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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ce 공지 성경 속 전쟁 연대기 (The War Chronicles in the B... 파일
cyber
44306 2 2019-03-05
Notice 공지 TIDWELL BIBLE 21 연대표
jesus
77746 1 2016-12-14
Notice 공지 Dictionary for NT 신약성경 백과사전 연구 파일
jesus
92429 1 2016-02-21
Notice 공지 Dictionary for OT 구약성경 백과사전 연구 파일
jesus
94911 1 2016-02-21
Notice 공지 성경백과사전 권별.장별[Chapter] 관련내용보기 파일
jesus
90709 1 2015-05-04
19 요아하스(Joahaz)
인물
jesus
1430   2006-12-27
▶ 요아하스(Joahaz) 뜻: "여호와께서 붙드심" [1] 이스라엘 11대 왕 여호아하스(B.C. 814-798년)와 동일인물(대하25:25). [2] 요시야왕(B.C. 640-609년)의 서기관 요아의 아버지(대하34:8).
18 라기스(Lachish)
지명
jesus
2569   2006-12-30
▶ 라기스(Lachish) Map 마레사 서남쪽 6Km 지점에 있는 고대 유다 지방의 중요 도시로, 유다 왕국의 역사와 관련이 깊은데, 이중 성벽과 삼중문으로 구축된 요새이며 남방 방어선의 요충지였다. 그러나, BC 701년 히스기야왕 때 앗수르의 왕 산헤립에 의해 멸망되었으며, 1932년 이래 발굴이 계속되어 이때 전사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의 뼈가 커다란 동굴에서 1,500,구 이상 발견되었고, 히브리어가 새겨진 예레미야 시대의 토기도 출토되었다. 성은 남서쪽 비탈이 가장 낮은 지역이었는데 이는 남서쪽 모서리에만 지형학적인 안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남서쪽에 있는 언덕과 함께 그 성은 지어진 것이다. 남서쪽 모서리에 있는 성벽 맞은편의 언덕은 해발 260-265m 였다. 이러한 지형학적 조건은 외부인이 공격해 올때 공격의 지점을 어디서부터 해야 할 것인가를 쉽게 결정하도록 만들어준다. 이처럼 라기스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므로 주전 701년 앗수르의 산헤립에 의해 멸망되기 전까지 라기스는 남부 유다에서 예루살렘 다음으로 중요한 도시였다. (1) 가나안의 한 성읍으로 여호수아가 점령하여 유다지파에게 주었다(수10:3, (수15:39). (2) 르호보암은 이 곳을 견고한 요새로 지켰다(대하14:9). (3) 아마샤가 피살된 곳(왕하11:19). (4) 앗수르왕 산헤립이 포위하여 히스기야에게 조공 받을 것을 조약하고 (왕하18:13, 14) (5) 느부갓네살이 점령하여 불 살랐다(렘34:7). (6) 바벨론에서 귀환후 다시 입주한듯하나 자세하지 않다(느11:3). 라기스에서 발굴된 것들 중에는 [라기스 서한]이 특히 유명하다. 텔 라기스 라기스에 관한 고고학적 연구는 1932년에 시작이 되어 오늘날까지 계속되어왔다. 라기스에 관한 수많은 고고학적 자료들, 유적, 유물들은 성경의 기록과 어느정도 부합되고 있는가? 성경에는 라기스에 관하여 10차례 이상 언급을 해주고 있다. 이러한 성경의 라기스에 관한 기록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인가 아니면 단순한 이야기, 혹은 문학작품에 해당되는 것인가? 텔 라기스의 정확한 위치는 어디인가? 이것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2 가지로 분류된다. 먼저 1878년 Conder 라는 학자는 고대의 라기스가 텔 el-Hesi 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라기스에서 보내진 텔 아마르나 시대의 쐐기 문자를 발굴함으로 지지되었다. 텔 라기스의 위치에 대한 두번째 견해는 1929년 Albright 에 의해서 제안되었는데 그는 고대의 라기스가 텔 el-Deweir 라고 주장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유세비우스의 언급에 근거한 것이다. 유세비우스는 라기스가 Eleutheropolis(벧 구브린)에서 가사를 향하는 도로 7마일 지점에 있었다고 언급하였다. 텔 라기스를 발굴한 모든 고고학 자료는 Albright의 제안을 지지하며 오늘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라기스는 성경에 언급된 쉐펠라의 중심도시이다. 쉐펠라에는 중요한 골짜기가 다섯개 존해하고 있다. 북쪽에서부터 아얄론 골짜기, 소렉 골짜기, 엘라 골짜기, 구브린 골짜기, 라기스 골짜기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라기스는 쉐펠라 중에서도 하부 쉐펠라에 해당이 된다. 서쪽으로는 해안평야 - 특히 블레셋 평야 - 가 있으며, 동쪽에는 중앙 산악 지역 중에서 유다 산지, 특히 그중에서도 헤브론 산지가 있다. 북쪽에는 앞에 언급한 쉐펠라의 중요한 골짜기들이 있으며 남쪽에는 네게브 산지가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라기스는 해안평야 지역에서 헤브론 산지로 향하는 중요한 길목에 위치해 있다. 라기스 성의 크기는 약 72 두남이었으며 그 성의 북동쪽에는 우물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물을 제공할 수 있었다. 라기스 성을 중심으로 한 지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 성 자체는 깊은 골짜기들로 둘러쌓여 있었다. 남서쪽의 성벽은 높이가 23m 였으며 북동쪽은 비탈에서 36m, 남동쪽은 40m, 북서쪽은 약 42m 였다. 즉, 그 성은 남서쪽 비탈이 가장 낮은 지역이었는데 이는 남서쪽 모서리에만 지형학적인 안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남서쪽에 있는 언덕과 함께 그 성은 지어진 것이다. 남서쪽 모서리에 있는 성벽 맞은편의 언덕은 해발 260-265m 였다. 이러한 지형학적 조건은 외부인이 공격해 올때 공격의 지점을 어디서부터 해야 할 것인가를 쉽게 결정하도록 만들어준다. 이처럼 라기스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므로 주전 701년 앗수르의 산헤립에 의해 멸망되기 전까지 라기스는 남부 유다에서 예루살렘 다음으로 중요한 도시였다고 한다. (1) 유다 지파의 성읍 (수15:1-62) 여호수아 15장에는 유다 지파에게 분배된 땅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유다 지파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남쪽에 분배가 되었는데 쉐펠라 지역과 유다 산지 그리고 사해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을 분배받았다. 라기스는 쉐펠라에 분배된 14 성읍 중 하나였다(수 15:39). 그러나 예루살렘은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하였다. 여부스 족속이 거하던 예루살렘은 후에 다윗 시대에 이르러 다윗에 의해 점령되어 다윗성이라 명명하였다(삼하05:7). (2) 기브온을 치기 위한 동맹에 가담함 (수10:3-5)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요단강을 건넌 후, 여리고와 아이를 점령하였으며 기브온 백성과 화친을 하였는데 이 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 및 기브온을 치기 위한 5 동맹국이 형성되는데 라기스는 그 중 하나였다. 이 다섯 동맹국을 형성한 사람은 예루살렘 왕 아도니 세덱이었는데 이로 보건대 당시 예루살렘은 세력이 강했으며 라기스도 예루살렘에 못지 않는 강한 성읍이었음을 보여준다. (3) 여호수아가 진멸함 (수10:6-33, (수12:11) 예루살렘 왕 아도니 세덱과 연합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치려했던 라기스 왕은 후에 막게다 굴에 숨었다가 여호수아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나무에 달렸다. 그 후 여호수아의 군대는 라기스 성읍을 취하고 칼날로 그것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쳐서 멸하였다. 때에 게셀 왕 호람이 라기스를 도우려고 올라왔으나 그는 라기스 백성과 함께 그곳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4) 르호보암에 의해 견고한 성읍으로 건축됨 (대하11:5,9) 여호수아에 의해 멸망한 라기스 성은 르호보암(주전 928-911)이 그곳을 요새로 만들기까지 폐허로 남아있었다. 르호보암은 유다 왕국의 서쪽 지역을 방어하기 위하여 이곳에 튼튼한 요새를 구축하였다. " 르호보암이 이 모든 성읍을 더욱 견고케 하고 장관을 그 가운데 두고 양식과 기름과 포도주를 저축하고 각 성읍에 방패와 창을 두어 심히 강하게 하니라(수11: 11-12)" (5) 죄의 도성 (미01:13) 선지자 미가는 라기스 거민의 죄를 꾸짖는데 라기스는 딸 시온의 죄의 근본이며 이스라엘의 허물이 보였다고 언급하고 있다. 특히 '준마에 병거를 메울지어다'라는 표현은 이미 라기스 성에 병거가 있었음을 시사해 주며 이는 고고학적 으로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6) 아마샤가 살해당한 곳 (왕하14:19, 대하25:27) 유다 왕 아마샤(주전 798-769)가 반역자들에게 피하여 예루살렘에서 라기스로 도망갔을때 그곳에서 반역자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것은 당시 라기스가 예루살렘 다음으로 중요한 도시였음을 시사해주는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7) 히스기야 왕때 산헤립이 취한 곳 (왕하18:13-17, (대하32:9, (사36:1-3, 사37:8) 히스기야 왕 십 사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취하였는데 라기스도 그 중 하나이다. 산헤립이 유다를 공격하였을때 라기스를 포위하여 히스기야에게 랍사게를 보내어 항복하도록 위협을 했다. 산헤립은 후에 니느웨에 있는그의 궁전에 있는 한 왕실에 공격장면을 포함하는 벽화를 그림으로 그의 라기스 정복을 기념하였다. (8) 느부갓네살의 공격을 받음 (렘34:1,7)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기 전 유다의 모든 성읍을 쳤는데 유다의 견고한 성읍 중에 마지막 까지 남아 있었던 성읍은 라기스와 아세가였다. (9) 바벨론 유수 후의 유다 사람의 거주지 (느11:30) 느헤미야의 기록에 의하면 바벨론에서 유다인들이 돌아온 후 여러 지역에 정착하였는데 라기스는 특히 멸망 전과 마찬가지로 유다인의 거주지였다. 고고학적 접근 Starkey 의 발굴은 Starkey 감독, L. Harding 과 O. Tufnell 의 협조로영국 원정단에 의해 1932년 시작되어 Starkey 가 산적에게 살해됨으로 1938년에 끝이 났다. 이 발굴은 주로 북서쪽 모서리에서 실행되었으며 그곳에서 성문들과 외부 지탱벽, 주거지 및 태양 신전, 거대한 수갱, 유다 궁전 요새, 그리고 북서쪽 바닥에서 발견된 해자 신전 등은 중요한 유적들이다. 특히 1935년 성문에서 발견된 '라기스 편지'는 그의 발견물 증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외부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것을 포함한 여러 시대의 수많은 무덤들이 발견되었다. 그의 발굴은 고고학자들의 인정을 받을만큼 뛰어난 것이었다고 평가가 된다. 1966-1968년에 태양 신전에서 아하로니에 의해서 발굴이 되었다. 그 당시 아하로니는 아라드를 발굴하고 있었는데 아라드에서 발견된 유다 신전의 기본 구조가 라기스의 태양 신전과 흡사한 것으로 믿고 이러한 목적으로 라기스를 발굴한 것이다. 1973년 우시쉬킨 감독으로 조직적이고도 장기적인 연구를 위한 발굴이 Starkey의 발굴지 부근에서 시도 되었다. 이 발굴은 이갈 야딘과 함께 진행되었는데 그는 발굴 처음부터 앗수르에 의한 공격의 가능성을 생각했다. 이 발굴에서 발견된 것은 유다 궁전 요새 및 청동기 시대의 기념 건물, 유다 성문, 앗수르 군대가 주전 701년 그 성으로 접근하려고 만들었던 참호 등이다. 1983 -1985년에 계속된 발굴(남서쪽)은 R 지역에서 이루어졌다. ('나눔' 98. 8월호 에서) (수10:3,5,23,31-35, (수12:11, (수15:39, (왕하14:19, (왕하18:14,17, (왕하19:8, (대하11:9, (대하25:27, (대하32:9, (느11:30, (사36:2, (사37:8, (렘34:7, (미01:13 lt=31.56485&ln=34.846725
