호가 성격상 대중적인 경우는 진정한 한 기독론적 칭호로 작용하고 그 외에는 고백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의 보충적 역할을 함을 알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듯이, 인자는 예수의 사역의 세 구별된 국면을 따라 분류할 수 있는데, 첫째는 그의 공적 사역과 관계된 것이고, 둘째는 그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과 관련된 것이다, 세째는 그의 재림과 관계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가만히 보면은 이러한 인자의 기능들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모습과 상당히 일치되어 나타난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가 예수의 재림과 관련하여 거의 사용되지 않은 것처럼, 인자라는 칭호는 소위 예수님의 현지사역과 관련하여서는 그렇게 중요하게 사용되지 않는다는 차이점이 있다. 킹즈베리에 의하면, 이 인자라는 칭호야말로 마가복음에 있어서 예수님에 대한 가장 합당한 칭호이며, 따라서 아무런 수정이 필요 없는 유일한 칭호란 것이다. 그리고 이 칭호의 뛰어난 점은 마가복음에 있어서 이것이 항상 예수님의 입을 통해서만 말씀되어진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볼 때에 이것은 예수의 자기이해(self-understanding)의 표현인 것이다. 예수님께 대한 여러 칭호들 중 인자칭호는 가장 규범적인 것이 되며, 예수께 대한 다른 칭호들을 재해석하여 하나님께 예수님에 정하신 신적 운명이 고난과 죽음이란 것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도 예수를 예수 인자라 칭하지 않았으며, 이것은 인자의 기능이 나사렛 사람의 정체를 밝히는 것과는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킹즈베리에 의하면, 마가는 예수를 매우 분명하게 다윗적 메시야, 왕,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하였다. 그러나 인자는 독자들에게 예수가 누군가를 설명하는데 사용된 흔적이 없다. 그는 인자의 세가지 면을 지상적인 자, 고난받는 자, 묵시적인 자로 이해했다. ▶ 주(主) 주라는 칭호는 마태복음 7:21-22, 마8:2, 8:6, 8:8, 8:25, 마9:28, 마14:28, 14:30, 마15:22, 마16:16, 16:22, 마17:4, 17:15, 17:16, 마18:21, 마19:27, 마20:30, 20:33, 마21:3, 21_19, 마24:42, 마25:11, 25:20, 25:22, 25:24, 25:44, 마26:22, 26:33, 26:35, 마가복음 1:17, 8:29, 막10:28, 막11:3, 막14:31, 누가복음 2:11, 눅5:8, 8:24, 8:45, 눅9:33, 9:49, 9:54, 9:61, 눅10:17, 눅11:1, 눅12:41, 눅13:23, 눅17:37, 눅18:28, 18:41, 눅19:8, 19:25, 눅22:33, 22:38, 22:49에 잘 표현되어 있다. 한스 콘첼만에 의하면, 이 칭호는 원시교단에서 헬레니즘, 그리스도교에로의 이행이 뚜렷이 반영되어 있다. 오늘날까지도 다음 두가지가 격렬히 논의되고 있다. 이 칭호는 어디서 유래했는가? 언제 그리고 어디서 이 칭호가 그리스도교에로 들어왔는가? 이미 원시교단에서인가? 또는 헬레니즘 교회에서인가? 이미 원시교단이 예수를 주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있다. 까닭은 maranatha라는 부름은 순수히 묵시문학적 그리스도론의 표현이다. 교회는 스스로 고대하는 자로 이해한다. 그에 반하여 헬레니즘 세계에서는 오실자를 기대하는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현재 지배하는 주님을 경배하기 위해 모인 교단이란 윤곽이 들어 났다. 그 부름은 이제 예수는 주이시다. 이것은 간구가 아니라 환호와 선포이다. 하나님의 아들과 주는 교차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각기 뚜렷이라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즉 아들은 본질이오 주는 아들에게 부여된 지위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그를 부를 때에는 주라고 하는 것이다. 신앙은 이 칭호에서 올리워진 자에 대한 관계성의 현재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칭호는 성서개념과 친밀히 결합돼 있다. 성령은 주의 역사의 현존이다. 주를 부르는 것 자체가 성령에 의해 역사 되는 행위이다. 킹즈베리에 의하면, 마태복음을 연구하는 몇몇 학자들은 대개 검증되지 않은 근거들 위에서 마태가 사용하는 주요한 기독론적 칭호는 주 혹은 퀴리오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면밀한 검토에 의해 들어 나는 증거에 따른다면, 이 칭호가 그렇게 두드러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게 된다. 마태는 퀴리오스라는 용어를 적어도 세 가지 수준에서 사용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로서의 능력을 지닌 분, 다윗의 아들로서의 능력을 지닌 주, 인자의 능력을 지닌 주인 것이다. 마태복음 27:63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빌라도를 퀴리오스라고 부를 때 이 말은 순전히 전통적인 용법, 영어의 Sir와 동의로서 사용되고 있다. 신학적으로 볼 때 이 말은 많은 곳에서 하나님을 지칭한다. 물론 이 말은 예수의 칭호로서 나타나기도 한다. 퀴리오스란 말이 예수를 믿으면서 그에게 나오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만 나온다는 의미에서 고백적인 칭호이다. 이러한 것의 유일한 예외는 마지막 심판의 장면에서 저주받는 자들도 예수를 주라고 부르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마7:21-23, 마25:37) 마태복음에서 퀴리오스라는 칭호는 기독론의 중심적인 칭호가 아니라 오히려 보조적인 칭호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 칭호는 그 칭호 자체를 넘어서 보다 명확한 다른 칭호를 암시해 준다고 말할 수 있다. ▶ 다윗의 자손 다윗의 자손은 마태복음 9:27, 마12:23, 마15:22, 마20:30-31, 마21:9, 21:15, 마22:42, 마가복음 10:47-48, 누가복음 18:38-39에 잘 나타나 있다. 이 다윗의 자손이란 칭호를 보면은 귀신들려서 예수께 나아 오는 자의 입에서 자주 들을 수 있다. 이것은 어떤 치유와 관련된 것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다윗의 자손에게는 이런 능력이 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예루살렘 입성할 때 호산나하면서, 다윗의 자손이라고 외치는데, 하지만 복음서의 이 구절들을 찾아서 자세히 보면, 그 다음 구절은 다윗의 자손의 영향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구절들이 나오는데 이를테면, 이는 누구냐에 대한 반문으로 사람들은 이는 나사렛사람이 아니냐는 구절은 다윗의 자손의 칭호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기도 하다. 한스 콘첼만에 의하면, 족보는 역사적인 문제와는 상관이 없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남게 되는데 바로, 마가복음 10:48-소경 바디매오의 외침이다. 마가복음 11:1- 의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다윗 왕국의 도래에 관한 환호가 있다. 이것은 현시 전설 적이다. 한편 마가복음 12:35-17에서 메시야가 다윗의 자손일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그러나 요한복음 첫 구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다윗의 자손인 예수그리스도는 태초 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신 분이다. 콘첼만에 의하면, 이 구절들은 교회공동체의 두 단계 그리스도론을 표현해 준다고 한다. ▶ 하나님의 사자(使者) 마21:37, 요06:38, 요07:29, 요08:42, 요09:4, 요10:36, 요17:8, 21 ▶ 예수님은 나에게 어떤 분이 되시는가? 나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요 1:1) 나의 창조주이신 예수님(요 1:3) 성육신하신 예수님(요 1:14, 20:27) 나의 구주이신 예수님(요 1:36, 요3:1-21)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요02:11, 요06장)) 나의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요10:11) 나를 다스리시는 예수님(마02:6) 나의 부활하신 예수님(요11:25, 요20:1-8) 나의 선생이신 예수님(요13:13) 나의 생명이신 예수님(요15:4-5) 나의 친구이신 예수님(요15:14) 나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요17:9) 나의 왕이신 예수님(요17:9, 마02:1-6) 나의 모퉁이 돌이신 예수님(마21:42) 나의 반석이신 예수님(고전10:4) 나의 대언자 이신 예수님(요일02:1) 나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히12:2) (이영제목사, 한국컴퓨터선교회)
173 예루살렘(Jerusalem) 파일
지명
jesus
10677 48 2007-01-02
▶ 예루살렘(Jerusalem) 뜻: 평화의 터전 유대와 베냐민 두지파의 경계선상에 있으며 지중해 헤브론 요단강 사마리아로접경을 삼고 있다. 이 명칭은 (수10:1)에 처음 기재되었으나 오래전부터 있어 옛 이름이 살렘 우루살렘이라라 하나 확증이 없고 확실한 것은 여부스이며 (삿19:10-11)별명으로 오홀리바라 하고(겔23:4) 시온산의 이름을 따라 시온성 다윗왕의 도성인고로 다윗성,고라의 자손은 하나님의 성리라 하고 하나님 의 성전이 있는고로 거룩한 성이다라 하였다(삼하05:7,5:9, (눅02:11, (시046:4, (느11:1, (마04:5). 이로부터 유대인들은 이 예루살렘을 극히 존중히 여기고 경모 하였다(시122:6, (시137:5-6, (왕상08:38, (사62:1, 7, (단06:10, (마05:35). 스가랴선지는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를 구하라고 예언하였고(슥08:22-23).사도들은 한층 더 고상히게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성이라 하였다(갈04:26).너희가 이를곳은 시온산과 하나 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이라 하였고(히12:22)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이 그의 위에 기록하리라 하고(계03: 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니 그 예 비한 것이 신부가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다고 하였다(계21:2). (1) 역사적 종교적 중요성. 예루살렘은 고대 가나안 사람의 수도였으나 B.C 1,000년경 다윗왕이 점령 령하였다. 아모스와 호세아를 제외한 모든 선지자들의 활동무대였으며 구약 성경 대부분이 여기서 기록되었다. B.C.586년 느부갓네살이 점령하였고 포로 에서 돌라온 후 다시 재건하였으며 파사 희랍 로마시대를 통하여 그의 신성을을 점점 더하였다. 예수의 사역, 죽음, 부활, 승천의 무대였다. A.D.70년 타이러스가 예루살렘을 함락시켰고 136년 하도리안 황제때 재건되었었다가 637년 칼리프 오말에게 점령되었고 회회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1099년 십자군이 점령하였고 1517년 알렌비장군의 연합군이 점령하기까지 터키 사람 의 수중에 있었다. 1920년 국제 연맹의 결의로써 영국의 위임통치로 되었다가 제 2차 대전 이후에 독립하였다. (2) 위치와 기후 고대 문헌을 참고해 볼 때 현재의 예루살렘은 고대 예루살렘의 터위에 건설된 것이 확실하다. 기후는 이탈리아의 북부와 비슷하며 겨울에는 영하2도쯤되며 눈도 내리지만 오래 쌓여있지 않는다. 여름철에는 평균 최고 30도 를 넘지 않는다. (3) 성전의 위치. 솔로몬의 성전은 B.C.586년 느부갓네살의 손에 부서지기까지 존속하였고 포로 기간 중에도 그 위 치를 잊어버리지 않았다(렘41:5, (학 2:3, (스03:12). B.C.516년 스룹바벨이 그 자리에서 다시 지었다(스06:15). 요세퍼스에 의하면 헤롯의 성전은 그런 것을 확장 미화한 데 불과하다고 한다. (4) 지세. 가) 기드론 골짜기:이 골짜기는 예루살렘 동쪽 와디 싯티 마리암일 것이다. (요18:1)과 (막14:26) 을 보면 예수가 감람산에 가실 때 이 골짜기를 건느셨다 나) 힌놈 골짜기: 이 골짜기는 예루살렘 서남쪽을 에워싼 넓은 골짜기 로서 와디엘 라바비일 것이다. 다) 혈 로겔: 골짜기와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은 샘과 못이다. (왕상01:)을 보면 아도니아는 엘로겔에서 대관식을 거행 하였으며 솔로몬은 기혼에서 행하였다. 라) 베데스다:38년된 병자가 일어난 곳이다(요05:) 예루살렘 부근에는기혼(처녀의 샘)이 유일한 간혈천이다. 아마 이것이 베데스다 못의 유적일 것이다. 마) 실로암 지금은 아인이라고 부르는데 실상은 샘이 아니라 처녀의 샘 이 아니라 처녀의 샘의 물을 바위를 뚫어서 급수한 것이었다고 한다. (5) 시대적 증거 가) 솔로몬 시대에는 예루살렘 성전,왕궁,바로의 딸의 집이 계속해있으며 주위는 성벽을 쌓았다. 왕궁은 남쪽에 있었으리라 본다. 왜냐하면 다윗궁 보 다는 높고 경전보다는 낮다고 하였다 (왕상06:36, (왕상7:8,12 (사01:26, (왕상08:1, (왕상09:24, (왕상10:5, (왕하11:19, (렘22:1, (렘26:10, (왕상07:8, (왕상09:24, (왕상03:1, (왕상09:15). 나) 히스기야 시대의 예루살렘 히스기야왕은 산헤립의 침입을 예상하여 기혼의 물을 다윗성 서쪽에 끌어들이는 수로의 기록이 있다. (왕하20:20, (대하32:4,30, (대하07:3,(사22:9-11).이것은 바위를 뚫은 굴인데 이 굴 의 안벽에는 옛날 히브 리어의 비문이 조각되어 있다. 이것이 실로암 비문이다. 다) 신약시대의 예루살렘. 신약시대에 있어서는 예수의 예루살렘 방문이 가장 큰 사건이다 예수님이 처음 세번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것은 성전과 관계가 있었다 (눅02:22-39,41-50, (요02:13-22). 네번째는 베데스다 못(요09: ) 다섯번째는 성전(요07:) 여섯번째는 실로암못과 관계가 있었다(요 9:) 일곱번째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소 수난주일 동안 일,월,화요일에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막11:-16:) 목요일에는 다락방에서 만찬을 잡수셨다(막14:15) 이 다락방은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었을 것이다. 이곳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초대교회의 집회 장소가 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욥바의 문곁 에 빌라도의 집이 있었다고 하며 헤롯 궁전과 같이 있었을 것이라 한다. 십자가와 무던의 장소인 골고다에는 현재의 성묘교회가 서 있다고 한다 옹기쟁이의 밭 "아겔다마"는 나그네의 매장지였다(행01:18). ▶ 예루살렘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시132:13) -------------------------------------------------------------------------------- 황금의 도시, 영원한 도시, 평화의 도시인 예루살렘은 3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채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역사의 중심에서 아직도 꿋꿋하게 살아 숨쉬는 이스라엘의 수도이다. 아무런 보잘 것 없은 풍경과 전무한 상태의 부존 자원을 가진 유대 광야의 동편 가장자리에 우뚝 솟아있는 이 도시를 성경은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시125:2) 하였다. 이런 아무 쓸모없는 땅이 하나님께 선택함을 받았고, '일신교의 보루로서', '세계인의 성도' 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불모의 언덕에서 유명한 철학자들과 선지자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설교와 도덕적 계율들, 그리고 한 형제로서의 사랑을 가르치셨고 실수와 우상숭배로 인해서 눈 어두워진 이 땅의 사람들에게 바른 판단의 기준과 신앙적인 확신을 심어준 신앙의 틀을 짠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 (미04:2) 이곳은 전인류의 절반이 종교적인 수도로 믿고 있고,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옛날의 영광이요 미래 희망의 상징이며, 기독교인에게 있어서는 예수님의 마지막 사역이 펼쳐진 곳이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생생하게 지켜본 도시이다. 또한 회교도들은 이곳이 선지자 모하마드가 승천한 곳이라 믿고 있다. 예루살렘은 신앙과 평화의 원천이며, 가장 신성한 도시인 동시에 테러와 전쟁의 피가 끊임없이 흘려진 곳이다. 즉, 칼이 오랜 동안의 역사를 거쳐오면서 이들의 자손들을 괴롭혀 왔던 것이다. 지구상의 어떤 도시보다도 많은 전쟁을 거쳐왔고, 사람들의 피로 바다를 이룬 적이 수없이 많았었다. 무려 50차례 이상을 포위 공격 당했으며, 36차례에 걸친 정복과 10차례의 심한 파괴를 당했다. 예루살렘의 시초는 고대사 속에 묻혀 있어 알 길이 없지만, '평화'라는 뜻의 '살렘'(salem) 이라는 이름으로 가나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창14:18), 또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비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미는 헷사람이라" (겔16:3) 하였다. 사실상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곳이 된 것은 주전 10세기에 다윗 왕이 여부스 족으로부터 예루살렘을 정복해서 그의 수도로 삼고 (삼하05:6 ~ 10), 여호와의 언약궤를 이곳으로 옯겨온 (삼하06:1 ~ 23) 이후라고 말할 수 있다. 이후 다윗성(City of David)이라고도 불리웠으며, 자신을 포함한 역대 왕들의 무덤이 되기도 하였다. (사진: 다윗의 망대) BC 965 ~ 922 년에는 예루살렘을 확장 시킨 솔로몬 왕이 성전과 그의 궁전을 짓고 예루살렘을 미화하였다. 본격적으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종교, 정치, 문화, 사회등 무든 분야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화려하여 "은을 돌같이 흔하게" (왕상10:27) 하던 예루살렘은 남북 분열 이후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BC 586년 바벨론에 의해서 정복 당하였으며 성전이 파괴되고 사람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시137:1 ~ 4) 하며 애곡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곳에서도 예루살렘을 향하신 하나님의 미래를 결단코 포기하지 않았으며, 그 꿈은 예언자들의 예언대로 70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귀향하여, BC 516 ~ 515 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였다. BC 332년 예루살렘은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서 정복 당했다가, 마카비 전쟁을 통하여 성전을 재탈환하고, 헤스모니아 왕가에 의해서 잠시 동안의 독립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시 로마의 폼페이우스에 의해서 정복되고 말았다. (BC 63년). 로마의 후광을 입어 BC 37년 유대인의 왕으로 임명 된 헤롯 대왕 (Herod the Great)은 위대한 건축가로서 예루살렘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갔으며, 솔로몬 당시의 성전보다도 더 장대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건립하고 성벽을 쌓았다. 이성전은 46년 동안이나 걸려 건축되었고 (요02:20), "헌물과 미석으로 꾸며졌다" (눅21:5). 이 예루살렘이 예수님 당시의 바로 그 예루살렘이다. 그러나 이렇게 화려했던 예루살렘도 예수의 예언 (눅19:41 ~ 44, (눅21:6,20,24)대로 "돌 위에 돌 하나가 남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로마의 티투스 (Titus)는 BC 70 년 예루살렘을 불태워 버리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터전이 되지 못하였으며, 세계에 흩어진 그들에게 있어서 이 도시는 다만 과거의 도시일 뿐이었다. AD 132 ~ 135년 바르 코흐바 (Bar Kokhba) 에 의한 제2차 유대 반란 이후 하드리안 황제에 의해서 예루살렘은 로마의 도시로 재건되면서 엘리아 카피톨리나 (Aelia Capitolina) 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워지게 됨으로써 그 명성있던 이름마저 빼앗기게 되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성스러운 장소에는 로마의 제우스 신전이 세워지고 유대인의 출입이 금해지고 만 것이다. AD 332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예루살렘을 비롯한 예수와 관련된 팔레스틴을 '성지'(Terra Sancta)라 하여 곳곳에 기독교 교회를 세우기 시작하였다. 특히 예루살렘의 골고다에 세워진 성묘교회와 베들레헴에 세워진 예수 탄생교회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친어머니인 헬레나에 의해 건립되었다. 그러나 614년 페르샤의 침공으로 대부분의 교회가 파괴되었으며, 636년 아랍에게 예루살렘이 점령되어 약 500여년간 아랍의 통치하에 있게 됨으로써 예루살렘은 더 이상 기독교의 전통을 이어가지 못하게 되었으며, 새로운 아랍문화로 채색되어 갔다. 1099년 예루살렘이 십자군의 휘하에 들어감에 따라 약 200년 동안 라틴제국의 도시가 되었다가, 1187년 살라딘 왕이 이끄는 모슬렘에 의해서 재점령 됨으로써 기독교와 모슬렘 사이의 이중구조 속에서 예루살렘은 변모해 갔다. 1517년 오토만 터어키 (Ottoman Turkey)의 지배하에 들어감으로써 400년간의 터키 통치가 시작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영국군은 1917년 이후 예루살렘에 총독부를 두어 위임 통치를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제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면서 신생 이스라엘은 시온주의자들의 노력과 국제기구의 승인에 의하여 1948년 5월 14일, 2천년 동안의 유랑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국가로 탄생하게 되었으며, 예루살렘은 다시 이스라엘의 수도가 되어 옛날의 영화를 되찾게 되었다. (사진 :오토만 터키군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알렌비 장군과 영국군) 현재 예루살렘의 신시가지 (New City)는 불과 150여년 전부터 발전되기 시작하였다. 구도시 (Old City)는 1평방 킬로미터에 불과하여 매우 비좁을 뿐만 아니라 매우 오래된 도시이기 때문에 시설이 좋지 못하고 비위생적이었다. 150여년이 지난 지금은 신도시가 구도시의 약 100배가 넘는 신시가지로 발달하였다. 1967년 6일 전쟁 이후 통합된 구도시는 주로 고적지와 박물관 등을 포함하여 새로운 위생시설을 갖춘 일반 주거지로 사용되고 있으며, 신시가지에는 정부청사 등을 비롯한 행정수도로서 그 면모를 현대화해 나가고 있어 옛것과 새 것의 환상적인 조화가 이루어져 있다. 특히 연한 노란 빛을 띄고 있는 석회암에서 반사되는 아름다움은 이 도시를 '황금의 도시' (The Golden City)라 부르게 한다. ▶ Jerusalem's - (사62:1 ▶ (수10:1, (수12:10, (수15:8, (수18:28, (삿01:7, (삼상17:54, (삼하05:5, (삼하08:7, (삼하09:13, (삼하10:14, (삼하11:1, (삼하12:31, (삼하14:23, (삼하15:8, (삼하16:3, (삼하17:20, (삼하19:19, (삼하20:2, (삼하24:8, (왕상02:11, (왕상03:1, (왕상08:1, (왕상09:15, (왕상10:2, (왕상11:7, (왕상12:18, (왕상14:21, (왕상15:2, (왕상22:42, (왕하08:17, (왕하09:28, (왕하12:1, (왕하14:2, (왕하15:2, (왕하16:2, (왕하18:2, (왕하19:10, (왕하21:1, (왕하22:1, (왕하23:1, (왕하24:4, (왕하25:1, (대상03:4, (대상06:10, (대상08:28, (대상09:3, (대상11:4, (대상14:3, (대상15:3, (대상18:7, (대상19:15, (대상20:1, (대상21:4, (대상23:25, (대상28:1, (대상29:27, (대하01:4, (대하02:7, (대하03:1, (대하05:2, (대하06:6, (대하08:6, (대하09:1, (대하10:18, (대하11:1, (대하12:2, (대하13:2, (대하14:15, (대하15:10, (대하17:13, (대하19:1, (대하20:5, (대하21:5, (대하22:1, (대하23:2, (대하24:1, (대하25:1, (대하26:3, (대하27:1, (대하28:1, (대하29:1, (대하30:1, (대하32:19, (대하33:1, (대하34:1, (대하35:1, (대하36:1, (스01:2, (스02:1, (스03:1, (스04:6, (스05:1, (스06:3, (스07:7, (스08:29, (스09:9, (스10:7, (느01:2, (느02:11, (느03:8, (느04:7, (느06:7, (느07:2, (느08:15, (느11:1, (느12:27, (느13:6, (에02:6, (시051:18, (시068:29, (시079:1, (시102:21, (시116:19, (시122:2, (시125:2, (시128:5, (시135:21, (시137:5, (시147:2, (전01:1, (전02:7, (아01:5, (아02:7, (아03:5, (아05:8, (아06:4, (아08:4, (사01:1, (사02:1, (사03:1, (사04:3, (사05:3, (사07:1, (사08:14, (사10:10, (사22:10, (사24:23, (사27:13, (사28:14, (사30:19, (사31:5, (사33:20, (사36:2, (사37:10, (사40:2, (사41:27, (사44:26, (사51:17, (사52:1, (사62:6, (사64:10, (사65:18, (사66:10, (렘01:3, (렘02:2, (렘03:17, (렘04:3, (렘05:1, (렘06:1, (렘07:17, (렘08:1, (렘09:11, (렘11:2, (렘13:9, (렘14:2, (렘15:4, (렘17:19, (렘18:11, (렘19:3, (렘22:19, (렘23:14, (렘24:1, (렘25:2, (렘26:18, (렘27:3, (렘29:1, (렘32:2, (렘33:10, (렘34:1, (렘35:11, (렘36:9, (렘37:5, (렘38:28, (렘39:1, (렘40:1, (렘42:18, (렘44:2, (렘51:35, (렘52:1, (애01:7, (애02:10, (애04:12, (겔04:1, (겔05:5, (겔08:3, (겔09:4, (겔11:15, (겔12:10, (겔13:16, (겔14:21, (겔15:6, (겔16:2, (겔17:12, (겔21:2, (겔22:19, (겔23:4, (겔24:2, (겔26:2, (겔33:21, (겔36:38, (단01:1, (단05:2, (단06:10, (단09:2, (욜02:32, (욜03:1, (암01:2, (암02:5, (옵01:11, (미01:1, (미03:10, (미04:2, (습01:4, (습03:14, (슥01:12, (슥02:2, (슥03:2, (슥07:7, (슥08:3, (슥09:9, (슥12:2, (슥13:1, (슥14:2, (말02:11, (말03:4, (마02:1, (마03:5, (마04:25, (마05:35, (마15:1, (마16:21, (마20:17, (마21:1, (마23:37, (막01:5, (막03:8, (막07:1, (막10:32, (막11:1, (막15:41, (눅02:22, (눅04:9, (눅05:17, (눅06:17, (눅09:31, (눅10:30, (눅13:4, (눅17:11, (눅18:31, (눅19:11, (눅21:20, (눅23:7, (눅24:13, (요01:19, (요02:13, (요04:20, (요05:1, (요07:25, (요10:22, (요11:18, (요12:12, (행01:4, (행02:5, (행04:5, (행05:16, (행06:7, (행08:1, (행09:2, (행10:39, (행11:2, (행12:25, (행13:13, (행15:2, (행16:4, (행19:21, (행20:16, (행21:4, (행22:5, (행23:11, (행24:11, (행25:1, (행26:4, (행28:17, (롬15:19, (고전16:3, (갈01:17, (갈02:1, (갈04:25, (히12:22, (계03:12, (계21:2, lt=31.777&ln=35.234
172 사탄, 마귀, 귀신
인물
jesus
10451 55 2006-12-29
복음서에 나타난 귀신들림과 축사(逐邪) 김지철(장신대:신약학 교수) - (막05,1-20 거라사 귀신들린 자의 치유: (마08,28-34; (눅08,26-39)을 중심으로 - 복음서기자들은 인간에게 귀신이 들리게 하는 힘, 또는 인격으로서 귀신의 존재를 보도해 주고 있다. 그리고 그 귀신을 축출하는 사역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예수의 사역 가운데 매우 중요한 부분임을 강조한다. 곧 귀신축출 사건은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의 구체적인 기적사건들 가운데 결정적인 사건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예수에게서 귀신축출 사건은 병치유와 더불어 예수의 치유 기적사건 가운데 한가지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때로 양자는 종종 서로 혼합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혹은 별개의 사건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귀신축출이란 성경에서 보면 사탄의 세계가 종말을 고하고 이제 하나님의 나라가 구체적으로 예수의 몸을 통해 드러났다고 하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하나님이 주권을 가지고 다스리시는 구체적인 모습이 예수의 행위를 통해 드러남을 비유적으로 나타내 주는 징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우리는 특별히 마가복음에 나타난 한 이야기(거라사 귀신들린 자: 막 5,1-20)를 통해서 예수의 귀신축출 사건을 살펴보려 한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축사자로서의 예수의 모습과 귀신들린 자, 그리고 귀신들과의 관계성을 검토해 보려 하는 것이다. 먼저 용어풀이와 복음서 전체에 나타난 흐름을 살펴보고 우리의 본문을 중심으로 석의적 분석을 기초로 하여 살펴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이에 관련된 몇가지 신학적/목회적인 결론을 맺고자 한다. I. 관련 용어 이해: 사탄(마귀)과 귀신들 Satan 1. 마귀/사탄 히브리어어의 사탄(욥1,6-8.12.2,1-7; (슥3,1.2 등)은 LXX 역에서 마귀로 번역된다. 신약에서 보면 사탄은 36 번, 마귀는 34 번 등장하고 있다. 두 어휘 모두 공관복음서와 바울서신 사도행전 계시록등에 나타난다. 많은 경위 이 두 어휘는 서로 동의어로 혼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예수의 광야 시험 장면인 (막 1,13)에서는 사탄으로 나타나나, 그 병행구인 (마 4,1) (눅 4,2)에서는 마귀로 언급되고 있다. 계시록에서는 둘 다 혼용하여 사용한다. 따라서 실제로 용어사용에 있어서 마귀와 사탄은 의미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마 4,1 병행; (눅 4,2; 참조 (막 1,13; (요 13,2.27; (눅 22,3). 마귀(눅 8,12)/사탄(막 4,5)은 우선 '악한 자'로 이해된다(마 5,37, 13,19.38; (요 17,15(참조 (엡 6,11.16; (살후 3,3; (요1 2,13-14; 3,8.12; 5,18-19). 그리고 유혹자(마 4,3), 원수(마 13,39; (눅 10,19), 공중의 권세잡은 자(엡 2,2), 이 세상의 통치자(요 12,31; 14,30; 16,11), 벨리알(고후 6,15), 바알세불(막 3,22 병행)로 불리우기도 한다. 사탄이 하는 일은 주로 사람들을 고소하고 그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유혹자로 등장한다(대하 21,1; (욥 1,6-2,7; (시 108,6(LXX); (슥 3,1-2; (마 4,3; (눅 22,31: 사단이 밀까브르듯 한다; (막 4,15; 8,33: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그러나 복음서에서는 이에서 더 나아가 예수의 적대자(마 4,1-11; 병행 (눅 4,1-13), 그의 사역을 방해하는 자(마 13,39: 가라지를 심은 원수), 귀신들의 우두머리로(마 9,34; 12, 24.26; 25,41: 마귀와 그의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로 나타나기도 한다. 마가는 마귀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나, 요한의 경우는 6,70; 8,44; 13,2에서 마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마귀와 사탄이 서로 교환할 수 있는 용어로 나타나고 있다( 참조 (마 4,1.5.8.11과 4,10; (막 4,15; (눅 8,12; 13,16). 2. 귀신들 마귀/사탄과는 달리 귀신은 자주 복수형태로 등장한다. 신약의 경우 63번 나오고 있다. 그 중에서 53번이 복음서에 나타나고 있다. 곧 마태복음(11 번), 마가복음(13 번), 누가복음(23 번), 요한복음(6 번)에 나타난다. 귀신들은 종종 '더러운 영들'(막 1,23.26.27; 3,11), 또는 '악한 영들'(눅 7,21), '벙어리 영'(막 9,17), '벙어리되고 귀머거리된 영'(막 9,25), '병약함의 영들'(눅 13,11), '귀신들의 영들'(계 16,13.14)로 불리운다. (눅 8,2에서는 '악하고 병약한 영들'과 '일곱 귀신들'이 함께 언급된다. 그러나 단지 '영들'만으로 귀신들을 표현하기도 한다(마 8,16; (눅 10,20; (행 23,8.9). 때로는 레기온(막 5,9; (눅 8,30: 군대/많다)이라는 말을 통해서 귀신들의 숫자가 많음을 표시하기도 한다. 귀신은 주로 사람 안에 거주하면서 사람들을 다스리고, 그들을 아프게 하며 병들게 한다. 이에 예수는 귀신들린 자들에게서 귀신을 내어 쫓으신다( ). 예수의 제자들 또한 예수처럼 귀신들보다 더 강한 영의 능력을 받아 축사를 행한다. 3. '귀신들리다' 이 동사는 신약 복음서에서 13 번 등장한다. 마태복음에 7번, 마가복음에 4번, 그리고 누가와 요한복음에 각각 한번씩 나타난다. 이것은 사람이 그 안에 머무는 귀신에 의해 질병상태에 놓이는 것을 가리킨다. (요 10,21.22에 의하면 이'귀신들리다'라는 말은 '귀신을 지니고 있다'라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마 15,22에서는 단순히 귀신들림이 아니라, '귀신들려 고통 당하다'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곧 인간의 몸과 마음에 지니고 있는 질병의 근거가 귀신들에게 온 것을 말해 준다. 4. 귀신들의 장소와 시간 귀신들이 머무는 곳은 광야(눅 8,29: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 (마 12,43 병행; (눅 11,24 참조 (막 1,12.13 병행), 파괴된 곳(계 18,2), 무덤(마 8,28 병행; (막 5,2; (막 5,3 병행; (눅 8,27; (막 5,5)등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하나님에 대한 적대자 곧 귀신들이 갇힐 곳은 무저갱(눅 8,31; (계 9,1; 20,1-3 참조 롬 10,7)으로 나타난다. 귀신들이 또한 머무는 곳으로 불과 물, 공중이 나타나기도 한다(9,22; 참조: (마 17,15. 불: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하는 수단(계 20,9; 참조 (눅 9,54); 물: 귀신들의 요소다(계 12,15.16; 13,1; 참조 (막 5,1-13 병행, 공중권세를 잡은 자(엡 2,2)). 귀신이 활동하는 시간은 주로 밤이다. 밤이란 신적인 계시의 시간이면서 동시에 악한 영들, 죽음의 영이 일하는 시간으로 나타난다(눅 12,20; 참조 (행 20,7-9). 예를 들어, 베드로가 고기낚기를 실패하는 때도 밤으로 나타나며(눅 5,5-7; (요 21,3-6), 예수가 배반을 당하는 때도 밤이다(요 13,30; (고전 11,23), 밤에 체포당한다(참조 (눅 22,53; 예수의 예언: "밤에 너희가 나를 다 버리리라"(마 26,31; 26,34 병행 (막 14,30). 귀신들은 곧 어두움을 가져오는 존재이다(계 16,10). 따라서 예수가 다시 오시는 종말의 때란 더 이상 밤이 없는 빛의 자리이다(계 21,25; 22,5). II. 사탄과 귀신들의 역할 사탄은 첫 장조에서 인간을 유혹했던 뱀과 동일시되고 있으며(계 12,9; 20,2; 참조 (창 3,1-15), 하나님과 적대하는 능력으로 이 세계를 지배하는 자로 등장한다(막 3,23-26; (마 12,26/(눅 11,18). 사탄의 영역은 어둠의 세계이다(행 26,18; (고후 11,14). 질병과 파괴의 영들이 그에게 복종한다(눅 13,16; (고후 12,7; (살전 2,18; (딤전 1,20). 사탄/마귀는 곧 인간을 적대하는 자로서(삼상 29,4; (왕상 5,18 등), 초월적인 존재로 인간을 하나님 앞에서 고소하는 자로 나타난다(욥 1,6-12; 2,1-7; (슥 3,1.2; (대하 21,1(LXX ). 또한 사탄은 하나님을 적대하는 원수로 나타나므로 마귀의 세계는 하늘의 세계와 대립되는 것으로 인식된다. 마귀는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로 귀신들 중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진 자다. 귀신들은 말하자면 그의 졸개들이라고 할 수 있다(마 25,41; 계 12,7.9).마귀는 곧 질병과 죽음을 가져오는 귀신들의 우두머리이다(행 10,38; 참조 (고후 12,7-9; (히 2,14; 참조 (레 20,10.13.14). 마귀는 인간을 죽음과 질병에로 몰고 갈 뿐만 아니라, 또한 인간을 유혹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배교하게 하며 하나님을 향하여 불순종하게 하기도 한다(마 4,1.5.11 병행; (눅 4,2.3.6.13; (계 2,10; 12,9; 20,10). 예를 들면, 마귀는 예수의 비유 말씀 가운데서 곧 잡초를 밭 가운데 뿌릴 뿐 아니라(마 13,39), 하나님의 말씀의 선한 씨앗을 도둑질하기도 한다(눅 8,12). 또한 인간에게 올무를 놓고(딤전 3,7; (딤후 2,26), 인간을 죄에 빠뜨릴 뿐 아니라(요 8,44; (요1 3,8), 처음부터 살인자이고, 거짓말쟁이고, 죄인이다. 유다에게 반역하게 만들 뿐아니라(요 13,2), 인간을 교만하게하고(딤전 3,6), 형제를 미워하게 한다(요1 3,8). 따라서 모든 악의 유혹에 넘어가는 자는 마귀의 자녀 가운데 있다고 할 수 있다(요 8,44; (행 13,10; (요1 3,8.10). 사탄은 죄와 사악함의 시조인 것이다(막 4,15; (눅 22,3 병행; (요 13,27; (행 5,3; (딤전 5,15). 그러나 이러한 마귀의 사역은 일정한 시간에 제한되어 있다(계 12,12). 천년왕국이 도래하기 전에 마귀는 천년동안 갇히울 것이다(계 20,2). 그리고 결정적인 마지막 전투 후에(계 20,10), 또는 마지막 심판 후에(마 25,41), 마귀는 영원한 불에 던지워 멸망당할 것이다(마 25,41; (계 20,10). 그러나 사실은 마귀의 다스림의 세계는 이미 무너졌다(참조 (요 12,31; 14,30; 16,11). 예수께서 이미 마귀의 일들을 멸망시키기 위해 나타나셨기 때문이다(요1 3,8). 예수께서 귀신을 내 쫓음은 곧 마귀의 세계가 종말을 고했다는 증거이며,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구체적인 도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마 12,28 병행; (눅 11,20). III. 귀신들림과 예수의 귀신축출 1. 귀신들림이란 인간 안에 들어온 귀신들이 그 인간을 육적으로 영적으로 괴롭히며 파괴하는 것을 의미한다(예: (삼상 16,14-23: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사울)를 번뇌케 한다). 성경은 귀신들린 사람을 '귀신을 지녔다'고도 말한다(눅 4,33; (마 11,18 병행; (눅 7,33: 세례요한; 예수에 대해서 (요 7,20; 8,48.49.52; 10,20). 그러나 귀신들은 사람에게 '들어가기도' 하며(눅 8,30; (막 5,12.13; (눅 8,32.33). 능력있는 말씀에 의해 그에게서 '떠나기도' 한다(막 1,26 병행; (눅 4,35; 4,41; 8,2; (마 8,32 병행; (막 5,13/(눅 8,33; 8,35.38; (막 7,29.30; (마 17,18; (눅 11,14). 