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고구려 명문이 있는 금동판(금동명문판)  함경남도 신포시 오매리 절골유적 nkmhjhamnam

이 명문있는금동판은 함경남도 신포리 오매리 절골유적에서 출토된 고구려시대의 것이다. 1988년 6월 발굴되었다. 절골유적은 고구려의 문화층과 발해의 문화층들로 이루어졌는데 이 유물은 발해문화층에서 나왔다.금동판의 뒷면에 못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유물을 탑이나 건물같은데 고정시켰던 것 같다. 금동판의 앞부분은 깨어져 없어지고 뒷부분이 남았는데 그 크기는 길이 41.5cm, 너비 18.5cm, 두께 0.3-0.5cm이다.

글은 온른쪽부터 내려썼는데 지금 남아 있는 글은 12줄이다. 그 가운데서 잘 알아볼 수 있는 글자는 113자이고 떨어지거나 마모되어 잘 알아볼 수 없는 글자는 26자 이다. 글의 내용은 불교와 관련된 것이다. 금동판에는 글을 새긴 연월일이 밝혀져 있다. 그런데 여기서 연호의 첫 글자의 오른쪽 획이 떨어지고 날자를 세는 첫 글자가 일부 마모되었다.

판독에 의하면 태화(太和) 3년 병인년 2월 26일 초하루 갑술일이다. 태화라는 연호는 고구려의 양원왕(재위 545-559)의 연호로 추정된다. 그것은 다른 나라의 연호에도 태화라는 연호가 있기는 하나 태화 3년 2월 초하루가 갑술로 되는 것은 없다. 따라서 이 금동판에 글을 새겨 넣은 날자는 고구려 양원왕 때, 즉 546년 2월 26일이 된다.

고구려의 유물인 이 금동판이 발해의 문화층에서 나온 이유는 고구려시기에 만든 것이 발해 때까지 그대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 금동판은 명문을 통하여 여기의 태화가 다름 아닌 고구려의 독자적인 고유 연호들 중의 하나임을 밝혀 주며, 또한 그 출토상태로 보아 문화면에서 고구려의 계승자가 바로 발해였음을 말하여 주는 가치 있는 유물이다. (길이 41.5cm)

<참고> 역사상 태화(太和)라는 연호가 쓰여진 시기는 다음과 같다. 위(魏 : 227-232), 후조(後趙 : 328-329), 성한(成漢 : 344-345), 진(晉 : 366-371), 북위(北魏 : 477-499), 당(唐 : 827-835), 오(吳 : 929-934)




역사년표Map BC -AD 1 -600 -1000 -1500 -1800 -1900 -1950 -1980-현재 (1945년이후 10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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