17 에브라임 문(Gate of Ephraim) 파일
지명
jesus
3197   2011-07-27
▶ 에브라임 문(Gate of Ephraim) - 예루살렘 (느08:16 - 백성이 이에 나가서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혹은 지붕 위에, 혹은 뜰 안에, 혹은 하나님의 전 뜰에, 혹은 수문 광장에, 혹은 에브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짓되 NIV - So the people went out and brought back branches and built themselves booths on their own roofs, in their courtyards, in the courts of the house of God and in the square by the Water Gate and the one by the Gate of Ephraim. ESV - So the people went out and brought them and made booths for themselves, each on his roof, and in their courts and in the courts of the house of God, and in the square at the Water Gate and in the square at the Gate of Ephraim. (느12:39 - 에브라임 문 위로 옛문과 어문과 하나넬 망대와 함메아 망대를 지나 양문에 이르러 감옥 문에 멈추매 ▶ 에브라임 문(Ephraim Gate) -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벧세메스에서 아하시야의 손자 요아스의 아들 유다 왕 아마샤를 사로잡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사백 규빗을 허물었다. (왕하14:13, (대하25:23 ======== Ephraim, [E'phraim] Gate of. A gate in Jerusalem. By its name it would evidently have been on the north of the city, as is the present Damascus gate. 2 Kings 14:13; 2 Chr. 25:23; Neh. 8:16; Neh. 12:39. --- Morrish Bible Dictionary lt=31.777444&ln=35.234935
16 아래 벧호론(Lower Beth-horon)
지명
jesus
1518   2011-08-14
▶ 아래 벧호론(Lower Beth-horon) 1) 에브라임과 서쪽 므낫세 자손의 기업 (수16:3 2) 베냐민 자손의 기업의 경계 (수18:13 3) 솔로몬이 건축한 곳 (왕상9:17, (대하8:5 ▶ Beth-horon - (수10:10, (수18:14, (수21:22, (삼상13:18, (대상06:68, (대하25:13 lt=31.87892&ln=35.12356
15 성 모퉁이 문(Corner Gate)
지명
jesus
2091   2011-09-13
▶ 성 모퉁이 문(Corner Gate) 1)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벧세메스에서 아하시야의 손자 요아스의 아들 유다 왕 아마샤를 사로잡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사백 규빗을 헐고 (왕하14:13, (대하25:23 2) 웃시야가 예루살렘에서 성 모퉁이 문과 골짜기 문과 성굽이에 망대를 세워 견고하게 하고 (대하26:9 3) 보라, 날이 이르리니 이 성은 하나넬 망대로부터 모퉁이 문에 이르기까지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31:38 4) 온 땅이 아라바 같이 되되 게바에서 예루살렘 남쪽 림몬까지 이를 것이며 예루살렘이 높이 들려 그 본처에 있으리니 베냐민 문에서부터 첫 문 자리와 성 모퉁이 문까지 또 하나넬 망대에서부터 왕의 포도주 짜는 곳까지라 (슥14:10 lt=31.777444&ln=35.234935
14 소금 골짜기(Valley of Salt. Salt, Valley of. ) 파일
지명
jesus
3277   2011-09-13
▶ 소금 골짜기(Valley of Salt) 1) 다윗과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쳐죽이고 돌아와서 명성을 떨치니라 (삼하08:13, (대상18:12, (대하25:11, (시060:1 2) 유다 왕 아마샤가 소금 골짜기에서 세일 자손인 에돔 사람 만 명을 죽이고 또 전쟁을 하여 셀라를 취하고 이름을 욕드엘이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러하니라 (왕하14:7 ======== Salt, Valley of. Place where battles were fought by David and Amaziah against their enemies. 2 Sam. 8:13; 2 Kings 14:7; 1 Chr. 18:12; 2 Chr. 25:11; Ps. 60 title. It is supposed to be in the northern part of the Arabah valley, south of the Dead Sea. --- Morrish Bible Dictionary lt=31.087328&ln=35.383740
13 벌, 처벌, 형벌(Punishment.)
기타
jesus
1355   2016-03-01
▶ 벌, 처벌, 형벌 Punishment. The law required that capital punishment should be inflicted for reviling a parent, blasphemy, sabbath-breaking, witchcraft, adultery, man-stealing, idolatry, murder, etc. Capital punishment was by stoning, Deut. 13:10; burning, Lev. 20:14; the sword, Ex. 32:27; and hanging, Deut. 21:22, 23. It appears that those who sinned at Baal-peor were first slain, and then hanged or impaled: Num. 25:4, 5; the word is yaqa, and for hanging is used only here and in 2 Sam. 21:6, 9, 13, when the seven descendants of Saul were 'hung up to the Lord,' which may also signify being impaled. There is no record in scripture of crucifixion being practised among the Jews. Capital punishment was at times carried out in ways not mentioned in the law: sawing asunder and cutting with harrows and axes, 2 Sam. 12:31; Heb. 11:37; precipitation, 2 Chr. 25:12; Luke 4:29. (신13:10; 그는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너를 꾀어 떠나게 하려한 자니 너는 돌로 쳐 죽이라 (레20:14; 누구든지 아내와 그 장모를 아울러 취하면 악행인즉 그와 그들을 함께 불사를찌니 이는 너희 중에 악행이 없게 하려 함이니라 (출32:27;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그 친구를, 각 사람이 그 이웃을 도륙하라 하셨느니라 (신21:22, 23.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민25:4,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두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사사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관할하는 자 중에 바알브올에게 부속한 사람들을 죽이라 하니라 (삼하21:6, 9, 13, 6자손 일곱을 내어 주소서 여호와의 빼신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우리가 저희를 여호와 앞에서 목매어 달겠나이다 왕이 가로되 내가 내어 주리라 하니라, 9저희를 기브온 사람의 손에 붙이니 기브온 사람이 저희를 산 위에서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매 저희 일곱 사람이 함께 죽으니 죽은 때는 곡식 베는 처음날 곧 보리 베기 시작하는 때더라, 13다윗이 그곳에서 사울의 뼈와 그 아들 요나단의 뼈를 가지고 올라 오매 사람들이 그 달려 죽은 자들의 뼈를 거두어다가 (삼하12:31; 그 가운데 백성들을 끌어내어 톱질과 써레질과 도끼질과 벽돌구이를 하게 하니라 암몬 자손의 모든 성을 이같이 하고 다윗과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라 (히11: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대하25:12; 유다 자손이 또 일만을 사로잡아 가지고 바위 꼭대기에 올라가서 거기서 밀쳐 내려뜨려서 그 몸이 부숴지게 하였더라 (눅04: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For minor offences there was flogging, which was restricted to forty stripes. Deut. 25:3. A whip with three thongs accounts for the 'forty stripes less one.' 2 Cor. 11:24. Also placing in the stocks. Jer. 20:2, 3. In other cases the punishment was according to the offence: "eye for eye, tooth for tooth," etc. Ex. 21:24, 25. Imprisonment for definite periods was not customary as a punishment, though persons were imprisoned. Gen. 39:20; 2 Kings 25:27; Jer. 37:4, 18. Punishment was needed in the government of the nation of Israel, as it is in any nation now. God's four direct punishments were "the sword, the famine, the noisome beast, and the pestilence." Ezek. 14:21. (신25:3. 사십까지는 때리려니와 그것을 넘기지는 못할찌니 만일 그것을 넘겨 과다히 때리면 네가 네 형제로 천히 여김을 받게 할까 하노라 (고후11: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렘20:2, 3.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집 베냐민의 윗문에 있는 착고에 채웠더니 다음날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착고에서 놓아 주매 예레미야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아니하시고 마골밋사빕이라 하시느니라 (출21:24, 25.