예수를 만난 귀신들이 떠나기 전에 귀신들린 자에게 소동을 일으키기도 한다(마 1,21-28; 5,1-20; 7,24-30; 9,14-29 등). 이 귀신들은 예수가 누구인지, 곧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지니고 있음으로(막 1,24; 3,11; 참조 (행 16,17) 그들이 영적 존재임을 알려준다(귀신들림의 구체적인 현상은 III. 3. 또는 IV. 3. 을 참조할 것) 2. 마가복음에는 네 개의 중심적인 귀신축출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막 1,21-28; 5,1-20; 7,24-30; 9,14-29). 그러나 그 외에도 짧은 보고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도 있다(마 9,32-34; 12,22(눅 11,14); (막 1,32-34.39; 3,7-12등). 귀신축출 이야기에 나타난 귀신들린 사람들의 특성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사회적으로 근거없는 자들로, 사회의 변두리에 쫓겨난 사람들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들의 행동이나 경제적인 상황이 매우 열악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반드시 모든 사람이 다 사회에서 버려진 사람들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가버나움 회당에서의 귀신축출 사건(막 1,21-28)을 보면, 그 사람은 유대 사회의 중심흐름에 놓여 있는 사람이며, 그의 공동체에서 종교적인 생활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마가복음에 나타나고 있는 귀신들린 아이의 경우도 그 아이는 그의 가족과 함께 있었고 그 아버지와 함께 예수의 제자들을 보기 위하여 동행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막 9,14-29). 경제적으로도 그 당시 사람들의 평균수준보다 오히려 낳은 상태에 있었던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의 경우도 가정에 머물고 있었으며(막 7,24-30), 그녀는 딸을 집밖으로 데리고 오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아마도 그녀의 딸이 사람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고, 집을 떠나기에는 너무 그 상태가 악화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만약 가정에서 그와 같은 딸을 돌보았다면 아마도 그것은 그녀의 가정이 부유한 가정이었을 가능성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거라사의 귀신들린 자의 이야기(막 5,1-20)는 버려진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무덤 동굴에서 살고 있었다. 이것은 사회의 변두리마져도 그를 용납하지 못했음을 말해 준다. 그는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로 간주되어, 성전에 들어가거나 예배에 참여하거나 종교적 식사에 참석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이 거라사 귀신들린 사람을 통제할 수 없었다는 것은 그 귀신이 매우 폭력적이어서 이웃과 공동체의 자리가 그를 유리시킬 수밖에 없는 파괴적인 존재임을 암시해주고 있다. 위에 언급된 대로 귀신들림이 혼돈된,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특성을 지닌다는 것은 때때로 그가 자신의 상황에 전혀 반대되는 성향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든지, 아니면 귀신들은 영적인 적대자를 직면했을 때 그 자신을 드러내 보여준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어쨋든 귀신들은 자신들의 이러한 인간에 대한 적대적인 사역이 예수에 의해 거부됨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예수의 귀신축출 사역 1) 축사자로서의 예수: 예수는 당시 유대적인 세계관과 같이 귀신의 존재를 인정한다. 곧 마지막 시대에 마귀와 그 세력들은 다 제거되어질 것이라는 유대 종말론의 한 단면을 가지고 계셨다(1 QS 3,24.25; 4,20-22; 1 QH 3,18; 1 QM 1,10.11 등). 예수에게서 나타나는 귀신축출과 병치유는 말하자면 바로 이러한 유대 종말론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세례자 요한의 질문에 대한 예수의 대답 또한 그것을 보여준다(마 11,4-6 병행; (눅 7,22.23). 다시 말하면 예수의 병치유와 그에 따른 귀신 축출은 구약 예언적 말씀에 대한 성취라 할 수 있다(참조 (사 29,18.19; 35,5.6; 61,1). 이를 통해 예수는 자신의 종말론적인 자기 인식과 그의 축사행위와의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예수의 사역, 특히 귀신축출에 대한 종합보고인 (마 12,43-45(병행; (눅 11,24-26)을 보면 예수는 귀신을 쫓아내는 분으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그는 그의 적대자들에 의해서 바알세불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낸다고 고소를 당한다(막 3,22; (마 9,34; 12,24; (눅 11,20). 이것은 말하자면 예수가 축사자로 나타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적대자들의 그러한 비난을 예수는 거절하지만 자신이 스스로 축사자였다는 것을 거부하지는 않고 있다. 예수는 자기 스스로 성령/하나님의 손으로 귀신을 쫓아낸다(마 12,28; (눅 11,20)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예수가 헤롯을 향해 자기의 사명과 운명을 언급한 구절인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 지리라."(눅 13,32) 는 말씀은 바로 예수가 축사자로서 명성을 얻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 뿐 아니라, 축사자 예수의 이름을 빌어 축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은(막 9,38 병행 (눅 9,49) 그러한 명성에 걸맞는 현상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의 축사능력은 그의 제자들(70인)에게도 전수되고 있다. 그들은 예수 앞에 나아와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눅 10,17)라고 기뻐하며 보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축사자의 권위는 이미 제자들을 선택할 때 부여된 것으로 마가는 보도하고 있다. 마가에 의하면(3,14) 예수께서 제자들을 선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하나는 예수와 더불어 함께 있음이고, 다른 하나는 제자들을 파송하는 것이다. 특히 제자 파송에서 그들의 역할은 첫째는 말씀 선포였고, 둘째는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이었다. 즉 예수는 제자들에게 축사의 권위를 부여하셨던 것이다. 이러한 축사를 행하는 권위의 전승은 원시기독교 공동체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제자들의 사 역과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 이에 힘입어 바울도 빌립보에서 귀신들린 여종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행 16,18)고 축사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2) 귀신축출의 과정: 예수와 귀신들린 자와의 만남 귀신들린 자에 대한 예수의 치유는 대체적으로 귀신을 그 사람에게서 쫓아내는 축사행위로 이루어진다(마 15,21-28 병행; (막 7,24-30; 막 1,23-28 병행; (눅 4,33-37; (막 5,1-20 병행; 9,14-29 병행). 예수는 축사행위를 통해서 육체적인 질병도 치유했다. 예를 들면 맹인의 고침(마 12,22-24; (막 10,46-52 병행; 2,1-12 병행), 벙어리(마 9,32.33 병행; (눅 11,14; 참조 (막 9,14-29 병행), 중풍병(막 2,1-12 병행; (눅 13,10-17), 문둥병(막 1,40-45 병행; (눅 17,11-19), 열병(막 1,29-31 병행)의 치유등이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축사의 특징은 귀신에 대한 꾸중과 위협이다(막 1,25 병행; (눅 4,35; (막 3,12 병(행; 9,25 병행; (눅 4,39 등). 그 외에도 침을 바르는 것(막 7,31-37; 8,22-26; (요 9,6.7). 안수하는 것(마 8,15 병행; (막 1,31; 마 9,29 병행; 20,34; 막 7,32.33; 8,22-26; 참조 막 5,41 병행)도 병행된다. 여기서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오늘의 본문인 마가복음에 나타나는 축사자로서의 예수와 귀신들린 자와의 만남에서 일어나는 귀신축출의 과정을 살펴보면, a. 예수와 귀신들린 자와의 만남(막 1,23: 귀신들린 사람의 소리지름) b. 귀신(들린 자)의 응답: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막 1,24)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나를 괴롭게 마옵소서."(막 5,7) c. 예수의 침묵명령: "잠잠하라"(막 1,25)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막 1,25; 5,8; 9,25). 이는 축사행위에 있어서 하나의 도식이라 할 수 있다. 그 중간에 귀신을 향한 예수의 물음이 나타난다. "네 이름이 무엇인가?"(막 5,9). 이름을 질문함으로 귀신을 무장해제 시킨다. 막 9,21-22에서는 예수가 귀신들린 아이의 질병 과정을 묻는다("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d. 예수가 귀신으로 하여금 다시 귀신들렸던 자에게 되돌아오지 못하도록 명령함(참조 (마 12,43-45; 병행; (눅 11,24-26). e. 귀신들이 예수에게 관용을 요청함(막 5,10-12: 돼지에게로 들어가기 원함). f. 예수가 귀신들로 돼지에게로 들어가도록 허락(막 5,13). g. 귀신들린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다(막 5,15). h. 목격자들의 두려움과 놀라움(막 1,27: "다 노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이 과정에서 귀신의 폭력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귀신들린 자로 하여금 소리지르고 자기 몸을 상하게 함/ 돼지를 물에 빠뜨림(막 5,4-5/11-13), 귀신들린 자로 하여금 경련을 일으키게 함(막 1,26; 9,26).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병치유의 기적과 마찬가지로 때로는 예수와 함께 있는 사람이 아닌 멀리있는 사람이 귀신들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귀신을 쫓아낸 경우도 있다(막 7,24-30: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는 사실이다. 3) 귀신축출의 수단: 예수의 말씀으로 귀신을 내 쫓기도 하시며(막 1,25; 9,25), 하나님의 영/손가락으로 내쫓기도 하시고(마 12,28; (눅 11,20), 자기 권위로 내쫓기도 하신다(막 9,25: 내가 네게 명령한다). 특히 성령을 통해 나타난 귀신축출은 예수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구체적 오심을 의미한다(막 3,22-27 (마 9,32-34; 12,22-30; (눅 11,14-23). 따라서 축사행위는 단지 하나님 나라의 준비나 도래의 표지라기 보다는 이미 하나님 나라가 현실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것을 뜻한다. 강한 자의 비유는 그것을 말해준다(마 12,29; (막 3,27; (눅 11,21-22). 예수는 그의 축사행위에서 사탄의 능력을 박탈하고 구속한 것을 의미한다. 귀신축출 자체가 바로 메시야적 행위라는 것이다. 귀신축출은 사탄을 가두는 첫 단계이고, 마지막 심판에서 궁극적 승리가 나타날 것이라(마 13,30: 추수 때)는 말씀이다. IV. 복음서와 원시기독교회에 나타난 귀신축출 보고의 특성 1. 마태복음(마 ): 사탄과 마귀의 이름이 서로 호환되고 있지만(4,10; 12,26; 16,23), 마귀라는 이름을 보다 선호(4,1.5.8.11; 13,39; 25,41)한다. 마태는 사탄의 유혹자로서의 성격을 부각시킨다(4,13). 마태는 예수의 축사의 역할을 마가복음보다는 축소시킨다. 예를 들면 막 1,21-28의 가버나움에서의 귀신축출의 이야기를 생략한다. 마 8,24-34에 이르기까지 축사의 이야기를 담지 않고 있다(요약보고에서만 취급: 마 4,24). 그러나 마태에게서도 귀신축출의 행위는 예수의 중요한 계시행위였다(마 12,22-30). 마 9,32-34(벙어리 귀신의 축사: 눅 11,14)에서 축사는 소경과 벙어리를 고치는 메시야적 행위로 이해된다(사 42,7.16; 29,18; 35,5; 42,18-20; 43,8; 61,1(LXX)). 예수의 축사행위를 통해서 종말에 나타날 귀신들의 고통이 이미 시작됐음을 알고 그들은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는가?"라고 예수에게 묻고 있다(마 8,29). 이에 예수는 다만 귀신들을 향해 "나가라"(마 8,32)고 명령하신다. 마태에서는 예수가 기름이나 침이 아니라, 말씀으로 축사를 행하신다(마 8,16). 2. 마가복음(막 ): 마가는 곧 예수의 공적인 첫 번째 행위가 귀신축출임을 명백히 한다. 마가복음의 13 개의 치유이야기에서 가장 큰 범주는 축사(1,21-28; 5,1-20; 7,24-30; 9,14-29)인 것이다. 마가는 곧 예수의 사역의 요약보고에서 그의 귀신축출의 모습을 언급하므로 예수의 귀신축출이 그의 사역에서 지닌 의미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1,32-34; 3,11-12). 마가복음에 나타나는 사탄의 중요한 역할은 예수를 그의 선교적 사명에서 빗나가게 하는 일이었다(막 1,13: 광야시험; 8,33: 베드로의 간청을 사탄의 요구로 이해). 만약 마가가 씨뿌리는 자를(4,3.14) 예수로 이해했다면, 사탄은 예수의 사역을 파괴하는 자로 이해한 것이다(4,15). 마가는 귀신이라는 단어를 13 번, 더러운 영이라는 단어를 11 번 사용한다. 때로는 둘을 동의어로 사용하기도 한다(참조 3,22.30; 7,25-26). 귀신들이라는 용어는 축사의 문맥에서만 사용된다(1,34.39; 3,15). 귀신들은 사람들에게 하는 일은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소리지르게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1,26). 귀신들은 곧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자로서, 자해하는 자로 묘사(5,3-5; 9,22)되고 있다. 곧 사람을 땅에 넘어지게 하며 입에 거품을 물게 하고 이를 갈게 한다(9,18). 그러나 귀신은 동물에게도 들어갈 수 있는 존재(5,11-13)로 묘사되기도 한다. 예수가 귀신을 내쫓을 때에 예수가 사용한 동사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즉 '꾸짖다'( : 막 1,25; 3,12; 9,25), '입막음하다'( : 1,25-26), '명령하다'( : 9,25: 귀신이 다시 들어오지 못하게 명령하다)는 동사를 통해 귀신의 사역을 제어하고 있다. 마가는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1,27; 2,7; 4,41; 6,1-6.14-16.49-50.54; 8,27-28)에 대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사람들 중에 귀신들도 중요 역할을 담당한다(1,24-25.34; 3,11-12; 5,7)고 말한다. 이러한 고백은 마가복음서의 시작에서부터(막 1,1), 예수의 세례받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증거(1,11), 그리고 적대자들(대제사장)과(14,61) 이방 백부장의 고백에 이르기까지 지속됨을 보여준다(15,39). 이러한 사실을 통해 마가는 그의 예수상을 제시하려 한다. 3. 누가복음(눅 ): 광야유혹 이야기에서 누가는 마귀가 '잠시동안 그를 떠났다'(4,13)라고 보고함으로 독자로 하여금 예수의 적대자가 다시 등장할 것을 기다리게 한다. 그렇다고 귀신들의 역사가 가롯유다에게 마귀가 들어갈 때까지 마귀가 침묵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수는 그의 사역을 통해 귀신들과 투쟁하고 있다(4,33-37; 6,18; 7,21; 8,2.26-39; 9,37-43; 눅 10,17-18; 11,14; 13,11.32). 누가는 마가보다 더 분명하게 마귀가 원시기독교회에서도 적대자임을 말해준다(눅 8,11-12; 행 6,7; 13,5). 가장 결정적인 예수에 대한 적대는 가롯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서 예수를 배반하게 하는 것이다(눅 22,3-4). 그의 제자들도 항복하도록 만든다(눅 22,31-32: "사탄이 밀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사탄의 파괴적인 능력을 예수는 기도로서 승리한다. 또한 사탄은 제자들을 완전히 파괴시키지는 못한다. 예수의 공생애 사역중에 70인 제자의 보고가 우리에게 흥미를 끈다.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눅 10,17). 계속해서 예수의 말씀 곧 "사탄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눅 10,18)는 말씀을 통해 사탄의 종말론적인 멸망이 예수의 사역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모습은 사도행전에서 보다 명백하게 보여진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께서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 10,38). 예수는 성령을 통해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자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며, 축사는 곧 하나님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4. 요한복음(요 ): 놀랍게도 요한복음에서는 예수 자신이 행하는 축사의 모습은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요한복음 기자가 귀신이라는 용어를 몰랐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수가 귀신들렸다(7,20: 8,48.49.52)고 비난받고 있음을 말하기 때문이다(7,20: 이는 그가 미쳤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10,21-22). 예수를 배반한 유다가 마귀로 불리우고(6,70), 사탄이 곧 유다에게 들어갔다(13,2.27)고 말한다. 8,44에서는 마귀가 예수와 대조되고 있다(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 거짖말쟁이/거짓의 아비). 예수는 자기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마귀와 이 세상의 통치자들이 심판받고 무너질 것이다(12,23-36)고 말씀하신다. 한가지 눈여겨 볼 것은 공관복음서에서 사탄의 패배는 예수의 축사행위와 연관되어 있으나, 요한복음에서는 사탄의 패배는 십자가와 연관되어 있다(요 14,30; 16,11)는 점이다. 5. 원시기독교 공동체에서의 축사: 예수는 제자들에게 축사를 가르치셨으나(마 10,8 병행, 눅 9,2; 막 3,15 병행; 6,13; 눅 10,17 등), 제자들이 행한 축사는 성공(눅 10,17)과 실패(막 9,18)가 엇갈리면서 나타나기도 한다. 원시기독교회에서 축사와 치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졌다(마 7,22; 막 16,17; 눅 10,17; 행 3,6.16; 4,7.10.30; 16,18). 치유하는 기도(참조 행 9,40; 28,8)와 제의적인 기름부음이 주님의 이름으로 행해지기도 했다(약 5,14). 또 안수를 행하거나(행 9,12.17; 28,8), 손을 붙잡거나(행 3,7; 참조 9,14). 전체 몸을 만지는 행위도 나타난다(행 20,10: 유두고; 참조 왕상 17,21; 왕하 4,34). 베드로의 구원하는 그림자에 씌우는 경우(행 5,15), 바울의 수건(행 19,12)을 놓은 경우도 언급되어 있다. 이러한 치유에는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가 마귀의 모든 세력을 지배하시는 주인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마 28,18; (빌 2,9.10; (골 2,10.15 등). 우리는 또한 바울의 축사적인 기도를 알고 있다(고후 12,7-9). 그러나 그 기도는 응답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로 바뀌고 있음을 보게된다. V. 거라사 귀신들린 자의 치유이야기(막 5,1-20 병행; 마 8,28-34; 눅 8,26-39). 1. 짜임새: 막 1,23-28이 유대 회당에서 행한 축사행위이라면, 막 5,1-20은 이방 거라사 지방 무덤가에서 행한 축사행위이다. 이 본문은 그 짜임새가 아주 명확하게 구성되어 있다. 서론과 질병의 상태에 대한 언급(1-5 절), 예수님의 귀신과의 논쟁(6-13 절), 증거자들의 태도(14-17 절), 고침받은 자의 모습(18-20)이 차례로 나타난다. 여기서 몇가지의 주제들이 반복, 또는 중복되고 있다. 예수와 귀신들린 자와의 만남(2. 6 절), 귀신들린 자가 무덤에 머무는 것에 대한 묘사(3. 5 절), 귀신들의 요청(10. 12 절), 갑자기 일어난 사건에 대한 목자들의 보고(14, 16 절)가 그러하다. 또한 이미 있은 일을 나중에 기록하는 방식의 언급도 있다. 예를 들면, 귀신들린 자가 예수를 멀리서 바라보다(6), 예수가 추방명령을 내렸다(8), 귀신들린 자가 군대귀신 집혔던 자로 확인된다(15c), 도시로부터 온 증거자들에게 일어난 일을 다시 보고한다(16 절: 돼지떼들의 일). '예수가 배에서 내려온 후 곧 귀신들린 자를 만났다'(2 절)는 묘사와 '귀신들린 자가 그를 멀리서 보고 달려왔다'(6 절)는 언급이 서로 긴장 관계를 이루는 것 같기도 하나 양자가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바다 건너편'이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옴으로(4,35; 5,21; 6,45; 8,13) 여기서도(막 5,1) 그 동안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의 한 부분임을 암시한다. 그 표현 뒤에는 각각 기적이야기가 연결되어 있다. 풍랑이 잠잠해지는 사건(4,35-41), 귀신들린 자의 귀신쫓아냄(5,1-20), 물위를 거니신 기적(6,45-52), 바리새인들의 표적 요청에 대한 대답을 하시면서 바다 건너편으로 가셨다(막 8,13)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를 중심으로 한 모습을 살펴본다면, 바다 건너편(1 절)으로 가서, 그곳에 도착하여(2 절: 배에서 내리다), 귀신들린 자를 치유하고, 다시 배에 타는 것으로 되어 있다(18 절). 특히 18-20 절은 선교 신학적인 동기가 들어 있다. 귀신축출의 양식/동기를 중심으로 본문을 분석해 본다면, 1) 예수와 귀신들린 자와의 만남(1-2 절) 2) 귀신의 방어시도(6-7 절) 3) 예수의 축출명령(8 절) 4) 귀신의 내쫓김(종종 시위적으로 묘사된다: 13 절) 5). 목격자들의 두려움(15.20 절)과 귀신축출에 대한 소식이 퍼짐(14a.18,20). a. 질병의 특수성과 그 중증에 대한 묘사(지금까지의 모든 수고와 노력이 헛됨을 강조: 3-5 절) b. 치유된 자에게 행한 치유에 대한 실증(15 절: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c. 목격자들의 두려움의 반응(14.16-17.20 절: "보고 두려워하더라." "모든 사람이 기이히 여기더라."). 예수와 귀신과의 만남에서 드러난 대화와 그 결과를 보면, 예수는 a. 귀신의 이름을 묻는다(9 절). b. 귀신들은 자기가 누구인가를 드러내며 방어적인 요청을 한다(10-12 절). c. 이제 귀신들은 새로운 자리로 내쫓김(12-13 절)을 당한다. 2. 귀신축출과정의 구체적인 설명 1) 예수와 귀신들린 자와의 만남(1-2 절)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다."(1-2 절). 예수가 거라사 지방에 도착하여 배에서 내리자 마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아와 예수를 만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사람은 더러운 영을 지닌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더럽다'( )는 말은 유대 종교적인 용어이다. 즉 부정한 장소인 무덤에서 그가 나왔다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무덤이란 바로 귀신들이 머무는 장소이기도 하다. 거라사라는 이방지역과 더불어 무덤이라는 장소에 대한 설명은 따라서 부정함의 극대화를 드러낸 것으로 보여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인격의 대면이다. 곧 이라는 말로서 어떤 긴장관계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즉 귀신들린 자의 부정한 영이 자기보다 강한 적대자를 만난 것 같은 낌새를 알아 이제 구체적인 도전적인 만남이 일어나고 있음을 말해준다. 2) 귀신의 방어적인 시도: 6 절의 도입부/7 절의 구체적인 시도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6-7 절). 귀신들린 자는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간청한다. 절하는 것은 예배하는 형태이다. 전적으로 복종적인 자세를 보인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방어한다. 그렇다면 6 절은 만남의 두 번째 단계인가? 여기에서 명백한 것은 예수의 우월성이 드러나고 귀신의 방어가 실패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더러운 영이 큰 소리로 부르짖고 있다. 이러한 귀신들의 큰 소리와 귀신들린 자의 큰 소리가 귀신축출의 설명가운데서 항상 반복되는 특성이다( : 소리지르다. 귀신들이 부르짖음: 막 5,5; 9,26; 눅 9,39). 소리지름 자체가 그가 영적인 인격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귀신들린 자는 예수에게 방어양식을 들이댄다.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있는가?'(단수로 되어 있다). 이는 상대방을 거절하며 그 한계를 긋는 언어인 것이다.(막 1,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위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왕상 17,8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거라사인은 이방인으로서 높으신 하나님을 알고, 예수를 그 아들로 고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방지역에서 더러운 귀신들에 의한 고백이라 할 수 있다. "나를 괴롭게하지 말라"는 간구에서 이미 예수의 힘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예수의 힘이란 귀신의 역할과는 다른 것임도 보여준다. 즉 귀신을 멸할 수 있는 분이 바로 예수이시다(1,24: 나를 멸하러 왔나이까?). 3) 예수의 축출명령 "이는 예수께서 이미 저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8 절). 즉 귀신의 방어적인 간구 이전에 이미 예수께서 귀신을 내쫓는 명령을 하셨다는 것이다('나오라': ). 이는 꾸중이 담긴 전형적인 추방명령이다. 어디로 가라는 가에 대한 것은 불분명하다. 4) 귀신의 내쫓김의 진술 "허락하신 대로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니..."(13) 추방명령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타난다. 즉 귀신들의 순종을 보여준다. 그들은 예수의 말씀에 복종했다. 여기에 축사자의 능력이 있다. 그 추방명령에 의해 귀신들이 돼지에게 들어간 것이다. 귀신들의 움직이는 모습, 즉 들어감과 나감은 성서에 구체적으로 진술되고 있다(참조 눅 22,3: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다). 5) 목격자의 반응 14: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촌에 고하니 사람들이 그 어떻게 된 것을 보러 와서. 15.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 하더라." 거주자들이 일어난 사건을 보기 위하여 왔다. 그들은 예수에게 나와서 치유받은 자가 어떻게 변모되었는지를 보았다. 그 치유의 모습은 명확하게 제시된다. 이에 사람들은 두려움에 붙잡힌다. 이 두려움은 신현현에 대한 인간의 반응으로 이해된다. 모든 보고를 들은 그들은 예수에게 그 지역을 떠날 것을 간청한다. 이 떠날 것에 대한 반응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것이다(아니면, 소유자들이 계속적인 손해볼 것에 대한 반응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18-20: 치유받은 자, 그리고 그의 선포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 이에 목격자의 두려움과 기적적인 행위의 소식이 널리 퍼졌다(목격자들의 반응: 15.17 절) 3. 귀신들림의 특성 1) 가버나움 회당에서 귀신들린 사람(막 1,21-28)은 예측 불가능한 무질서함을 보여준다. 그가 회당에 참여한 것을 보면 보통 때는 유대 종교사회의 주요흐름에 동참했던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적대적인 모습을 보인 것으로 보이다. 어쩌면 영적인 적대자를 만났을 때에만 자기 고유한 모습을 보여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거라사 귀신들린 자의 경우는 아주 다르다(막 5,1-20). 그는 무덤, 곧 부정함의 장소에 그 거처를 두고 있다(3a). 그 질병은 광포함으로 나타난다(3-4). 사람들은 그를 쇠사슬로 묶어둘 수도 맬 수도 없었다. 그는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다. 이는 귀신의 광포함을 가리킨다. 그뿐만 아니라 밤과 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지르는 것이다(5). 통제할 수 없는 슬픔과 한 맺힘이 그를 붙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덤이라는 장소와 그의 행동 모습이 이러한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돌로 상하게 하는 것이다(5). 이러한 자학은 자기 파괴적인 충동에 의한 것으로 이해된다. 아마도 이러한 전체적인 진술은 귀신들의 이름이 레기온으로 주어지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즉 막대한 힘을 가지고 모든 묶음을 깨뜨리는 것이다. 만약 한 사람 안에 2000 귀신이 거주한다면, 그는 무한한 힘을 사용할 것이다(이사야 65 장(LXX)은 귀신들림의 질병을 묘사하는 기본본문으로 이해됐다. 사 65 장에서 이방인들은 산에서 우상/귀신들에게 제사드리며(3 절), 무덤에서 사는 자들이고(4 절), 돼지고기를 먹는 자들이다). 산 사람과의 교제는 끊어지고 소외되고 상실된 인간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2) 귀신들은 인격적인 존재로 설명된다. 그들은 계시적인 비밀, 예를 들면 예수의 정체성을 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들은 자기의 운명을 알기에 예수로부터 침묵하도록 요청 받기도 한다(막 1,24.34 병행; 눅 4,34.41; 막 3,11; 5,7 병행). 귀신들린 자의 소리침은 곧 귀신들의 소리침으로 이해된다(참조 막 1,23 병행; 눅 4,33; 막 3,11; 5,5; 5,7 병행; 막 9,26 병행; 눅 9,39; 눅 4,41). 귀신은 귀신들린 자에게 경련을 일으킴으로 자기의 광포함을 드러내며, 귀신들린 자가 자기에게 속해 있음을 보여준다(막 1,26 병행; 눅 4,35; 8,29; 막 9,18.20 병행; 눅 9,39.42). 3) 축사의 과정 a. 이름을 물음: 9 절: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가로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많은 귀신에 붙잡힌 것에 대한 표현이다. 9-12 절에서 단수와 복수가 계속적으로 뒤바뀐다. 내 이름은...우리가 많음이다. 우리를 돼지에게로... 막 1,24 에서는 단수와 복수가 혼용되어서 등장한다. 이는 인격적인 분열 때문인가? 아니면 속임수의 변명인가? 명백한 것은 예수가 오신 것은 사탄의 세력들을 멸하기 위함이다. 예수의 질문은 귀신에 대한 강압적인 힘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b. 허용요구: 귀신들의 복종의 고백과 예수에 대한 요구가 함께 나타난다. 돼지떼가 바다로 빠진다(구약에서 바다란 종종 파멸의 자리이다). 결국은 귀신들이 그 파멸의 구덩이에 빠진 것을 의미한다. c. 추방명령: 예수의 우월성과 귀신들의 종속성이 뚜렷하게 대비되어 있다. 예수의 추방명령은 다른 때의 예수의 부드러운 온유함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여기서 귀신에 대한 예수의 분노가 들어있다고 해도 옳을 것이다. 13 절에서 귀신들의 나옴과 들어감이 묘사된다. 귀신들의 상하고 파괴하는 활동성을 드러난다. 광포와 자기 파괴적인 분노가 드러난다. 돼지떼에게 돌진하는 모습( )은 인간적인 판단에 의해서 조절되지 않는 격렬한 움직임을 뜻한다. 귀신들린 자의 광포가 돼지에게 전가되었고 곧 자기파괴가 명백히 드러났다. 귀신들린 자는 스스로 돌로 상해했으나, 돼지 떼는 언덕길로 내달아 물에 빠져 죽었다. 생명을 상하고 파괴하는 더러운 영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다. 4) 귀신들림에서 치유 5,15b에서 3-5 절에서 보였던 광포한 모습이 전적으로 변화되어 있다. 그는 예수 곁에 앉아있다. 소리지르고 스스로 상하게 하는 대신에 정신이 들어 있다. 광포대신에 이성으로 되돌아왔다( 은 의 반대개념이다). 그는 전에는 벌거벗고 돌아다녔으나, 이제는 옷을 입고 있다. 예수의 귀신축출은 귀신들린 자를 조용한, 그리고 이성적인 정신상태로 되돌려 보냈다. 예수는 그를 귀신들로부터 자유하게 했다. VI. 신학적이고 목회적인 반성 1. 예수가 축사자로서 활동하셨다는 것은 분명하다. 예수도 당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몸과 마음의 질병을 귀신에게로 돌렸다(더러운 영/ 더 악한 영: 마 12,43-45 병행; 눅 11,24-26; 벙어리 귀신: 눅 11,14; 벙어리의 영: 막 9,17.25; 연약함의 영: 눅 13,11; 참조 눅 8,2). 따라서 치유란 귀신을 쫓아내는 데 있었다(마 9,33; 10,8; 12,24.27.28; 막 1,34.39; 3,15.22; 6,13; 9,38; 16,9.17; 눅 9,49; 11,15.18-20; 13,32). 예수는 육체적인 연약함, 예를 들면 소경(눅 7,21; 마 12,22-24; 막 10,46-52 병행), 벙어리(막 9,14-29 병행; 마 9,32.33 병행; 눅 11,14), 중풍병(막 2,1-12 병행; 눅 13,10-17), 문둥병(막 1,40-45 병행; 눅 17,11-19), 열병(막 1,29-31 병행), 게다가 마음과 정신의 질병까지도 귀신을 내 쫓음으로 치유했던 것이다(막 1,23-28 병행; 눅 4,33-37; 막 5,1-20 병행; 7,24-30 병행; 9,14-29 병행). 말하자면 예수시대에 귀신을 축출하는 것과 질병을 고치는 것은 동일한 선상에서 이해되었다(막 1,32-34 병행; 눅 6,18.19). 그렇다고 모든 경우에 이 양자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귀신들림과 정신질병, 또는 귀신과 육체적인 질병과의 상관관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인가? 귀신들림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광포함/자기상해 등의 귀신들림의 전형적인 모습과 정신질병과를 구분할 수 있는가? 2. 세례자 요한의 질문에 대한 대답에(마 11,4-6 병행; 눅 7,22.23) 있어서 예수는 그의 치유를 구약의 성취로서 해석했다(참조 사 29,18.19; 35,5.6; 61,1). 유대주의의 종말론적인 기대가 귀신들에 대한 예수의 승리에서 실현되고 있다는 것이다(막 3,27 병행; 참조 눅 13,32). 만약 예수가 하나님의 성령/손가락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이라면(마 12,28a/눅 11,20a),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도래한 것이라(마 12,28b 병행; 눅 11,20b)는 말씀이다. 따라서 바알세불에 의해서 귀신을 쫓아낸다는 비난에 대해서 단호히 거절하신다(막 3,22 병행). 예수의 영을 잘못 이해하는 자는 곧 거룩한 성령에 대한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를 짓는 것과 같다(막 3,28-30 병행)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축사는 마귀의 힘을 종말론적으로 제거했다는 표징이며, 동시에 마귀와 싸워 승리함으로 예수가 마지막 승리자가 됐다는 증거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이 쫓겨나가는 자리에는 항상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가장 구체적으로 세워지고 있는 자리를 어디라고 보아야 할 것인가? 이 시대에도 인간을 개인적, 집단적으로 억압하며 파괴시키는 세력들을 향해 예수의 이름으로 그의 축사적 행위를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3. 예수는 귀신적인 인간/음식의 불결함에 대해 결코 두려워하거나 기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본질을 바꾸어 버렸다. 그는 친히 죄인과 세리의 친구가 되었고 질병들린 사람의 동무가 되심으로 그들에게 진정한 자유함을 몸으로 보여주었다(마 9,10 병행; 막 2,16; 눅 5,30; 15,2; 행 10,1-11,18; 갈 2,11-14). 또한 귀신들린 자와 귀신과를 구별함으로써 귀신들린 자와 귀신을 동일시하며 귀신들린 자를 사회와 종교에서 영원히 제거하는 당시의 관습을 타파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는 종교사회의 판단에 의해 억압되어 있는 인간 본연의 가치를 드러내고, 한 인격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다시 가정과 종교적 사회로 되돌려 보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정결/부정결에 대한 판단은 어디에 근거하는 것일까? 그 판단으로 사람들이 자유케 되는 것인가? 아니면 억압받게 되는 것인가? 우리의 가정과 사회, 그리고 종교는 오히려 이러한 갈등과 억압을 증폭시키고 한 맺힘이나, 억압에 대한 저항적 세력화된 귀신들림을 만들고 있는 주범은 아닌가? 4. 예수는 축사행위를 할 때에 어떤 고정된 축사양식을 도입하지 않았다. 어떤 특별한 도구도 사용하지 않고(예를 들면, 의약품/기구/향료등), 또한 어떤 권위에도 호소하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의 영에 의한 권위를 갖고 축사를 행한다(마 12,28; 눅 11,20). 그렇다면 오늘의 축사 행위는 어떻게 나타나야 할 것인가? 우리는 지나치게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지는 않는가? 5. 예수의 축사행위 자체에만 관심가진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고 할 수 있다. 마 7,22-23에서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의 행위 없이 축사가 행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님을 분명히 선언한다. 그것은 마치 사랑이 없으면 그 성령의 은사가 아무 것도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고전 13,1-14,1). 따라서 예수의 축사사역에는 인간을 파괴하는 귀신들에 대한 분노와 동시에 인간에 대한 긍휼과 사랑이 들어가 있음을 확인해야 한다. 귀신축출의 목표는 귀신들린 자의 자유와 해방, 그리고 가정과 종교에로의 회복, 그리고 또한 평화를 누리는 데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목표는 무엇인가?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과 긍휼 때문에, 그리고 인간을 파괴하는 사탄과 그의 세력들에 대한 분노 때문에 이 길을 가고 있는가?
