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수(鳳凰愁) - 조지훈(趙芝薰)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丹靑), 풍경 소리 날어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玉座) 위엔 여의주(如意珠) 희롱하는 쌍룡(雙龍) 대신에 두 마리 봉황(鳳凰)새를 틀어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추石)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佩玉) 소리도 없었다. 품석(品石) 옆에서 정일품(正一品), 종구품(從九品) 어느 줄에도 나의 몸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九泉)에 호곡(呼哭)하리라.

<문장, 1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