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찌니라 (창39: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넣으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왕하25:27;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지 삼십 칠년 곧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의 즉위한 원년 십 이월 이십 칠일에 유다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렘37:4, 18. 4때에 예레미야가 갇히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 가운데 출입하는 중이었더라 18예레미야가 다시 시드기야왕에게 이르되 내가 왕에게나 왕의 신하에게나 이 백성에게 무슨 죄를 범하였관대 나를 옥에 가두었나이까 (겔14:2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네가지 중한 벌 곧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온역을 예루살렘에 함께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중에서 끊으리니 그 해가 더욱 심하지 않겠느냐 The Lord, referring to the law of an individual demanding an eye for an eye, enjoined forgiveness of personal wrongs; but this in no way interferes with civil government. Christians are exhorted to obey the ordained powers, pay tribute, etc. --- Morrish Bible Dictionary
12 레바논(Lebanon)
지명
jesus
4938 2 2006-12-30
▶ 레바논(Lebanon) 뜻:힌산 팔레스틴 북쪽에 있는 유명한 산으로 단층들로 말미암아 생겨났다. 석회암과 초기 백악기에 형성된 사암으로 구성되어 있어 힌산으로 보인다. 구약에는 71회나 기록 되어 있다. 현재의 독립국가 레바논 공화국은 지중해 동부에 있는 국가이다. 이 나라는 이스라엘과 시리아로 둘러싸인 비옥한 산이 많은 나라이다. 과거 프랑스령이었으나, 17개의 종교 공동체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기반으로 한 헌정체계를 가지고 1941년에 레바논은 독립 공화국이 되었다. 1948년과 1976년 사이의 팔레스타인 피난민의 대량유입으로 그러한 균형이 깨어졌으며, 내란을 불러왔다. 1992년 시리아 군대가 내놓은 평화대책으로 새 정부의 길이 열렸지만, 아직도 시리아의 감독 하에 있다. 레바논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으며, 공식적인 무슬림이 아닌 유일한 아랍국가이다. 하지만, 개인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은 막대한 사회적 종말을 불러온다. (1) 솔로몬왕이 성전과 궁전에 이 산에서 나는 백향목을 많이 썼다(왕상05:6, (대하02:8, (삿09:15, (사35:2, (사60:13) (2) 배의 돛대 제목으로도 썼다(겔27:5). (3) 이스라엘의 상징적 영토라 하나 사실상 여호수아때에 정복하지 못하였다 (수13:5, (신11:24, (삿03:3). * 팔레스틴과 운명을 같이 하여 내려 오다가 2차 대전후 레바논 국으로 독립 국가를 이루었다. 역사 레바논은 성경에 나오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정복자들은 이곳의 풍부한 자연 자원과 안전한연안 정박장, 그리고 높은 산들의 방어 가능성에 매력을 느껴왔다. 이러한 것들 때문에 이 나라의 역사는 침략자, 약탈자, 유명한 사람들의 명사록이 되었다. 레바논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BC 10,000년경의 일로 BC 3,000년 전에 이르러서는 각 마을들이 전형적인 도시로 발전했다. BC 2,500년경에 연안은 지중해에서 가장 위대한 초기 문명 중 하나를 일으킨 페니키아인들이 나중에 들어와 이곳을 식민지화했다. 페니키아인들은 정치적으로 전혀 통일된 적이 없으며 각각의 독립된 도시 국가들에서 나오는 사업과 지적인 노력의 결과를 통해 이곳을 지배했다. 훌륭한 장인들이었던 그들은 월등히 발전된 배와 항해 기술을 통해 바다를 지배했고 최초의 알파벳을 발명하였다 이 발명은 초기 그리스 문화의 문학적 걸작을 낳게 하는 주목할만한 발전이다.BC 9세기에 앗시리아인들이 들어와 페니키아의 배타적인 지중해 무역 지배를 깨뜨렸다. 그들은 신바빌로니아인들에게 굴복하였고 다시 페르시아인들(페니키아인들에게는 해방자로 여겨졌다)들이 이곳을 지배했다. 페니키아인들은 BC 4세기 알렉산더 대제가 중동을 휩쓸면서 마침내 쇠퇴하였고 서서히 그리스화되었다. BC 64년 폼페이대제가 페니키아를 정복하고 로마제국의 시리아 주의 일부로 만들었다. 베이루트는 헤롯왕 치하에서 중요한 중심지로 발벡(Baalbek)에 엄청난 신전들이 건설되었다. 로마제국이 분열되면서 기독교가 힘을 얻고 레바논은 4세기에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에 수도를 둔 동쪽 비잔틴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스정교는 이곳에서 크게 세력을 얻지 못했으며 남쪽에서 이슬람이 알라의 이름으로 들어오면서 쉽게 레바논을 지배했다.최초의 이슬람 왕조인 우마이유드(Umayyuds)는 레바논을 한 세기 동안 쥐고 흔들었지만 특히 레바논 산 근처에 난민촌을 지은 시리아의 마론파를 비롯한 현지의 유태인과 기독교인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하였다. 우마이유드가 750년 압바시드(Abbasids)에 무너지면서 레바논은 페르시아의 압바시드 제국에 밀려 침체하기 시작했다. 이 제국은 11세기 파티미드(Fatimid)왕조에 밀려나기 전까지 지속되었고 파티미드는 십자군 원정이 시작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십자군은 주로 예루살렘을 목표로 했지만 이 도시를 약탈하기 전에 마론파와 손을 잡고 시리아와 레바논 연안으로도 진격했다. 이슬람 아이유비드(Ayyubids)는 시리아, 이집트, 서아라비아, 예멘 일부 등을 공격하였고 나중에 13세기 말부터 300년 간 레바논을 지배한 마멜루크로 알려진 특이한 노예 군인 왕들에 의해 전복되었다. 그들은 대부분의 힘과 자원을 거세게 들이닥치는 몽고군과 싸우데 쏟아 부었다. 마멜루크는 오토만 제국의 등장으로 쇠약해졌으며 레바논의 부족 지도자들 레바논 중앙의 타누크히드 수장, 마론파, 드루제 등은 여러 제국과 복잡한 연합을 형성했다. 오토만의 술탄 셀림 I (Selim I)은 1516-17년에 정복하였고 파크 아드 딘II(Fakhr ad-Din II, 1586-1635)과 파크의 조카 아마드 마안(Ahmad Ma'an)에 의해 잠시 방해를 받았다. 아마드 마안은 1667년 수장국을 세워 현재 레바논의 핵심을 형성했다. 아마드 마안이 죽자 권력은 쉬합 가문으로 넘어가 국내의 세력 다툼과 종교적 차이가 수장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는 1840년까지 이 가문이 권력을 쥐었다. 1842년 오토만은 레바논산을 두 행정구역으로 나누어 하나는 드루제, 다른 하나는 마론파로 만들었다. 이들 사이의 다툼은 필연적인 것으로 나누어 지배하겠다는 정책을 펴던 오토만은 이것을 더욱 부추겼다. 1845년까지 드루제와 마론파뿐 아니라 농부와 봉건적인 통치자들 사이에서도 전쟁이 일어났다. 오토만은 유럽의 압박을 받으며 오토만 기독교 총독의 지배하에 하나의 레바논 행정부를 설립하고 봉건제를 종식시켰다. 새로운 체제는 제대로 효과가 있어서 터키 군사 지배에서 심각한 기근을 겪게 되는 1차 대전까지 안정과 경제적인 번영을 가져왔다. 1918년 연합군의 승리에 뒤이어 레바논은 프랑스의 지배하에 들어갔다.2차 대전 중 레바논은 완전히 독립하였고 주요 교역과 은행업을 발전시켰다. 레바논의 결정적인 약점은 권력이 우익 기독교 국민들에게 집중되는 동안 이슬람교인(인구의 반을 차지하는)은 실제 정부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느끼는 데서 시작되었다. 많은 수의 팔레스티나인들이 들어오면서 갈등의 요소는 더욱 커져갔다. 내전이 발발한 것은 1975년으로 압도적인 이슬람 좌익 연합과 기독교 우익 군부 세력이 충돌하였다. 이후 20년 동안 정신 없이 얽힌 내전과 국제 전쟁 그리고 수많은 인질극은 이 나라에서 흔한 일이 되었다. 대충 이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시리아는 이슬람과 기독교인 사이의 불안정한 평화를 성사시키려는 레바논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개입하였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로부터 북부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해 대리 군대를 설치하면서 진입해 들어왔고 UN은 기독교-이슬람교 사이의 내전 발발을 억제하기 위해 평화유지군을 보냈다. 이스라엘은 1982년 PLO를 제거한다고 발표하면서 베이루트를 포위했다. 또 이스라엘은 팔레스티나시민을 학살하는 기독교 민병대를 지원했다. PLO는 부분적으로 미국에 의해 철수되었고 미국, 서유럽 군이 합쳐진 다국적군(MNF)은 팔레스티나와 이슬람교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배치되었다. 이스라엘이 1년 남짓만에 철수하면서 드루제 이슬람 민병대와 기독교군 사이의 전투가 발발하였고 레바논 군과 이슬람 군과의 전투도 일어났다. 다국적군은 많은 인명피해를 입고 1984년 철수했다.시리아는 서서히 레바논의 이슬람 지역을 손에 넣었지만 1988년 레바논의 신 군사정부는 시리아를 몰아내려 했다. 이 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싸움은 시리아와 좋은 관계에 있던 새로운 대통령인 중도 마론파의 엘리아스 히라위(Elias Hrawi)가 정권을 잡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1992년 모든 살아남은 외국 인질들이 풀려났으며 시리아 군대는 철수를 시작했다. 1992년 8월 의회 선거가 20년 만에 치러졌고 이란의 지원을 받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정당인 헤즈볼라당은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했다. 라피크 하리리(Rafiq Hariri)는 새로운 수상이 되었다. 헤즈불라와 이스라엘 군인의 전투는 1993년까지 계속되어 분노의 포도 작전으로 최고점에 이르렀다 - 이스라엘은 레바논 남부의 80여개 마을에 대해 일주일간 공중, 바다, 육지의 폭격을 계속했다. 1996년 4월 이스라엘이 남부 레바논과 베이루트를 공습하면서 다시 말썽이 커졌다. 국제사회의 반응은 이스라엘을 비난하였고 UN은 정전 협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긴 전쟁으로 인해 150,000명의 레바논 인들이 죽거나 황폐화된 나라를 떠났다. 기반 산업의 피해는 수백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오늘날 국내적으로 레바논은 빠르게 회복하고 있어서 건물도 늘어가고 있고 여러 기관들도 다시 문을 열며 경제도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 레바논의 문제는 다른 중동 국가에서는 한물간 강대국 세력들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과거 몇 십년 동안 중동 문제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국가들은 레바논을 싸움터로 이용하면서 억지를 부려왔다 - 그것이 PLO이건 시리아, 이란, 이스라엘, 아니면 실제로는 UN이건 모두 마찬가지이다. 