171 헤롯 대왕(Herod the Great) 파일
인물
jesus
10199 6 2006-12-28
▶ 헤롯(Herod) 헤롯왕가 뜻: 영웅의 아들 팔레스틴과 그 인접 지역을 B.C 55년경부터 A.D 93년경 까지 통치한 왕조의 왕들 ▶ 헤롯대왕(B.C. 37-4). - 팔레스틴의 통치권을 가졌던 안디바델(B.C. 55-43)의 제2자 (1) 헤롯왕가의 창시자이며 예수 탄생시의 왕(마02:1-18). (2) 25세에 갈릴리의 총독을 역임하고 B.C.40년에 로마황제 아구스도에 의 해 로마 왕으로 임명. (3) 이두메 사마리아 갈릴리 지방을 쳐서 B.C.37년에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유대 왕으로 군림하였다. (4) 성격이 강인하고 또 현명한 재질을 가졌으나 매우 잔인한 행위도 하였 으 니 곧 예수의 탄생을 듣고 불안을 가져 베들레헴의 아이들을 살해한 것을 대표로 들수 있다(마02:16). (5) 그는 많은 공공 사업을 하고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에 착수 하였다. 그는 10인의 아내를 두고 많은 자녀를 두었다. B.C. 4년에 악질에 걸려 70세로 죽었다. ▶ Herod [Her'od ] the Great. He was the son of Antipater an Idumaean, who was a proselyte to Judaism. His father having aided Caesar in his war with Egypt was rewarded by being made procurator of all Judaea, and he made his son Herod, then only fifteen years of age, governor of Galilee. On the death of Julius Caesar the country was in anarchy; but eventually Herod contrived to ingratiate himself with Antony and Octavian, and was appointed KING OF JUDAEA. He began his reign (B.C. 37) with blood: there were a few left of the Asmonaean house, descendants of the Maccabees; these were put to death and their adherents, and the whole of the Sanhedrim except two. Herod had married Mariamne, daughter of Alexandra, who had a son named Aristobulus, a descendant of the Maccabees. Herod, being afraid of Rome to which Alexandra had appealed, made Aristobulus high priest; but when he witnessed the joy of the people his jealousy was aroused, and he caused the young man to be drowned, while bathing with his comrades, through their pretended rough play. Herod honoured his funeral, but none were deceived, and on Alexandra appealing to Cleopatra and Antony, he was summoned to appear. He left orders with his uncle Joseph that if he were put to death, Mariamne was to be killed. Herod succeeded in satisfying Antony; and indeed he had Coele-syria added to his dominions. On his return, his sister Salome poisoned his mind with suspicions of his wife's infidelity with Joseph, who had unwisely betrayed the orders of Herod. He was however reconciled with his wife, but Joseph was put to death and Alexandra imprisoned. On Octavian becoming emperor, Herod contrived to secure his favour. Herod's domestic life was however greatly embittered by his renewed suspicions against his wife (who had again discovered that during his absence orders had been given to put her to death if he lost his life). He seemed to think her guilty and she was sacrificed to his jealousy; but as soon as his beautiful wife was slain he was filled with the deepest remorse. Her mother also was put to death. [For Herod's other wives, see HEROD, FAMILY OF.] Though Herod was nominally attached to Judaism he tried to introduce into Jerusalem Grecian and Roman games. These things were great eye-sores to the strict Jews, but a great many were won over to these follies. The year B.C. 25 was one of famine in Judaea, and Herod sacrificed his gold and silver plate to purchase corn from Egypt to feed the people, and he gave them seed for the next year, by which he gained popularity. Herod also ingratiated himself with the Jews by his costly enterprise of rebuilding the temple. To allay their suspicions, he procured the material before he demolished any part. The new edifice was a stately one of white marble. New fears destroyed the peace of Herod. On the return of his two sons by Mariamne, now grown to manhood, they were hailed with enthusiasm by the people. He feared they would avenge their mother's death, therefore after trivial charges they were both strangled. This was followed by Antipater, another son, being put to death, who was proved to be guilty of plotting to have his father poisoned. Herod's body was greatly diseased: the increasing torments had even caused him to attempt suicide. He ordered that the heads of the chief families in Judaea should be shut up in the Hippodrome at Jericho, to be put to death as soon as he expired, that there might be mourning at his death! This cruel order was not carried out. His anxieties were heightened by the visit of the Magi to Jerusalem, inquiring for the child who had been born KING OF THE JEWS. Herod cunningly sought to find out what child was to have this honour, that he might at once cut him off. Being thwarted by the Magi he ordered the massacre of all the infants in the district; but God had sent away His Son from his power. Matt. 2:1-22. Herod died B.C. 4. This was the first earthly 'power' that had anything to do with the Lord Jesus. We know from Rev. 12:1-5 that Satan was really the actor through Herod; but he was defeated then and will be again and again until his final doom. (마02:1-22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계12:1-5 (영적 전쟁에 대한 이상) 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4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 Morrish Bible Dictionary ▶ Herod, Family of. No. 1 is mentioned as 'Herod the king' in Matt. 2:1-22; Luke 1:5 (마02:1-22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눅01: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No. 2. Philip, Matt. 14:3; Mark 6:17; Luke 3:19. (마14:3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막06:17;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눅03:19 분봉왕 헤롯은 그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그의 행한 모든 악한 일을 인하여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No. 3. Herod the Tetrarch, Matt. 14:1-6; Luke 3:1-19; Luke 9:7; Acts 13:1; (마14:1-6; 1 그 때에 분봉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2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저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권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는도다 하더라 3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4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5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민중이 저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민중을 두려워하더니 6 마침 헤롯의 생일을 당하여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눅03:1-19;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심 (눅09:7 분봉왕 헤롯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여 하니 이는 혹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며 (행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the king, Matt. 14:9; (마14:9 왕이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을 인하여 주라 명하고 King Herod, Mark 6:14-22; (막06:14-22 세례 요한을 죽인 헤롯왕 Herod, Luke 13:31; Luke 23:7-15. (눅13:31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여우) (눅23:7-15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 No. 4. Archelaus. Matt. 2:22. (마02:22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No. 5. Philip tetrarch of Ituraea and Trachonitis. Luke 3:1 (눅03:1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지 열 다섯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No. 6. Herod the king. Acts 12:1-21. (행12:1-21 교회를 핍박하는 헤롯 No. 7. Herodias. Matt. 14:3-6; Mark 6:17-22; Luke 3:19. (마14:3-6; 3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4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5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민중이 저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민중을 두려워하더니 6 마침 헤롯의 생일을 당하여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막06:17-22; 세례 요한을 죽인 헤롯왕 (눅03:19 분봉왕 헤롯은 그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그의 행한 모든 악한 일을 인하여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No. 8. King Agrippa. Acts 25:13; Acts 26:1-32. (행25:13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행26:1-32. 아그립바 앞에서의 바울 No. 9. Berenice. Acts 25:13; Acts 26:30. (행25:13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행26:30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No. 10. Drusilla. Acts 24:24. (행24:24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170 에베소(Epenetus, Ephesus) 파일
지명
jesus
8243 33 2007-01-02
▶ 에베소(Epenetus, Ephesus) 뜻: 인내 소아시아의 수도.게스터 강구에서 5마일 상류에 있는 산유지다. 현재의 이즈미르에서 80KM 위치한 도시. 로마국의행정상, 교통상의 중심지이며 아시아 7교회중의 하나가 있었던 곳이다. 에베소에 대한 우리의 역사적 자료는 고대에 활약한 작가들의 작품이나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얻어진 수천 점의 비문에 의존하지만, 도시의 기원에 대한 정확한 지식은 알 수 없다. 역사에서 에베소의 이름이 최초로 언급된 것은 기원전 13세기경의 히타이트 성경의 헷 족속 비문에서 인데 그 비문에 APASAS라고 불리웠던 도시가 바로 이 지역으로 추정된다. 기원후 1세기에 에베소는 기독교인 들에게는 중요한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37-42년 사이에 기독교 전도에 주력하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추방 당하게 되자 사도 바울(PAUL)은 그의 2차와 3차 전도 여행때 에베소를 방문하여 선교를 벌리고 교회를 세우기도 했다. 또한 사도 요한도 그리스도로 부터 성모 마리아를 돌볼 임무를 부여 받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에베소에 와서 살면서 말년을 보내기도 했다. (1) 바울이 2차 선교여행시에 이 성에서 전도하였다(행18:16). (2) 3차 여행시에 이곳에서 세례를 주고 안수할 때 성신이 강림하여 방언과 예언을 하여 놀라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을 본 요술객들이 가지고 있던 술서 은 5만어치를 소각하고 신종하였다 (행19:1-20). (3) 바울이 마게도냐 선교에서 귀로시에 빌레도에 이르러 에베소 장로들을 청하여"너희는 깨여 내가 3년이나 쉬지않고 눈물로 훈계한 것을 기억하라"고 권면하였다(행20:17-31). (4) 사도 요한이 이성에 오랫동안 감독으로 있었으며 요한복음과 세 서신을 발송하고 밧모섬에 서 계시를 받아 이곳 교회에 보냈다(엡01:1). (5) 디모데 아굴라 브리스길라 아볼로 두기고 등이 이곳 교회의 교역자였다 (딤전01:3, (행18:18,19,24, (행20:4, (행21:29 (딤후04:12). (6) 세례요한의 제자 오네시모 그리고 알렉산더 에베드리오 스게와의 아들 후메내오 부겔로 허머네게 등의 고향이다(행19:13,14,24, (딤후01:15-18, (딤후04:14, (딤전01:20). ======== Ephesus. [Eph'esus] A renowned city of Ionia, and in the time of the Romans the capital of the part called 'the province of Asia,' being the west portion of Asia Minor. Being near the sea it was a place of great commerce, and as the capital of the province it had constant intercourse with the surrounding towns. The celebrated temple of Diana also brought multitudes of heathen. Its inhabitants are supposed to have been of Greek origin, with also a large number of Jews engaged in commerce. Acts 18:19-24; Acts 19:1, 17, 26, 35; Acts 20:16, 17; 1 Cor. 15:32; 1 Cor. 16:8; Eph. 1:1; 1 Tim. 1:3; 2 Tim. 1:18; 2 Tim. 4:12; Rev. 1:11; Rev. 2:1. It is now named Ayasolook. The ruins are extensive: the sea has retired, leaving a pestilential morass of mud and rushes. (계01: (계02: --- Morrish Bible Dictionary ======== ▶ 계시록의 일곱교회 : 에베소 / 서머나 / 버가모 / 두아디라 / 사데 / 빌라델비아 / 라오디게아 64년 사도 바울기 로마의 성 밖에서 순교하자, 요한은 그를 대신해서 에베소의 기독교 지도자가 되었다. 요한은 노구를 이끌고, 버가모, 서너마 등지에서 선교를 하다가 로마로 끌려가 고문을 당한 후 지중해 연안의 밧모 섬으로 유배를 당해, 이곳에서 계시록을 썼다. 로마 황제 도미티안(DOMITIAN)이 피살 당하자 요한도 유배에서 풀려나 에베소로 돌아와 '요한복음'을 썼다. 요한은 자신의 뜻에 따라 에베소에 묻혔으며, 비잔틴 제국 시대에 그의 무덤이 있는 자리에 '사도 요한의 교회'가 세워졌다. 7-8세기에 들어와 에베소는 다른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아랍인들의 침략을 감수해야 했으며, 결국 1304년에는 터어키인 들의 수중에 떨어졌다. 에베소는 지진으로 황폐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성경의 모델: 에베소 교회 본문에 나오는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3년 가까이(행20:31) 머물면서 목회했던 교회입니다. 그래서 다른 초대 여러 교회보다 더 우수했던 교회였습니다. 요한 계시록 2장에 보면 승천하신 주님이 요한 사도에겐 환상 중에 나타나 여러 교회에 대한 말씀을 하시는데 제일 먼저 언급한 교회가 이 에베소 교회입니다. 그 말씀을 보면 에베소 교회는 무척 좋은 교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칭찬을 했습니다. 첫째는 복음을 위하여 많은 수고를 하였고 박해가운데서 인내하며 믿음을 지켰다고 칭찬 했습니다. 둘째는 윤리적으로 깨끗하여 악한 자들이 함께 하지 못한 경건한 교회라고 칭찬했습니다. 셋째는 진리를 옳게 분변하여 거짓 된 자들을 물리친 정통교회임을 칭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에베소 교회는 매우 부지런하게 복음을 전파한 교회라고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여러분이 아시는대로 꾸중도 받았습니다. 그것은 갈수록 에베소 교회에 사랑이 식어져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경고했습니다. 만일 처음 행위를 회복하지 못하면 주님의 촛대를 옮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범어 교회가 주님의 경고를 주의하면서 에베소 교회처럼 믿음이 충만한 교회, 경건한 교회, 진리가 충만한 교회, 선교하는 교회, 사랑이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길에 함께 동행해 주시기를 당부합니다. 에베소 교회의 기초 그런데 어떻게 해서 에베소 교회가 이런 좋은 교회가 되었을까? 이것이 우리의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오늘 설교 본문이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1절에서 7절에는 에베소 교회에 들어간 바울이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도록 간구했습니다. 에베소 시(市)에 이미 소수의 예수를 아는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을 만나보니 아직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안수하니 그들에게 성령이 임했다고 했습니다(5,6절). 이것은 매우 중요한 교회의 기초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성령의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죄사함을 받은 사람들에게 성령이 오셔서 역사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출발점입니다. 우리 교회도 죄사함을 받은 자들의 신령한 공동체임을 믿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충만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8절 이하에 보면 회당에 들어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석 달 동안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제자들을 모아서 두란노의 서원에 들어가 2년 넘게 날마다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이에 아시아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주의 말씀을 듣고 교회를 세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에베소 교회가 아시아 지역의 모범교회로 발전한 이유였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성장하고 성숙해져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말씀을 가르치고 배움을 통하여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다고 끝이 아닙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말씀훈련을 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금주부터 각종 주간 성경 공부반이 다시 개강합니다. 이제 우리교회도 성경공부가 정착단계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욕심을 더 내고 싶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 참석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남자들이 참여해야 합니다. 남자들을 위하여 야간 반까지 개설하였습니다. 그리고 내일 새벽부터 교육관 건립을 위한 20일 특별 새벽기도회가 시작됩니다. 에베소에 보낸 사도 바울의 편지인 에베소서를 묵상하려고 합니다. 나오셔서 새벽에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루를 시작해봅시다. 더욱이 교육관건립을 위한 기도회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회당에서, 그리고 두란노 서원에서 시작되었듯이 우리 교회의 미래는 주일학교 교육을 위한 교육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주일학교 교육이 살아야 교회가 살 수 있습니다. 21세기의 첨단 시대를 준비해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에베소 도시의 개혁 주체였다. 에베소 교회가 말씀으로 훈련되어 제자들의 수가 많아지면서 그 도시는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에베소는 당시 로마의 속주인 아시아 지방의 수도였습니다. 그리고 상업이 번창했던 항구도시였습니다. 그곳은 여신 다이아나 숭배자의 본부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본문 17절 이하에 보면 마술을 행하던 자들이 주술 책과 도구들을 모아서 불사르게 되었고, 23절 이하에는 아데미 신전에 바치던 은으로 만든 우상을 판매하는 자들이 큰 손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모두 20절에 "이와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가 함께 일어나 교육관을 건축합시다. 그래서 이 땅에 주의 말씀이 힘있게 역사하도록 합시다. 그래서 건물의 교회뿐 아니라 신령한 교회를 건축하여 이 땅을 변화시키는 교회가 되도록 합시다. 그럴 때 우리 범어 교회가 존재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굳건한 믿음 위에서 모두 함께 일어나실 수 있는 귀한 축복이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범어교회/장영일목사) ▶ 에베소 (EPHESUS) 에베소에 대한 우리의 역사적 자료는 고대에 활약한 작가들의 작품이나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얻어진 수천 점의 비문에 의존하지만, 도시의 기원에 대한 정확한 지식은 알 수 없다. 역사에서 에베소의 이름이 최초로 언급된 것은 기원전 13세기경의 히타이트 성경의 헷 족속 비문에서 인데 그 비문에 APASAS라고 불리웠던 도시가 바로 이 지역으로 추정된다. 기원후 1세기에 에베소는 기독교인 들에게는 중요한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37-42년 사이에 기독교 전도에 주력하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추방 당하게 되자 사도 바울(PAUL)은 그의 2차와 3차 전도 여행때 에베소를 방문하여 선교를 벌리고 교회를 세우기도 했다. 또한 사도 요한도 그리스도로 부터 성모 마리아를 돌볼 임무를 부여 받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에베소에 와서 살면서 말년을 보내기도 했다. 64년 사도 바울기 로마의 성 밖에서 순교하자, 요한은 그를 대신해서 에베소의 기독교 지도자가 되었다. 요한은 노구를 이끌고, 버가모, 서너마 등지에서 선교를 하다가 로마로 끌려가 고문을 당한 후 지중해 연안의 밧모 섬으로 유배를 당해, 이곳에서 계시록을 썼다. 로마 황제 도미티안(DOMITIAN)이 피살 당하자 요한도 유배에서 풀려나 에베소로 돌아와 '요한복음'을 썼다. 요한은 자신의 뜻에 따라 에베소에 묻혔으며, 비잔틴 제국 시대에 그의 무덤이 있는 자리에 '사도 요한의 교회'가 세워졌다. 7-8세기에 들어와 에베소는 다른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아랍인들의 침략을 감수해야 했으며, 결국 1304년에는 터어키인 들의 수중에 떨어졌다. 에베소는 지진으로 황폐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박해의 문 이 문은 요한의 교회 앞에 세워진 것으로 대리석 부분을 에베소의 경기장에서 가져온 것인데 야수와 전사들의 결투를 즐기던 3-4세기의 로마인 들에게 기독교인들은 이 경기장에서 야수들의 제물이 되었던 것이다. 나중에 기독교가 공인된 비잔틴 시대에 기독교인들이 이 경기장으로 달려가서 그 대리석들을 부수어 박해의 문을 지은 의도는 쉽게 짐작이 간다 사도요한의 교회 4세기경 기독교가 공인되고, 에베소에 기독교가 널리 전파되자 그의 무덤이 있던 자리에 목재로 된 교회가 건립 되었다. 그 후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안 황제 (527-565)가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의 교회로 증축하였다. 교회의 심장부인 본당은 십자가 모양으로 되어 있고 이곳에 사도 요한의 무덤이 있다. 1966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곳을 방문하고 공식 성지로 선포 하기도 하였다. 성모마리아의 교회 이 교회는 기독교 역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즉 431년 이곳에서 제3차 종교회의가 열려 기독교 교리를 토론한 것이다. 네스토리우스(nestorius)는 안디옥 교회에 있을 때부터 '동정녀 마리아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의 어머니가 아니라, 인간인 예수의 어머니'라는 이론을 주장하고 나섰다. 약 200명의 권위자들이 3개월간 토론 끝에 네스토리우스의 견해는 이단으로 결정 되었다. 이 회의록에는 성모 마리아가 에베소에 왔으며 그 곳에서 살다가 그 곳에서 묻혔다는 문구가 남아 있어서 사실을 확인 시키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마리아의 집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님 께서는 죽기 전 요한을 가르키며 말씀하시길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다시 마리아를 가르켜 요한에게 말씀하시기를 '보라 네 어머니라' 하셨다. (요한복음 19장 26-27절) 그리하여 요한은 마리아와 함께 에베소로 오게 되며 3차 종교 회의록에 기록되어 있기를 요한이 마리아에게 산 위에 집 한 채를 지어 드렸다고 하였는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집의 장소는 잊혀져 가고 폐허가 되어 찾을 이가 없었다. 1878년 캐더린(catherine)이라고 하는 독일 수녀가 꿈속에서 계시를 받은 내용을 '성모 마리아의 생애'라는 제목으로 펴냈는데 이 책 속에 마리아의 집 위치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 수녀는 자기가 태어난 고장을 한번도 떠난 일이 없었으므로 1891년 나사렛의 신부가 탐사반을 조직하여 오늘날의 성모 마리아의 집을 발견하게 되는데, 집터 모양은 캐더린이 계시받아 기록한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 하였다. 1961년 교황 요한 23세는 마리아의 집의 위치에 대한 논쟁을 종식 시키고, 이곳을 성지로 공식 선포 했다. 성서속의 에베소 ※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 갈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에베소에 와서 저희를 거기 머물러 두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 들과 변론하니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지 아니하고 작별하여 가로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행 18장 18절 - 21 절) ※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때에 바울이 윗 자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행19:장 1절) ※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고전15:장 32절) ※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계02:장 1절) (행18:19, (행19:1, (행20:16, (고전15:32, (고전16:8, (엡01:1, (딤전01:3, (딤후01:18, (딤후04:12, (계01:11, (계02:1 lt=37.95331&ln=27.36782
169 유다(Judas)
인물
jesus
7955 52 2006-12-28
▶ 유다(Judas) 뜻: 찬송 [1] 야곱(Jacob)의 4째 아들(창29:35, (마01:2). 이스라엘 12지파 -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스불론, 잇사갈, 단, 갓, 아셀, 납달리, 요셉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1) 레아가 B.C 1755년에 하란에서 낳았다. 여러형제가 어린 동생 요셉을 죽이려고 하는 것을 미디안 상인에게 팔게 했다(창37:26-27). (2) 흉년에 양식을 사러 애굽에 갔을때 요셉이 베냐민을 가두려 하는고로 애걸하였다(창44:18-34). (3) 출애굽시에 12지파중 이 지파의 자손수가 가장 많고 세력도 가장 강하여 광야에 있을 때나 가나안에 들어갈 때 늘 선봉이 되었다 (민01:27, (민02:9) (4) 그후 온가족이 애굽에 내려갈 때는 세 아들을 데리고 갔다(창46:12). (5) 그 본영의 기호는 사자(Lion)이다(창49:9, (계05:5). (6) 그 기업지는 가나안 남방인데 다른 지파보다 광대하고 예루살렘 시온산 성전,왕궁들이 다 이지방에 있고 국명도 유다라 하고 왕통도 다윗으로 부터 23대 시드기야왕까지도 계승하였고 만왕의 왕 예수님도 이 지파에 서 탄생하셨으니 야곱의 축복이A하였다(창49:10). (7) 여러가지 미덕이 있었으나 크게 실수한 것은 그 자부 다말에게 실수하였는데 그 아들 쌍둥이가 베레스는 다윗의 10대조이다(창38: (마01:3-6) [2] 예수의 조상으로 바벨론 포로 이전 사람(눅03:30). 관련인물 -> [요셉] [시므온] [3] 사도중 한 사람으로 일명 다대오라고도 하고 (요14:22, (마10:3). 야고보의 형제인데 유다서를 쓴 사람이다(유01). [4] 예수의 동생이다(마13:55). [5] 가롯인 유다로서 돈 주머니를 맡아보던 12제자중 하나로서 은 30에 은사 예수를 팔고 로마 병정에게 잡아준 죄악으로 인하여 자살하였다(마26:14-51, (마27:5, (행01:18). [6] 바사바라하는 유다로서 예루살렘교회의 유력자로 공회의 결의안을 가지고 실라와 같이 회신사가 되어 안디옥 교회에 갔다(행15:22). [7] 갈릴리 유다로서 주후 6년에 호적할 때 백성을 속여 모반하다가 패망하였다 (행05:37). [8] 다메섹성 직가에 사는 유다로 그는 유대인이었다. 바울이 회심하던 날 그 집에 유숙하였다(행09:11). -------------------------------------------------------------------------------- 유다의 이름은 찬송한다는 뜻입니다. 레아의 소생으로 야곱의 넷째 아들이 었습니다. 유다는 일처리에 신중한 사람이었고 설득력이 있고 이론이 정연한 변론가였습니다. 어린 동생 요셉을 형들이 죽이기로 모의할 때에 그를 구하기 위해 이스마엘 상인에게 팔도록 제안한 사람이 유다였습니다(창37:26-27). 또한 그의 형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사람들을 속여 할례를 실시하게 한 후 그 성민을 도륙할 때에 유다는 거기에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그 뒤에 양식을 구하러 애굽에 내려갔을 때에 베냐민을 볼모로 잡아두려 하자 요셉에게 베냐민을 놓아주도록 호소력있게 긴 설명을 조리있게 전개한 사람도 유다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물려진 혈통적으로 계승된 축복을 르우벤을 제쳐놓고 요셉이 받았다면 영적인 구속의 혈통을 계승한 대표적인 지파는 유다였습니다. 그러므로 유다를 사자라 호칭했고 또 유다가 남조의 국명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윗으로부터 시드기야까지 23대의 모든 왕이 유다의 혈통이요 예수님도 유다지파를 통해 오셨습니다(창49:10).그러나 유다가 본의 아니게 자기 며느리 다말의 계획적인 유혹에 넘어갔던 것은 큰 실수였습니다. 이 사건이 담고있는 교훈도 기억해야 합니다. ▷교훈과 적용◁ 첫째,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으로 열두형제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항상 신앙과 기도를 앞세워 문제를 다루어야 합니다. 둘째, 유다와 다말의 사건은 구속의 원리를 밝혀 주었습니다. 한마디로 인류는 다 죄의 혈통입니다. 이는 구원의 가능성을 확인시킨 교훈입니다. -------------------------------------------------------------------------------- ◇ 야곱의 넷째아들-- 하나님의 섭리 불순종 고통과 부끄러움 당해 유다는 야곱이 레아에게서 얻은 넷째 아들로서 그 이름의 뜻은 [찬양하다]이다. 그는 열두 형제중 지도력이 탁월하여 그의 후손 중에서 치리자가 태어날 것이라는 메시야 예언의 축복을 받게 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 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49:9-10). 그는 르우벤, 시므온, 레위처럼 통간과 살인의 죄는 범치 아니 했으나 가나안의 아둘람 사람 수아의 딸과 결혼한 것이 실수였다.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취하여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 유다가 그 이름을 엘이라 하니라 그가 다시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이름을 오난이라 하고 그가 또 다시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셀라라 하니라 그가 셀라를 낳을 때에 유다는 거심에 있었더라](창38:2-5) 아브라함에서 유다, 유다에서 다윗, 다윗에서 그리스도에게로 흐르는 혈통이 순결하지 못할때 하나님께선 그 혈맥을 끊으시고 새롭게 이어 가시는 장면을 우리는 유다를 통해 다시 한번 찾아 볼수 있다. 유다와 가나안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 엘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므로 죽임을 당했으며 그의 동생 오난도 결국 죽게 되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왕가의 혈통을 잇기 위해서 유다와 그의 자부 다말에게서 베레스를 태어나게 하셨다. 이처럼 유다의 생애를 통하여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인위적 계획이 하나님 섭리의 흐름을 막는 경우 하나님께선 그 섭리의 물꼬를 트시기 위하여 제방을 허물어 버린다는 것이며, 그리고 하나님께선 자신의 뜻과 방법대로 그 섭리를 추진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만일 유다가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지 않았더라면 자식의 죽음과 자부의 몸에서 후사를 얻는 고통과 수치는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 본 문 : 창38:1-11 요 절 : (마05:28) 1. 경솔한 결혼과 그 결과 1) 유다는 일찍 결혼하였으나 그 결혼은 경솔한 결혼이었다. 그는 불신자인 이방인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의 소개로 수아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1) 유다의 3 아들의 이름은?(창38:3-5) (2) 유다의 장자 엘의 아내 이름은?(창38:6) 2) 유다의 3아들 중에 두 명은 비명에 죽었다. (1) 유다의 장자 엘이 죽은 이유는 무엇인가?(창38:7) (2) 유다의 차남 오난은 그 당시의 관습대로 계대결혼을 하였다. 즉 자식을 얻지 못하고 죽은 형의 대를 보존하기 위하여 형수와 동침하여 자식을 낳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난이 죽은 이유는 무엇인가?(창38:8-9) * 죄악의 피는 어떤 경우에 가정에서 대를 이어 흐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다의 불순한 동기가 자식에게 자식은 여인에게로 계속 번져가고 있다. 2. 아내의 죽음과 근친상간 1) 유다는 술에 취하여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거리의 창녀를 가까이 하게 되었다. (1) 유다 앞에서 창녀로 가장한 여인은 누구였나?(창38:13-14) (2) 그렇게 한 이유는? 2) 며느리와 시아버지의 통간은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며느리 다말의 신세도 기구한 일이다. (1) 유다가 창녀로 가장한 며느리 다말에게 어떤 제의를 하였나?(창38:16-17) (2) 다말의 요구는?(창38:18) (3) 그 결과는?(창38:24-26) * 가문의 씨를 받으려는 여인의 간교함 며느리 다말을 범한 시아버지 유다의 수치스러움 등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지만 주께서는 그런 집안도 사랑하셨다. -------------------------------------------------------------------------------- 유다… 이스라엘 통치권을 받은자 ● 이제는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 메시아의 가문을 이룬 자-유다 ) 야곱의 사랑받지 못한 아내 레아가/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그 이름을 지어준/야곱의 네번째 아들,/유다/“이제는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어미의 신앙 고백이 깃든 복된 이름이라 유다의 삶은/죄 많은 허물투성이의 삶/동생 요셉에게 질투를 느껴/동생을 미디안 상인에게 노예로 팔아 넘기고/며느리 다말과의 약속을 어기고/며느리와 근친상간의 큰 죄를 졌네 하지만 하나님은/유다의 삶 속에서 남다른 지도력을 발견했네/형제들을 설득하고/아버지를 설득하고/애굽의 총리를 설득하는 유다의 모습을 그런 유다에게 하나님은/왕권의 축복을 베푸셨네/왕의 홀과 치리자의 지팡이를/그에게 주셨네/이스라엘 중에서/영광스러운 왕의 가문으로 삼으셨네 오,놀라워라/영원한 왕이신 메시아가/왕의 가문인 유다의 혈통을 통해 오신다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죄 많고 허물 많은 인간을/은총과 긍휼로 감싸안으며/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에게/영광의 왕관을 씌워 주셨네 ● 유다 -“홀(笏)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시기하기도 하고 실수하기도 하는 평범한 인물 야곱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유다는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시기하기도 하고 실수하기도 하는 일반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이며 살아간다. 그는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한몸에 받는 동생 요셉에 대해 질투를 느껴 다른 형제들과 공모하여 동생을 애굽 땅에 팔아넘기기도 했다(창 37:26∼27). 또한 자기 아들이 성장하면 계대 결혼(繼代結婚)을 시켜 주겠다고 며느리 다말과 약속하고서도 그것을 일부러 어겼다가 다말이 꾸민 계략에 걸려들어 취중에 며느리와 불륜의 관계를 맺는다. 그 결과 쌍둥이 아이까지 생겨나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다(창 38장). 지도력이 탁월한 인물 하지만 야곱의 넷째 아들인 유다의 행적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는 야곱의 아들 중 그가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아마도 이것은 장자 르우벤이 서모와의 간통 사건으로 장자의 명분을 잃었고 둘째 시므온과 셋째 레위는 여동생 디나 사건에서 잔혹하게 혈기(血氣)를 부린 일로 지도력을 상실한 데 따른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유다는 다른 형제들이 동생 요셉을 피 흘려 죽이려고 할 때 그 일을 막고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아 넘기도록 했다(창 37:26∼27). 후일에 가나안 땅에 큰 기근이 닥쳤을 때에는 형제들을 대표하여 아버지 야곱을 설득하여 막내 베냐민을 애굽으로 함께 데려갔으며(창 43:8∼10) 애굽 땅에서 베냐민이 누명을 쓰고 억류당하게 되었을 때에는 역시 형제들을 대표하여 자기 희생을 무릅쓰고 애굽의 총리를 설득하는 일을 맡았다(창 44:14∼34). 왕권의 축복을 받은 인물 형제들 중 유다의 탁월한 지도력은 아버지 야곱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야곱은 임종을 앞둔 마지막 유언에서 유다에게 특별한 축복을 해주었다. 유다를 ‘사자’(獅子)에 비유하면서 홀(笏)과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왕권(王權)의 축복을 해주었다(창 49:8∼12). 이러한 축복으로 인해 과연 유다의 후손들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의 가문을 형성했으며 마침내 온 인류를 다스릴 영원한 왕이신 메시아가 유다 가문의 혈통을 타고 이 땅에 임하게 되었다. 비록 유다는 시기하고 실수하는 평범한 인간이었지만 하나님은 유다의 지도력을 높이 사서 그에게 왕권의 축복을 베푸시고 메시아(Messiah) 가문을 형성하게 하는 큰 영광을 주셨던 것이다. 김영진 <성서원 회장>
