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 단장(處容斷章) - 김춘수(金春洙)

               Ⅰ의 Ⅰ

바다가 왼종일
새앙쥐 같은 눈을 뜨고 있었다.
이따금
바람은 한려수도에서 불어오고
느릅나무 어린 잎들이
가늘게 몸을 흔들곤 하였다.

날이 저물자
내 근골(筋骨)과 근골(筋骨) 사이
홈을 파고
거머리가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베고니아의
붉고 붉은 꽃잎이 지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다시 또 아침이 오고
바다가 또 한 번
새앙쥐 같은 눈을 뜨고 있었다.
뚝, 뚝, 뚝, 천(阡)의 사과알이
하늘로 깊숙히 떨어지고 있었다.

가을이 가고 또 밤이 와서
잠자는 내 어깨 위
그 해의 새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둠의 한쪽이 조금 열리고
개동백의 붉은 열매가 익고 있었다.
잠을 자면서도 나는
내리는 그
희디흰 눈발을 보고 있었다.

               Ⅰ의 Ⅱ

삼월(三月)에도 눈이 오고 있었다.
눈은
라일락의 새순을 적시고
피어나는 산다화(山茶花)를 적시고 있엇다.
미쳐 벗지 못한 겨울 털옷 속의
일찍 눈을 뜨는 남(南)쪽 바다,
그 날 밤 잠들기 전에
물개의 수컷이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삼월(三月)에 오는 눈은 송이가 크고,
깊은 수령에서처럼
피어나는 산다화(山茶花)의
보얀 목덜미를 적시고 있었다.

<처용, 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