레바논의 주요 정치적 이해관계의 갈등은 현재 어느 정도 진정되어있지만 이스라엘-레바논 국경을 사이에 두고 양쪽의 총격은 종종 계속되고 있다. 레바논의 기독교도 레바논 기독교들 중에는 비잔틴 제국교회의 신학적 이론을 따르며, 안티오키아의 총대주교 감 독 하에 있던 그리스 전통을 따르는 그리스 계열의 식민자들의 자손이 있었다. 그들은 해안도시 에 거주했었다. 그들은 제국교회의 추종자이기 때문에 제국정부의 보호를 받았다. 그러나 시리아 에서 비잔틴 제국이 물러나자 안티오키아에 있는 그들 자신의 총 대주교에 더욱 가까워졌다. 그 들은 콘스탄티노플의 권위와는 분리되었으나 여전히 그리스 정교도로 불렀다. 무슬림들이 7세기에 레바논을 점령했을 때, 그들은 대부분의 주민들이 비잔틴 지배에 반대하 는 것을 발견했다. 주로 셈족 계열의 기독교도인 이들은 그리스 계열인 비잔틴인을 증오하고 같 은 셈족인 침입자 아랍인을 비잔틴인보다 더 가깝게 여겼다. 따라서 그들은 무슬림의 침입을 환 영했다. 그들은 아랍 무슬림들의 점령을 외세로부터 해방으로 여겼다. 685년까지 기독교도들은 "성서의 백성" 또는 딤미로 불리며 적당한 양의 세금을 물었다. 그들 은 인두세를 무는 대신에 군사 의무를 수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독교도들은 얼마 안가서 군사 력과 정치권력이 없기 때문에 무슬림 정권의 점증하는 압박을 곧 느끼게 되었다. 딤미제도는 쇠 퇴되었고, 기독교도들은 더 이상 교회를 세울 수 없었으며, 기존의 교회도 국가에 의해 모스크로 바뀌었다. 기독교도는 더 이상 새로운 개종자를 구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슬람으로부터의 배교는 사형이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기독교도들은 점진적이나 필연적으로 쇠퇴하게 되어 있었다. 칼리파 압둘 말리크(685-705)는 기독교 지역사회를 더욱 약화시켜 나갔다. 칼리파는 기독교도 들의 땅을 무슬림 이주자들에게 주었다. 결과적으로 아라비아 반도로부터 이주한 무슬림들은 남 부 레바논에 거주하게 되었고, 이 지역의 기독교들은 소수파로 전락하게 되었다. 칼리파는 기독교 도들을 이등 시민으로 분류했고, 가끔 공직에서 그들의 활동을 금지했다. 8세기 중엽부터 기독교 도들은 무슬림 지배의 쓰디씀을 느끼기 시작했다. 레바논에서 이와 같은 무슬림 정권의 탄압을 피하는 방법은 산악 지대로 이주하는 것이었다. 아랍 전사들은 해안 평야에서 거주했다. 사막의 자손인 그들은 산악전에 대한 기술이 없었고 눈 을 몹시 싫어했다. 그들은 산에서 경작하거나 산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것을 경멸하였다. 결국 산 악 지대는 기독교도를 위한 지역으로 남게 되었다. 지형학적으로 해안평야와 틀린 산악지역의 생활양식은 산악지대 기독교도들의 문화를 독특하 게 만들었다. 이 산악지대의 외부인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었으나 어느 누구도 산악지대 거주자의 인정 없이 산악지대를 실질적으로 지배할 수는 없었다. 이것이 레바논 산악지대가 소 수자들의 영구 피난처가 될 수 있는 이유였다. 이 울퉁불퉁한 지대를 커다란 희생을 해 가면서 지배하려는 정부는 거의 없었다. 기독교도들의 산악 지대로의 이주는 계승되는 칼리파들의 압박 이 강해질수록 더 빨라졌다. 결국 레바논의 산간지대는 내부 시리아와 레바논 평원지대에서 분리 된 피압박자와 불만을 가진 자들의 요새요 주거지가 되어 갔다. 이런 종파 중에 시리아로부터 온 한 기독교 집단이 있었으니 현대 레바논을 정치적, 경제적으로 주도하는 마론교도들이었다. 마론교도의 기원은 성 마론 또는 마로(아랍어는 Marun)라고 하는 4세기 후반에서 5세기초에 살았던 시리아 은수자와 685-707년에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였던 성 요한 마론 또는 성 요한네스 마로(아랍어로는 Yuhanna Marun)에서 비롯된다. 684년에 유스티아누스 2세가 끌고 온 비잔틴 침 략군을 마론 총 대주교의 지도에 따라 격퇴함으로써 마론 교회는 완전히 독립하게 되었다. 마론 교회는 전통적으로 로마 교황청과 늘 연결되어 있는 정통교회로 강조되어 왔지만 수세기 동안 콘 스탄티노플 총 대주교 세르기우스의 이단교리를 따르는 단성론자(Monothelite)들이었다는 증거가 있다. 세르기우스는 예수 안에 인간의 의지는 없으며 신적 의지만 있다고 주장했다. 마론교도들은 산악지대에서 그들끼리 살아가며 그들의 정체성을 지켜 나갔다. 반면 그리스 정 교도들은 해변도시에서 압도적인 무슬림들에 의해 둘러싸여 살게 되었다. 약 10세기경에 기독교 도의 인구는 이슬람 침입 이전의 인구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서구는 제1차 십자군이 레바논 에 왔을 때 레바논의 기독교도와 연결 고리를 만들게 되었다. 마론교도들은 십자군을 돕고, 그들 의 길을 안내했다. 그들은 십자군을 환영했고, 그들을 자신들의 해방군으로 받아들였다. 레바논 지역의 기독교도들은 처음에는 십자군에 협조적이었으나, 얼마 안가서 십자군의 교만과 탐욕, 그 들간의 투쟁으로 인해 등을 돌려버렸다. 그러나 마론교도들은 십자군에 끝까지 우호적이었으며, 1302년 십자군이 중동에서 그들의 마지막 요새를 잃은 후에도 서구와의 접촉을 유지했다. 이미 1182년 마론교회의 총 대주교는 라틴계 교구인 안티오키아 총 대주교와 연합하려 했다. 이후 이 들의 이런 시도와 계속된 접촉은 1584년 교화 그레고리우스 8세에 의해 로마에 마론대학이 세워 진다. 이 학교는 20세기까지 예수회의 행정 아래 학자와 지도자 훈련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16세기 경 오스만 터어키가 레바논을 지배하게 되자 마론교도들은 프랑스의 보호로 자신들의 종교와 관습을 지킬 수 있었다. 19세기에 오스만 터어키 정부가 레바논의 인근 산악인인 드루즈 교도들을 불러들여 1860년 마론교도들을 대학살하는 정책을 폈다. 결국 프랑스의 개입으로 마론 교도들은 오스만 제국 안에서 외래인 기독교 지도자 아래 공식적 자율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1920년 오스만 제국의 소멸로 레바논의 마론교도들은 프랑스의 보호 아래 자치권을 획득했다. 1943년 레바논의 독립 후에는 국가를 이끌어 가는 주도 세력이 되었다. 초기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로만 카톨릭의 그리스정교회 끌어안기는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그 들의 노력은 부분적으로 성공적이었다. 1717년에 그리스정교도 중에 일부가 그리스카톨릭 또는 멜키트라는 이름으로 로만 카톨릭 교회를 따르게 되었다. 그러나 로만 카톨릭과는 달라 그들의 동방교회적인 의례와 관습을 지키고 있다. 그리스카톨릭은 문화적으로 서구 지향적이며 정치적으 로는 중동으로 향해 있다. 그리스카톨릭의 감정은 서구와 밀접하게 밀착되어 있는 마론교도의 감 정과 그들 자신이 아랍세계의 일부라고 여기며 레바논 무슬림에 의한 위협을 가장 약하게 느끼는 그리스정교도의 감정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스정교도는 심적으로 서구보다는 중동에 마음의 뿌리를 두고 있다. 십자군 침입 시에 그 리스정교도는 심적으로 아랍과 함께 하였으며, 서구인과 연계를 단호히 거부했다. 1187년 살라딘 의 예루살렘 포위를 벗어나기 위해 기독교도가 맹렬하게 저항하고 있을 때 그들은 공개적으로 무 슬림의 승리를 위해 기도했다. 마론교도가 서구와의 관계를 유지할 때 이를 무시하고 대시리아의 한 부분으로 남기를 원했다. 레바논의 그리스정교는 항상 지리적으로 신학적으로 시리아교회로 향하고 있었으며, 그들 자 신을 아랍인으로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의 그리스정교도는 그들 자신을 무슬림과 연계시켰 으며, 아랍세계와 범 아랍주의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스정교도는 레바논에서 가장 도시화된 종 파이며, 가장 교육수준이 높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레바논의 어떤 종파와도 관계가 좋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은 그들을 레바논의 올바른 시민이며, 레바논의 어떤 집단과도 공존할 수 있는 집단이 라고 말하고 있다. 마론교도와 순니무슬림들은 그들과 어떤 문제도 없다고 믿으며, 드루즈파교도 는 그들이 모든 레바논인의 중재자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스정교도는 레바논에서 가장 덜 위협적인 그룹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정치적으로는 가장 복잡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 그들 의 지역사회는 몇몇의 극단적 정치사상가 뿐만 아니라 많은 재정 엘리트들을 포함하고 있다. 20 세기초에 그리스정교도의 식자들은 대시리아와 시리아국가 건설에 대해 주장했다. 그들이 주장하 는 바는 새로운 것은 아니었으며, 그들의 대시리아는 팔레스타인, 시리아, 레바논을 뜻했다. (송경근/조선대 아랍어과) (신01:7, (신03:25, (신11:24, (수01:4, (수09:1, (수13:5,6, (삿09:15, (왕상04:33, (왕상05:6,9,14, (왕상09:19, (왕하14:9, (왕하19:23, (대하02:8,16, (대하08:6, (대하25:18, (스03:7, (시029:5,6, (시072:16, (시092:12, (시104:16, (아03:9, (아04:8,11,15, (아05:15, (아07:4, (사02:13, (사10:34, (사14:8, (사29:17, (사33:9, (사35:2, (사37:24, (사40:16, (사60:13, (렘18:14, (렘22:6,20,23, (겔17:3, (겔27:5, (겔31:3,15,16, (호14:5,6,7, (나01:4, (합02:17, (슥10:10, (슥11:1 lt=33.752479&ln=35.590804
11 요사갈(Jozachar)
인물
jesus
1519 3 2006-12-27
▶ 요사갈(Jozachar) 뜻: 여호와가 기억하심 (1) 시므앗의 아들로 요아스왕을 죽인 자중 한 사람이다(왕하12:19-21). (2) 사밧이라고도 부른다(대하24:26). (3) 요아스왕을 죽인 이유는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를 인함이라 하였다. 그후 아마샤에게 피살되었다(대하25:2-3)
10 벧세메스(Beth-shemesh)
지명
jesus
2031 3 2006-12-30
▶ 벧세메스(Beth-shemesh) 뜻: 태양의 집 벧세메스인텔 에르 루메일레에서 밀을 뿌리고 밭을 가는 모습. [1] 예루살렘의 남 3km 지점. 지금의 아이셈스(태양의 샘). 사마슈(태양신) 숭배가 팔레스틴에서 행하여진 곳으로 이 지명을 가지게 되었다. (1) 소렉 골짜기에 있는 유다의 동리(수19:41에는 이스세메스). (2) 아론 자손에게 준땅(수21:16). (3) 블레셋 사람들이 돌려보낸 법궤를 에그론에서 이곳으로 가져왔을 때 주민들이 불평하여 벌을 받았다 (삼상06:). (4) 이스라엘의 요아스왕이 (주전801-786)유다왕 아마샤를 사로잡은 곳 (왕하14:11, (대하25:23). (5) 아하스때 블레셋에게 빼앗긴 고을중의 하나 (대하28:18). * 발굴된 도자기로 보아 주전 2000-600년까지 주민이 살았으며 견고한 요새였으나 마침내 느부갓네살 2세의 군대에게 멸망한듯하다. [2] 잇사갈의 고을 (수14:22). [3] 납달리의 고을(수19:38). [4] 애굽의 도시로서 태양 숭배의 중심지(렘43:13). ▶ Beth-shemesh 1 - (수15:10, (수21:16, (삼상06:9,-20 (왕상04:9, (왕하14:11,13, (대상06:59, (대하25:21,23, (대하28:18 lt=31.75274&ln=34.976609 ▶ Beth-shemesh 2 - (수19:22 lt=32.406430&ln=35.504628 ▶ Beth-shemesh 3 - Beth-anath : (수19:38, (삿1:33 lt=33.146864&ln=35.427134
9 사마리아(Samaria) Map 파일
지명
jesus