168 예수시대
신약
jesus
7525   2015-04-29
예수시대 The English Bible Story 4 (대)헤롯 사망 - 아들 3명에게 분봉왕으로 임명 헤롯 안티파스 -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 헤롯 빌립 - 갈릴리 북동부 (데가볼리) 지역 헤롯 아켈라오 - 유다, 사마리아, 이두메(에돔) 지역 예수님 탄생 아켈라오 로마소환 후 유대지역에 총독 임명 코포니우스 - 마르쿠스 얌비불루스 - 아니우스 루푸스 - 발레리우스 그라투스 - 폰티우스 필라투스 (본디오 빌라도, 5대 AD. 26-36) 사두개파 - 대제사장파(서기관,랍비) 바리새파 - 성경연구(에스라계:유대교) 열심당 - 무기로 정복하는 메시야도래 에센파 - 수도원운동(세속은 싫다) 1. 사생애 BC4-AD26 마(유대인-왕),막(로마인-종),눅(헬라인-인간),요(모든사람-하나님아들) 마리아와 요셉 나사렛거주(수태고지-Michael), 엘리사벳 방문, 천사의 요셉방문, 예수탄생(베들레헴, 동방박사와 목자) 어린시절(헤롯의 유아살해, 예수의 세례-시므온과 안나, 애굽피신, 대헤롯의 죽음으로 나사렛귀향), 예루살렘 성전방문 2. 공생애 AD27-30 세계화 세례요한, 40일광야금식기도, 5제자, 가나혼인잔치①, 가버나움방문, 유월절1, 예루살렘(8개월)-성전청결(기존세력에 대항, 예수가 누구냐?), 니고데모, 유대사역, 사마리아여인, 갈릴리(4개월)- 나사렛회당설교, 신하아들 원격치유②, 가버나움이사, 말씀선포, 4제자Call, 귀신, 베드로장모, 병자치유, 순회전도, 마태소명, 유월절2, 예-안식일 베데스다연못가 38년병자치유, 갈(민중대상)-12제자확정, 순회전도, 산상수훈, 백부장하인, 세례요한질문, 파도, 혈루증여인, 야이로, 12제자파견, 세례요한참수(헤롯안티파스), 유월절3, 벳세다 오병이어, 바다위, 수로보니게여인딸, 칠병이어, (집중제자훈련)-북방 갈릴리사역, 베드로신앙고백, 변화산, 성전세, 제자-누가크냐?, 초막절(10월) 예(3개월)- 간음여인, 70인전도단파송, 마르다, 주기도문, 초막절설교, 수전절 논쟁.도피 베레아사역(3개월) 탕자, 부자와나사로, 삭개오 예-금(베다니귀향), 토(시몬의집, 대제사장들모의), 일(호산나입성), 월(무화과나무저주, 성전숙정), 화(청문회-각종가르침, 가룟유다변심, 감람산강설), 수(x), 목(최후의 만찬, 세족식, 겟세마네 기도, 잡히심), 금(베드로부인, 안나스.가야바, 유대인의 왕, 빌라도-헤롯안티파스-빌라도심문, 로마병정들 모욕, 골고다, 십자가 처형, 장사되심) 유월절4 3. 부활.승천 부활한 예수와 마리아, 파수꾼들보고, 엠마오, 12제자와 도마의 확인, 153마리, 지상명령, 승천 TIDWELL-Chapter XVIII. From the birth to the Ascension of Jesus. - The story of the period. The childhood and youth of Jesus. The beginnings of Christ's Ministry. Early Judean ministry. Galilean Ministry. Perean Ministry. Final Ministry in Jerusalem. The forty days. Teaching of the period. Topics for discussion. 탄생이전 (BC) ======== 37 헤롯의 유다왕 즉위 제2위 성자의 초월적 존재 예수의 족보 누가의 서론 7 요한의 탄생예고 6 예수 탄생예고, 나사렛 5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유대 산지 마리아의 송가 세레 요한의 출생 천사의 요셉방문 유년시절 ======== BC5~4 아기예수 탄생, 베들레헴 천사들의 탄생 공포 베들레헴 들녘 목자들의 경배 베들레헴 예수의 할례 베들레헴 시므온과 안나의 증언 B.C 4 예루살렘 동방박사의 경배 베들레헴 애굽 피신 애굽 헤롯의 유아살해와 헤롯의 죽음 나사렛 귀향 나사렛 예수의 유년시절 나사렛 7~8 예루살렘 방문 유년 및 성장기 나사렛 12 디베료 가이사의 로마황제 즉위 사역준비기간 ============ 25~27 세례 요한의 증거, 유대광야 본디오 빌라도의 유다 총독 부임 27 세례 받으심, 요단강 시험 받으심 (40일 금식기도 -유대광야) 요한의 증거와 처음 세 제자 (안드레, 요한, 시몬 베드로) - 요단 건너 빌립과 나다나엘 제자삼음 (5명)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 (첫 이적) 가버나움 방문 27 초기유대사역 (약 8개월) ========================== 유월절(1) 4월 (유대지역) 1차 성전숙정 (청결작업) - 예루살렘 니고데모와의 대화(전도) 세례 요한과 동역하심 -세례요한 : 심판 메세지 -예수 : 구원과 영생 메세지 유대지역 전도 (세례 요한 지지층이 예수에게로 이동) 갈릴리로 떠나심 사마리아 여인 만남 (전도사역) 27-1차 갈릴리 사역 (약 4개월) ============================= 갈릴리사역 개시 (회당설교) 12월경 신하의 아들 치유 (원격사역) 가나 고향(나사렛)에서 배척되심 가버나움으로 이사 (사역중심지) 네 제자를 Full Time 사역자로 다시 부르심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회당 축사 사건 가버나움 베드로 장모 치유 병자 치유 대사역 1차 갈릴리 순회전도 개시 문둥병자 치유 중풍병자 치유 가버나움 첫번째 향유사건 눅07:36-50 (1/3) 세리 마태의 소명 금식 논쟁 28 2차 유월절 예루살렘 방문 (유대지역) 유월절(2) - 이후 대중사역 4월 안식일 38년된 병자치유 (베데스다연못) - 자증설교 예루살렘 안식일 밀 이삭 사건 안식일 손 마른자 치유 (갈릴리) 각색병자 치유 12제자 임명 가버나움 근처 산상수훈 2차 갈릴리 사역 =============== 28 백부장의 하인 치유 (가버나움 - 갈릴리) 나인성 과부의 아들 소생 나인 세례 요한의 물음 갈릴리 시몬의 집 도유사건 (옥합) 가버나움 2차 갈릴리 순회 전도 갈릴리 바리새인을 향한 책망 가버나움 모친, 친척의 방문 예수의 비유설교 갈릴리 파도가 잔잔케 됨 가다라 축사 사건 레위 마태의 잔치 혈루증 여인 치유 회당장 야이로의 딸 소생 두 소경의 치유 벙어리 치유 두번째 고향에서 배척 당하심 나사렛 3차 갈릴리 사역 =============== 28년 12제자를 파견하심, 갈릴리 세례요한의 처형 유월절(3) - 이후 집중제자훈련(AD29) 오병이어의 기적 벳세다들판 바다 위로 걸어 가심 게네사렛 병자 치유 생명의 떡 설교 가버나움 바리새인들과 결례논쟁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치유 두로 귀먹고 어눌한 자 치유 칠병이어의 기적 데가볼리 표적논쟁 (바리새인) 바리새인들의 누룩 경고 소경치유 베드로의 신앙고백 가이사랴 첫 수난 예고 빌립보 변화산 사건 익명의산 간질병자 치유 거듭된 수난예고 갈릴리 성전세 납부 사건 가버나움 제자들의 자리다툼 겸손, 용서의 설교 (제자훈련) 현제들의 배척 갈릴리 후기유대사역 ============ 사마리아인의 배척 AD29 제자의 도 설교 초막절에 예루살렘 상경 간음한 여인 사건 바리새인들과의 논쟁 70인 전도단 파송 사마리아인의 비유 나면서 소경된 자의 치유 마리아와 마르다의 봉사 베다니 기도에 대한 설교 (주기도문) 유대 바리새인을 책망하심 환난에 대한 교훈 욕심과 염려에 대한 설교 청지기의 교훈 예수로 인한 분쟁 시대의 징조 설교 회개의 촉구 열매없는 무화과 비유 안식일에 등 굽은 여인 치유 구원 얻을 자의 정체 베레아 초막절 설교 선한 목자의 비유 수전절의 논쟁과 도피 예루살렘 베레아사역 ========== 베레아로 가심 AD29 겨울 헤롯의 핍박 안식일의 고창병자 치유 잔치를 통한 교훈과 비유 제자의 조건 잃은 양의 비유 드라크마의 비유 탕자의 비유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단기유대사역 ============ 나사로의 병듬 AD29 베다니 베다니 도착 베다니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 베다니 가야바의 예언 산헤드린의 음모 예수의 도피 AD30 에브라임 최후순회전도 ============ 열 문둥병자 치유 AD30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 재림에 대한 설교 끈기있는 과부의 비유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 이혼에 대한 설교 어린이 축복 베레아 부자 청년의 대화 포도원 품꾼 비유 3차 수난 예고 요단근처 야고보와 요한의 욕심 바디매오 치유 여리고 삭개오의 집에 유하심 열 므나의 비유 성고난주간 전후 =============== 1. 금요일 AD30 봄 베다니 귀향 2. 토요일 두번째 문둥이 시몬집 도유사건 요12:1-8 (베다니 마리아가 향유를 부음), 대제사장들의 모의 3. 일요일 승리의 호산나 입성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입성), 헬라인들과의 대화 4. 월요일 무화과 나무 저주, 2차 성전 숙정, 병자 치유 사역 5. 화요일 AD30 봄 마른 무화과 나무 및 교훈 베다니 예수의 권위시험 - 요한 세례 예루살렘 포도원주인의 두 아들의 비유 악한 농부 비유 혼인 잔치 비유 바리새파 세금 논쟁 사두개파 부활 논쟁 (계대결혼) 바리새파 첫째 계명 논쟁 (사랑) 메시야의 신분 논쟁 (다윗후손) 바리새인에 대한 저주 유대인의 불신 과부의 헌금 종말론 설교 감람산 참된 종의 비유 도적의 비유 청지기 비유 열 처녀 비유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 비유 예수의 활동 요약 유대인들의 모의 가롯 유다의 변심 6. 수요일 A.D. 30 봄 기록내용없슴 -> 1) 유대인들의 공모 2) 세 번째 향유 붓는 사건 마26:6-13, 막14:1-2 [근거] 3)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을 만나서 은30을 약조금으로 수령함 7. 목요일 유월절(4) 예비 최후의 성만찬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 배신자 유다의 행동개시 성찬식의 규레를 주심 베드로의 세 번 부인 예고 제자들을 위한 위로 포도나무 비유 전우주적 중보기도 겟세마네 기도 감람산 8. 금요일 A.D. 30 봄 주께서 잡히심 안나스의 심문 예루살렘 가야바의 심문 베드로의 세번 부인 공회의 심문 가롯 유다의 자살 빌라도의 1차 재판 헤롯의 심문 빌라도의 2차 재판 로마 병정들의 모욕 골고다로 끌려 가심 십자가 처형 갈보리 처음 3시간 나중 3시간 백부장의 고백 창에 찔리심 장사되심 부활 및 승천 ============ 파수꾼이 무덤을 지킴 AD30 봄 여인들의 무덤 방문 무덤의 지진 천사의 부활 증언 베드로와 요한의 확인 예수와 마리아의 만남 예수와 여인들의 만남 파수꾼들의 보고 엠마오 도상 사건 열 제자와 예수의 만남 예루살렘 도마의 부활 확인 (8일후) 갈릴리에서 제자를 찾으심 153마리 고기잡음 베드로에 3번의 명령 갈릴리 디베랴바다 500문도의 확인 지상 명령을 주심 승천 감람산 12BiblePeriod
167 요한(John)
인물
jesus
7516 34 2006-12-27
▶ 요한(John) 뜻 :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 [1] 세례요한. (1) 그리스도의 선구자로서 제사장 사가랴와 엘리사벳 사이에서 난 아들이며 예수와 친척 관계이며 예수보다 6개월 먼저 출생했다(눅01:, 2:). (2) 30세기경 디벨리우스황제(AD.26)때 유대 광야 요단 강변에 나타나 복음을 외쳤다(눅03:1). (3) 그 선교의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다. 그는 회개의 표로서 세례를 베풀었으며 예수님도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바드셧다(마03:15, (막01:9, (눅03:21). (4) 구약 선지자의 최후의 인물이라 여졌으며 예수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마11:11-13). (5) 그는 분봉왕 헤롯 안디바의 불의한 결혼을 비난하여 목 베임을 당하였다(막06:17-29, (마14:3-12,28년경). [2] 사도요한. - 예수의 12제자중의 한 사람으로 야고보와 형제이다. (1) "보아너게" 우뢰의 아들이란 별명을 가졌는데 이것은 그의 과격한 성격 때문인 듯 하다(막03:17, (막09:38, (눅09:54-:5). (2) 예수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던 제자다(요21:20) (3) 그는 베드로, 야고보와 더불어 예수의 측근자였으며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예수와 동반되었다(막05:37, (막09:2, (막14:33). (4) 요한 복음과 요한 서신을 썼으며 말년에는 밧모섬에 유배되어 가서 요한 계시록을 썼다. (계01: ) [3] 베드로의 아버지 (요01:42, (요21:15) [4] 마가요한 (마가복음). [5] 산헤드린 공회의원(행04:6) ▶ 사도 ∼ (J. Apostolus, ? ∼100?) 12사도의 한 사람. 성인. 갈릴레아의 어부, 제베대오의 아들. 장(長)야고보의 동생(마04:21, (마10:2, (막01:19, (막03:17, (눅06:14, (행01:13). 형 야고보와 함께 일찍부터 가업(家業)을 버리고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마04:21,22). 12제자 중에서도 베드로, 형 야고보와 함께 대표적 인 물이며, 예수 생애의 중요한 장면에 등장하고 있다(눅08:51, (마17:1, (막14: 33). 타고 난 과격한 성격 때문에 '벼락의 자 식'이라 불릴 정도였지만(막03:17), 요한 복음이나 편지 등과 관계가 깊다고 보고 '사랑의 사도'로도 일컫는다. 이 " 사랑받는 제자 "는 큰 야고보( James the Great )의 형제이다. 에베소로부터 로마로 강제 송환 명령을 받았으며, 그곳에서 기름이 끓는 솥에 던져지는 형을 받았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피해 달아나는데 성공했다. 그 후 도미티안( Domitian )은 그를 팟모 섬으로 추방하였고, 요한은 그 곳에서 "요한계시록"(계 )을 기록하였다. 도미티안이 후계자인 네르바가 요한을 재송환하였다. 그는 사도들 중에 유일하게 참혹한 죽음을 피한 사람인 셈이다. -------------------------------------------------------------------------------- [1] 세례 요한 요한은 구약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신약 시대를 펼쳐나간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이다. 성경은 요한의 탄생과 그의 이름과 사역이 모 두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있었음을 밝혀주고 있다. 순수한 제사장 가문에서 출생한 요한은 야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여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선구자의 생애를 살았다. 요한은 메시야에 대한 소망을 확신 가운데 지키고 있었다. 그는 안정된 가정에서 안일한 생활을 하기 보다는 황량한 광야에서 거친 생활을 하는 고 독한 길을 택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영적으로 성숙하게 되는 복된 길이었다. 극히 검소한 복장과 간소한 음식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천국 복음을 전하던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는 요단강가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부터 일대 변화를 일으킨다. 수천년 동안 고대하던 "오실 메시야"를 직접 보고 세례를 배푸는 요한의 입에서는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에 대한 증언이 터져 나온다. 겸손히 메시야만을 증거하며 자기를 부인하는 요하의 헌신적인 삶은 스스로의 몸을 태워 빛을 비추며 꺼져가는 촛불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요한조차도 하나의 불완전한 인간일 수 밖에 없었다.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타고난 요한은 헤롯왕의 불의를 질책하여 옥에 갇혀 있던 상황에서 주님을 의심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타고난 요한은 헤롯왕의 불의를 질책하여 옥에 갇혀 있던 상황에서 주님을 의심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 요단강가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현현을 직접 목격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자신이 들은 소문만으로 그의 존재의 의미가 되시는 예수님을 의심하는 인간 요한에게서 육신에 속한 자들의 안타까운 갈등을 읽을 수 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라도 성령께서 함께 하지 않을 때에는 인간의 말 한마디에 휘청거리는 보잘것 없는 추한 죄인의 모습을 보일 뿐인 것이다. 이러한 요한이었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를 가리켜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다" 고 말씀하셨다. 요한은 옥중에서 왕비 헤로디아의 간 계로 그의 생애를 마감하게 된다. 자신의 생일 잔치 석상에서 어린 딸의 춤솜씨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헤롯왕은 그에 대한 보상으로 요한의 목을 주고 만다. 끝까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순수하고 담대한 신앙의 열정을 지킨 요한의 순교는 비록 그가 한때 일시적으로 실수했었을지라도 천국의 열린 문으로 들어갔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두운 세상에 한줄기 빛을 던져준 요한의 생애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속에 작은 별로 남아 있다. 주님의 초림을 기다리며 그길을 예배한 요한의 삶은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 가운데 기다리는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준다. 요한이 그랬듯이 광야와 같은 세상을 향하여 늘 복음을 전파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함을 배울 수 있다. [2] 사도 요한 1. 요한의 이름 레오날도 다빈치(Leonardd da Vinci)는 그림 {최후의 만찬}에서 소녀처럼 미소지으며 부드럽게 흰 손을 겹치고 있는 요한의 얼굴을 그렸다. 십대의 말기에 주 예수를 만났을 때에는 비록 사도들 가운데서 나이가 가장 어리며 나약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으나 요한은 용감하고 영적으로 강건한 사람이었다. 예수님은 요한과 그 형제 야고보를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라 부르셨다(막 3:17). 이 형제들의 활화산 같은 성품은 주님에게 겸손하지 못한 사마리아인에게 불을 내리기를 원했을 때 잘 나타났다. 또 이 형제는 앞으로 올 왕국에서 높은 자리 둘을 주십사고 예수께 간청하는 절제 없는 야망을 갖기도 했다. 주 예수는 이들의 불 같은 열망과 경건하지 못한 욕심을 꾸짖으셨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들을 삼년간 훈련시켜 폭풍 같은 성격을 잠재웠으며 우뢰를 조용하게 변화시겼다. 2. 요한의 초기 생활 형제인 야고보와 함께 요한은 가버나움에서 베드로, 안드레와 고기를 잡았다. 요한의 아버지는 세베대였다(마 10:2). 고기잡이는 근육을 발달시키는 힘든 노동이었다. 거센 파도를 헤치면서 노를 젖기 때문에 손바닥에는 못이 박혔다. 또약볕 아래서 그물을 수선하는 일은 청년들을 구리빛으로 만들었다. 안드레와 함께 요한은 밥티스마 요한에 의해서 예수님께 인도되었다. 예수님과 몇 말씀을 나눈 요한은 그가 구세주임을 확신하였다. 요한은 육십년이 지난 뒤에도 처음으로 예수님과 대화한 감격적인 시간인 시간을 회상하였다. 이 순간부터 예수님은 요한의 생애에 빛이 되셨다. 사랑이란 서로 주고 받는 보완관계이다. 요한은 "예수의 가장 사랑받는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예수님과 처음 만난 후 요한은 고기잡이하러 돌아왔으나 나중에는 예수님과 동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고기잡이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예수께서 요한을 부르셨기 때문이다. 야고보, 베드로, 안드레와 함께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하여 큰 마음을 먹고 아버지와 배와 고기와 직업을 버렸다. 3. 편협한 마음(막09:38-40, 눅09:49-50) 어느 마을로 복음을 전하러 가던 중에 요한은 많은 사람이 웅성거리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동요하는가 보려고 요한은 앞으로 다가갔다. 귀신들린 한 소년이 땅 위를 뒹굴면서 소리를 지르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요한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권세로 귀신을 쫓아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한이 미처 손도 쓰기 전에 낮선 사람이 귀신을 쫓아냈다. 그 소년은 경련을 일으키며 몸을 뒤틀 다가 조용해지더니 고쳐졌다. 요한이 귀신을 쫓으려 했을 때 깜짝 놀란 낯선 사람에게 큰 소리로 "감히 어떻게 당신이 주님의 이름을 쓸 수 있단 말이오? 도대체 당신은 무슨 권능이 있길래 그런일을 하오? 당신은 주님으로부터 아무런 권세도 받지 못한 사람이요. 나는 주님의 가까운 사람 중에 한 사람이요. 이전에 나는 당신을 본 일이 없오. 결코 주님의 이름을 쓰지 마시오"라고 했다. 예수의 제자가 아닌 사람이 예수님을 대신하여 말할 수도 없으며 예수의 이름으로는 일도 할 수 없다고 강경하게 요한은 몰아쳤다. 요한은 예수님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열아나이다"라고 여쭈었다(막 9:38). 예수께서는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한자니라"(눅 9:50)고 요한에게 말씀하셨다. 요한의 이야기로 미루어 보면 병고치는 이 사람은 스게와의 일곱 아들처럼 전문적으로 귀신을 쫓는 사람임을 예수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다(행 19:13-14). 이 사람은 어디에서인가 예수의 말씀에 감동을 받은 성실한 사람 이었으며, 곤고한 사람들을 위하여 예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흉내내어 보려는 사람 이었다. 아마도 이 사람은 사도들과 동등한 영적 은사를 받은 사람이었느지도 모른다. 요한의 성격이 외곬수적인 것은 가장 높은 자리에 대한 그의 야망이 연장된 결과였다. 그는 사도로서의 자부심을 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다(막 9:39). 요한은 주 예수의 이름을 의탁하여 주 에수의 일을 행하는 데 제자 아닌 사람을 제외시키려는 계획을 성공하지 못하였다. 열 두 사도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을 부인하지 않은 것은 성도들에게 대단히 훌륭한 교훈이 된다. 마치 사도들이 예수를 따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서는 사도들처럼 예수님을 따르며 무리를 만들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물론, 우리는 믿음의 근본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일을 행하는 것에 찬성할 수 없다. 말년에 예수께서는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지지하는 행위에 대하여 강경한 경고를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가 행하는 것과 똑같이 행하면서도 신학적인 문제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 마음을 용서하고 관대할 필요가 있다. 자기가 속한 종파만이 오직 진실한 교회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스러운 일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우리들과 꼭같지 않다고 하여 침례교이든, 감리교이든, 루터란이든, 오순절 계통이든, 성공회이든 배척할 정당한 근거는 없다. 4. 요한의 변화 어느 정원사가 정원의 흙을 보고 "너는 어떻게 그처럼 좋은 향기를 풍기느냐?"고 물었더니 진흙은 "사람들이 나를 장미꽃 옆에 두었기 때문이랍니다"라고 대답했다. 항상 주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성급한 청년 요한은 성인이 되어 온유한 성격으로 변하였다. 요한의 야망은 줄어들었다. 편협한 외곬수적 성격도 사라졌다. 요한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 격렬한 성격의 청년에서 마음 착한 성인이 된 것이다. 신학자들은 요한이 복음서 뿐만 아니라 서신과 계시록도 썼다고 믿는다. 약 일 세기 전에 일부 학들이 "요한서신을 쓴 사람이 과연 사도 요한이냐"하는 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복음서의 요한과 서신의 요한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네번째 복음서인 요한복음은 요한을 야망으로 가득 차 있고 화를 잘 내며 도량이 좁은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비하여 요한서신의 기록자인 요한은 사랑의 정수라고 설명되어 있다. 요한은 주 예수에 의하여 우뢰의 아들에서 사랑의 사도로 변하였다. 요한이 이렇게 변하는 데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의 인격 속에는 타고난 성격이 항상 깃들어 있기 때문에 폭발적인 잠재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함께 해주시는 권능과 근엄한 용모는 여러 갈래로 찢어진 요한의 옳지 못한 정력을 온유한 길로 인도하였다. 유리들의 정력은 결코 옳기만 하지더 않고 나쁘기만 하지도 않은 그 중간 상태이기 때문에 그것이 나쁜 방향으로 쓰일 수도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일 수 있는 가능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요한의 강력한 정신이 거짓 교리나 사악한 행동에 대하여 단호히 규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요한의 성품의 변화는 우리에게 많은 격려를 해 준다. 고집이 세고 이기적이며 불평하기 좋아하는 청년이라 해서 반드시 고집세고 이기적이며 잘 투덜대는 어른으로 성장하지는 않는다. 영적인 성장법칙에 따라서 떫고 시퍼런 과일이 달콤하고 맛좋은 과일로 익을 수 있는 것이다. 5. 요한이 보여준 사랑 우뢰와 같은 요한의 성격이 온유하게 변한 것은 십자가와 초대교회에의 성심과 용감성도 설명해 준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무서움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쳤다가 어느 사도보다도 먼저 예수님에게로 다시 돌아온 사람이 요한이었다. 베드로가 멀리 떨어져서 뒤따르고 있을 때 요한은 용감하게 대제사장의 집 뜰로 들어갔다(요18:15-16). 아마 대제사장은 요한의 아버지인 세베대의 사업과 롼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요한과는 서로 아는 사이였을 것이다. 대제사장을 알고 있던 덕택으로 요한은 베드로도 뜰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따. 그러나 대제사장의 종을 해쳤기 때문에 겁에 질려 베드로가 숯불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을 때 요한은 예수님을 심문하는 재판장에게로 곧장 들어갔다. 베드로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비통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때 요한은 진실 속에서 살고 있었다. 모든 사도 가운데서 오직 요한만이 십자가 옆에 서서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그리스도의 적들이 악의에 찬 독설을 내뿜을 때에도 요한은 도망치지 않고 적들의 한가운데 당당하게 서 있었다.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을 들은 제자도 유일하게 요한뿐이었다. 예수님은 요한을 바라보시면서 자기 어머니에게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고 하시고 요한에게 그 어머니를 가리키며 "보라, 네 어머니라"하셨다>(요19:26-27)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의 집으로 마리아를 모셔온 후 요한은 다시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들으려고 서둘럴 되돌아갔다. 오직 요한만이 "내가 목이 마르다" 또 "다 이루었다"는 최후의 말씀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요한은 예수님께서 고개를 떨구시고 예수님의 영혼이 떠나가시는 것을 지켜 보았다. 군병이 에수님의 옆구리를 찌를 때 피와 물이 나온 것과 요셉과 니고데모가 장사한 사실을 말한 것도 요한 뿐이었다.(요 19:38-42). 요한은 용감하였으며 최후까지 예수님께 헌신하였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 살인마에게 끌려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는 어린 양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전도자가 되었다. 6. 서로 사랑한 에수님과 요한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몇몇 사도들과 더욱 가깝게 지내셨던 것같다. 예수님과의 우정을 갖는 게 기뻐서 그를 따르는 제자들끼리 점점 친밀해진 것은 큰 무리들로부터 더욱 독자적이고 배타적인 집단을 만들게 했을 것이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 오백여 형제이며(고전 15:6), 모인 무리의 수는 일백 이십 명이고(행01:15), 예수께서는 칠십 인을 제자로 세웠다.(눅10:1). 이들 가운데 열 두 사도가 있으며 사도 가운데 핵심이 되는 세 사람이 있으며 이 중에서 사랑받는 요한은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로 자주 불리워졌다(요 13:23/20:2/21:7). 요한은 "여호와의 은총을 받는다"는 이름의 뜻 그대로 일생을 살았다. 분명히 요한은 제자 가운데서 가장 소중한 세 제자의 한 사람일 뿐아니라 에수의 사랑받는 제자로 불리워진 유일한 사람이며 다락방에서는 그리스도의 품에 앉았다(요13:23). 초대교회의 문헌을 보면 요한을 에수의 가슴에 기댄, 사랑을 의미하는 "에피스테티오스"(The Epistethios)라고 자주 부르고 있다. 예수님의 어머니를 모시라는 부탁을 받은 요한은 예수님께서 운명하시기 전에 예수의 마지막 말씀을 들은 사람이 되었다. 1)요한은 사랑의 사도가 되었다. 요한은 "하나님의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요3:16) 유명한 말씀을 우리에게 남겼다. 요한은 책임감으로서의 사랑 뿐만 아니라 사도직의 징표로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가"(요 13:34-35)하는 예수님의 새 계명을 상기시켜 주었다. 요한은 그의 저술에서 오십 번 이상이나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 사랑받는 요한은 예수의 부활을 가장 먼저 믿었으며 밤을 새워 고리를 잡은 후 바닷가에서 예수님을 제일 먼저 알본 제자였다(요 20:8/21:7). 요한은 하나님 계시의 환상을 포함한 영적 진리를 알 수 있는 놀라운 지혜를 받았다. 2)요한의 사랑은 강했다. 사랑에 대햐어 요한이 요약한 말은 사랑의 근간을 이루었다. 진실한 사랑이란 그 사랑의 대상을 해롭겔 할 모든 것을 막을 수 있어야 하며 결코 꺽이지 않는 강한 것이어야 한다.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사나운 개로부터 아장아장 걷는 자기의 아이를 보호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 진실한 사랑이다. 요한은 일반적으로 그릇된 가르침이 어린 아이들에게 크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 요한은 거짓을 행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서슴치 않고 경고했다(요일01:6/ 요이02:4).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릇된 생각을 가진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당부했다.(요2 10). 또 디오레베는 교만하여 사악한 말을 하는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세상에 공개했다(요삼09:10). 요한의 우뢰 같은 성격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으나 그의 강경한 어조도 사랑과 겸손으로 많이 부드러웠졌다. (이야기)// 어떤 전설은 요한이 에베소에서 공중목욕탕에 갔을 때 영시주의자인 세린도를 만난 장면을 설명하고 있다. 요한은 그를 보자마자 목욕도 하지 않은 채로 목욕탕을 뛰쳐나오면서 "모두 도망치자, 진리의 적이 들어있는 세린도 때문에 목욕탕이 무너질런지도 모르니 우리 모두 도망가자"고 외쳤다고 한다. 어떤 기회에 요한은 세린도를 "마귀의 맏아들"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이 이야기는 근거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우뢰와 같은 그의 성격의 단면을 잘 반영하고 있다. 요한은 온유하면서도 강했다. 박식하면 격한 마음이 가라앉지만 요한의 사랑은 예리한 통찰력과 지식 에의하여 퇴색하지 않았다. 그는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다섯권의 책을 쓸 수 있었다. 요한복음의 서문은 로고스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요한에게는 "그리스도인 플라톤"(ChristianPlato)이라는 칭호가 붙었다. 삼 세기의 교부들은 계시록의 필자에게 "신학자"란 칭호를 붙였다. 7. 말년의 요한 소아시아 태생으로 요한의 제자이면서 폴리갑(Polycarp)과 잘 아는 이레니우스(Irenaeus)는 요한은 주후 98년까지 에베소에서 살았다고 말했다. 전설에 의하면 요한을 독살시키려는 음모에서 하나님께서 목숨을 구해주셨다고 한다. 이 전설은 뱀이 그려진 성찬배가 요한을 상징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또 다른 전설은 핍박받는 동안에 끓는 목욕탕에 던져졌으나 요한은 그 속에서 살아났다고 한다. 에베소에서 멀지 않은 에게 해 복판에 있는 아름다운 섬인 밧모에 요한이 유배된 일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요한은 계시록의 인사말에서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에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계 1:9)라고 썼다. 밧모섬에서 도미시안 황제에 의하여 추방된 요한은 성경의 마지막 책에 대한 멧세지를 받고 환상을 보았다. 순교자와 성도와 하늘의 승리를 본 요한의 마음은 기뻤다. 계시록의 마지막인 22장에서 요한은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라고 썼다(계22:8) 트라얀(Trajan) 황제는 요한이 밧모를 떠나서 에베소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했다. 소아시아에서 그를 따르는 자들의 선교사업은 그의 목숨이 다할 때 성취되었음을 요한이서와 요한삼서에서 알 수 있다. 요한은 자기의 영적인 자식들이 진리 가운데 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했다. 요한은 충분한 보응을 받을 것을 잊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이들에게 충고했다. 요한은 가이오와 데메드리오의 선행과 디오드레베의 교만함에 특히 관심을 가졌다. 요한은 그의 영적인 자식들이 다른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증거하기를 원했다. 요한은 대단히 오래 살았다. 예수를 처음 따를 때 가장 어린 소년이었던 요한은 열 두 사도 가운데서 제일 장수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형제인 야고보는 사도들 가운데 제일 먼저 죽었다. 은혜 속에 살고 성장하는 것에 관하여 요한의 생애는 많은 교훈을 준다. 요한은 불 같은 성급한 성격을 서서히 가라할히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권세에 순종했다. 여든 살이 되어서라도 사랑하며 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우리는 어릴 때부터 그리스도의 권세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된다. 8. 결론 요한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성도들에게 그의 삶을 통해서 어떤 문제와 어떤 교훈을 주고 있는가를 보겠습니다. 그것을 한 마디로 논한다면 "사랑의 훈련"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사랑할 수가 있는가? 세 가지만 강조하겠습니다. 1.사랑받기 위해서는 사랑의 주님과 깊이 교제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처럼 주님의 가슴에 기대어 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리고 그분의 사랑의 고동을, 그 사랑의 심장을 느껴 본적이 있으신지요? 글분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요? 그래서 요한일서 3장 1절에 사도 요한이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라고 말한 것처럼 주님의 가슴에 깊이 기대고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교제하면서 그 주님의 호흡을 느낄 때 주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2.주님을 바라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기억하셔야 합니다. 사랑의 확인과 확신없이 사랑의 지속이 어려운 것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3.사랑은 실천할수록 증가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사랑은 줄수록 늘어납니다. 사랑의 생리는 사랑을 줄수록, 내 사랑의 창고를 계속 부하게 하는 것입니다. 격정적이고 사나웠던 성격의 소유자 요한은 그 격정이 주님께 포로가 되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주님의 성령의 지배를 받기 시작했을 때, 그는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랑의 사도로 변모하게 되었느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구스타프 도오르라는 유명한 화가가 주님의 초상화를 그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려도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서 어떻게 주님의 초상화를 그릴까라고 안탔까워 하고 있을 때에 그를 사랑했던 , 예수를 잘 믿는 믿음의 친구가 그에게 찾아와서 이런 유명한 충고를 했습니다. "사랑하는 친구여, 자네가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나, 그러면 자네는 주님의 형상에 더욱 가까운 주님의 모습을 그릴 수가 있을 것이요" <홍만조목사 글> (교훈과 적용)
166 길갈(Gilgal)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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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6907 1 2006-12-29
