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2.12 02:55:17


20 고려 용주성 평안북도 피현군 성동리 nkmhjpyungbuk
용주성은 높이 솟은 아후산과 남산에서 시작되어 동쪽으로 가면서 낮아지는 두 줄기의 능선을 따라 쌓은 석성으로서 성 안골은 동쪽이 열린 아늑한 원형분지이다. 성의 둘레는 3,950m이다. 성은 1014년에 축조되었다.
성벽 축조에는 대부분 네모나게 대충 다듬은 길쭉한 돌로 성 바깥 한 면만을 쌓는 외면축조방법을 썼는데 성 안골 평지에 잇닿아 있는 남쪽부분만은 성 안팎을 다 쌓는 양면축조방법을 썼다. 성벽 위에는 이마돌을 놓고 성가퀴를 쌓았으며, 거기에 쏘는 구멍을 냈다. 『고려사』에 용주성에 12개의 치를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지금은 성벽이 안쪽으로 구부러든 부분들에 그 흔적이 남아있을 뿐이다.
성에는 동, 서, 남, 북 4면에 큰 문을 내고 거기에 옹성을 쌓았다. 특히 동문과 남문의 옹성들은 성 안쪽으로 내면서 평면은 네모나게 짜고 성문의 문길과 옹성문의 문길이 일직선상에 겹놓이게 만든 것이다. 지형지세에 맞게 방위력을 높이기 위한 축성자들의 기발한 착상이 실감 있게 안겨 오는 특색 있는 옹성 구조이다. 동문은 용천벌과 잇닿아 있고, 교통이 편리하여 이 문으로 식량과 군수물자들을 실어들였다 한다.
그밖에 이 성에는 6개의 사잇문을 냈다. 성의 장대들은 성 안팎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고 전투지휘에 편리한 남산과 아후산의 높은 봉우리에 배치하였다. 성의 수구문은 동문 왼쪽에 크게 냈는데 성안의 물은 모두 이 곳으로 흘러나간다.
성 안에는 3개의 못자리와 여러 개의 우물자리, 병영터, 병기창고터, 식량창고터 등이 있으며, 동쪽 성밖에는 오늘도 큰 연못이 그대로 남아 있다. 성의 서북쪽 성벽밖에는 돌사람과 돌사자 조각이 서 있는데 성을 지키는 수호신이라고 전한다. 1014년이 곳에 침입하였던 거란군은 용주성을 지키던 군사들과 백성들의 완강한 반격에 부딪쳐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쫓겨가고 말았다.
압록강과 청천강 사이에 배치된 중요한 요새들 중의 하나였던 용주성은 고려시기 축성기술과 당시 백성들의 애국심을 실물로 전하여 주는 자료라고 하겠다.
역사년표Map BC -AD 1 -600 -1000 -1500 -1800 -1900 -1950 -1980-현재 (1945년이후 10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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