6706 3 2006-12-30
▶ 사마리아(Samaria) 뜻:살핌 예루살렘 북쪽 약 67km 지점으로 사마리아 도와 사마리아 성이 있다. 사마리아 성은 세겜 북방 11km 지점 91km 높이의 언덕 위에 있는데 현재는 세바스티에 라는 곳으로 보잘것 없는 동네가 되었다. BC 30년에 헤롯은 사마리아 대건설 계획에 착수,새로 건설된 도시를 황제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세바스티아로 개칭했다.도시의 출입문은 서편과 동편에 있었다.북편과 남편에도 성문이 하나씩 더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낙후된 아랍인의 마을에 불과하지만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가 여기였다. 그리심산이 있다. 이 산은 종교적으로 중요한 곳이었으며, 산정에는 유적지가 있다. 소수민족인, 전통적인 사마리아인은 4백명 뿐으로 그리심산에 살고 있다.사마리아 유적은 2차례 발굴되었는데 1965년 요르단의 고대 문물성에 의해서,또 한번은 1968년 예루살렘의 영국고고학회에 의해서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때문에 익숙한 도시이름이다. (1) 사마리아 성읍은 이스라엘 북왕국의 수도이다. (2) 디르사에 수도를 정하던 오므리 왕(아합 왕의 아버지)이 세멜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이 산을 사서 그 소유주의 이름을 따서 사마리아 라고 하였다 (왕상16:23-24). (3) 사마리아도는 옛날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쳐서 취하여 12지파에게 분할해 줄 때 에브라임, 단, 므낫세, 반지파에게 준 땅이 곧 예수님 당시의 사마리아다. (4) 여호수아 때에는 솔로몬 왕 때까지 통일 국가를 이루었다. 솔로몬왕이 죽은 후에 남북 2국으로 분립되어 남에는 유다, 베냐민의 두 지파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왕으로 삼은 유다국이 건설되고 북에는 기타 10지파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으로 왕을 삼은 이스라엘 국이 건설되어 250 여년간 내려왔다. (5) 앗수르왕 살만에셀이 이스라엘국을 쳐서 취하였다. 이때에 살만에셀은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로 다른 지방으로 옮기고 앗수르 국민을 사마리아 에 옮겼다 (왕하17:3-6,24). (6) 그 다음에는 마게도냐, 알렉산더 대왕이 점령하여 또 사마리아인을 축출 하고 자기 국민을 사마리아도에 이식하니 자연히 상호혼혈이 되어버렸다. (7) 그 때 부터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를 이방시하고 그 주민을 이족시 하게 되었다. (8)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귀환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할 때 사마리아 인들이 협력하기 원하여도 거절 하였다. 사마리아인들은 이방시 하는 유대인들에게 원한을 품고 바사국의 인사들에게 뇌물을 주어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방해 하였고 일방으로는 그리심 산에 따로 성전을 건축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반대하게 되었다(스04:1-6). (9) 이러한 두가지 원인으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간에는 피차 반목 질시하게 되고 유대인이 그 지역에 가지도 않고 그곳 주민과는 상종도 하지 않으므로 갈릴리도를 갈때는 사마리아도를 통과 하지 않고 멀리 요단강으로 돌아 다녔다. (10) 예수님은 그것을 관계치 않으시고 통과하시다가 수가 성에 있는 야곱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생수의 원리를 가르쳐 주셨다(요04:3- 14). (11) 선한 사마리아인이 비유을 듣고(눅01:30-37). (12) 문둥병자 10명을 고쳐 주셨을 때 다 가버리고 사마리아 사람 하나만 와서 감사함으로 그를 칭찬하셨다(눅17:11-19). (13) 그래서 예수를 사마리아 인이라고 욕한 사람도 있다(요08:48). (14) 스데반이 순교후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을 만나 교인들이 사방에 흩어지는 중에 이 사마리아 도에 들어가서 교회 설립의 기초가 되었다(행08:1). (15)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 850인과 엘리야 선지가 거짓 신과 참 하나님의 대결을 벌렸던 갈멜산이 있다(왕상12:19-40). (16) 요셉이 팔린 도단 산(창37:17)과 축복하는 그리심산과 저주하는 에발산 이 있다(신11:20). (왕상13:32, (왕상16:24,28,29,32, (왕상18:2, (왕상20:1,10,17,34,43, (왕상21:1,18, (왕상22:10,37,38,51, (왕하01:2,3, (왕하02:25, (왕하03:1,6, (왕하05:3, (왕하06:19,20,24,25, (왕하07:1,18, (왕하10:1,12,17,35,36, (왕하13:1,6,9,10,13, (왕하14:14,16,23, (왕하15:8,13,14,17,23,25,27, (왕하17:1,5,6,24,26,28, (왕하18:9,10,34, (왕하21:13, (왕하23:18,19, (대하18:2,9, (대하22:9, (대하25:13,24, (대하28:8,9,15, (스04:10,17, (느04:2, (사07:9, (사08:4, (사09:9, (사10:9,10,11, (사36:19, (렘23:13, (렘31:5, (렘41:5, (겔16:46,51,53,55, (겔23:4,33, (호07:1, (호08:5,6, (호10:5, (호13:16, (암03:9,12, (암04:1, (암06:1, (옵01:19, (미01:1,5,6, (눅17:11, (요04:4,5,7,9, (행01:8, (행8:1,5,9,14, (행09:31, (행15:3 ======== Samaria. [Sama'ria] This city was built by Omri, king of Israel, and came into prominence by becoming the capital of the kingdom of the ten tribes. It was situated on the side of a hill, and was adorned and fortified by the kings of Israel. Ben-hadad, king of Syria, besieged Samaria in the reign of Ahab, but by the intervention of God it was not taken. 1 Kings 20:1-34. In the days of Jehoram it was again besieged by Ben-hadad, and the famine became so great that they were on the point of capitulating when some lepers brought word that the enemy had fled, and abundance of provision was to be found in the camp. 2 Kings 6:24-33; 2 Kings 7:1-20. It was besieged again by Shalmaneser, about B.C. 723, but held out for three years, being eventually taken by Sargon. The people were now carried into captivity. 2 Kings 18:9-12. Among the Assyrian inscriptions there is one in which Sargon says, "The city of Samaria I besieged, I captured; 27,280 of its inhabitants I carried away." It was partly re-peopled by the colonists imported by Esar-haddon. Samaria was again taken by John Hyrcanus, who did his best to destroy it. The city was rebuilt by Herod the Great, and named Sebaste (the Greek form of Augusta) in honour of his patron the emperor Augustus; but on the death of Herod it gradually declined. It is now only a miserable village, called Sebustieh, 32 17 N, 35 12' E, but with some grand columns standing and relics of its former greatness lying about. THE DISTRICT OF SAMARIA is often alluded to in the N.T. It occupied about the same territory as that of Ephraim and Manasseh's portion in the west. It had the district of Galilee on the north, and Judaea on the south. Luke 17:11; John 4:4; Acts 1:8; Acts 8:1-14; Acts 9:31; Acts 15:3. --- Morrish Bible Dictionary lt=32.2802&ln=35.1979
8 아마샤(Amazaih, Amaziah)
인물
jesus
6486 4 2006-12-27
▶ 아마샤(Amazaih) 뜻 : 여호와가 기력있음 [1] 유대국 제9대 왕(B.C.838-810). 요아스 왕의 아들이다(왕하12:20-21, (왕하14:2), (대하25:25). 그는 부왕을 암살한 자를 처형할 때 당시의 관습에 의하지 않고 자족 연죄를 고치고 그 아들들을 사하여 주었다 (왕하14:6). [2] 여로보암 2세때 벧엘단에서 봉사하던 제사장인데 그가 왕에게 선지자 아모스를 무고하여 유대로 추방하자고 권고하였다(왕상12:25-38), (암07:10). [3] 그 밖에 2인이 있다(대상04:34, (대상06:45). ======== Amaziah. [Amazi'ah] 1. Son of Jehoash, or Joash, king of Judah, and who succeeded to the throne: he reigned 29 years, B.C. 839-810. He walked well at the commencement of his reign. He made war on the Edomites; 10,000 were slain, and 10,000 cast down from the top of the rock. But he brought back the gods of the children of Seir, and bowed down to them, whereby he fell under God's displeasure. He provoked a war with the king of Israel but was defeated, the treasures of Jerusalem were taken, and part of the city wall broken down. He was slain at Lachish whither he had fled from a conspiracy. 2 Kings 14:1-23 ; 2 Chr. 25:1-28. 2. Descendant of Simeon. 1 Chr. 4:34. 3. Son of Hilkiah, a descendant of Merari. 1 Chr. 6:45. 4. Israelite who was priest of the idol set up in Bethel. Amos 7:10-14. --- Morrish Bible Dictionary
7 여호앗단(Jehoaddan)
인물
jesus
2000 4 2006-12-27
▶ 여호앗단(Jehoaddan) 뜻: "여호와는 환희" 예루살렘 출신으로(왕하14:2), 유다 왕 아마샤(B.C. 796-767년)의 어머니(대하25:1).