▶ 길갈(Gilgal) 뜻: 굴러간다 [1] 여리고 동편 3키로 지점. (1) 가나안 땅에 들러온 후 첫번 유월절을 지키고 얼마동안 여호수아의 작 전기지로 정함(수04:19, (수05:10, (수09:6, (수14:6). (2) 사무엘이 사사직으로 순행(삼상07:16) (3) 사울왕의 즉위식(삼상10:8, (삼상11:14, (삼상13:7-12, (삼상05:12) (4) 사무엘이 아말렉왕 아각을 죽임(삼상15:32). (5) 압살롬이 죽은후 다윗이 예루살렘에 귀경할 때 유대인이 이곳까지 출영(삼하19:15-40) (6) 바벨론에서 귀환한 유대인의 거주지 (느12:29). [2] 벧엘의 북 11키로 지점 해발 790미터의 고지에 있는 성읍 (1) 엘리야가 승천 전에 엘리사왕 같이 이 성에서 출발하였다(왕하02:1). (2) 선지학교 학생들이 흉년에 엘리사에게 나갈 때 엘리사가 독기 있는 국 의 독을 제거하여 대접함(왕하04:38-40). (3) 호세아 아모스 두선지자가 이 성에 경고함(호04:15, (호09:15) (암04:4, (암05:5). [3] 그리심산과 애발산에 관련하여 기재됨(신11:30).세겜 동남 4키로 지점. ▶ 길갈의 은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나안 정복을 눈앞에 두고 요단을 건너 길갈에서 열두돌의 승리의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길갈은 이스라엘의 중요한 거점지역이 되었으며 승리의 장소입니다.(수04:19 (삿03:19-22 (삼상01:14-15) '길갈'이란 '애굽의 수치가 굴러갔다'는 뜻입니다. 첫째는,길갈에서 할례를 다시 시작하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팔일만에 할례를 받아야 하나님의 선민으로 자격이 주어집니다.(창 17:9-14)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 중에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다가 할례가 중단되고 20년동안 할례없이 광야에서 죽어갔습니다.(민13장) 이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를 시작하여 가나안에 들어갈 것을 명령하고 백성의 70%~80%이상이 다시 할례를 받았습니다. 할례의 의미는, ①하나님과의 언약관계 회복이며 ②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의 결심이며 ③하나님의 선민된 증표이며 ④오늘날 세례의 의미로 승리의 축복이 보장되는 것입니다.(마3:16-17)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지켜 보호해 주심으로 이방인들의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게 만들어 승리와 축복을 보장해 주십니다. 둘째는, 길갈에서 할례는 애굽의 수치가 굴러가는 은혜입니다. 길갈에서 은혜는 할례를 행하므로 가나안의 왕들이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려워했으며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9)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당한 수치는 노예로써 조롱, 멸시, 부끄러움이었으며 이 모든 수치를 물러가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선택받은 선민이 받을 은혜입니다. ①노예의 억압이 굴러가고 자유를 누리는 은혜입니다.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시는 죄와 율법과 마귀의 노예에서 해방된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롬08:1-4 (요01:12) ②가난이 굴러가고 부요함을 주시는 은혜입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당한 가난은 끝나고 젖과 꿀이 흐르는 부요함을 약속해 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은혜입니다.(요03:2) ③병마의 고통이 굴러가고 건강 축복의 은혜입니다.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자녀된 자마다 받을 축복입니다.(요05:5-9) ④애굽과 광야의 고통이 굴러가는 가나안의 은혜입니다.하나님의 자녀는 영원한 천국을 보장받는 새하늘과 새땅의 약속입니다.(계22:1-2) (영광교회 / 이상돈목사) ▶ Gilgal 1 - (신11:30, (수04:19, (수05:9, (수09:6, (수10:6, (수14:6, (수15:7, (삿02:1, (삿03:19, (삼상07:16, (삼상10:8, (삼상11:14, (삼상13:4, (삼상15:12, (삼하19:15, (호04:15, (호09:15, (호12:11, (암04:4, (암05:5, (미06:5 ======== Gilgal. 1. Place west of the Jordan, 'in the east border of Jericho,' where the Israelites encamped after passing the river. Here the twelve memorial stones were placed that were taken out of Jordan. Here the Israelites were circumcised: type of the putting off the body of the flesh; that is, of separation from the system in which man in the flesh lives: cf. Col. 3:3-5. Here the reproach of Egypt was 'rolled away' (from which the name of the place was called 'Gilgal'), and they had communion figuratively with the death of Christ in the Passover. On the next day they ate of the old corn of the promised land: type of Christ being the centre of heavenly things on which the Christian feeds. Joshua 4:19, 20; Joshua 5:2-11. Gilgal was not only the starting point in taking possession of the land, but the place to which Joshua returned again and again: it was the place of strength. Joshua 9:6; Joshua 10:6-15; Joshua 14:6. It was here that Saul was made king, 1 Sam. 11:14, 15; and here he offered sacrifices, and Samuel hewed Agag in pieces. 1 Sam. 13:4-15; 1 Sam. 15:12, 21, 33. (골03:3-5 (수04:19, 20; (수05:2-11 (수09:6 (수10:6-15 (수14:6 (삼상11:14, 15 (삼상13:4-15 (삼상15:12, 21, 33 When David returned after the overthrow and death of Absalom, Judah gathered at Gilgal. to meet the king and conduct him over Jordan. 2 Sam. 19:15. In the days of Jeroboam Gilgal was defiled with idolatry. Hosea 4:15; Hosea 9:15; Amos 4:4. Gilgal which signifies 'rolled away' should be itself 'rolled away.' Amos 5:5. In Joshua 15:7 the border of Judah's portion 'looked toward' Gilgal, which well agrees with its being near Jericho. But in Joshua 18:17 the same place is called GELILOTH, which cannot be traced. Gilgal is identified with Jiljulieh, 31 51' N, 35 29' E. In Neh. 12:29 occurs 'the house of Gilgal,' or 'Beth-gilgal,' which may refer to the same place, or may be one of the villages built 'round about' Jerusalem. (삼하19:15 (호04:15 (호09:15 (암04:4 (암05:5 (수15:7 (수18:17 (느12:29 2. A place connected with the closing scene of Elijah's life and where Elisha wrought one of his miracles. 2 Kings 2:1; 2 Kings 4:38. The two prophets went 'down' from Gilgal to Bethel, whereas when No. 1 is referred to it is always 'going up' to the neighbourhood of Bethel, which seems to indicate that different places are alluded to. It has been identified with Jiljilia, 32 2' N, 35 13' E. (It should however be added that if the identification of Nos. 1 and 2, and that of Bethel is correct, No. 2 is not actually higher than Bethel, though being on a high hill it appears to be so, and a valley has to be crossed to reach it. The altitude of No. 2 is 2,441 feet, and that of Bethel 2,890 feet. No. 1 is below the sea level, which makes the 'going up' from thence to Bethel very apparent.) (왕하02:1 (왕하04:38 3. A place whose king is called 'the king of the nations of Gilgal,' or, as in the R.V., 'the king of Goiim in Gilgal.' He was slain under Joshua. Being mentioned between Dor and Tirzah it is apparently a third Gilgal. Joshua 12:23. It has been identified with Jiljulieh, 32 10' N, 34 57' E. (수12: 4. In Deut. 11:30 Moses, speaking of the mounts of Gerizim and Ebal, asks "Are they not . . . . in the land of the Canaanites, which dwell in the champaign over against Gilgal, beside the plains of Moreh?" This does not at all agree with any of the above, but has not been identified with any place in the neighbourhood of the two mountains. (신11: --- Morrish Bible Dictionary lt=31.86378328&ln=35.51854651 ▶ Gilgal 2 - (왕하02:1, (왕하04:38 lt=32.029737&ln=35.222604
165 바알브올/브올산(Baal-peor)
지명
jesus
6047   2011-07-26
▶ 바알브올(Baal-peor) (신04:3 - 여호와께서 바알브올의 일로 말미암아 행하신 바를 너희가 눈으로 보았거니와 바알브올을 따른 모든 사람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에서 멸망시키셨으되 (호09:10 -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을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이 하였으며 너희 조상들을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 같이 하였거늘 그들이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가 사랑하는 우상 같이 가증하여졌도다 ▶ 바알브올/브올산 Baalpeor. [Ba'al-pe'or] It was to Peor that Balaam was called to curse Israel, and where the people were ensnared to sacrifice to the gods of Moab, to eat of things sacrificed to their idols, and commit fornication. Thus Israel joined himself unto Baal-peor — had full fellowship with its demon worship and its attendant uncleanness. Num. 23:28; Num. 25:1-5, 18; Deut. 4:3; Ps. 106:28; Hosea 9:10: cf. 1 Cor. 10:8; Rev. 2:14. (민23:28 발락이 발람을 인도하여 광야가 내려다 보이는 브올산 꼭대기에 이르니 (민25:1-5, 18; 1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2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3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두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 5 모세가 이스라엘 사사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관할하는 자 중에 바알브올에게 부속한 사람들을 죽이라 하니라 18 이는 그들이 궤계로 너희를 박해하되 브올의 일과 미디안 족장의 딸 곧 브올의 일로 염병이 일어난 날에 죽임을 당한 그들의 자매 고스비의 사건으로 너희를 유혹하였음이니라 (신04:3 여호와께서 바알브올의 일을 인하여 행하신 바를 너희가 목도하였거니와 바알브올을 좇은 모든 사람을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에서 진멸하셨으되 (시106:28 저희가 또 바알브올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호09:10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이 하였으며 너희 열조 보기를 무화과 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같이 하였거늘 저희가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의 사랑하는 우상 같이 가증하여졌도다 (고전10:8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계02:14 그러나 네게 두어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 Morrish Bible Dictionary Deut 4:3, Hos 9:10 lt=31.765&ln=35.718
164 무게와 측정(Weights and Measures)
기타
jesus
5709   2015-05-23
▶ 무게와 측정 Weights and Measures. In the O.T. money was weighed. The first recorded transaction in scripture is that of Abraham buying the field of Ephron the Hittite for four hundred shekels of silver, which Abraham 'weighed' to Ephron. Gen. 23:15, 16. The shekel here was a weight. Judas Maccabaeus, about B.C. 141, was the first to coin Jewish money, though there existed doubtless from of old pieces of silver of known value, which passed from hand to hand without being always weighed. Herod the Great coined money with his name on it; and Herod Agrippa had some coins; but after that the coins in Palestine were Roman. The following tables must be taken approximately only: the authorities differ. (창23:15, 16 내 주여 내게 들으소서 땅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나와 당신 사이에 어찌 교계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좇아 에브론이 헷 족속의 듣는데서 말한대로 상고의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WEIGHTS. 무게 The principal weights in use were as follows with their approximate equivalents: AVOIRDUPOIS. 상형(파운드 법에 따른 무게 단위) Pounds ozs. drams. Gerah (1/20 of a shekel)…………………….- - 0.439 Bekah (½ of a shekel) ………………………- - 4.390 Shekel ( = 20 게라 = 11.4g)………………… - - 8.780 Maneh or pound (60 shekels).…………. 2 0 14.800 Talent, kikkah (50 maneh).……………..102 14 4.000 Talent of Lead (Zech. 5:7), 'weighty piece,' margin. Talent (Rev. 16:21): if Attic = about 55 lbs. Pound, λίτρα (John 12:3; John 19:39) about 12 oz. avoirdupois. (슥05:7 이 에바 가운데에는 한 여인이 앉았느니라 하는 동시에 둥근 납 한 조각이 들리더라 (계16:21) 또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요12: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요19:39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 It must be noted that there are two shekels mentioned in the Old Testament: one according to 'the king's weight,' probably the standard shekel used for all ordinary business, as in Ex. 38:29; Joshua 7:21; 2 Sam. 14:26; Amos 8:5; and another called the 'shekel of the sanctuary,' of which it is said in Ex. 30:13; Lev. 27:25; Num. 3:47; Num. 18:16, 'the shekel is 20 gerahs,' implying perhaps that the common shekel was different. Michaelis says that the proportion was as 5 to 3, the business shekel being the smaller. (출38:29; 드린 놋은 칠십 달란트와 이천 사백 세겔이라 (수07:21;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삼하14:26; 그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년말마다 깎았으며 그 머리털을 깎을 때에 달아 본즉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이었더라 (암08:5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곡식을 팔게 하며 안식일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여 세겔을 크게 하며 거짓 저울로 속이며 (출30:13; 무릇 계수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에 세겔대로 반 세겔을 낼찌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찌며 (레27:25; 너의 모든 정가를 성소의 세겔대로 하되 이십 게라를 한 세겔로 할찌니라 (민03:47; 매명에 오 세겔씩 취하되 성소의 세겔대로 취하라 한 세겔은 이십 게라니라 (민18:16, 그 사람을 속할 때에는 난지 일개월 이후에 네가 정한대로 성소의 세겔을 따라 은 다섯 세겔로 속하라 한 세겔은 이십 게라니라 This seems confirmed by the word maneh in the following passages. By comparing 1 Kings 10:17 with 2 Chr. 9:16 it will be seen that a maneh equals 100 shekels (probably, for the word 'shekels' has been added by the translators); whereas in Ezek. 45:12 the maneh equals 60 shekels, because the latter would be shekels of the sanctuary. The passage in Ezekiel is obscure, but the sense appears to be that three weights (20, 25, and 15 shekels) should be their maneh, which makes, as in the above table, a maneh = 60 shekels. Some modern tables give the maneh as equal to 50 shekels, from the supposition that this is what is meant in Ezek. 45:12 in the LXX. The maneh is translated 'pound' in 1 Kings 10:17; Ezra 2:69; Neh. 7:71, 72. (왕상10:17; 또 쳐서 늘인 금으로 작은 방패 삼백을 만들었으니 매 방패에 든 금이 삼 마네라 왕이 이것들을 레바논 나무 궁에 두었더라 (대하09:16 또 쳐서 늘인 금으로 작은 방패 삼백을 만들었으니 매 방패에 든 금이 삼백 세겔이라 왕이 이것들을 레바논나무 궁에 두었더라 (스02:69; 역량대로 역사하는 곳간에 드리니 금이 육만 일천 다릭이요 은이 오천 마네요 제사장의 옷이 일백 벌이었더라 (느07:71, 72. 또 어떤 족장들은 금 이만 다릭과 은 이천 이백 마네를 역사 곳간에 드렸고 그 나머지 백성은 금 이만 다릭과 은 이천 마네와 제사장의 의복 육십 칠 벌을 드렸느니라 (왕상10:17 방패에 든 금이 삼 마네라 (대하09:16 방패 하나에 든 금이 삼백 세겔이라 (겔45:12 세겔은 이십 게라니 이십 세겔과 이십오 세겔과 십오 세겔로 너희 마네가 되게 하라 The word bekah occurs in Ex. 38:26; it signifies 'half,' and is 'half shekel' in Ex. 30:13. (출38:26 조사를 받은 자가 이십세 이상으로 육십만 삼천 오백 오십명인즉 성소의 세겔대로 매인에게 은 한 베가 곧 반 세겔씩이라 (출30:13 무릇 계수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에 세겔대로 반 세겔을 낼찌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찌며 MONEY. 화폐 If the weights in the foregoing list be approximately correct, and silver be taken at ??? per ounce, and gold at £ ??? per ounce Troy, the money value will be about £ Gerah (1/20 of a shekel)……………. ??? Ex. 30:13. Bekah, beqa (½ of a shekel)……….. ??? Gen. 24:22. Shekel…………………………………………… ??? Gen. 23:15. Dram (daric, a Persian gold coin) about ??? 1 Chr. 29:7. Maneh or pound, 60 shekels………….. ??? Ezek. 45:12. Talent of Silver…………………………….. ??? Ezra 7:22. Talent of Gold……………………………… ??? Ex. 25:39. (출30:13 무릇 계수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에 세겔대로 반 세겔을 낼찌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찌며 (창24:22 약대가 마시기를 다하매 그가 반 세겔중 금고리 한개와 열 세겔중 금 손목고리 한 쌍을 그에게 주며 (창23:15 내 주여 내게 들으소서 땅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나와 당신 사이에 어찌 교계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대상29:7 하나님의 전 역사를 위하여 금 오천 달란트와 금 다릭 일만과 은 일만 달란트와 놋 일만 팔천 달란트와 철 십만 달란트를 드리고 (겔45:12 세겔은 이십 게라니 이십 세겔과 이십 오 세겔과 십 오 세겔로 너희 마네가 되게 하라 (스07:22 은은 일백 달란트까지, 밀은 일백 고르까지, 포도주는 일백 밧까지, 기름도 일백 밧까지 하고 소금은 정수 없이 하라 (출25:39 등대와 이 모든 기구를 정금 한 달란트로 만들되 With respect to 'Piece of money' (Gen. 33:19; Job 42:11) and 'Piece of silver' (Joshua 24:32) qesitah, Gesenius compares Gen. 33:19 with Gen. 23:16 and supposes the weight to equal 4 shekels. (창33:19; 그 장막 친 밭을 세겜의 아비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은 일백개로 사고 (욥42:11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및 전에 알던 자들이 다 와서 그 집에서 그와 함께 식물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금 한 조각과 금고리 하나씩 주었더라 (수24:32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이끌어 낸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세겜의 아비 하몰의 자손에게 금 일백개를 주고 산 땅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창33:19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창23:16 상인이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 Mite, λεπτόν……………………… ??? Mark 12:42. Farthing, κοδράντης ………… ??? Matt. 5:26. Farthing, ἀσσάριον……………… ??? Matt. 10:29. Penny, δηνάριον………………… ??? Matt. 20:2. Piece of silver, δραχμή………… ??? Luke 15:8, 9. Tribute money, δίδραχμον…… ??? Matt. 17:24. Piece of money, στατήρ………… ??? Matt. 17:27. Pound, μνᾶ ...………………………… ??? Luke 19:13-25. Talent (Roman) τάλαντον……… ??? Matt. 18:24. Piece of silver, ἀργύριον …… ??? in Matt. 26:15. Money, ἀργύριον ………………… indefinite Matt. 25:18. (막12: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마05: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마10: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마20:2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군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눅15:8-9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마17: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가로되 너의 선생이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마17:27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눅19:13-25 은 열 므나의 비유 (마18:24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마26: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마25:18 한 1)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The Greek word ἀργύριον is the common word for 'silver,' and 'money,' as l'argent in French. 'Piece of silver' in the A.V. is always ἀργύριον except in Luke 15:8, 9, where it is δραχμή. (눅15:8-9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The above gives no idea of the purchasing value of these sums, which often varied. A penny (δηνάριον) was the usual daily wages of a working man: its purchasing value then must have been considerably more than it is now. LIQUID MEASURE. 액량, 액체단위 Caph………………………………… 0.552 pints Log (1.3 caphs)…………………. 0.718 '' Lev. 14:10-24. Cab (4 logs)……………………… 2.872 '' 2 Kings 6:25. Hin (12 logs)……………………. 1.077 gallons Ex. 29:40. Bath, Ephah (72 logs)…………. 6.462 '' 1 Kings 7:26. Cor, Homer (720 logs)…………. 64.620 '' Ezek. 45:14. Pot, ξέστης………………………… 0.96 pints Mark 7:4, 8. Measure, βάτος ……..………… 7.5 gallons Luke 16:6. Firkin, μετρητής………………… 8.625 '' John 2:6. Measure, κόρος………………. 64.133 '' Luke 16:7. (레14:10-24 제 팔일에 그는 흠 없는 어린 수양 둘과 일년 된 흠 없는 어린 암양 하나와 또 고운 가루 에바 십분 삼에 기름 섞은 소제물과 기름 한 록을 취할 것이요 (왕하06:25 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합분태 사분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 (출29:40 한 어린 양에 고운 밀가루 에바 십분 일과 찧은 기름 힌의 사분 일을 더하고 또 전제로 포도주 힌의 사분 일을 더할찌며 (왕상07:26 바다의 두께는 한 손 넓이만하고 그 가는 백합화의 식양으로 잔 가와 같이 만들었으니 그 바다에는 이천 밧을 담겠더라 (겔45:14 기름은 정한 규례대로 한 고르에서 밧 십분지 일을 드릴찌니 기름의 밧으로 말하면 한 고르는 십 밧 곧 한 호멜이며 (십 밧은 한 호멜이라) (막07:4,8 4 또 시장에서 돌아 와서는 물을 뿌리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pot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8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눅16: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요02:6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눅16:7 또 다른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DRY MEASURE. 건량(乾量) (건조된 곡물·과실 등의 계량) Log …………………………………… 0.718 pints Cab (4 logs) ………………………. 2.872 '' 2 Kings 6:25. Omer (1.8 cabs) …………………… 5.169 '' Ex. 16:16, 36. Tenth deal (tenth of an Ephah) … 5.169 '' Ex. 29:40. Measure, seah (6 cabs) ………. 2.154 gallons 1 Sam. 25:18 Ephah (18 cabs) …………………… 6.462 " Lev. 5:11. Half Homer, lethek (90 cabs) . 4.040 bushels Hosea 3:2. Homer, chomer (180 cabs) ……. 8.081 '' Lev. 27:16. Measure, χοῖνιξ …………………… 2.000 pints Rev. 6:6. Bushel, μόδιος ……………………… 2.000 gallons Matt. 5:15. Measure, σάτον …………………… 2.875 '' Matt. 13:33. (왕하06:25 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합분태 사분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 (출16:16,36 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의 식량대로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인수대로 매명에 한 오멜씩 취하되 각 사람이 그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취할지니라 하셨느니라 36오멜은 에바 십분의 일이더라 (출29:40 한 어린 양에 고운 밀가루 에바 십분 일과 찧은 기름 힌의 사분 일을 더하고 또 전제로 포도주 힌의 사분 일을 더할찌며 (삼상25:18 아비가일이 급히 떡 이백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부대와 잡아 준비한 양 다섯과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송이와 무화과뭉치 이백을 취하여 나귀들에게 싣고 (레05:11 만일 힘이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둘에도 미치지 못하거든 그 범과를 인하여 고운 가루 에바 십분 일을 예물로 가져다가 속죄 제물로 드리되 이는 속죄제인즉 그 위에 기름을 붓지 말며 유향을 놓지 말고 (호03:02 내가 은 열 다섯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저를 사고 (레27:16 사람이 자기 기업된 밭 얼마를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면 두락수대로 정가하되 보리 한 호멜지기에는 은 오십 세겔로 계산할찌며 (계06:06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듯하는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 (마0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마13: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LONG MEASURE. 길이 Finger or Digit, etsba ……………. 7584 inches Jer. 52:21. Handbreadth or Palm (4 digits), tephach. 3.0337 '' 1 Kings 7:26. Span, zereth (3 palms) ………………. 9.1012 '' Ex. 28:16. Cubit, ammah, πῆχυς (2 spans) …. 18.2025 '' Gen. 6:15. Fathom, ὀργυιά (4 Cubits) …… 6.0675 feet Acts 27:28. Reed, qaneh, (6 cubits) …………. 9.1012 '' Ezek. 40:3-8. Furlong, στάδιον (400 cubits) …. 606.750 '' Luke 24:13. Sabbath-day's journey (2000 cubits) 3033.75 '' Acts 1:12. Mile, μίλιον (3,200 cubits) ………. 4854.0 '' Matt. 5:41. Acre. As much land as a yoke of oxen would plough in a day. 1 Sam. 14:14. (렘52:21 그 기둥은 한 기둥의 고가 십 팔 규빗이요 그 주위는 십 이 규빗이며 그 속이 비었고 그 두께는 사지놓이며 (왕상07:26 바다의 두께는 한 손 넓이만하고 그 가는 백합화의 식양으로 잔 가와 같이 만들었으니 그 바다에는 이천 밧을 담겠더라 (출28:16 장광이 한뼘씩 두 겹으로 네모 반듯하게 하고 (창06:15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행27:28 물을 재어보니 이십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라 (겔40:3-8 3 나를 데리시고 거기 이르시니 모양이 놋 같이 빛난 사람 하나가 손에 삼줄과 척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문에 서서 있더니 (눅24:13 그 날에 저희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 오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촌으로 가면서 (행01: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마05: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삼상14:14 요나단과 그 병기 든 자가 반일경 지단 안에서 처음으로 도륙한 자가 이십인 가량이라 The above measures are calculated from the cubit being the same as the Hebrew ammah and the Greek πῆχυς, which latter is found in Matt. 6:27; Luke 12:25; John 21:8; Rev. 21:17. This may be called the short cubit (perhaps not the shortest: See CUBIT). In Ezek. 41:8 is the expression, 'a full reed of six great cubits.' The 'great cubit ' is supposed to be a cubit and a handbreadth. This would make Ezekiel's reed to be about 10.618 feet. By adding a sixth to any of the above measurements they will correspond to the great cubit. There can be no doubt, however, that the 'furlong' and the 'mile' were Greek measures. (마06: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눅12:25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요21: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상거가 불과 한 오십 간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고기든 그물을 끌고 와서 (계21:17 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 사십 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겔41:8 내가 보니 전 삼면의 지대 곧 모든 골방 밑 지대의 고가 한 장대 곧 큰 자로 육척인데 Though all these reckonings are only approximate, they help to throw light upon many passages of scripture. Thus Isaiah 5:10 shows that there is a curse resting upon the fields of a covetous man. In Revelation 6:6 the quantities prove that the time then spoken of will be one of great scarcity, etc. (사05:10 열흘 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의 종자를 뿌려도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 하시도다 (계06:6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 Morrish Bible Dictionary
163 바벨론(Babylon, Babylonia) 파일
지명
jesus
5550 4 2006-12-30
▶ 바벨론(Babylon, Babylonia) 뜻:혼란케 하다 국명 겸 도시의 이름으로 로마인들이 부르던 갈대아 인의 영토(렘24:5, (렘25:2, (겔12:13). (1) 함의 손자 니므릇이 건설한 나라로서 시날 평원인듯하다(창10:10, (창11:2). (2) 느부갓네살 왕때에 국력이 강성하여 유대국을 멸하고 국민을 포로로 잡아갔다(왕하25:8-12). (3) 다니엘과 세 청년이 그때에 왕궁에서 시종하였다(단01:7). * 국토는 장360마일, 광90마일의 대평원으로 동은 티그리스강, 서는 아라 비아 사막, 남은 페르샤 바다 북은 앗수르국으로 땅이 비옥하고 기후가 열대성에 속하여 1년2회 수확을 한다. 바벨론성은 주위 54마일, 높이 300 척,폭75척, 성곽은 2중, 성문은 100개인데 모두 구리로 만들었다. 홍수후에 쌓은 바벨탑이 이곳에 있다. 바벨론 성 발굴 신바빌로니아의 수도인 바벨론 성이 현대 이라크 수도인 바그다드 남쪽 60마일 지점에서 발굴되었다. 1899년부터 1917년에 이르기까지 거의 20년간 로버트 콜더베이(Robert Koldewey)교수는 독일 동방학회의 사업으로 바벨론 성을 발굴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사13:20-21, (사14:1; (렘51:37) 지금은 폐허로 남아 있다. "오직 들짐승이 거기 엎드리고 부르짖는 짐승이 그 가옥에 충만하며 타조가 거기 깃들이며 들양이 거기서 뛸 것이며 그 궁성에는 시랑이 부르짖을 것이요 화려한 전에는 들개가 울 것이라"(사 13:21, 22) 발굴 결과 바벨론 성의 규모는 내외 전장(全長)이 15마일 정도이고, 느부갓네살 이후의 전 도성의 둘레는 하궁에서 옛 왕궁까지 유프라테스강 전면을 포함해서 10마일 정도였다. 강 동편의 내성을 두른 2중 성벽은 바깥 것이 22피트, 안의 것은 12피트였다. 바벨론 전 성읍을 바깥으로 두른 성벽 역시 2중 성벽인데 바깥 것은 26피트, 안의 것은 24피트였다. 폐허 중에 제일 높은 부분이 이슈타 게이트로서 48피트 가량이다. 본래 성안에서 제일 높은 건축물은 300피트 가량의 신전 탑 '에테메난키'(Etemenanki)였다. 그 폐허에서는 느부갓네살의 이름과 직위가 찍혀진 평방 12인치 반의 벽돌이 발굴되었다. 가장 높은 건물은 주문(主門)인 이슈타 게이트인데 그 성문의 벽돌에는 바벨론을 상징하는 용의 머리, 사자의 몸, 독수리 뒷 발톱을 가진 복합 짐승이 문각되어 있어 다니엘 7장의 표상을 실감나게 하고 있다. 다니엘의 세 동무가 던져졌던 풀무는 벽돌 굽는 가마였다. 원추형으로 생긴 이 가마속에 진튊 벽돌을 쌓고 원유와 짚 또는 겨를 섞어 연료로 사용했다. 다니엘 3장에서 분노한 왕이 7배나 뜨겁게 하라던 것은 원유가 섞인 연료를 7배만 더 넣으면 된다. 또 우상이 세워졌던 '두라 평지'(단03:1)는 지금의 힐라 언덕 5마일 아래에서 유프라테스 강으로 들어가는 한 지류의 입구에 있는 '나르 두라'(Nahr Dura)이다. 다니엘 6장의 사자굴은 고대 제국의 왕들이 스포츠로 사자 사냥을 위하여 사자를 가둬 두었던 곳이다. 이와 같은 사자굴은 앗시리아 여러 곳에서 발굴되었다. 사자굴을 인봉할 때는 그 입구를 돌로 맞고 그 둘레를 젖은 석회로 바른 뒤 원통 모양으로 문각된 도장을 굴려서 직사각형의 인상(印象)을 남겨 아무도 뜯지 못하게 했다. 다니엘 5장에서 벨사살이 마지막 잔치를 했던 큰 홀은 느부갓네살이 지은 남궁에 있다. 그곳 중앙에는 보좌가 있는 넓은 방이 있는데 길이가 173피트, 넓이 57피트, 높이 66피트이다 (신계훈, 조대연, 고고학과 성서 배경, 134-140 참조). ▶ 바벨론 Babylon. [Bab'ylon] Nimrod's BABEL was doubtless in some way connected with the renowned city of Babylon and of the kingdom of which it was the capital. The Hebrew is Babel, the same for Babel and Babylon. In Gen. 11:2, it speaks of Babel being built in a plain in the land of Shinar, which they reached by travelling from the east; this reads in the margin travelling 'eastward,' a reading preferred by many and by the Revisers. This direction agrees well with the locality of Babylon on the river Euphrates. (창11:2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Historians speak of the great size of the city, though they are not agreed as to its dimensions. It had 25 gates on each side, and from the gates were streets which crossed one another at right angles. The houses were not built close together, so that there was ample room inside the city for gardens and even fields and vineyards. The walls were said to be 75 feet thick and 300 feet in height; and the gates were of brass. The river Euphrates ran through the city; but on the banks of the river strong walls were built with gates of brass; there was also a bridge from side to side near the centre of the city. A lake was formed outside the city into which the waters of the river could be turned when the water rose too high, and deep ditches filled with water surrounded the walls of the city. We also read of 'hanging gardens' which Nebuchadnezzar built for his wife Amyitis, or Amyhia, daughter of a Median king, to give the place a measure of resemblance to the mountains and wooded hills of her native country. These gardens are supposed to have been built in terraces of different heights. In several particulars scripture corroborates the statements of the historians. In Jer. 50:11 of Babylon it is said, 'O ye destroyers of mine heritage, because ye are grown fat as the heifer at grass, and bellow as bulls;' its broad walls are mentioned, Jer. 51:12, 58; its gates of brass and bars of iron, Isa. 45:2; and Nebuchadnezzar boasted of the 'great Babylon' which he had built by the might of his power and for the honour of his majesty. Dan. 4:30. (렘50:11 나의 산업을 노략하는 자여 너희가 즐거워하며 기뻐하며 곡식을 가는 송아지 같이 뛰며 힘센 말 같이 울도다 (렘51:12, 58 12 바벨론 성벽을 향하여 기를 세우고 튼튼히 지키며 파숫군을 세우며 복병을 베풀어 방비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바벨론 거민에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경영하시고 행하심이로다 58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의 넓은 성벽은 온전히 무너지겠고 그 높은 문들은 불에 탈 것이며 백성들의 수고는 헛될 것이요 민족들의 수고는 불탈 것인즉 그들이 쇠패하리라 하시니라 (사45:2 내가 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케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단04:30 나 왕이 말하여 가로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Among the relies recovered from the various mounds of ruins are some bricks with the names of the kings Neriglissar and Labynetus stamped upon them, but the great majority of those found bear the name of Nebuchadnezzar. Babylon was built with bricks, there being no stone at all near, and in later years the mounds were ransacked for bricks for other cities. Of the early governments in Babylon but little is known with certainty. Berosus, as arranged by Rawlinson, gives from B.C. 2458 to 625 various dynasties of Medes, Chaldaeans, Arabs, and Assyrians; and lastly Babylonians from B.C. 625 to 538. Babylon and Assyria are much blended together in history, sometimes being independent one of the other, and at other times being tributary to one another. In B.C. 745 Tiglath-pileser may be said to have founded the later kingdom of Assyria, and among his victories he became master of Babylonia, as the kingdom of Babylon was called. About 721 Merodachbaladan became king of Babylon, and in 712 he sent ambassadors to Hezekiah on hearing of his sickness. This is recorded in 2 Kings 20:12, where he is called Berodach-baladan. In B.C. 702 Sennacherib king of Assyria expelled Merodach, and Babylon was governed by viceroys from Assyria. In B.C. 681 Esar-haddon became king of Assyria but held his court at Babylon, to which place Manasseh king of Judah was carried prisoner about B.C. 677. 2 Chr. 33:11. About B.C. 625 Nabo-polassar revolted from the king of Assyria and established the later kingdom of Babylon. He with Cyaxares (the Ahasuerus of Dan. 9:1) founder of the Median kingdom, attacked and took Nineveh, and put an end to the Assyrian rule. Nebuchadnezzar, co-regent with Nabo-polassar, took Jerusalem, and carried many captives and the holy vessels to Babylon, about B.C. 606. In B.C. 604 Nabo-polassar died and Nebuchadnezzar reigned alone. In B.C. 603 Jehoiakim revolted and in 599 Nebuchadnezzar again took Jerusalem, and Ezekiel was carried to Babylon: this is called the great captivity. 2 Kings 24:1-16. Mattaniah was left as king in Jerusalem, his name being changed to Zedekiah: he reigned 11 years. 2 Kings 24:17-20. Having rebelled against Babylon, Nebuchadnezzar, after a siege of eighteen months, once more took Jerusalem, destroyed the city and burnt the house of the Lord, bringing the kingdom of Judah to an end: B.C. 588. 2 Kings 25:1-26. For the personal history of the king see NEBUCHADNEZZAR. In B.C. 561 Nebuchadnezzar died. He was the 'head of gold' in Daniel's great image. The glory of the later Babylonian Empire virtually began and ended with him. The succession of kings was somewhat as follows: (왕하20:12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저에게 보낸지라 (대하33:1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장관들로 와서 치게 하시매 저희가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 간지라 (단09:1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왕하24:1-16 바벨론의 침략과 포로됨 (왕하24:17-20 왕하 24:17 바벨론 왕이 또 여호야긴의 아자비 맛다니야로 대신하여 왕을 삼고 그 이름을 고쳐 시드기야라 하였더라 18 시드기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일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립나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19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20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진노하심이 저희를 그 앞에서 쫓아 내실 때까지 이르렀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 (왕하25:1-26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 후 KINGS OF BABYLON. B.C. 625 Nabo-polassar. 606 Nebuchadnezzar, co-regent. 604 Nabo-polassar dies. Nebuchadnezzar reigns alone. 561 Evil-Merodach succeeds. He raises up Jehoiachin in the 37th year of his captivity. 2 Kings 25:27. 559 Neriglissar succeeds. Perhaps the same as one of the princes called Nergal-sharezer in Jer. 39:3, 13. 556 Laborosoarchod succeeds. Reigned 9 months and is slain. 555 Nabonidus or Nabonadius (also called Labynetus), a usurper: Belshazzar his son afterwards reigning with him. 538 Babylon taken, and Belshazzar slain. End of the Empire of Babylon. (왕하25:27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지 삼십 칠년 곧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의 즉위한 원년 십 이월 이십 칠일에 유다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렘39:3, 13 3 바벨론 왕의 모든 방백이 이르러 중문에 앉으니 곧 네르갈사레셀과 삼갈르보와 환관장 살스김과 박사장 네르갈사레셀과 바벨론 왕의 기타 모든 방백들이었더라 13 이에 시위대장 느부사라단과 환관장 느부사스반과 박사장 네르갈사레셀과 바벨론 왕의 모든 장관이 Babylon has a large place in the O.T. with reference to its intercourse with Israel, in nearly every chapter of Jeremiah, from 20 - 52, Babylon is mentioned. Babylon is also of note as being the first of the four great empires prophesied of by Daniel. The kingdom of the Lord, established in the house of David, and maintained in Judah, had for the time come to an end because of iniquity, and the 'times of the Gentiles' had begun.* Of Nebuchadnezzar it was said, "Thou, O king, art a king of kings: for the God of heaven hath given thee a kingdom, power, and strength and glory . . . . Thou art this head of gold." Dan. 2:37, 38. Babylon was God's instrument by which Judah was punished; and then because of the pride and wickedness of the king of Babylon he also was brought under the rod of the Almighty. (단02:37, 38 37 왕이여 왕은 열왕의 왕이시라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 38 인생들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 어느 곳에 있는 것을 무론하고 그것들을 왕의 손에 붙이사 다 다스리게 하셨으니 왕은 곧 그 금머리니이다 * The times of the Gentiles will end when the power returns to Judah, the house of David, in the person of the Lord Jesus. The destruction of Babylon was fully foretold in scripture, though some of these prophecies may refer also to still future events, namely, the overthrow by the Lord (typified by Cyrus) of the last holder of Nebuchadnezzar-like authority, namely, the beast, the last head of the revived Roman empire. Isa. 13:6-22; Isa. 14:4-23; Isa. 21:2-9; Isa. 47:1-11; Jer. 25:12-14 and Jer. 50, 51. Its downfall was unexpected. For 24 years after the death of Nebuchadnezzar Babylon continued the seat of the imperial court. In B.C. 538 the city was taken in a remarkable way. A night was chosen when the inhabitants were about to hold a festival, when the whole city would be given up to drunkenness and debauchery. The water of the river was diverted from its bed so as to render it shallow enough to let the troops pass along. The gates were found open, and the city was taken. (사13:6-22; 바벨론의 고통과 황폐 (사14:4-23; 바벨론 멸망에 대한 예언 (사21:2-9; 바벨론에 대한 예언 (사47:1-11; 바벨론 멸망 선포 (렘25:12-14 1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칠십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되 13 내가 그 땅에 대하여 선고한바 곧 예레미야가 열방에 대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니 14 여러 나라와 큰 왕들이 그들로 자기 역군을 삼으리라 내가 그들의 행위와 그들의 손의 행한 대로 보응하리라 하시니라 (렘50: 바벨론이 받을 심판과 멸망과 이스라엘 구원 (렘51: 우상숭배에 어리석음과 바벨론을 멸하시는 하나님 This also was prophesied of in scripture: it specifies that Cyrus was God's shepherd, and He had holden him to subdue nations: God would loose the loins of kings to open before him the two-leaved gates; and the gates should not be shut: the gates of brass should be broken, and the bars of iron be cut asunder. Isa. 45:1, 2. Again the suddenness and unexpectedness of the attack is also mentioned: "evil shall come upon thee; thou shalt not know from whence it riseth: and mischief shall fall upon thee; thou shalt not be able to put it off: and desolation shall come upon thee suddenly, which thou shalt not know." Isa. 47:11. We also find that it was on the night of the revelry of Belshazzar's feast that the king was slain. Dan. 5:30. (사45:1, 2 1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 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고레스에게 이르기를 2 내가 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케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사47:11 재앙이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그 근본을 알지 못할 것이며 손해가 네게 이르리라 그러나 이를 물리칠 능이 없을 것이며 파멸이 홀연히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헤아리지 못할 것이니라 (단05:30 그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The monuments show that Babylon was taken by Gobryas the general of Cyrus, and that the capture of the city was, as some think, aided by treachery among its inhabitants. Dan. 5:31 says, "Darius the Median took the kingdom." This king has not been found mentioned by name on the monuments, but he is well accredited as king in Daniel. He was probably ASTYAGES, who was a Median king. He had been conquered by Cyrus, who may have found it to his advantage to let him reign at Babylon as long as he lived. Astyages being a Mede and Cyrus a Persian agree with the second great empire being called by the two names. Persia gained the ascendancy, and Babylon was a royal residence during part of the year. There were occasional revolts, in the putting down of which the city was more and more destroyed. In the year B.C. 478 Xerxes returning from his inglorious invasion of Greece passed through the city, robbed the temple of Belus of its wealth and left its lofty towers a heap of ruins. In B.C. 324 Alexander the Great attempted to rebuild that edifice, and employed 10,000 men; but his sudden death, before the ruins had been cleared away, left it still in desolation. (단05:31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때에 다리오는 육십 이세였더라 Scripture is very decisive as to the utter destruction of the city: "Babylon, the glory of kingdoms, the beauty of the Chaldees' excellency, shall be as when God overthrew Sodom and Gomorrah. It shall never be inhabited, neither shall it be dwelt in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neither shall the Arabian pitch tent there; neither shall the shepherds make their fold there: but wild beasts of the desert shall lie there, and their houses shall be full of doleful creatures; and owls shall dwell there, and satyrs shall dance there. And the wild beasts of the islands shall cry in their desolate houses, and dragons in their pleasant palaces." Isa. 13:19-22. (사13:19-22. 19 열국의 영광이요 갈대아 사람의 자랑하는 노리개가 된 바벨론이 하나님께 멸망 당한 소돔과 고모라 같이 되리니 20 그곳에 처할 자가 없겠고 거할 사람이 대대에 없을 것이며 아라비아 사람도 거기 장막을 치지 아니하며 목자들도 그곳에 그 양떼를 쉬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 21 오직 들짐승들이 거기 엎드리고 부르짖는 짐승이 그 가옥에 충만하며 타조가 거기 깃들이며 들 양이 거기서 뛸 것이요 22 그 궁성에는 시랑이 부르짖을 것이요 화려한 전에는 들 개가 울 것이라 그의 때가 가까우며 그의 날이 오래지 아니하리라 Now vast mounds extend for miles. If Hillah (about 32 27' N, 44 25' E) be taken as a centre, the mounds extend northward about 3 miles. About 6 miles S.W. of Hillah stands the celebrated heap known as Birs Nimrood, supposed to be the site of the ancient temple of Belus. There are three large piles on the east of the river: the Mujelibe or Mukallibe, the Kasr or palace, and the Amran. The moral features of Babylon were idolatrous corruption and worldliness, which will be seen in full manifestation in Babylon the Great. It is the place where the people of God get into captivity through dalliance with the world. In the N.T. Babylon is mentioned in 1 Peter 5:13. There is evidence in Josephus that there were many Jews in the district forty years after Christ. On the occasion of the gathering at Jerusalem in Acts 2:9-11 mention is made of the Parthians, Medes and Elamites; and when Peter commences his epistle, supposing he was in the district of Babylon, he naturally puts Pontus first and then passes on to Galatia, Cappadocia, Asia, and Bithynia. There can be no reason therefore to doubt that the ancient district of Babylon is alluded to by Peter, where, through God's grace, there were some of the 'elect.' (벧전05:13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행02:9-11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 Morrish Bible Dictionary ●Babylon - (왕하17:24, (왕하20:12, (왕하24:1, (왕하25:1, (대상09:1, (대하32:31, (대하33:11, (대하36:6, (스02:1, (스05:12, (스06:5, (느07:6, (느13:6, (에02:6, (시087:4, (시137:1, (사13:1, (사14:4, (사21:9, (사39:1, (사43:14, (사47:1, (사48:14, (렘20:4, (렘21:2, (렘22:25, (렘24:1, (렘25:1, (렘27:6, (렘28:2, (렘29:1, (렘32:2, (렘34:1, (렘35:11, (렘36:29, (렘37:1, (렘38:3, (렘39:1, (렘40:1, (렘41:2, (렘41:18, (렘42:11, (렘43:3, (렘43:10, (렘44:30, (렘46:2, (렘49:28, (렘50:1, (렘51:1, (렘52:3, (겔12:13, (겔17:12, (겔19:9, (겔21:19, (겔24:2, (겔26:7, (겔29:18, (겔30:10, (겔32:11, (단01:1, (단02:12, (단03:1, (단04:6, (단05:7, (단07:1, (미04:10, (슥02:7, (슥06:10, (마01:11, (행07:43, (벧전05:13, (계14:8, (계16:19, (계17:5, (계18:2 2 Kgs 17:24, 2 Kgs 17:30, 2 Kgs 20:12, 2 Kgs 20:14, 2 Kgs 20:17, 2 Kgs 20:18, 2 Kgs 24:1, 2 Kgs 24:7, 2 Kgs 24:10, 2 Kgs 24:11, 2 Kgs 24:12, 2 Kgs 24:15, 2 Kgs 24:16, 2 Kgs 24:17, 2 Kgs 24:20, 2 Kgs 25:1, 2 Kgs 25:6, 2 Kgs 25:7, 2 Kgs 25:8, 2 Kgs 25:11, 2 Kgs 25:13, 2 Kgs 25:20, 2 Kgs 25:21, 2 Kgs 25:22, 2 Kgs 25:23, 2 Kgs 25:24, 2 Kgs 25:27, 2 Kgs 25:28, 1 Chr 9:1, 2 Chr 32:31, 2 Chr 33:11, 2 Chr 36:6, 2 Chr 36:7, 2 Chr 36:10, 2 Chr 36:18, 2 Chr 36:20, Ezra 2:1, Ezra 5:12, Ezra 5:13, Ezra 5:14, Ezra 5:17, Ezra 6:5, Neh 7:6, Neh 13:6, Est 2:6, Ps 87:4, Ps 137:1, Ps 137:8, Isa 13:1, Isa 13:19, Isa 14:4, Isa 14:22, Isa 21:9, Isa 39:1, Isa 39:3, Isa 39:6, Isa 39:7, Isa 43:14, Isa 47:1, Isa 48:14, Isa 48:20, Jer 20:4, Jer 20:5, Jer 20:6, Jer 21:2, Jer 21:4, Jer 21:7, Jer 21:10, Jer 22:25, Jer 24:1, Jer 25:1, Jer 25:9, Jer 25:11, Jer 25:12, Jer 25:26, Jer 27:6, Jer 27:8, Jer 27:9, Jer 27:11, Jer 27:12, Jer 27:13, Jer 27:14, Jer 27:16, Jer 27:17, Jer 27:18, Jer 27:20, Jer 27:22, Jer 28:2, Jer 28:3, Jer 28:4, Jer 28:6, Jer 28:11, Jer 28:14, Jer 29:1, Jer 29:3, Jer 29:4, Jer 29:10, Jer 29:15, Jer 29:20, Jer 29:21, Jer 29:22, Jer 29:28, Jer 32:2, Jer 32:3, Jer 32:4, Jer 32:5, Jer 32:28, Jer 32:36, Jer 34:1, Jer 34:2, Jer 34:3, Jer 34:7, Jer 34:21, Jer 35:11, Jer 36:29, Jer 37:1, Jer 37:17, Jer 37:19, Jer 38:3, Jer 38:17, Jer 38:18, Jer 38:22, Jer 38:23, Jer 39:1, Jer 39:3, Jer 39:5, Jer 39:6, Jer 39:7, Jer 39:9, Jer 39:11, Jer 39:13, Jer 40:1, Jer 40:4, Jer 40:5, Jer 40:7, Jer 40:9, Jer 40:11, Jer 41:2, Jer 41:18, Jer 42:11, Jer 43:3, Jer 43:10, Jer 44:30, Jer 46:2, Jer 46:13, Jer 46:26, Jer 49:28, Jer 49:30, Jer 50:1, Jer 50:2, Jer 50:8, Jer 50:9, Jer 50:13, Jer 50:14, Jer 50:16, Jer 50:17, Jer 50:18, Jer 50:23, Jer 50:24, Jer 50:28, Jer 50:29, Jer 50:34, Jer 50:35, Jer 50:39, Jer 50:42, Jer 50:43, Jer 50:45, Jer 50:46, Jer 51:1, Jer 51:2, Jer 51:6, Jer 51:7, Jer 51:8, Jer 51:9, Jer 51:11, Jer 51:12, Jer 51:24, Jer 51:29, Jer 51:30, Jer 51:31, Jer 51:33, Jer 51:34, Jer 51:35, Jer 51:37, Jer 51:41, Jer 51:42, Jer 51:44, Jer 51:47, Jer 51:48, Jer 51:49, Jer 51:53, Jer 51:54, Jer 51:55, Jer 51:56, Jer 51:58, Jer 51:59, Jer 51:60, Jer 51:61, Jer 51:64, Jer 52:3, Jer 52:4, Jer 52:9, Jer 52:10, Jer 52:11, Jer 52:12, Jer 52:15, Jer 52:17, Jer 52:26, Jer 52:27, Jer 52:31, Jer 52:32, Ezek 12:13, Ezek 17:12, Ezek 17:16, Ezek 17:20, Ezek 19:9, Ezek 21:19, Ezek 21:21, Ezek 24:2, Ezek 26:7, Ezek 29:18, Ezek 29:19, Ezek 30:10, Ezek 30:24, Ezek 30:25, Ezek 32:11, Dan 1:1, Dan 2:12, Dan 2:14, Dan 2:18, Dan 2:24, Dan 2:48, Dan 2:49, Dan 3:1, Dan 3:12, Dan 3:30, Dan 4:6, Dan 4:29, Dan 4:30, Dan 5:7, Dan 7:1, Mic 4:10, Zech 2:7, Zech 6:10, Matt 1:11, Matt 1:12, Matt 1:17, Acts 7:43, 1 Pet 5:13, Rev 14:8, Rev 16:19, Rev 17:5, Rev 18:2, Rev 18:10, Rev 18:21 lt=32.536&ln=44.421 ●Babylonia - (스01:11, (스02:1, (스05:12, (스06:1, (스07:6,9,16, (스08:1 Ezra 1:11, Ezra 2:1, Ezra 5:12, Ezra 6:1, Ezra 7:6, Ezra 7:9, Ezra 7:16, Ezra 8:1 lt=32.536&ln=44.421
162 발람(Balaam)
인물
jesus
5329 17 2006-12-27
▶ 발람(Balaam) 개역한글 민수기22장 뜻 : 백성을 파멸시키는 자 베돌성 아몬 강변에 사는 브올의 아들로 선지자(민22:5). 모압 왕 발락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청할 때 물욕에 끌려 가다가 타고가던나귀에게 책망을 받고 천사의 견책도 받았다(민22:28-33), (벧후02:15). 모압에 이르러 여호와의 지시대로 3차에 걸쳐 이스라엘을 축복하였다(민23:1-24:9). ========Balaam Balaam was a famous non-Israelite prophet, whom king Balak of Moab summoned to curse the Israelite invaders (Numbers 22:5). Balaam, advised by God only what I bid you, that shall you do (Num 22:20), hurried to Balak. God sent an angel with a sword to block Balaam's way, but only his donkey could see the divine messenger. When Balaam started to beat the animal, God allowed the donkey to speak in protest and finally let Balaam see and talk to the angel, who sent him on, warning him to speak only the word which I bid your (Num 22:35). When Balaam came at last to Balak he blessed Israel and foretold Israel eventual triumph over its enemies, including Moab. (민22:5 그가 사자를 브올의 아들 발람의 본향 강변 브돌에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하여 가로되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편에 거하였고 (민22:20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 할지니라 (민22:35 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에게 이르되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 발람이 발락의 귀족들과 함께 가니라 ▶ 발람 Balaam. A Midianite prophet who resided at Pethor, son of Beor or Bosor. He was hired by Balak king of Moab to curse Israel, but God compelled him to bless instead of curse His chosen people. Though he talked piously his heart was evidently set on getting the reward from Balak. Jude 11. The angel of Jehovah withstood him, and he was rebuked by his ass, yet he was allowed to go on his way. Num. 22, 23, 24; Deut. 23:4, 5; Joshua 24:9, 10. Though compelled by God to bless Israel, he most treacherously counselled Balak to seduce them by means of the Midianitish women, Num. 31:16; 2 Peter 2:15; Rev. 2:14, which led to their gross idolatry. Num. 25:1, 2: see BAAL-PEOR. After Israel was punished for their sin, they were avenged on Moab, and among the slain was Balaam. In Joshua 13:22 he is called a soothsayer, and when he was with Balak he sought enchantments. In Num. 23:15 the words 'the LORD' are added by the translators. Num. 24:1 says that he went not then as at other times to meet enchantments. But he was overpowered by God. In the passages in the N.T. he is held up as an example of consummate wickedness and apostasy. (유01:11 11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민22:01- 발락의 계략과 발람의 초청 (민23:01- 발람의 신탁 (민24:01- 야곱의 별과 발람의 예언 (신23:4, 5; 4 그들은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떡과 물로 너희를 길에서 영접하지 아니하고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너희를 저주케 하려 하였으나 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발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 (수24:9, 10. 9 때에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사람을 보내어 브올의 아들 발람을 불러다가 너희를 저주케 하려 하였으나 10 내가 발람을 듣기를 원치 아니한 고로 그가 오히려 너희에게 축복하였고 나는 너희를 그 손에서 건져 내었으며 (민31:16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좇아 이스라엘 자손으로 브올의 사건에 여호와 앞에 범죄케하여 여호와의 회중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벧후02:15-16 15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16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지하였느니라 (계02:14 그러나 네게 두어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민25:1, 2: 1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2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수13:22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도륙하는 중에 브올의 아들 술사 발람도 칼날로 죽였었더라 (민23:15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내가 저기서 여호와를 만날 동안에 여기 당신의 번제물 곁에 서소서 하니라 (민24:1 발람이 자기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심을 보고 전과 같이 사술을 쓰지 아니하고 그 낯을 광야로 향하여 --- Morrish Bible Dictionary ========Paintings Balaam Rembrandt. The Ass of Balaam Talking before the Angel. 1626. Oil on panel. Musée Cognacq-Jay, Paris, France More...More... Gallery -------------------------------------------------------------------------------- 발람이라는 이름의 뜻은 [백성을 파멸시키는 자]이며 그는 유프라테스 강변에 있는 메소포타미아 부돌지방 사람으로서 브올의 아들이요 술사였다. 그는 이방인으로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에대한 경외심과 두려워하는 마음은 가지고 있었으나 결국 발락이 제공한 물질에 눈이 어두워 이스라엘을 범죄에 빠지게한 이중인격의 선지자라 할 수 있다 . 모압왕 발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진입하려 할때 그는 아모리인 들을 섬멸한 이스라엘 군대의 위력에 공포감을 느낀 나머지 미디안 장로들과 혐의하기를 부돌의 아들 발람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토록 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무력으로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것보다 선지자 기도의 힘을 빌리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나머지 취한 신앙아닌 종교적 계략이었다. 이제 모압왕 발락이 장로들에게 귀한 예물을 주어 발람에게 전달토록 했으며 그리고 그의 입으로 이스라엘을 저주토록 했다. 그러나 발람은 세번이나 이러한 부탁을 받았으나 하나님을 두려워한 나머지 다음과 같이 완강히 거절했다. [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발락이 그 집에 은금을 가득히 채워서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어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민 22:18). [하나님이 저주치 않으신 자를 내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 어찌 꾸짖을고](민 23:8).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 시랴](민23:19). 그러나 성서기자들은 한결같이 발람의 신앙인격을 평하기를 표면과 이면이 다르고 말과 행동이 다른 거짓 선지자로 낙인을 찍고 있다( 참조- (계02:14) (벧후02:15-16) (유01:11). -------------------------------------------------------------------------------- 발람/명예·물질에 눈멀어 흔들린 “미친 선지자” 성경:민수기22장28∼33절 (민22:) 발람은 「백성을 파멸시키는 자」라는 뜻이다.메소보다미아의 유브라데 강변에 있는 브돌성 브올의 아들로서 선지자였다.이 발람은 메소보다미아와 모압과 암몬,가나안 지역에 널리 알려져 있는 술사였다.그러나 발람은 그의 명성만큼 인격이 훌륭하거나 하나님편에 소속된 영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물질앞에 매우 허약한 사람이었고 인정에 끌려 종교적인 지조를 잃을 만큼 무력한 사람이었다.모압왕 발락의 초청으로 일어난 사건이 발람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과 모압 국경 요단 맞은편에 진을 치자 발락과 미디안 장로들이 크게 두려워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방법으로 발람을 선택하였다. 이 때에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이렇게 금지하였다.그러나 재차 더 많은 예물과 예우를 약속하자 발람이 마음을 바꿔 모압의 사신을 따라 가게 되었다.발람이 모압으로 향하던 도중 세차례나 나귀가 앞으로 나가지 아니하며 머뭇거리다가 발람의 발을 담에 비비어 상하게까지 하였다. 이 때에 발람은 크게 노하여 나귀에게 채찍질하자 나귀가 입을 벌려 발람을 책망하게 되었다.그제서야 눈이 밝아져 앞을 보니 하나님의 사자가 칼을 빼들고 서 있었다.성경은 이때의 발람의 모습을 미친 선지자로 소개하고 있다(벧후2:16).탈선된 선지자의 어두운 면을 보자. ▷교훈과 적용◁ 첫째,큰 소명과 큰 사명에는 그에 어울리는 인격이 따라야 한다. 둘째,하나님의 뜻을 좇는데 충성되어야 한다.사람의 생각으로 흔들리지 말자.<이병돈목사(은평교회)>
161 사라(Sarah, Sarai)
인물
jesus
5195 17 2006-12-27
▶ 사라(Sarah) Sarai 뜻:공주 아브라함(Abraham)의 아내로서 처음에는 사래라고 불렀으나 이름을 고쳤다(창11:29, (창17:15). 본래 아브함의 이복 누이동생이었는데 아브라함의 아내가 되어 갈대 아우르에서 인생을 출발하 여 죽을 때까지 오랜 세뤘를 통하여 아브라함 의 좋은 반려자가 되었다.사라는 미모가 아리따운 여자였다. 애굽에 내려 갔다가 그 아룸다움 때문에 애굽 왕 바로의 궁에 불려 들어갔던 일도 있다 (창12:10-20, (창20:1-5). 신약성서에서 사라를 경건한 아내의 표본으로 삼았다(벧전03:6). 믿음으로산 신앙 인물의 본보기로 예시되었다(히11:11). 그는 아이를 낳지 못하였으나 하나님의 특별한 약속대로 고령에 이르러 이삭 을 낳아 이 스라엘 자손의 조상이 되었다(창 11:30, 20:1-2), (사51:2). 사라는 그의 계집 종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주어 이스마엘을 낳게 했으나 후일에 가정 불화로 하갈과 이스마엘은 추방을 당했다(창11:). 바울은 이 사건을 갈라디아서에 인용하여 하나님의 약속 아래서 된 그리스도 인의 자유 에 대한 비유로 들었다(갈04:21-31). 사라는 죽어 막벨라 굴에 묻혔다(창22:). --------------------------------------------------- ▶ 창세기 11장28∼31절 사라는 공주라는 뜻이 있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아내로 본명은 사래(Sarai)였습니다(창17:15). 사라도 아브라함과 함께 갈대아 우르 태생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에 와서 정착하였습니다. 그는 매우 미모의 여인으로 애굽에 내려갔을 때에 바로에게 와 아비멜렉왕에게 두 차례나 범죄할뻔 하였습니다. 그러나 두번 다 하나님의 극적인 보호로 위기를 모면하는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또한 90세에 아들 이삭을 낳아 인간의 생산능력이 언제까지라도 신앙 안에서는 가능하다는 실례를 보여 주었습니다. 사라의 훌륭한 모습은 남편을 「주」라 할 만큼 순종하는 후덕한 여인이라는데 있습니다. 이는 남존여비의 사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원만하게 부부생활에 적용했다는 현모양처의 모범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여종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내어주어 이스마엘을 낳게 한 것은 그의 결점이었습니다. 더욱이 이스마엘과 하갈에 대해 몰인정했던 부분은 여자의 질투심을 노출한 것입니다. -------------------------------------------------------------------------------- 사라… 긴 인고의 세월 끝에 크게 웃다 우리가 성경과 쉽게 가까워지기 어려운 것은 성경에 적혀 있는 내용들의 톤이 너무 어둡기 때문이다.성경의 첫장을 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멘트가 나오자마자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로 성경의 드라마가 시작된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 1:2) 성경의 스토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실패로 이어지는 ‘새드 무비’이다.아담과 하와는 금단의 실과를 먹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고 가인은 아벨을 죽여 살인자가 되었고 사람들은 죄악의 관영으로 큰 홍수의 비극을 겪었으며 바벨탑을 건설하다가 서로의 언어도 알아듣지 못하게 되는 슬픔을 당했다.이스라엘 백성은 400년의 노예 생활을 한 끝에 탈출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가 새 나라를 건설했으나 분단의 비극을 겪었으며 결국 통일을 이루지 못한 채 양쪽이 다 멸망했다.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고 그분의 부활을 믿으며 복음을 전하던 수많은 사람들은 순교의 피를 뿌렸다.고난 끝에 로마 제국의 공인을 받은 기독교는 황제의 권력을 등에 업고 타락하기 시작하더니 르네상스의 물결에 떠밀려 큰 치욕을 당했다.다시 종교개혁으로 새 출발을 한 개신교도 한때 복음을 전파했던 강대국들의 타락과 횡포에 휩쓸려서 싸잡아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지식인과 젊은이들은 교회를 떠나고 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 결국 타락한 인류의 역사가 큰 전쟁과 함께 멸망하여 종말을 맞게 되며 이어 심판의 날이 임하리라고 성경은 경고하고 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계 20:15)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인류 역사의 드라마는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어둡고 우울한 실패의 이야기들로 이어지고 있다.그래서 성경에는 괴로워하고 슬퍼하여 우는 자는 많아도 웃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그런데 그 중에 크게 웃은 사람이 하나 등장하는데 바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그 사람이다.그녀도 실은 별로 평탄하거나 행복하게 살지 못했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 힘든 인생을 살았다.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창16:2) 사라가 남편에게 그렇게 권할 때 그녀의 나이는 75세였다.그 나이가 될 때까지 자식을 낳지 못하여 남편에게 다른 여인과 동침하여 자식을 낳으라고 권하는 아내의 마음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처절한 것이었다.아브라함은 그 여종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을 낳았는데 그로부터 다시 14년의 세월이 지나 사라의 나이 89세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장막을 찾아오셨다.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18:10) 이미 경수가 끊어진 사라는 장막 문에서 그 음성을 듣고 어이가 없어서 웃다가 하나님께 들켰다.하나님이 다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나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그 말씀을 듣고 사라가 당황하여 웃음을 감추며 변명했다.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 보고 계셨던 것이다. “아니라,네가 웃었느니라.” 과연 그 이듬해에 사라는 아들을 낳았다.하나님은 그 아들의 이름을 미리 ‘이삭’이라고 지어주셨는데(창 17:19) 그것은 ‘웃음’이라는 뜻이었다.아브라함이 100세 되던 해에 이삭을 낳은 사라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창21:6)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열살이나 연상인 그 남편을 주인이라 부르며(창18:12) 인고의 삶을 살았으나 그 주관이 뚜렷하여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하며 산 여인이었다.그는 자신의 소생이 없었으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극진하게 돌보았다.뿐만 아니라 자립한 롯이 북방의 군대에 납치되어 갔을 때 아브라함은 318명의 장정들을 이끌고 그들을 추격했는데 그들은 모두 집에서 길리운 자들이라고 되어 있다. “그 조카의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318인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창 14:14) 그들은 모두 아브라함의 집에서 길러낸 자들이었다.자식을 낳지 못한 사라는 그냥 신세 한탄만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의지할 곳 없는 고아들을 데려다 보살피며 길렀는데 그 수가 점점 많아져서 무려 318명이나 되었던 것이다.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이 사실이 우리에게 감동적이라면 하나님도 역시 감동하시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긴 인고의 세월 끝에 크게 웃었던 사라의 웃음은 어둡고 우울한 성경의 기록을 대번에 밝고 활기찬 약속으로 뒤집어 놓는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030:5)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들에게 미리 ‘웃음’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다.그리고 그 이삭에게 주신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했다.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눅06:21) ======== Sarah, [Sa'rah] Sarai, [Sa'rai] Sara. [Sa'ra] Wife of Abraham and mother of Isaac. Abraham said she was the daughter of his father but not of his mother, therefore he called her 'sister'; but God preserved her in His mercy to Abraham, who had, through fear, denied his true relationship to her in the land of Egypt and before Abimelech. Sarah, being barren, gave to Abraham her Egyptian handmaid Hagar, who, when she had conceived, despised her mistress. Sarah then dealt harshly with her and she ran away; but the angel of the Lord sent her back, and Ishmael was born. When God promised Abraham that a son should be born to him of Sarah, He altered her name from Sarai to Sarah, which signifies 'princess.' The meaning of Sarai is uncertain. Jerome gave 'my princess;' others 'princely;' others 'contentious;' Fürst says, 'Jah is ruler.' (See NAMES.) When Sarah heard that she was to have a son, she laughed within herself, for she was old, but it was known by the Lord, and then, being afraid, she denied that she had laughed. In fulfilment of God's promise, Isaac was at length born. When he was weaned, Ishmael was seen mocking, which roused Sarah to demand the expulsion of Hagar and Ishmael. Though it was grievous to Abraham, God bade him do what Sarah desired. This is taken up in Galatians 4 as a figure of Christians being children of the free woman, that is, of Jerusalem which is above, which, says the apostle, is our mother. Ishmael represents the man born after the flesh, who persecutes him born after the Spirit. Sarah lived to the age of 127, and died in Kirjath-arba, and was buried in the cave of Machpelah, which was purchased as a burying place. Her history is given in Gen. 11 — Gen. 23. Sarah is held up in the N.T. as an example of faith, Heb. 11:11; and also as a wife who was in subjection to her husband. 1 Peter 3:6. (히11:11 (벧전03:6 --- Morrish Bible Dictionary