6 오벳에돔(Obed-edom)
인물
jesus
3486 4 2006-12-27
▶ 오벳에돔(Obed-edom) 뜻:에돔의 종 [1] 하나님의 법궤를 기브아 사람 아비나답의 집에서 다우시의 성으로 옮겨오다가 재앙 이 돌발하여 3개월간 그의 집에 안치하여 있는 동안 하나님이 그 집에 많은 복을 주셨다(삼하06:3-11, (대상13:13-12). [2] 레위자손 여두둔의 아들인데 다윗이 악대를 조직하는 중 그는 비파와 수금을 타고 겸하여 문지기이다(대상15:18-24, (대상16:5). [3] 유대국 아마샤왕 때에 성전 기명을 간수하는 자인데 그때에 이스라엘왕 요아스가 올 라와 성전 기명을 약탈하여 가고 백성을 포로하여 갔다 (대하25:21-24).
5 에돔(Edom)
지명
jesus
3734 4 2007-01-02
▶ 에돔(Edom) 뜻: 붉다 이곳 주민은 에서의 자손이었다. 후에 호리 족속이 입주하는 것을 주 전 13세기에 에돔인이 그를 멸하고 그곳에 나라를 세웠다는 사실이 최근에 고고학적 발견으로 밝혀졌다. (1) 이스라엘과는 혈통 관계가 있으나 출애굽시에 그 국내 통과를 불허함 (민20:14-(민21:4). (2) 다윗때에 한번 정복되었다(왕하14:7). (3) 다시 반역할 때 아마샤가 정복하였다(왕하14:7). (4) 예루살렘 멸망시에는 적에게 가담하여 유대의 성읍들을 점령하였다 (애04:21, (겔36:). (5) 선지자들은 그들의 이스라엘에 대한 지독한 복수심을 엄히 책망하고 예언하였다(사34:5-15, (사63:1-6, (렘49:7-12, (겔25:14, (욜03:19, (암01:11-12). 지금의 트란스요단 국이다. (창32:3, (창36:16, (출15:15, (민20:14, (민21:4, (민24:18, (민33:37, (민34:3, (수15:1, (삿05:4, (삿11:17, (삼상14:47, (삼하08:12, (왕상09:26, (왕상11:14, (왕상22:47, (왕하03:8, (왕하08:20, (왕하14:10, (대상01:43, (대상18:11,(대하08:17, (대하20:2, (대하21:8, (대하25:19, (시060:1, (시083:6, (시108:9, (사11:14, (사34:5, (사63:1, (렘09:26, (렘25:21, (렘27:3, (렘40:11, (렘49:7, (애04:21, (겔25:12, (겔32:29, (겔35:15, (겔36:5, (단11:41, (욜03:19, (암01:6, (암02:1, (암09:12, (옵01:1, (말01:4 lt=30.73469&ln=35.6062
4 세일 산(Seir, Mount Seir)
지명
jesus
5728 6 2006-12-30
▶ 세일 산(Seir, Mount Seir) 뜻: 험한 산 세일 산악 지대는 남쪽으로 아르논 저지대에서 부터 현재의 아카바 근처까지 이어져 있다. [1] (1) 아브라함 시대에 엘람왕 그돌라오멜이 이 산에서 호리족속을 정복하였다 (창14:5-6). (2) 에서의 자손 에돔 족속은 이 호리 족속을 내어쫓고 거주지를 삼았다 (창33:14,16 (민24:18 (신01:44,33:2 (수12:7, (수24:4). (3) 오랜 후에 유다왕 여호사밧 때에 이산 주민과 암몬과 모압의 연합군 이 유다를 치러 온 것을 여호와가 진멸하여 주셨다(대하20:22-23). (4) 이 땅이 발람과 모세와 드보라 바락의 싱에 올라있다(민24:8,신33:3, 사05:4). (5) 이사야와 에스겔 두선지의 예언에 들어있다(사21:11 (겔25:8). [2] 유대 북방에 있는 산으로 기얏여아림과 벳세게스 사이 곧 예루살렘의 서쪽 14키로의 사리스의 페허를 가리킨다(수15:10) ▶ 세일산 Seir, Mount. 1. The early name of the long range of mountains, extending from about eight miles, south of the Salt Sea, to near the Gulf of Akaba. It is also called 'the land of Seir.' It was occupied at first by the Horites, and afterwards by the descendants of Esau, and acquired the name of EDOM, q.v. The Israelites had to compass the whole of this mountainous range to reach their entrance to the promised land. Gen. 14:6; Gen. 36:8, 9, 30; Deut. 2:1-12; etc. The word of Jehovah announced to the prophet the perpetual desolation of Mount Seir. Ezek. 35:2-15. (창14:6; 호리 족속을 그 산 세일에서 쳐서 광야 근방 엘바란까지 이르렀으며 (창36:8-9, 30;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산에 거하니라 세일산에 거한 에돔 족속의 조상 에서의 대략이 이러하고, 디손 족장, 에셀 족장, 디산 족장이라 이들은 그 구역을 따라 세일 땅에 있는 호리 족속으로 말미암아 나온 족장들이었더라 (신02:1-12; 광야에서의 세일산 (겔35:2-15 여호와의 세일산에 대한 예언 2. A northern boundary of Judah. Joshua 15:10. Probably the ridge north of Kirjath-jearim. (수15:10 또 바알라에서부터 서편으로 돌이켜 세일산에 이르러 여아림산 곧 그살론 곁 북편에 이르고 또 벧세메스로 내려가서 딤나로 지나고 --- Morrish Bible Dictionary ▶ Seir - (창14:6, (창32:3, (창33:14, (창36:8, (민24:18, (신01:44, (신02:4, (신33:2, (수11:17, (수12:7, (삿05:4, (대하20:23, (대하25:11, (대하25:14, (사21:11, (겔25:8 ▶ Mount Seir 1 - Bozrah (신01:2, (신02:1, (신02:5, (대상04:42, (대하20:10, (대하20:22, (대하20:23, (겔35:2, (겔35:3, (겔35:7, (겔35:15 lt=30.734691&ln=35.606250 ▶ Mount Seir 2 - (수15:10 lt=34.994000&ln=31.783333
3 욕드엘(Joktheel)
지명
jesus
3113 14 2007-01-02
▶ 욕드엘(Joktheel) [1] 미스베와 라기스의 중간 지점으러 언금됨. 유다 평지에 있는 성읍(수15:38). [2] 셀라(Sela)로 불리던 에돔의 성읍. 유대왕 아마샤가 정복한 에돔의 성읍인데 이전 이름은 셀라이다(왕하14:7, (대하25:11). ▶ Joktheel 1 - (수15:38 lt=31.56485&ln=34.84672 ▶ Joktheel 2 - (왕하14:7 lt=30.32243&ln=456
2 염곡(Valley)
지명
jesus
1699 16 2007-01-02
▶ 염곡(Valley) 이곳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제일 유력하게 생각하는 곳은 세렛 시내 하류와 사해 남쪽 끝으로 연결된 골짜기로 추측하고 있다. 베드라 근처에 있는 한 계곡인데 다윗 아마샤 두군주가 많은 에돔인을 살륙한 곳이다(삼하08:13, (왕하14:7, (대상18:12, (대하25:11, (시060 제목).