160 바벨(Babel)
지명
jesus
4929 6 2006-12-30
▶ 바벨(Babel) 뜻:하늘의 문, 신의 문 시날 평지에 니므롯이 세운 성읍 노아의 자손들이 다음의 홍수를 피하기 위하여 하늘까지 닿는 돌탑을 쌓으므로 여호와가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통솔 력을 중지 시키시므로 이름을 바벨이라 하였다(창11:1-9). * 탑은 8층 까지 건설 되었는데 1층은 장 광이 각각 6백척이나 되는 넓은 건평 이요 최고층 8층에는 정금으로 만든 벨이라는 높이 40척의 어마어마한 신상이 있다. ========Tower of Babel Tower of Babel (Genesis 11:1-9). There was a time when all the world spoke a single language and used the same words. Once people decided to build for themselves a big city, then a tower ith its top in the heaven. The Lord did not like their ambitions, He saw in them pride and an attempt to be equal to Him. He confused the people's languages, they stopped to understand each other and scattered over the face of the earth. ========Paintings Tower of Babel Pieter Bruegel the Elder. The Tower of Babel. ======== 바벨탑과 지구라트 구약성경 창세기 11장 1-9절에 보시면 '온땅에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서로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시니... 그들이 성쌓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하니...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여기서 성이란 도시를 말합니다. 개정개역판 성경에 보시면 도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냥 성이 아니라 거대한 도시였던 것이지요. 이를 누가 주도했을까요? 바로 고대 최초의 통일제국을 만든 사람 '니므롯' 입니다. 니므롯이 통일제국을 만든 뒤 여러 가지 이질적인 종족들을 꼼짝 못하게 하고 쉽게 다스리기 위해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와 같이 도시부터 만든 이후에 높은 탑을 쌓은 것입니다. 이제 바벨탑에 대한 고고학적 발견을 살펴 보겠습니다. 바빌로니아의 신전을 지그라트라고 합니다. 그 신전중에 제일 큰 것으로 보이는 탑이 근래에 와서 발견되었습니다. 바빌로니아 시대의 기록에 의하면 이 지그라트가 그 당시에도 이미 오래된 역사를 가진 탑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빌로니아의 최고 왕이 느부갓네살이고, 예루살렘을 함락한 것이 기원전 586년입니다. 그 당시에도 이미 지그라트는 오래된 탑이었습니다. 바빌로니아의 기록뿐 아니라 그리스의 유명한 역사가 헤로도투스도 같은 기록을 남겨 놓았습니다. BC500년 경의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바빌로니아의 거대한 건축물에 대해서 기록해 놓았는데, 이 건축물은 서로 맞물리는 여덟 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주위에는 꼭대기에 오르기 위한 나선형의 길이 나 있으며, 그 꼭대기에는 거대한 신전, 바빌로니아의 신의 집을 지어 놓았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이 거대한 건축물은 210m 이상의 높이를 가졌다고 합니다. 한 층을 약 3m로 잡으면 70층이 되는 것이지요. 63빌딩보다 더 높습니다. 수천년 전에 이러한 어마어마한 탑을 지은 것입니다. 다 지었으면 더 높았겠지만, 중간에 하나님이 공사를 중단시켜 그 정도로 그친 것이지요 오늘날 이라크 지역에 많은 지구라트들이 남아 있습니다. 지그라트의 무너진 수많은 벽돌을 다시 쌓아서 복원하였습니다. 후세인이 관광목적으로 복원한 것입니다. 수천년전에 만들어진 이 벽돌 한 장 한 장에는 놀랍게도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자기들이 섬기던 신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바로 '마르둑(Marduk)'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오른 쪽 그림은 이라크에 있는 많은 지구라트 중 하나의 모습입니다. 바빌로니아의 전승에 의하면 이 탑은 원래 니므롯에 의해 축조되었다고 합니다. 아랍 사람들은 오늘날 까지도 이 탑이 있는 지역을 Birs Nimrud, 즉 '니므롯의 땅'이라고 부릅니다. 이 사진의 탑은 옛날 하나님이 중단시킨 바벨탑과 동일한 유형의 것이지만 그 보다는 훨씬 작습니다.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미생물학 교실 / 서민호 교수) 바벨탑 사건의 역사성에 대한 언어학적 증거 1. 서론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신앙적인 책으로 꼭 읽어야 할 것으로 이해는 하지만 과학적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크리스찬들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성경은 그 무엇보다도 과학적이다. 과학적으로 연구를 하면 할수록 성경의 진리성이 입증이 되고 있다. 현대 언어학적 문제점들을 본다면 서양은 너무 언어를 거시적으로만 다루는 경향이 있고 동양은 미시적으로만 다룬다는 것이다. 또한 언어의 기원이나 근원은 다루지 않고 있다. 그것은 언어학에도 진화론적인 사고로 과거의 미개한 언어로부터 지금까지 발전되어 왔다는 생각들이 있다. 언어의 근원을 말해주는 성경을 언어학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바벨탑사견의 역사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것을 위한 방법으로는 우선적으로 성경을 찾아 볼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언어에 대한 일반적인 원리, 다른 원어들과의 공통적인 분모를 찾아 우리의 주제를 증명해 보도록 하겠다. 2. 창세기 11:1~9 이 구절에는 우리가 밝히고자 하는 바벨탑 사건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1절에 보면 '온땅의 구음이 하나이고 언어가 하나였더라'라고 말한다. 현재 세계에는 6700여종의 언어가 있다고 한다. 이것은 방언이 포함되지 않았고, 완전히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다른 언어만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이러한 언어들이 원래는 하나였다고 말하고 있다. 4절에서 바벨탑을 쌓게 되는 동기가 나오고 있다. 그것은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서였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라고 말씀을 위해서는 흩어져야 하는것은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면하고 이름을 내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라고 볼 수 있다. 7절에서 성경은 가장 중요한 원리를 말해주고 있는데 그것은 '언어를 혼잡케' 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많은 언어들을 일일이 다 창조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언어를 혼잡케 해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언어의 유사성을 통해서 원래가 하나의 언어였다는 것을 증명하게 해 주는 열쇠가 되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언어의 혼잡함으로 흩어졌을 때 하나님께서 가족 단위로 흩으셨음을 추측할 수 있다. 3. 성경속의 언어 창세기 1:1,3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창조를 언어로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요한복음 1:1절에 보면 말씀(언어)가 곧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언어가 단순한 것이 아니라 엄청난 능력 곧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11:43~44 은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나사로를 살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도 역시 언어의 에너지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는 구절이다. (행 2:4~8)에는 오순절에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여 방언을 말하게 하는데 이것을 듣고 각 사람들이 자기가 난 곳의 방언을 듣고 내용을 이해하며 놀라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것은 바벨탑 사건의 징계로 언어가 흩어진 것이 일시적으로 나마 오순절 사건을 통해서 해결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더 나가 요한계시록 7:9~12절에 보면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들이 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영원한 언어 문제의 해결을 나타낸다고 말할 수 있다. 4. 언어의 에너지 위에서 보았듯이 성경은 언어가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E=mc²'에서 E는 에너지 m은 물질 c는 빛의 속도를 말한다. 이 것은 아무리 질량이 작은 것이라고 할 지라도 그 속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가질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말하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다바르(dabar)'라는 단어인데 이 것의 첫 번째 뜻은 말하다, 낱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두 번째 뜻으로 물건, 물질, 사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말이라는 것 곧, 언어는 질량을 가지고 있는 물질이므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해 언어가 엄청난 에너지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다. 5. 발음의 위치에 따른 언어 에너지의 크기 위에서 우리는 언어가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성경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증명을 해 보았다. 그러나 우리의 언어 에너지가 모두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발음하기에 에너지가 많이 쓰이는 것과 적게쓰이는 것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의 언어는 각 자음과 모음마다 입안에서 소리가 나는 위치가 다르다. 그 위치에 따르면 소리나는 위치가 입 안에서 입 밖으로 나갈수록, 그리고 입 아래에서 천장으로 올라갈수록 발음하는데 힘이 많이 든다. 그리고 이것은 소리에 따라 에너지의 양이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다. 이에 대한 예로 어린아이가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엄마이다.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아이가 가장 먼저 배우는 말도 mam이다. 그리고 다른 언어의 아이들도 엄마를 부를 때 비슷한 발음으로 말을 한다. 물론 이것은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그 발음 안에'm'이 들어 가는 이유는 가장 발음 하기가 쉬운 단어곧, 에너지가 가장 적은 단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으로 배우는 아빠와 papa, dad 등도 데체로 'p'가 들어가 있다. 이것은 'm', 'p'가 입 바깥쪽 즉 입술에서 나오는 소리로 가장 에너지가 적기 때문이다. 6. 자음과 모음에 따른 에너지의 크기 에너지의 양이 다른 것은 자음과 모음에서도 그 차이가 드러난다. 자음과 모음중에 자음에 에너지가 더 많이 있다. 따라서 자음은 쉽게 변하지 않음에도 불구 하고 모음은 쉽게 변하기 마련이다. 이에 대한 예로써 히브리어에는 모음이 없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 것을 '섬목어'라고 하는데 그 뜻은 모음이 달라도 뜻이 그다지 크게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모음에 비해 자음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과거의 히브리 어가 지금의 99%정도로 정확하게 해석이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써 간단한 식사를 뜻하는 한국의 점심을 들어 보기로 하자. 한국의 점심의 중국식 발음은 '디안신'이다. 이것의 중국 표준어는 '띠앤신'이고 광동어는 '띰삼' 그리고 띠오또어는 '띠암심'이라고 발음한다. 이것을 잘 보더라도 자음에는 별로 변화가 없고 모음만 변하였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자음이 모음보다 에너지가 크므로 변화도 더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7. 세계 각국의 언어의 공통성 그렇다면 위의 에너지의 차이를 고려하여 각국 언어들 특히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들이 아닌 서로 언어 군이 다른 것들을 한번 살펴 보기로 하자. 우선 히브리어의 '아마르'는 한국말로 '말'을 의미한다. '아마르'의 발음은 'amar'이고 '말'의 발음은 'mal'이다. 유성음과 무성음의 차이는 단순한 울림의 차이임을 고려해 보면 모음이 달라졌을뿐 자음은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다음은 히브리어와 영어의 한 단어를 비교해 보자. 히브리어의 가도리'gadal'는 영어의 'great'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자음끼리 연결을 해 본다면 'd-t', 'r-l'의 순서만 바뀌었을뿐 다른 것은 울림의 차이와 발음 세기의 차이를 고려해 보면 자음이 같다고 말 할 수 있다. 다음으로 히브리어, 영어, 한국어 세가지를 모두 비교해 보자. 히브리어의 '바사르(basar)'는 영어의 'fleash'그리고 한국어의 '살(sal)'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히브리어의 'basar' 와 영어의 'fleash'는 'b-f', 's-s', 'r-l'로 순서만 바뀌었음을 알 수 있고 또 영어의 'fleash'와 한국어의 'sal'은 's-s', 'l-l'의 순서만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다른 나라들의 언어들을 살펴 보더라도 시간이 지나 에너지가 약한 모음은 많이 변하였을 지라도 자음은 에너지가 강하기 때문에 같은 뜻을 가진 단어들이 같은 자음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7. 결론 위와 같이 언어의 자음들이 공통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통해서 그리고 에너지가 클수록 변화가 적다는 과학의 원리를 통해서 우리는 이러한 세계 각국의 방언들이 원래는 하나의 언어였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또한 성령의 은사에 의해 나타나는 방언들도 이것에 대한 실제적인 증거가 되고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바벨탑사건 이후 언어를 흩으셨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최백성 박사) (창10:10, (창11:9 ▶ 바벨 Babel. The word 'Babel' occurs but twice: in Gen. 10:10 it is the name of the first place mentioned as the beginning of the kingdom of Nimrod; and in Gen. 11:9 the tower and city are called 'Babel,' because there the language of man was confounded so that they did not understand one another. The tower was to be very high 'unto heaven,' not with any thought of reaching heaven, but it declared the lofty imagination of man's heart in the desire to make them a name, and to form a gathering point, which would prevent their being scattered. God would not suffer this, for man no sooner has power than he begins to abuse it. He could not therefore let them as one family exalt their own name, for the Lord's name alone is to be exalted. As the result of God's judgement they were scattered and formed into nations according to their tongues and families. (창10:10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창11: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It may be that the name given to the city by Nimrod was Bab-il, signifying 'gate of God' (and it is said that on the monuments this very name 'The 'gate of God,' as the name of a city has been found); but that Jehovah altered it to Ba-bel, which signifies 'confusion.' --- Morrish Bible Dictionary Gen 10:10, Gen 11:9 lt=32.536&ln=44.421
159 애굽(Egypt)
지명
jesus
4833 6 2007-01-02
▶ 애굽(Egypt) 뜻:검은 땅 나일강 유역, 특히 하류의 삼각주에 번영한 세계 최고의 문명 발상지 희랍 어로는 아이굽트스에서 왔고 그 아람 어로는 킵트, 히브리 사람들은 미스라 임(창 10:6). 이라고 했는데 동쪽이라는 뜻이다. 동은 홍해, 서는 아라비아 사막, 북은 지중해, 남은 협곡으로 비교적 고립된지역이다. (1) 아브라함이 기근이 들자 곡식이 풍부한 애굽으로 갔었다(창12:10). (2) 또 그의 아내의 시중을 든 하갈은 애굽의 여인 이었다(창16:1). (3) 주전 18세기경 애굽을 정복한 힉소스의 수령 가운데 히브리 사람의 이름이 나와있고 히브리인의 거주가 나와있다(창37-(창50:). (창38: (창39: (창40: (창41: (창42: (창43: (창44: (창45: (창46: (창47: (창48: (창49: (4) (출01:8에 요셉(Joseph)을 알지 못하는 왕이란 바로 아모시스왕이다. (5) 출애굽의 기록이 애굽측 역사에는 나와있지 않으나 이스라엘이 여호와 의 백성이라는 것과 구원한 하나님에 대한 감사는 구약의 최고의 신앙 고백으로 알려져있다. (6) (신26:5-10은 예언지의 발언가운데 반영되어있다(렘02:1-3, (호02:14-16, (암02:10-16). (7)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가 간구할 때 여호와가 모세와 아론을 바로에 게 보내어 이스라엘을 해방하여 줄 ㅐ을 교섭하였으나 듣지 아니함으로 10재앙을 내리시니 그때에야 허락하여 60만 백성을 인솔하고 430년간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어 출애굽하였다 (출07:20-(출13:30, (출12:40). (8) 솔로몬왕은 바로왕의 딸을 아내로 취하였다(왕상03:1). (9) 르호보암왕 때에는 예루살렘을 쳐서 조공을 받아갔다(왕상14:25-26). (10) 예수님이 헤롯의 독수에게 피하여 애굽으로 내려 갔다가 오셨다 (마02:14-15,19-24). * 세계적 명물인 "피라밑"돌무덤이 있는데 높이 746척 면적이 15,800평이다. ▶ Egypt's - On : (사19:6, (사30:7, (겔30:9 ▶ Egypt - On : (창12:10,11,14, (창13:1,10, (창15:18, (창21:21, (창25:18, (창26:2, (창37:25,28,36, (창39:1, (창40:1,5, (창41:8-57, (창42:1,-3, (창43:2,15, (창45:4,-26, (창46:3,-27, (창47:6,-30, (창48:5, (창50:7, -26, (출01:1-18, (출02:23, (출03:7,-20, (출04:18,-21, (출05:4,12, (출06:11,-29, (출07:3,-22, (출08:5,-24, (출09:4,-25, (출10:7-22, (출11:1,-9, (출12:1,-51, (출13:3-18, (출14:5-20, (출16:1-32, (출17:3, (출18:1, (출19:1, (출20:2, (출22:21, (출23:9,15, (출29:46, (출32:1,-23, (출33:1, (출34:18, (레11:45, (레18:3, (레19:34,36, (레22:33,43,(레25:38,42,55, (레26:13,45, (민01:1, (민03:13, (민08:17, (민09:1, (민11:5,20, (민13:22, (민14:2,-22, (민15:41, (민20:5-16, (민21:5, (민22:5,11, (민23:22, (민24:8, (민26:4,59, (민32:11, (민33:1,38, (신01:27,30, (신04:20,34,37,45,46, (신05:6,15, (신06:21,22, (신07:8,15,18, (신08:14, (신09:7,12,26, (신10:19,22, (신11:3,4,10, (신13:5,10, (신15:15, (신16:1,3,6,12, (신17:16, (신20:1, (신23:4, (신24:9,18,22, (신25:17, (신26:5,8, (신28:27, (신28:60, (신28:68, (신29:2, (신29:16, (신29:25, (신34:11, (수02:10, (수05:4, (수09:9, (수13:3, (수24:4, (삿02:1, (삿06:8, (삿06:13, (삿11:13, (삿11:16, (삿19:30, (삼상02:27, (삼상08:8, (삼상10:18, (삼상12:6, (삼상12:8, (삼상15:2, (삼상15:6, (삼상15:7, (삼상27:8, (삼상30:13, (삼하07:6, (삼하07:23, (왕상03:1, (왕상04:21, (왕상04:30, (왕상06:1, (왕상08:9,-65, (왕상09:9,16, (왕상10:28, (왕상10:29, (왕상11:17,-40, (왕상12:2, (왕상12:28, (왕상14:25, (왕하07:6, (왕하17:4,-36, (왕하18:21, (왕하18:24, (왕하19:24, (왕하21:15, (왕하23:29, (왕하23:34, (왕하24:7, (왕하25:26, (대상13:5, (대상17:21, (대하01:16, (대하01:17, (대하05:10, (대하06:5, (대하07:22, (대하09:26, (대하09:28, (대하10:2, (대하12:2, (대하12:3, (대하12:9, (대하20:10, (대하26:8, (대하35:20, (대하36:3, (대하36:4, (느09:9, (느09:17, (느09:18, (시068:31, (시078:12, (시078:43, (시078:51, (시080:8, (시081:5, (시081:10, (시105:23, (시105:38, (시106:7, (시106:21, (시114:1, (시135:8, (시135:9, (시136:10, (사07:18, (사10:26, (사11:11, (사11:16, (사19:1, (사19:12, (사19:13, (사19:14, (사19:15, (사19:18, (사19:19, (사19:20, (사19:22, (사19:23, (사19:24, (사19:25, (사20:3, (사20:4, (사20:5, (사23:5, (사27:13, (사30:2, (사30:3, (사31:1, (사36:6, (사36:9, (사37:25, (사43:3, (사45:14, (사52:4, (렘02:6, (렘07:22, (렘07:25, (렘09:26, (렘11:4, (렘11:7, (렘16:14, (렘23:7, (렘24:8, (렘25:19, (렘26:21, (렘26:22, (렘26:23, (렘31:32, (렘32:20, (렘32:21, (렘34:13, (렘37:5, (렘37:7, (렘41:17, (렘42:14, (렘42:15, (렘42:16, (렘42:17, (렘42:18, (렘42:19, (렘43:2, (렘43:7, (렘43:11, (렘43:12, (렘43:13, (렘44:1, (렘44:8, (렘44:12, (렘44:13, (렘44:14, (렘44:15, (렘44:24, (렘44:26, (렘44:27, (렘44:28, (렘44:30, (렘46:2, (렘46:8, (렘46:11, (렘46:13, (렘46:14, (렘46:17, (렘46:19, (렘46:20, (렘46:24, (렘46:25, (렘46:26, (애05:6, (겔17:15, (겔19:4, (겔20:5, (겔20:6, (겔20:7, (겔20:8, (겔20:9, (겔20:10, (겔20:36, (겔23:3, (겔23:8, (겔23:19, (겔23:27, (겔27:7, (겔29:2, (겔29:3, (겔29:6, (겔29:9, (겔29:10, (겔29:12, (겔29:14, (겔29:19, (겔29:20, (겔30:4, (겔30:6, (겔30:8, (겔30:10, (겔30:11, (겔30:13, (겔30:15, (겔30:16, (겔30:18, (겔30:19, (겔30:21, (겔30:22, (겔30:25, (겔31:2, (겔32:2, (겔32:12, (겔32:15, (겔32:16, (겔32:18, (겔32:20, (단09:15, (단11:8, (단11:42, (단11:43, (호02:15, (호07:11, (호07:16, (호08:13, (호09:3, (호09:6, (호11:1, (호11:5, (호11:11, (호12:1, (호12:9, (호12:13, (호13:4, (욜03:19, (암02:10, (암03:1, (암03:9, (암04:10, (암08:8, (암09:5, (암09:7, (미06:4, (미07:12, (미07:15, (나03:9, (학02:5, (슥10:10, (슥10:11, (슥14:18, (슥14:19, (마02:13, (마02:14, (마02:15, (마02:19, (행02:10, (행07:9,-40, (행13:17, (히03:16, (히08:9, (히11:26, (히11:27, (유01:5, (계11:8 lt=30.108&ln=31.3382
158 납달리(Naphtali)
인물
jesus
4782 18 2006-12-26
▶ 납달리(Naphtali) 뜻:씨름 1) 야곱(Jacob)의 6자, 라헬의 시비 빌하의 둘째 소생 (창30:8), (계07:6). 2) 이 지파의 자손으로 애굽에서 나온 자는 53,400명 가나안에 들어간 자45,400명 (민01:43, (민26:50). 이스라엘 12지파 -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스불론, 잇사갈, 단, 갓, 아셀, 납달리, 요셉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 납달리/종교 다윗노선 추종 훗날 촉복받은 지파 납달리는 씨름, 경쟁이라는 뜻입니다. 라헬의 여종 빌하의 소생이며 야곱의 여섯째 아들이었습니다. 납달리 지파는 자기 기업의 땅을 책임있게 정복했고 관리한 지파였습니다. 비교적 원주민의 영향을 적게 받고 자기 지파 나름대로 부끄러움이 없는 지파였습니다. 자기 영내에 견고한 성읍이 19개였고 레위 지파에게 세 성읍을 내어 주었으며 그중의 하나는 도피성이었습니다(수19:36∼38, 20:7). 종교적으로도 선견지명이 있어 다윗을 도와 다윗편에 서서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사 발락이 이 지파의 출신이었습니다. 또한 영적으로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과 같이 메시아의 초림과 많은 관련을 맺고 있는 지파였습니다(사09:1∼7). 납달리가 기업으로 받은 땅이 갈리리 호수 서쪽 전지역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요단강 동편과는 달리 비옥한 지역이며 많은 사람이 밀집해 살았던 목축과 농경으로 적합한 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의 대부분을 이 지역에서 사역하셨습니다. 또한 이 지역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교통의 삼각지로 예수님의 선교 중심지로 볼 수 있습니다. 납달리는 그 지파가 소유하고 있던 종교심과 일치한 신령한 축복을 받은 지파였습니다(마04:12∼16). ▷교훈과 적용◁ 첫째,납달리 지파와 같이 성실하게 자기를 가꾸어 살면 예비된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며 살게 됩니다.영적으로 자신을 다듬는 데 힘써야 하겠습니다. 둘째,납달리 지파는 신앙의 사람 다윗과 연합하여 다윗의 노선을 따랐습니다.이것이 장래의 축복을 갖게 하는 조건이 되었습니다.영적인 바른 선택의 결과를 경험해 보셨습니까? <이병돈목사·은평교회> ▶ 납달리 Naphtali. [Naph'tali] Fifth son of Jacob, and second of Bilhah. The name also often includes his descendants, and the territory which they possessed. Naphtali and his four sons entered Egypt with Jacob, and nothing further is recorded of him personally. At the two numberings of the tribes Naphtali amounted to 53,400 and 45,400. When Jacob prophetically announced to the tribes that which should befall them in the last days, he said, "Naphtali is a hind let loose: he giveth goodly words," Gen. 49:21; it is the remnant of Israel as the vessel of testimony. Moses said, "O Naphtali, satisfied with favour, and full with the blessing of the Lord: possess thou the west and the south." Deut. 33:23. It is the full blessing of the remnant as Jehovah's people. (창49:21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신33:23 납달리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은혜가 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납달리여 너는 서방과 남방을 얻을지로다 Their possession, which was mountainous and fertile, was in the north with the upper Jordan on the east and Asher in the west. Ijon, which was farther north than Dan, was in their land. Joshua 19:32-39. When Baasha, king of Israel, attacked Judah, Asa sent gold and silver to Ben-hadad, king of Syria, for help. He responded at once, and his army smote Ijon, and Dan, and Abel-maim, and all the store cities of Naphtali. 2 Chr. 16:4. This tribe was the first of those on the west of the Jordan to be carried away captive by Tiglath-pileser, king of Assyria. 2 Kings 15:29. (수19:32-39 납달리 지파의 분깃 (대하16:4 벤하닷이 아사 왕의 말을 듣고 그 군대 장관들을 보내어 이스라엘 두어 성읍을 치되 이욘과 단과 아벨마임과 납달리의 모든 국고성을 쳤더니 (왕하15:29 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이욘과 아벨벳 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취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겼더라 In Isa. 9:1, 2 it is prophesied that Naphtali with Zebulun should see a great light: this was fulfilled when the Lord traversed that district, taught in the synagogues, and healed diseases there. Matt. 4:13, 15, (where the name is NEPHTHALIM and in Rev. 7:6 NEPTHALIM). The prophecy seems to say that Zebulun and Nephthalim were beyond the Jordan; but some judge that three districts are alluded to; Zebulun and Nephthalim; the way of the sea beyond the Jordan; and Galilee of the Gentiles. But others judge that only the district on the west of the Jordan is alluded to. The Hebrew word in Isa. 9:1, translated 'beyond' is eber, and is sometimes translated 'on this side,' as in Joshua 1:14, 15. When the Lord Jesus was on earth, the great light was shed on both sides of the Jordan, though the west was more especially the scene of His ministry. Matthew's Gospel does not speak of His ministry at Jerusalem until He went there to suffer. (사09:01-02 1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마04:13, 15 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계07:6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수01:14-15 14 너희 처자와 가축은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편 땅에 머무르려니와 너희 용사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돕고 15 여호와께서 너희로 안식하게 하신 것같이 너희 형제도 안식하게 되며 그들도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을 얻게 되거든 너희는 너희 소유지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편 해 돋는 편으로 돌아와서 그것을 차지할지니라 --- Morrish Bible Dictionary
157 마태(Matth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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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8 39 2006-12-26
▶ 마태(Matthew) 뜻 : 야훼의 선물 레위지파의 후손인 알패오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래 이름이 [레위]("연합하다"라는 뜻)인 그의 그 이름 대로 세상과 야합하여 생활하였다. 재물에 대한 욕심이 특별히 많았던 그는 선민으로서의 긍지를 갖기 보다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실 주의자이기도 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창녀와 죄인들과 같이 가장 천대를 받는 부류였던 세리가 되어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모으기에 급급했던 레위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인생이 반전되는 상황을 맞는다. 야훼 신앙을 버리고 메시아에 대한 소망마저 등진 철저한 죄인으로 살던 세리의 신분에서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함으로써 영광스런 주님의 제자로 변화된 것이다. 로마 황제의 창고를 채우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가버나움의 세관에 앉아 동족의 고혈을 짜내는데 조금의 가책도 느끼지 않던 [레의]가 이제는 회개한 죄인 [마태]로서의 새 인생을 시작하였다. 이전까지 그를 주장하던 육신의 안목과 가치관이 주 안에서 새롭게 변화되자 세상재물에 쏟았던 그의 열심은 주님께로 전이되었다. 불의하게 착복하여 쌓아 두었던 재물로 큰 잔치를 벌여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자들에게 자신이 받은 구원을 증거하며 주님께로 인도하는 이웃사랑을 실천하였다. 또한 예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생명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사도로서의 훈련을 쌓아갔다. 그러나 성령세례를 받기 이전의 인간의 열심은 주님이 받으시는 고난의 자리를 회피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했던 마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오순절날 성령 세례를 받은 후에야 비로소 사도직분을 감당할 수 있었다. 성령이 충만하여진 마태는 천국복음을 전하며 스스로를 낮추고 예수그리스도만을 높이는 충성된 청지기가 되었다. 또한 유대인들을 위해 [마태복음]을 기록하여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사랑의 빛을 갚는 헌신된 삶을 살았다. 주안에서 참으로 진실하고 정직한 신앙으로 살아가는 마태는 스스로를 "세리 마태"라고 일컬음으로써 은혜받은자의 겸손을 보여주기도했다. 세상의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비천하게 사는 세리에서 목숨을 바 치기까지 복음전파에 힘을 기울이는 사도로 발돋음한 마태의 생애는오늘날 사회에서 버림받고 소외당한 사람들에게 인생의 새 재표를 제시해 주고 있다. 또한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진리의 말씀을들려 줌으로써 생명의 길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있다. 세상의 썩은 재물을 포기하고 영원한 하늘나라의 상급을 바라본 마태의 이름은 믿는 자들만이 들어갈 새 예루살렘의 기초석에 새겨지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계 21: 14 참조) 진실로 하나님께서는 스스로를 주 앞에서 낮추는 자를 하늘 나라의 큰 자로 높이시는 것이다. (교훈과 적용) 12제자 ▶ 복음사가. 12사도의 한 사람(마10:3, (막03:18, 눅05:27). (막02장 14절, (눅05장 27절의 두 군데서 그를 레위(Levi)라고 부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완전한 성명은 '레위 마태오'이다. 알패오(Alpheus)의 아들(막02:14)이고, 예수에게 불려가기 전까지는 로마제국을 위해 세금을 징수하는 가파르나움의 관리였으며(마09:9), 주를 따르라는 소명을 받은 후 자기 집에서 예수를 위해 연회를 베푼 것으로 보아 상당히 부유했던 것 같다(눅05:29). 성령 강림 후 팔레스티나에서 선교활동을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하는데, 그 장소는 에티오피아·페르시아 ·파르티아(Parthia) 등 여러 설이 있으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마태는 세리였으며, 나사렛에서 태어났다. 그는 파티아와 에디오피아에서 사역을 하였고, 에디오피아에서 박해받았으며 A.D. 60년 나다바에서 미늘창으로 살해당하였다. -------------------------------------------------- 세리장 마태 / 홍만조목사 들어가는 말 진실한 교인인 한 청년과 그의 아내는 가까운 이웃과 친분관계를 가지면서 자기 아파트에 초대하여 기분전환도 하고 식사도 같이 하면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이들은 복음을 전할 기회가 있기를 원하고 있었다. 한달에 한 번씩 구원받지 못한 친구와 이웃들을 식사에 초대하고 무디협회에서 제작한 영화를 보기도 했다. 항상 대화는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로 화제의 촛점이 맞추어졌고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이것은 "식사전도"라는 증거 방법의 하나이다. 그러나 식사전도는 20세기에 들어서서 독특하게 생겨난 방법이 아니라 열 두 사도 중 하나인 마태가 그리스도를 믿게되자 즉시 사용했던 증거 방법이다. 본 론 1.마태의 이름 마태도 다른 몇몇 사도들처럼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마태복음에서는 '마태'로 불렸으나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처음에 '레위'로 부르다가 세관에서 일할 때는 마태라고 불렀다. (막02:14/(막03:18) (눅05:27/(눅06:15). 그의 첫 이름은 레위였는데 그리스도를 믿은 후 예수께서 마태라는 새 이름을 지어 주셨다. 레위라는 이름은 고향 사람들이 불렀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 그는 사도들 가운데서 일곱번째, 마태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여덟번째에 자리잡고 있다(행01:13). 2. 경멸받는 마태의 직업 다른 복음서 기자들은 경멸받는 마태의 직업을 점잖게 표현하였으나 마태는 자신을 세리라고 했다.(마10:3) 경멸받는 자신의 직업에 대하여 말하면서 마태는 "나는 더 이상 경멸받는 직업에 종사할 수 없다. 사도직분으로 일하고 싶다"고 고백하였다. 마태의 사회적 신분은 현대의 마피아단이나 또는 마약 판매자와 거의 비슷할 정도이다. 그는 스스로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1)세리의 일 탈무드에 의하면 +- 하나는 보통 세금을 징수하는데 술, 또는 과일이나 이와 비슷한 | 품목에 대한 세금을 거둔다. +- 하나의 세리는 마태가 속하여 있는 세관관리이다. 세관의 세리들은 사람들을 정지시켜 검색하거나, 짐을 시간을 끌며 조사하고, 날카로운 쇠꼬창이로 밀수품을 색출하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많은 미움을 받았다. 2)마태의 근무처 가버나움의 교역하는데 참으로 좋은 위치였다. 다메섹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는 간선도로로 짐을 가득 싣고 내려오는 대상들은 마태가 근무하는 세관에게 멈추어2-12%에 달하는 관세를 지불해야 한다. 또 갈릴리 바다 근처에서 어부로부터 세금을 받아 들였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가끔 마태에게 세금을 바쳤다.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눈으로부터 크게 시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기들의 짐을 검색하는 세리들을 아무도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세리들이 미움을 받는 데는 더 많은 이유들이 있다. 3)세리의 죄악 대부분의 세리들은 정직하지 않았다. 이들은 자기의 직업을 유지하기 위하여 로마당국에 일정한 금액을 바친 후 그 이상으로 주머니를 채우고, 가능하면 더 많은 돈을 사람들로부터 긁어 모았다. 세리의 행동에는 탐욕과 부패와 착취와 협작이 뒤따랐다. 로마제국이라는 권력을 배경으로 하고 로마 군사의 힘을 빌어 강제징수하고 사람들을 협박하여 감언이설로 속여 빼앗았다. 높은 세금 수탈에 서민들이 고통을 당하는 동안 세리들은 점점 부자가 되었다. 로마제국에 봉사하는 직업 때문에도 미움을 받는 세리들은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더러운 사람들로 보였고, 외국 정부와 야합하는 공모자로 간주되었다. 세금징수는 가장 추악한 직업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세리들은 이방인이나 창기와 한 통속으로 취급되었다.(마18:17/ (마21:31). "세리와 죄인"은 최하층 사람의 통칭이었다(마 9:9). 더구나 이들은 재판정에서 증언할 자격도 없었으며, 일반 죄인을 조롱할 자격도 없었고, 회당에 들어가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세리의 돈은 연보로 받아주지도 않았다. 이들은 사회적인 문둥병자 의 지위로 버림을 받았다. 마태는 빛나는 황금에 유혹되어 그는 양심을 팔고 자신의 조국을 배신하였고 속이면 속인 만큼 재산이 불어났다. 그러나 그는 종교적인 특권도 박탈당하고 버림을 받았다. 그가 세리로 출발할 때는 정직하겠다고 결심을 했을 것이지만 점점 자신이 몹시 싫어하는 직업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마음은 과부나 고아들의 울부짖음을 듣지 못할 만큼 강팍해졌다. 3. 은혜로운 그리스도의 부르심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활동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마태도 예수의 대한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장모의 병을 고쳤는데 그 때문에 베드로의 문 앞에는 예수님에게서 병을 고치려는 가버나움 사람들로 몰려 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마태는 형제와 사촌들과 함께 시몬이 예수를 따르기 위하여 자신의 직업을 포기한 이야기와 지붕을 통하여 수족이 마비된 사람이 예수께로부터 고침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더구나 예수께서는 중풍환자에게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막02:3-5)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도 내심으로는 자신의 죄를 용서 받을 수 있기를 바랬을 것이다. 마태가 "경멸받는 세리도 예수께서 받아 주실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의 사무실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보았다. 자세한 질문을 받은 마태는 전에는 결코 느껴보지 못했던 죄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태는 마음 속으로 자신이 대단히 더러운 인간임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처럼 예수께서도 그를 "세리, 배신자, 죄인, 또는 사기군"이라고 하셨을까? 예수께서는 자비로운 말씀으로 "나를 좇으라"(마09:9)고 하셨다. 예수님의 부름에 압도당하고 영접하심에 너무도 기뻤던 마태는 그 자리에서 성결을 느꼈다. 그의 마음은 평강으로 충만했다. 마비된 사람을 고친 것을 비난하는 사람에 대하여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 자기의 죄를 용서하면서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하노라"(마 9:6)하신 말씀을 상기 했다. 그는 즉시 순종하여 나와서 사무실의 문을 닫았다. 누가는 예수께서 "그후에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 저가 묻는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눅05:27-28)) 다른 제자들은 죽은 후 묻힐 곳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가족과 작별 인사를 하거나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 어떤 지위에 대하여 토론도 했지만 마태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순간적이었다. 예수께서 마태를 택하실 때에는 서로 깊은 관계가 없었던 것같다. 1)마태의 등장은 그 때까지의 사도들의 조직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켰을 것이다. 마태가 두 가지의 명단에서 일곱번째로 기록된 것을 보면 안드레, 베드로, 야고보, 요한, 빌립과 나다나엘은 마태보다 먼저 사도로 불리었다. 이들 여섯은 모두 애국자이거나 어부들이었다. 혐오를 받는 가버나움의 배신자 세리가 사도들의 틈에끼어들어 친숙한 동료들에게 긴장을 유발시켰을 것이다. 2)마태를 택하신 예수님의 정책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거리감을 주었을 것이다. 도덕적인 문둥병자를 부르신 것은 무분별한 정책처럼 보인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으며, 특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것을 비난하면서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눅15:2)고 불평했다. 제자들 가운데 중요한 제자로 마태가 등장하여 유대인의 편견을 막지 못하고 군중들의 불만을 해소시키지 못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 마태를 택하신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사악한 사람일지라도 용서해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선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으며 그 은혜는 모든 인간에게 고루 베풀어 진다. 모든 사람들이 마태를 질시하고 있을때 예수께서는 사랑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한 사나이, 마태를 보신 것이다. 이와 똑같은 사랑의 은혜는 죄짓고 회개하는 모든 사람에게 문이 열려 있다. 베푸시는 예수님의 계획적인 정책이었다. 만일 교회에 여러층의 사람들이 있다면 어부들이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복음전파에는 다양성이 있는 것이 좋다. 4. 마태의 풍성한 잔치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직후 마태가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베풀었을 때 세리와 다른 사람들도 함께 앉아 있었다(눅05:29). 잔치의 내용이나 넓은집은 많은 손님들의 접대하는 데 충분했으며 모든 것은 마태의 재산정도를 잘 반영하고 있었다. 마태의 이 잔치는 훌륭하게 돈을 쓰는 것이었으며 또 여러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1)축하하기 위함이다.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는 모두 가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이 마태는 무척 기쁜 일이었다. 마태가 구세주와 영원히 혼인하는 것을 기념하여 마태의 영적인 결혼 잔치라고 부리어 왔다. 마 태는 오직 감사하는 마음으로 잔치를 베푼 것이다. 2)작별하기 위함이었다. 마태는 자신의 과거를 불사르고 있었다. 마태는 자신의 직업을 떠난다고 동료들에게 이야기 했다. 그리스도의 왕국에 들어간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일종의 송별파티였으며 옛 생명의 죽고 새로운 생명으로 중생함을 고백하는 것이었다. 3)증거하기 위함이었다. 옛 친구에게 증거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잔치에 친구들을 청하였다. 만일 그가 신앙깊은 사람 들을 초청했다면 그의 집에 세리와 죄지은 자들이 모일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마태를 기피했을 것이다. 갈릴리와 유대의 모든 죄인들이 참석했는데도 예수께서는 마태의 초청을 쾌히 수락하 셨다. 이 잔치는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었을 것이다. 마태는 주인의 자리에 앉고 예수님은 상석에 앉으셨다. 셈 슈메이커는 [그리스도인이 택하여야 할 가장 좋은 자리는 구원의 문 바로 안쪽]이라는 글을 썼다. 안쪽에서 너무 깊숙하게 떨어져 있으면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기 어려우며 문으로 부터 너무 멀리 가서 있으면 입구를 더듬어 들어오는 소경을 맞이할 수가 없다. 칠레의 한 교회에서 시민들의 큰 환영을 받는 철야 집회가 있었다. 밤마다 도둑들이 기쁜 찬송가 소리를 들으면서 마음놓고 집집마다 털었다. 그러나 어떤 도둑은 예배석에 몰래 숨어 들어와 죄를 깨닫고 회개했다. 일 년이 지난 후 이 도시의 경찰은 복음전도 역사상 볼 수 없는 전대미문의 진기한 일을 하였다. 경찰은 24명의 범인들의 사진과 함께 목사 앞으로 연하장을 보냈다. 경찰은 목사님의 복음전도를 듣고서 범인들이 도둑질에서 손을 떼었기 때문에 이들의 사진을 교회의 기록에 함께 보관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하였다. 5.마태의 저술 마태 시대의 사람들은 세리는 변화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마태의 잠재능력을 보셨다. 마태는 예리했고 훈련되어 있었으며 용모가 출중하고 헬라인과 라틴 사람과 아랍인에 대하여는 정통하였다. 미래가 인생의 목적에서 돈을 단념하려 한다는 걸 알아차리신 예수께서는 그가 신약의 첫째권을 쓸 수 있도록 변화시키고 감동을 주셨다.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겨냥하여 쓴 것 같다. 마태는 구약 속의 선지자들에 의하여 약속된 참 메시야가 예수임을 증명하려는 결심을 하였다. 이를 위하여 마태는 복음서를 쓰면서 몇 군데에서 비슷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마01:22)는 것과 마태복음서 2장15,17,23절 등은 그 형식과 내용이 비슷하다. 마태는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다윗왕의 혈통을 조사하여 그리스도 가계를 추적하였다. 조심스럽게 14대에 걸쳐 세 그룹을 만들어서 마태는 그리스도의 혈통을 밝혔다. 마태가 체계화 하기를 좋아한 것은 언제나 모든 것을 정리하는 성품에 기인하였다. 마태복음의 거의 절반 정도가 마가복음처럼 활동의 기록으로 되어 있지만 마태복음의 특징은 위대한 논술이란 점이다. 마태는 언어이든 상징적인 묘사이든 문서전도의 방법을 사용하는 시인이나 저술가, 신문기자 , 편집자, 서기, 장부 기록자와 회계원의 선구자였다. 마태는 복음을 쓰면서 일생을 살았다. 마태가 에디오피아와 바사에서 복을 전파했다는 전설도 있다. 그의 사도로소의 상징은 본래의 직업을 뜻하는 "세개의 지갑"이다. 그는 이 세상 끝까지 그리스도의 구원의 능력을 증거할 수 있었다. 아마 마태는 여리고의 세리장인 삭개오에게 예수께서 여리고를 방문하면 예수님을 만나라고 권하는 글을 보냈을 것이다. 맺는 말 : 구원 받은 우리도 마태처럼 식사전도를 하여 올해를 마무리하자.
156 히브리, 히브리인(Hebrew)
인물
jesus
4652 25 2006-12-28
▶ 히브리, 히브리인(Hebrew) 뜻: "강을 건너온 사람" 이스라엘인과 혼용해서 사용되었다. "이스라엘"이 종교,사회적 개념으로 분류된 이름이라면, "히브리"는 인종,민족적 개념을 내포한다. (창14:13)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 (출01:15)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신15:12) 네 동족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네게 팔렸다 하자 만일 여섯 해 동안 너를 섬겼거든 일곱째 해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 것이요 (삼상04:6) 블레셋 사람이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히브리 진영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찌 됨이냐 하다가 여호와의 궤가 진영에 들어온 줄을 깨달은지라 (렘34:9) 그 계약은 사람마다 각기 히브리 남녀 노비를 놓아 자유롭게 하고 그의 동족 유다인을 종으로 삼지 못하게 한 것이라 (욘01:9)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요05: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행06: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고후11:22)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빌03: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계09:11) 그들에게 왕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어로는 그 이름이 아바돈이요 헬라어로는 그 이름이 아볼루온이더라
155 이스르엘(Jezreel) 파일
지명
jesus
4601 16 2007-01-02
▶ 이스르엘(Jezreel) 뜻: 하나님께서 뿌리신 자 에스드렐론 평야로 알려진 골짜기이며 길보아 산 서북쪽 낭떠러지에 있는 현재의 세린 마을로서 유대의 산지에 있는 도시였다. (1) 다윗의 아내들 중에서 노암이라는 여인이 이곳 출신이다(삼상25:43, (삼상27:3, (삼상30:5, (삼하02:2, (삼하03:2). (2) 잇사갈 지파의 경계선이 있던 길보아산 근처의 도성(수19:18). (3) 이스르엘 도성은 이스르엘 계곡과 요르단 계곡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예후는 자기들에거 오는 전령들을 물리치면서 이스엘의 왕궁을 향하여 돌진하였다(왕하09:20). ======== ▶ 이스르엘 Jezreel. [Jez'reel] 1. City of Judah, from whence David married Ahinoam. Joshua 15:56; 1 Sam. 25:43; 1 Sam. 29:1, 11. (수15:56 (삼상25:43 (삼상29:1, 11 2. City in Issachar, the abode of Ahab and Jezebel, and principally connected with their history. It was the scene of Jezebel's tragical end. Joshua 19:18; 2 Sam. 2:9; 2 Sam. 4:4; 1 Kings 18:45, 46; 1 Kings 21:1, 23; 2 Kings 8:29; 2 Kings 9:10-37; 2 Kings 10:1-11. Identified with Zerin. (수19:18; (삼하02:9;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 왕의 근거지 (삼하04:4; (왕상18:45, 46; 엘리야와 아합 (왕상21:1, 23; 나봇의 포도원 (왕하08:29; 요람왕 치료처 (왕하09:10-37; 예후가 요람왕을 죽인 곳 (왕하10:1-11. 3. The extensive valley or plain in which the last-named city was situated, in southern Galilee. It has been called the battle-field of Palestine. It was where Barak triumphed, and where Josiah was defeated, Judges 5:19; 2 Chr. 35:22 — Megiddo being in the same locality. It is also perhaps the place where the great battle of Armageddon will be fought. Rev. 16:16. It is a very fertile plain, and is now well cultivated (cf. Hosea 2:22); Joshua 17:16; Judges 6:33; Hosea 1:5. The name ESDRAELON is given to this valley in the Apocryphal Book of Judith 3:9, etc. Now called Merj Ibn Amir. (삿05:19; (대하35:22 므깃도 골짜기 (계16:16 아마겟돈 (수17:16 (삿06:33 (호01:5. --- Morrish Bible Dictionary ▶ Jezreel - Hebron (수15:56, (삼상25:43, (삼상27:3, (삼상29:1, (삼상29:11, (삼상30:5, (삼하02:2, (삼하03:2 lt=31.53577&ln=35.09409 ▶ Jezreel 2 (수19:18, (삼하02:9, (삼하04:4, (왕상18:45, (왕상18:46, (왕상21:1, (왕하08:29, (왕하09:15, (왕하09:16, (왕하09:17, (왕하09:30, (왕하09:36, (왕하09:37, (왕하10:11, (호01:4, (호01:11, (왕상04:12, (왕상21:23, (왕하09:10, (왕하10:6, (왕하10:7, (대하22:6, (호02:22 lt=32.5559&ln=35.3307
154 아셀(Aser/Asher) 파일
인물
jesus
4552 17 2006-12-27
▶ 아셀(Aser) 뜻:기쁨 야곱(Jacob)의 제8자로 첩 실바의 소생이다(창30:35). 야곱은 그에게 축복하기를 "나는 식물은 기름지고 그가 왕의 진수를 공궤하리라"하였다(창49:20). 애굽에서 나올 때에 그의 자손 수는 41,500명이 었는데 가나안에 들어 갈 때는 53,400 명이 되었다(민01:41, (민26:47). ▶ 아셀 Asher, Aser. [Ash'er, A'ser] Eighth son of Jacob by Zilpah, Leah's handmaid. Gen. 13. The signification of the name as in the margin is 'happy.' His posterity formed one of the twelve tribes. Its portion in the land was in the extreme north, extending northward from Mount Carmel. It was bounded on the east by Naphtali, and on the south east by Zebulon. It was doubtless intended that their west border should have been the Great Sea, but we read that they did not drive out the inhabitants of Accho, Zidon, Ahlab, Achzib, Helbah, Aphik and Rehob; but the Asherites dwelt among the Canaanites. Judges 1:31, 32. This left a tract of land on the sea coast unoccupied by Asher. (창30:9-13 실바와 소생들 (삿01:31-32 31 아셀이 악고 거민과 시돈 거민과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빅과 르홉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32 그 땅 거민 가나안 사람 가운데 거하였으니 이는 쫓아내지 못함이었더라 When Jacob called his sons about him to tell them what should befall them in the last days, he said of Asher, "Out of Asher his bread shall be fat, and he shall yield royal dainties." Gen. 49:20. When Moses ordained that certain of the tribes should stand on Mount Gerizim to bless the people, and certain others on Mount Ebal to curse, Asher was one of those chosen to stand on the latter. Deut. 27:13. And when Moses blessed the tribes before he died, he said of Asher, "Let Asher be blessed with children; let him be acceptable to his brethren, and let him dip his foot in oil. Thy shoes shall be iron and brass; and as thy days, so shall thy strength be." Deut. 33:24, 25. (창49:20 아셀에게서 나는 식물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진수를 공궤하리로다 (신27:13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산에 서고 (신33:24-25 24 아셀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아셀은 다자한 복을 받으며 그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그 발이 기름에 잠길지로다 25 네 문 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In Jacob's prophecy as to this tribe there is depicted the future blessing of all Israel after the salvation of the Lord has come in, announced at the close of Dan's apostasy. In Deuteronomy, what is future also as to Israel, is probably presented, but connected rather with the government of God in His hands who is King in Jeshurun. When Deborah and Barak went to the war they had to lament in their song that Asher abode by the sea coast, and came not to their aid, Judges 5:17; but when subsequently the Midianites and the Amalekites invaded the land Asher responded to the call of Gideon. Judges 6:35; Judges 7:23. At the secession of the ten tribes Asher became a part of Israel, and very little more is heard of this tribe. When Hezekiah proclaimed a solemn passover and sent invitations to the cities of Israel as well as to Judah, though many laughed the messengers to scorn, divers of Asher humbled themselves and came to Jerusalem. 2 Chr. 30:11. (삿05:17 길르앗은 요단 저편에 거하거늘 단은 배에 머무름은 어찜이뇨 아셀은 해빈에 앉고 자기 시냇가에 거하도다 (삿06:35 기드온이 또 사자를 온 므낫세에 두루 보내매 그들도 모여서 그를 좇고 또 사자를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 보내매 그 무리도 올라와서 그를 영접하더라 (삿07:23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므낫세에서부터 모여서 미디안 사람을 쫓았더라 (대하30:11 그러나 아셀과 므낫세와 스불론 중에서 몇 사람이 스스로 겸비하여 예루살렘에 이르렀고 When numbered at Sinai there were 41,500 able to go forth to war, and when near the promised land they were 53,400; but when the rulers of the tribes are mentioned in the time of David, Asher is omitted. Num. 1:41; Num. 26:47; 1 Chr. 27:16-22. The tribe is twice referred to in the N.T. as ASER. In Rev. 7:6, twelve thousand of Asher will be sealed, and in Luke 2:36, Anna a prophetess, of the tribe of Asher, gave thanks in the temple at the birth of the Saviour. Asher is one of the tribes still to come into blessing, and have a portion in the land. Ezek. 48:2, 3. See THE TWELVE TRIBES (민01:41 아셀 지파의 계수함을 입은 자가 사만 일천 오백명이었더라 (민26:47 이는 아셀 자손의 종족들이니 계수함을 입은 자가 오만 삼천 사백명이었더라 (대상27:16-22 다윗의 행정 조직 (계07:6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눅02: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겔48:2-3 2 단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아셀의 분깃이요 3 아셀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납달리의 분깃이요 --- Morrish Bible Dictionary 이스라엘 12지파 -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스불론, 잇사갈, 단, 갓, 아셀, 납달리, 요셉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 아셀 (Asher) 아셀은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레아의 여종 실바가 두번째 낳은 갓의 동생이며 야곱의 여덟째 아들이었습니다. 아셀은 온건하고 평화적인 종족이었으나 하나님이 허락한 지역을 다 점령하지 못한 좀 무능한 종족이기도 하였습니다. 야곱의 예언을 보면 물질의 축복을 받을 것을 소개하였고(창 49:20) 모세의 예언도 아셀지파의 축복이 다른 지파까지 기쁨이 될 만큼 대표적인 축복을 받을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발은 기름에 젖고 철과 놋으로 문빗장을 만들 만큼 부유한 산업의 소유자가 될 것을 말했습니다(신33:24∼25). 그러나 아셀지파의 실수는 자기들에게 기업으로 주신 땅 안에서 악고, 시돈, 알랍, 악십 헬바, 아빅, 르흡 등 이방민족을 쫓아내지 아니하고 그들과 동거한 것이 결정적인 죄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선지자 드보라는 아셀지파의 안이한 태도를 책망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아셀지파는 우상을 섬기는 이방 백성과 혼합하여 생활하다가 우상숭배에 물들고 말았습니다. 아셀지파는 영적으로도 축복받은 지파였고 지리적으로도 가나안 땅의 북서편 지중해 해변가의 비옥한 지역을 물려 받았으나 그들이 받은 영적 축복이나 좋은 자연적인 조건만큼 역사에 공헌하지는 못했습니다. 축복을 관리하는데 성실치 못한 지파였습니다. (교훈과 적용) lt=32.95292&ln=35.3540039
153 낙원, 에덴(Eden) 파일
지명
jesus
4251 3 2006-12-29
▶ 낙원(Eden) 뜻:낙원 에덴동산이 처음으로 낙원이라고 했으나 그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성경에서는 이후 천국의 상징으로 표현되었다. (1) 하나님이 인간에게 맨 처음 주신 동산(창02:8-17). (2) 그곳에 각종 나무가 있으며(전02:5). (3) 아가에는 동산이라 함(아04:12). 신약: (1) 오늘 네가 나와 같이 낙원에 있으리라(눅23:4). (2) 사도 바울이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고후12:4). (3)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 과실(계02:7). ▶ 낙원을 뜻하는 헬라어 '라데이소스'는 통치자의 공원을 가리키는 바사 말에서 빌려온 것이다. 그리스어 번역본(칠십인 역본)에서는 에덴을 뜻한다. 유대인 사이에서는 생명나무가 있는 낙원이 마지막 때에 회복될 것을 기대했다. 이와는 달리 현재에는 낙원이 셋째 하늘에 있다고 생각했다(계02:7,21:1∼(계22:5, (고후12:2∼4). ▶ 창조과학에서는 노아의 홍수로 인해 에덴동산은 모두 무너지고 사라졌다고 한다. 하늘의 창이 열려 40일간 비가 오고, 깊음의 샘이 터져 물이 창일하여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기는 대홍수가 왔다. 그 후, 땅들이 갈라지고 바다가 넓어져 모든 물들이 낮은 곳으로 흘러 내려 가면서 모든 것을 쓸어 가버렸다. 이 때 흙탕물이 쓸려 내려가면서 저탁류로 인해 지층이 동시에 발생하고 (예:그랜드 캐년, 변산반도 채석강 등) 많은 어류들과 해초류와 저탁류에 묻힌 동물 등이 묻혀 현재는 화석으로 발견되고 있다. 땅이 굳기 전, 지각판들의 충돌로 히말라야 산맥 등이 생겼다고 한다. 이 결과로 지층들이 휘어지고 (습곡), 히말라야 산 꼭대기에서 물고기 화석들이 대량 발생되고 있는 현상들이 발생되고 있다. 대홍수로 인해 하나님이 창조하신 보기에 좋았든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에덴동산은 어디인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그 위치가 현재의 미국이나 혹은 우리 한반도 일수도 있다는 본인의 생각이다. 대홍수 이후에 노아의 가족들은 옛날의 지명을 생각하여 비슷하게 생긴 곳에 예전의 지명을 붙였을거다. 이 지구상의 땅들은 3단계로 나뉘어진다고 한다. 1단계는 창세기 1:1-2의 땅 (혼돈, 공허, 암흑), 2단계는 동식물이 창조되기 전의 창세기 1:9-13에서의 셋째날 땅, 3단계는 노아홍수 이후의 땅으로 구분되어 진다. 1단계의 땅을 진화론자들은 시생대라 부르며 지층이 없는 층으로 보고 있으며, 2단계의 땅은 지층은 있되 화석이 없는 지층으로 원생대라 불리어 지며, 3단계의 땅에서는 화석이 대량 발견되어 지고 있다 (화석의 대폭발). 그림은 미국의 그랜드캐년 (창02:8,10,15, (창03:23,24, (창04:16, (왕하19:12, (사37:12, (사51:3, (겔27:23, (겔28:13, (겔31:9,16,18, (겔36:35, (욜02:3 lt=35.53222622&ln=40.25390625
152 헬라(Greece/Greek) 파일
지명
jesus
3986 18 2007-01-02
▶ 헬라(Greece/Greek) 희랍 그리이스라고도 하는데 신약 시대에는 아가야(Achaia)라고 불렀다. 이탈리아 반도의 뒷쪽 맞은편에 위치한 유럽의 남동쪽 지중해 반도의 북서쪽 모퉁이에 붙여진 지역이름이다. 헬라 철학에 온 관념들은 끊임없이 기독교 사회 안으로 침투해 들어와서 교회로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에서 떠나게 만들었다. 이 A.D. 2세기의 철학자 상은 에베소에서 발견되었다. 동전에 주조된 한 헬라 고관의 모습과 유행을 따른 로마 여인의 모습이다. 야고보는 그의 독자들에게 가난한 자보다 부자에게 더 많은 괌심을 쏟는 속물근성을 비평하고 있다. (1) 유럽 동남부에 돌출한 큰 반도로서 본래의 이름은 야완이었다. 헤리니족이 들어온 이후에 헬라로 고쳤고 로마인들이 그리스라 한 것이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다. (2) 12국이 공수동맹으로 서로의 평화를 유지하여 평안하다가 B.C.340년경 포씨스인의 침공으로 이웃 북린 마게도냐의 왕 빌립이 원병으로 오게도어 그 기회에 빌립의 아들 알렉산더 대왕이 완전히 자기 영역냉에 두었다. (3) 그후 B.C.150년경에는 로맞제국이 일어나 마게도냐를 공취하여 로마제국 에 전속하게 되었고 그후도 많은 외침을 받다가 1829년에 다시 독립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관련성구 (단11:2) (욜03:6) (슥09:13) (막07:26) (요07:35) (행06:1) (롬01:14) (고전01:22) (갈02:3) (골03:11) (계09:11) ▶ Greece - (단08:21, (단10:20, (단11:2, (슥09:13, (행20:2 lt=37.98333&ln=23.73333
151 갓(Gad)
인물
jesus
3932 27 2006-12-26
▶ 갓(Gad) 뜻:행운 [1] 1) 야곱(Jacob)의 아들로서 제7자. 실바의 초생자 (창30:11) 이스라엘 12지파 -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스불론, 잇사갈, 단, 갓, 아셀, 납달리, 요셉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2) 애굽에서 나온 수는 45,650명 (민01:25) 3) 가나안에 들어간 수는 40,500명 (계07:5) 활과 검술의 전술에 능하다. [2] 다윗왕 때의 선견자(B.C 1010-970년). 1) 다윗을 견책 3년 기근, 3개월간 적에게 패주, 3일간 온역중 하나를 택하라고 함 (대상21:2-12). 2) 다시 다윗에게 보내어 타작 마당에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고 명하였다 (대상21:18-26). 3) 다윗통지 말년(B.C. 973년경) 다윗이 인구조사를 행한 죄에 대해서 하나님의 징계의 말씀을 전했다(삼하24:11-14). [3] 이방의 우상신의 이름 길흉을 주장하는 신으로 숭배됨(사65:11) ======== Gad. The seventh son of Jacob, and the first of Zilpah, Leah's maid. Very little is recorded of Gad, except that he had seven sons. Gen. 30:11; Gen. 46:16; 1 Chr. 5:11. Jacob in blessing his sons said of Gad, "A troop shall overcome him: but he shall overcome at the last." Gen. 49:19. Moses said, "Blessed be he that enlargeth Gad: he dwelleth as a lion, and teareth the arm with [or rather, 'even'] the crown of the head. And he provided the first part for himself, because there, in a portion of the lawgiver, was he seated; and he came with the heads of the people, he executed the justice of the Lord, and his judgements with Israel." Deut. 33:20, 21. On leaving Egypt the number of those able to bear arms was 45,650, but on the crossing of the Jordan their number was about five thousand less. Being on the east of Jordan, this tribe, with Reuben and Manasseh, would necessarily have to bear the shock of the enemies that attacked Israel on the east. 1 Chr. 5:18-22. They were a warlike tribe, suitable for such an exposed position. Of those who joined David it is said they were "men of might, and men of war fit for the battle, that could handle shield and buckler, whose faces were like the faces of lions, and were as swift as the roes upon the mountains." 1 Chr. 12:8-15. Jephthah and Barzillai were of this tribe. Gad possessed a large district from a little above the north corner of the Dead Sea to near the south corner of the Sea of Galilee, then a very fertile plain suitable for their flocks and herds, including the highlands of Gilead. The tribes on the east of the Jordan were the first carried away by the king of Assyria, about B.C. 740; and the Ammonites took possession of the territory of Gad. 1 Chr. 5:25, 26; Jer. 49:1. Twelve thousand of this tribe will in a future day be sealed for blessing. Rev. 7:5. Their allotment will be in the extreme south in the restoration of Israel. Ezek. 48:27. --- Morrish Bible Dictionary ======== Gad, the Prophet. He was with David when he fled from Saul, and gave him counsel. 1 Sam. 22:5 (선지자 갓). Whether he continued with David during his rejection is not recorded. He was with him at the close of his reign, and to him was given the painful duty of announcing God's judgements upon David for numbering the people. He is called David's 'seer,' which would seem to imply that he had been with him all along. 2 Sam. 24:11-19; 1 Chr. 21:9-19; 2 Chr. 29:25. The acts of David were written in "THE BOOK OF GAD the seer," of which there is no further record, and which has not been handed down. 1 Chr. 29:29. --- Morrish Bible Dictionary ======== ▶ 신명기 33장20∼21절 갓/호전적이고 욕심많은 지파… 우상숭배로 불행 갓은 「행운」 「복되다」는 뜻입니다.레아의 여종 실바의 소생으로 야곱의 일곱째 아들입니다.갓의 후손 갓지파는 그 조상의 혈통을 대변하는듯 매우 호전적이고 약탈에 능했으며 공격적인 지파였습니다.야곱은 그의 예언에서 군대의 공격을 받아도 되받아 반격하는 지파로 소개하였습니다 (창49:19). 모세가 갓 지파를 예언할 때에도 적의 팔과 정수리를 찢는 암사자로 비유하였고 기업을 먼저 택한 다음 뒤에 법을 세울정도로 자기에게 유리할 때에는 양보하지 않는 지파였습니다(신33:20∼21).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가 요단 동편에서 자기 기업을 정할 때에도 르우벤과 므낫세를 남북으로 위치하게 하여 하나의 산성이 되게 하였고 갓 지파는 그 중앙에 위치하여 가장 비옥한 땅을 제일 넓게 점령하는 이기적인 지파였습니다.길르앗의 옥토가 다 갓 지파의 소유였습니다. 후에 갓 지파는 여로보암을 적극 지원하는 지파가 되었고 여로보암은 갓을 통해 큰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에브라임과도 동맹하여 세겜의 서울을 길르앗으로 옮길 만큼 갓은 힘을 행사하는 지파였습니다(왕상12:25). 결국 갓 지파는 여로보암과 협력하여 우상숭배에 앞장섰습니다.그러나 갓 자손에서 엘리야와 같은 훌륭한 선지자가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교훈과 적용 ◁ 첫쩨,갓 지파의 호전성은 여로보암과 연합되는 결과를 봅니다.좋은 성향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갓 지파는 얕은 꾀를 좋아하다가 요단 동편의 실패와 여로보암의 우상숭배에 말려들어 결과가 불행하게 되었습니다.매사에 생각하고 결정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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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연대표 1.창조 2.족장 3.출애굽 4.광야 5.정복 6.사사 7.통일왕국 8.분열왕국 9.포로 10.포로귀환 11.중간 12.예수 13.초대교회 14.세계선교 관련그림.지도 1.창조 2.족장 3.출애굽 4.광야 5.정복 6.사사 7.통일왕국 8.분열왕국 9.포로 10.포로귀환 11.중간 12.예수 13.초대교회 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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