1 예루살렘(Jerusalem) 파일
지명
jesus
10994 48 2007-01-02
▶ 예루살렘(Jerusalem) 뜻: 평화의 터전 유대와 베냐민 두지파의 경계선상에 있으며 지중해 헤브론 요단강 사마리아로접경을 삼고 있다. 이 명칭은 (수10:1)에 처음 기재되었으나 오래전부터 있어 옛 이름이 살렘 우루살렘이라라 하나 확증이 없고 확실한 것은 여부스이며 (삿19:10-11)별명으로 오홀리바라 하고(겔23:4) 시온산의 이름을 따라 시온성 다윗왕의 도성인고로 다윗성,고라의 자손은 하나님의 성리라 하고 하나님 의 성전이 있는고로 거룩한 성이다라 하였다(삼하05:7,5:9, (눅02:11, (시046:4, (느11:1, (마04:5). 이로부터 유대인들은 이 예루살렘을 극히 존중히 여기고 경모 하였다(시122:6, (시137:5-6, (왕상08:38, (사62:1, 7, (단06:10, (마05:35). 스가랴선지는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를 구하라고 예언하였고(슥08:22-23).사도들은 한층 더 고상히게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성이라 하였다(갈04:26).너희가 이를곳은 시온산과 하나 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이라 하였고(히12:22)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이 그의 위에 기록하리라 하고(계03: 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니 그 예 비한 것이 신부가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다고 하였다(계21:2). (1) 역사적 종교적 중요성. 예루살렘은 고대 가나안 사람의 수도였으나 B.C 1,000년경 다윗왕이 점령 령하였다. 아모스와 호세아를 제외한 모든 선지자들의 활동무대였으며 구약 성경 대부분이 여기서 기록되었다. B.C.586년 느부갓네살이 점령하였고 포로 에서 돌라온 후 다시 재건하였으며 파사 희랍 로마시대를 통하여 그의 신성을을 점점 더하였다. 예수의 사역, 죽음, 부활, 승천의 무대였다. A.D.70년 타이러스가 예루살렘을 함락시켰고 136년 하도리안 황제때 재건되었었다가 637년 칼리프 오말에게 점령되었고 회회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1099년 십자군이 점령하였고 1517년 알렌비장군의 연합군이 점령하기까지 터키 사람 의 수중에 있었다. 1920년 국제 연맹의 결의로써 영국의 위임통치로 되었다가 제 2차 대전 이후에 독립하였다. (2) 위치와 기후 고대 문헌을 참고해 볼 때 현재의 예루살렘은 고대 예루살렘의 터위에 건설된 것이 확실하다. 기후는 이탈리아의 북부와 비슷하며 겨울에는 영하2도쯤되며 눈도 내리지만 오래 쌓여있지 않는다. 여름철에는 평균 최고 30도 를 넘지 않는다. (3) 성전의 위치. 솔로몬의 성전은 B.C.586년 느부갓네살의 손에 부서지기까지 존속하였고 포로 기간 중에도 그 위 치를 잊어버리지 않았다(렘41:5, (학 2:3, (스03:12). B.C.516년 스룹바벨이 그 자리에서 다시 지었다(스06:15). 요세퍼스에 의하면 헤롯의 성전은 그런 것을 확장 미화한 데 불과하다고 한다. (4) 지세. 가) 기드론 골짜기:이 골짜기는 예루살렘 동쪽 와디 싯티 마리암일 것이다. (요18:1)과 (막14:26) 을 보면 예수가 감람산에 가실 때 이 골짜기를 건느셨다 나) 힌놈 골짜기: 이 골짜기는 예루살렘 서남쪽을 에워싼 넓은 골짜기 로서 와디엘 라바비일 것이다. 다) 혈 로겔: 골짜기와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은 샘과 못이다. (왕상01:)을 보면 아도니아는 엘로겔에서 대관식을 거행 하였으며 솔로몬은 기혼에서 행하였다. 라) 베데스다:38년된 병자가 일어난 곳이다(요05:) 예루살렘 부근에는기혼(처녀의 샘)이 유일한 간혈천이다. 아마 이것이 베데스다 못의 유적일 것이다. 마) 실로암 지금은 아인이라고 부르는데 실상은 샘이 아니라 처녀의 샘 이 아니라 처녀의 샘의 물을 바위를 뚫어서 급수한 것이었다고 한다. (5) 시대적 증거 가) 솔로몬 시대에는 예루살렘 성전,왕궁,바로의 딸의 집이 계속해있으며 주위는 성벽을 쌓았다. 왕궁은 남쪽에 있었으리라 본다. 왜냐하면 다윗궁 보 다는 높고 경전보다는 낮다고 하였다 (왕상06:36, (왕상7:8,12 (사01:26, (왕상08:1, (왕상09:24, (왕상10:5, (왕하11:19, (렘22:1, (렘26:10, (왕상07:8, (왕상09:24, (왕상03:1, (왕상09:15). 나) 히스기야 시대의 예루살렘 히스기야왕은 산헤립의 침입을 예상하여 기혼의 물을 다윗성 서쪽에 끌어들이는 수로의 기록이 있다. (왕하20:20, (대하32:4,30, (대하07:3,(사22:9-11).이것은 바위를 뚫은 굴인데 이 굴 의 안벽에는 옛날 히브 리어의 비문이 조각되어 있다. 이것이 실로암 비문이다. 다) 신약시대의 예루살렘. 신약시대에 있어서는 예수의 예루살렘 방문이 가장 큰 사건이다 예수님이 처음 세번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것은 성전과 관계가 있었다 (눅02:22-39,41-50, (요02:13-22). 네번째는 베데스다 못(요09: ) 다섯번째는 성전(요07:) 여섯번째는 실로암못과 관계가 있었다(요 9:) 일곱번째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소 수난주일 동안 일,월,화요일에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막11:-16:) 목요일에는 다락방에서 만찬을 잡수셨다(막14:15) 이 다락방은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었을 것이다. 이곳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초대교회의 집회 장소가 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욥바의 문곁 에 빌라도의 집이 있었다고 하며 헤롯 궁전과 같이 있었을 것이라 한다. 십자가와 무던의 장소인 골고다에는 현재의 성묘교회가 서 있다고 한다 옹기쟁이의 밭 "아겔다마"는 나그네의 매장지였다(행01:18). ▶ 예루살렘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시132:13) -------------------------------------------------------------------------------- 황금의 도시, 영원한 도시, 평화의 도시인 예루살렘은 3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채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역사의 중심에서 아직도 꿋꿋하게 살아 숨쉬는 이스라엘의 수도이다. 아무런 보잘 것 없은 풍경과 전무한 상태의 부존 자원을 가진 유대 광야의 동편 가장자리에 우뚝 솟아있는 이 도시를 성경은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시125:2) 하였다. 이런 아무 쓸모없는 땅이 하나님께 선택함을 받았고, '일신교의 보루로서', '세계인의 성도' 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불모의 언덕에서 유명한 철학자들과 선지자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설교와 도덕적 계율들, 그리고 한 형제로서의 사랑을 가르치셨고 실수와 우상숭배로 인해서 눈 어두워진 이 땅의 사람들에게 바른 판단의 기준과 신앙적인 확신을 심어준 신앙의 틀을 짠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 (미04:2) 이곳은 전인류의 절반이 종교적인 수도로 믿고 있고,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옛날의 영광이요 미래 희망의 상징이며, 기독교인에게 있어서는 예수님의 마지막 사역이 펼쳐진 곳이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생생하게 지켜본 도시이다. 또한 회교도들은 이곳이 선지자 모하마드가 승천한 곳이라 믿고 있다. 예루살렘은 신앙과 평화의 원천이며, 가장 신성한 도시인 동시에 테러와 전쟁의 피가 끊임없이 흘려진 곳이다. 즉, 칼이 오랜 동안의 역사를 거쳐오면서 이들의 자손들을 괴롭혀 왔던 것이다. 지구상의 어떤 도시보다도 많은 전쟁을 거쳐왔고, 사람들의 피로 바다를 이룬 적이 수없이 많았었다. 무려 50차례 이상을 포위 공격 당했으며, 36차례에 걸친 정복과 10차례의 심한 파괴를 당했다. 예루살렘의 시초는 고대사 속에 묻혀 있어 알 길이 없지만, '평화'라는 뜻의 '살렘'(salem) 이라는 이름으로 가나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창14:18), 또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비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미는 헷사람이라" (겔16:3) 하였다. 사실상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곳이 된 것은 주전 10세기에 다윗 왕이 여부스 족으로부터 예루살렘을 정복해서 그의 수도로 삼고 (삼하05:6 ~ 10), 여호와의 언약궤를 이곳으로 옯겨온 (삼하06:1 ~ 23) 이후라고 말할 수 있다. 이후 다윗성(City of David)이라고도 불리웠으며, 자신을 포함한 역대 왕들의 무덤이 되기도 하였다. (사진: 다윗의 망대) BC 965 ~ 922 년에는 예루살렘을 확장 시킨 솔로몬 왕이 성전과 그의 궁전을 짓고 예루살렘을 미화하였다. 본격적으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종교, 정치, 문화, 사회등 무든 분야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화려하여 "은을 돌같이 흔하게" (왕상10:27) 하던 예루살렘은 남북 분열 이후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BC 586년 바벨론에 의해서 정복 당하였으며 성전이 파괴되고 사람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시137:1 ~ 4) 하며 애곡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곳에서도 예루살렘을 향하신 하나님의 미래를 결단코 포기하지 않았으며, 그 꿈은 예언자들의 예언대로 70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귀향하여, BC 516 ~ 515 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였다. BC 332년 예루살렘은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서 정복 당했다가, 마카비 전쟁을 통하여 성전을 재탈환하고, 헤스모니아 왕가에 의해서 잠시 동안의 독립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시 로마의 폼페이우스에 의해서 정복되고 말았다. (BC 63년). 로마의 후광을 입어 BC 37년 유대인의 왕으로 임명 된 헤롯 대왕 (Herod the Great)은 위대한 건축가로서 예루살렘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갔으며, 솔로몬 당시의 성전보다도 더 장대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건립하고 성벽을 쌓았다. 이성전은 46년 동안이나 걸려 건축되었고 (요02:20), "헌물과 미석으로 꾸며졌다" (눅21:5). 이 예루살렘이 예수님 당시의 바로 그 예루살렘이다. 그러나 이렇게 화려했던 예루살렘도 예수의 예언 (눅19:41 ~ 44, (눅21:6,20,24)대로 "돌 위에 돌 하나가 남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로마의 티투스 (Titus)는 BC 70 년 예루살렘을 불태워 버리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터전이 되지 못하였으며, 세계에 흩어진 그들에게 있어서 이 도시는 다만 과거의 도시일 뿐이었다. AD 132 ~ 135년 바르 코흐바 (Bar Kokhba) 에 의한 제2차 유대 반란 이후 하드리안 황제에 의해서 예루살렘은 로마의 도시로 재건되면서 엘리아 카피톨리나 (Aelia Capitolina) 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워지게 됨으로써 그 명성있던 이름마저 빼앗기게 되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성스러운 장소에는 로마의 제우스 신전이 세워지고 유대인의 출입이 금해지고 만 것이다. AD 332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예루살렘을 비롯한 예수와 관련된 팔레스틴을 '성지'(Terra Sancta)라 하여 곳곳에 기독교 교회를 세우기 시작하였다. 특히 예루살렘의 골고다에 세워진 성묘교회와 베들레헴에 세워진 예수 탄생교회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친어머니인 헬레나에 의해 건립되었다. 그러나 614년 페르샤의 침공으로 대부분의 교회가 파괴되었으며, 636년 아랍에게 예루살렘이 점령되어 약 500여년간 아랍의 통치하에 있게 됨으로써 예루살렘은 더 이상 기독교의 전통을 이어가지 못하게 되었으며, 새로운 아랍문화로 채색되어 갔다. 1099년 예루살렘이 십자군의 휘하에 들어감에 따라 약 200년 동안 라틴제국의 도시가 되었다가, 1187년 살라딘 왕이 이끄는 모슬렘에 의해서 재점령 됨으로써 기독교와 모슬렘 사이의 이중구조 속에서 예루살렘은 변모해 갔다. 1517년 오토만 터어키 (Ottoman Turkey)의 지배하에 들어감으로써 400년간의 터키 통치가 시작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영국군은 1917년 이후 예루살렘에 총독부를 두어 위임 통치를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제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면서 신생 이스라엘은 시온주의자들의 노력과 국제기구의 승인에 의하여 1948년 5월 14일, 2천년 동안의 유랑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국가로 탄생하게 되었으며, 예루살렘은 다시 이스라엘의 수도가 되어 옛날의 영화를 되찾게 되었다. (사진 :오토만 터키군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알렌비 장군과 영국군) 현재 예루살렘의 신시가지 (New City)는 불과 150여년 전부터 발전되기 시작하였다. 구도시 (Old City)는 1평방 킬로미터에 불과하여 매우 비좁을 뿐만 아니라 매우 오래된 도시이기 때문에 시설이 좋지 못하고 비위생적이었다. 150여년이 지난 지금은 신도시가 구도시의 약 100배가 넘는 신시가지로 발달하였다. 1967년 6일 전쟁 이후 통합된 구도시는 주로 고적지와 박물관 등을 포함하여 새로운 위생시설을 갖춘 일반 주거지로 사용되고 있으며, 신시가지에는 정부청사 등을 비롯한 행정수도로서 그 면모를 현대화해 나가고 있어 옛것과 새 것의 환상적인 조화가 이루어져 있다. 특히 연한 노란 빛을 띄고 있는 석회암에서 반사되는 아름다움은 이 도시를 '황금의 도시' (The Golden City)라 부르게 한다. ▶ Jerusalem's - (사62:1 ▶ (수10:1, (수12:10, (수15:8, (수18:28, (삿01:7, (삼상17:54, (삼하05:5, (삼하08:7, (삼하09:13, (삼하10:14, (삼하11:1, (삼하12:31, (삼하14:23, (삼하15:8, (삼하16:3, (삼하17:20, (삼하19:19, (삼하20:2, (삼하24:8, (왕상02:11, (왕상03:1, (왕상08:1, (왕상09:15, (왕상10:2, (왕상11:7, (왕상12:18, (왕상14:21, (왕상15:2, (왕상22:42, (왕하08:17, (왕하09:28, (왕하12:1, (왕하14:2, (왕하15:2, (왕하16:2, (왕하18:2, (왕하19:10, (왕하21:1, (왕하22:1, (왕하23:1, (왕하24:4, (왕하25:1, (대상03:4, (대상06:10, (대상08:28, (대상09:3, (대상11:4, (대상14:3, (대상15:3, (대상18:7, (대상19:15, (대상20:1, (대상21:4, (대상23:25, (대상28:1, (대상29:27, (대하01:4, (대하02:7, (대하03:1, (대하05:2, (대하06:6, (대하08:6, (대하09:1, (대하10:18, (대하11:1, (대하12:2, (대하13:2, (대하14:15, (대하15:10, (대하17:13, (대하19:1, (대하20:5, (대하21:5, (대하22:1, (대하23:2, (대하24:1, (대하25:1, (대하26:3, (대하27:1, (대하28:1, (대하29:1, (대하30:1, (대하32:19, (대하33:1, (대하34:1, (대하35:1, (대하36:1, (스01:2, (스02:1, (스03:1, (스04:6, (스05:1, (스06:3, (스07:7, (스08:29, (스09:9, (스10:7, (느01:2, (느02:11, (느03:8, (느04:7, (느06:7, (느07:2, (느08:15, (느11:1, (느12:27, (느13:6, (에02:6, (시051:18, (시068:29, (시079:1, (시102:21, (시116:19, (시122:2, (시125:2, (시128:5, (시135:21, (시137:5, (시147:2, (전01:1, (전02:7, (아01:5, (아02:7, (아03:5, (아05:8, (아06:4, (아08:4, (사01:1, (사02:1, (사03:1, (사04:3, (사05:3, (사07:1, (사08:14, (사10:10, (사22:10, (사24:23, (사27:13, (사28:14, (사30:19, (사31:5, (사33:20, (사36:2, (사37:10, (사40:2, (사41:27, (사44:26, (사51:17, (사52:1, (사62:6, (사64:10, (사65:18, (사66:10, (렘01:3, (렘02:2, (렘03:17, (렘04:3, (렘05:1, (렘06:1, (렘07:17, (렘08:1, (렘09:11, (렘11:2, (렘13:9, (렘14:2, (렘15:4, (렘17:19, (렘18:11, (렘19:3, (렘22:19, (렘23:14, (렘24:1, (렘25:2, (렘26:18, (렘27:3, (렘29:1, (렘32:2, (렘33:10, (렘34:1, (렘35:11, (렘36:9, (렘37:5, (렘38:28, (렘39:1, (렘40:1, (렘42:18, (렘44:2, (렘51:35, (렘52:1, (애01:7, (애02:10, (애04:12, (겔04:1, (겔05:5, (겔08:3, (겔09:4, (겔11:15, (겔12:10, (겔13:16, (겔14:21, (겔15:6, (겔16:2, (겔17:12, (겔21:2, (겔22:19, (겔23:4, (겔24:2, (겔26:2, (겔33:21, (겔36:38, (단01:1, (단05:2, (단06:10, (단09:2, (욜02:32, (욜03:1, (암01:2, (암02:5, (옵01:11, (미01:1, (미03:10, (미04:2, (습01:4, (습03:14, (슥01:12, (슥02:2, (슥03:2, (슥07:7, (슥08:3, (슥09:9, (슥12:2, (슥13:1, (슥14:2, (말02:11, (말03:4, (마02:1, (마03:5, (마04:25, (마05:35, (마15:1, (마16:21, (마20:17, (마21:1, (마23:37, (막01:5, (막03:8, (막07:1, (막10:32, (막11:1, (막15:41, (눅02:22, (눅04:9, (눅05:17, (눅06:17, (눅09:31, (눅10:30, (눅13:4, (눅17:11, (눅18:31, (눅19:11, (눅21:20, (눅23:7, (눅24:13, (요01:19, (요02:13, (요04:20, (요05:1, (요07:25, (요10:22, (요11:18, (요12:12, (행01:4, (행02:5, (행04:5, (행05:16, (행06:7, (행08:1, (행09:2, (행10:39, (행11:2, (행12:25, (행13:13, (행15:2, (행16:4, (행19:21, (행20:16, (행21:4, (행22:5, (행23:11, (행24:11, (행25:1, (행26:4, (행28:17, (롬15:19, (고전16:3, (갈01:17, (갈02:1, (갈04:25, (히12:22, (계03:12, (계21:2, lt=31.777&ln=35.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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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연대표 1.창조 2.족장 3.출애굽 4.광야 5.정복 6.사사 7.통일왕국 8.분열왕국 9.포로 10.포로귀환 11.중간 12.예수 13.초대교회 14.세계선교 관련그림.지도 1.창조 2.족장 3.출애굽 4.광야 5.정복 6.사사 7.통일왕국 8.분열왕국 9.포로 10.포로귀환 11.중간 12.예수 13.초대교회 Ani
1창세기[Genesis] 2출애굽기[Exodus] 3레위기[Leviticus] 4민수기[Numbers] 5신명기[Deuteronomy] 6여호수아[Joshua] 7사사기[Judges] 8룻기[Ruth] 9사무엘상[I Samuel] 10사무엘하[II Samuel] 11열왕기상[I Kings] 12열왕기하[II Kings] 13역대상[I Chronicles] 14역대하[II Chronicles] 15에스라[Ezra] 16느헤미아[Nehemiah] 17에스더[Esther] 18욥기[Job] 19시편[Psalms] 20잠언[Proverbs] 21전도서[Ecclesiastes] 22아가[Song of Solomon] 23이사야[Isaiah] 24예레미야[Jeremiah] 5예레미아애가[Lamentations] 26에스겔[Ezekiel] 27다니엘[Daniel] 28호세아[Hosea] 29요엘[Joel] 30아모스[Amos] 31오바댜[Obadiah] 32요나[Jonah] 33미가[Micah] 34나훔[Nahum] 35하박국[Habakkuk] 36스바냐[Zephaniah] 37학개[Haggai] 38스가랴[Zechariah] 39말라기[Malachi] 40마태복음[Matthew] 41마가복음[Mark] 42누가복음[Luke] 43요한복음[John] 44사도행전[Acts] 45로마서[Romans] 46고린도전서[I Corinthians] 47고린도후서[II Corinthians] 48갈라디아서[Galatians] 49에베소서[Ephesians] 50빌립보서[Philippians] 51골로새서[Colossians] 52데살로니가전서[I Thessalonian] 53데살로니가후서[2 Thessalonian] 54디모데전서[I Timothy] 55디모데후서[II Timothy] 56디도서[Titus] 57빌레몬서[Philemon] 58히브리서[Hebrews] 59야고보서[James] 60베드로전서[I Peter] 61베드로후서[II Peter] 62요한일서[I John] 63요한이서[II John] 64요한삼서[III John] 65유다서[Jude] 66요한계시록[Reve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